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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21:3~5 창조 2.0 P2

LNCK 2022. 12. 23. 15:26

창조2.0 [요한계시록 46] -  갓피플TV [공식제휴] - YouTube

◈창조 2.0   P2

☞P1  계21:1~2 창조 2.0 P1 (tistory.com)   에 이어서 

▲그럼 '천국'과 '하나님의 나라'는 같은 말이지만, 둘의 강조점이 다른데,
'하나님의 나라'는 .. 공간적 개념보다 "통치 개념"이 훨씬 강하며, 
'천국'은 재림 이후에, 부활 이후에 거하게 될 "공간 개념"인 것입니다. 

그 천국은, 계21:1절에서 말씀하는 바 "두 번째 창조"의 천국입니다.
성경적으로 보면 그렇게 해석할 수밖에 없어요. 

주님은 재림하셔서,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시고 
거기서 영원한 시간을 보내게 하실 거라고, 성경은 증거하잖아요. 

그래서 성경에 가장 마지막 장인 21~22장은
이 "새창조의 세계"에 대해서 설명합니다. 

저와 여러분은 창세기 1장에서 창조된 
창조 1.0 의 세상 만을 위해 지음받은 존재가 아니에요. 

창조 1.0 의 세계가 끝나고 새로운 세상이 도래해도 
거기서도 여전히 존재할 거고.. 

왜요?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원받았고, 타락했지만
예수 믿어 거듭나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 영원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이 세상 만을 위해 지음받은 존재가 아니라는 거에요. 
이 세상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존재하는, 하나님의 새하늘과 새땅이 있습니다. 

아멘 거기는 공기도 다를 것이고, 물리법칙도 다를 것이고, 
존재하는 방식도 전혀 다를 것입니다. 

해도 달도 없다고 했으니까요. 

(*계21:23,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침이 쓸 데 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치고 어린 양이 그 등불이 되심이라'
그런데 해와 달이 있지만, 비취지 않을 수도 있죠.

그런데 25절에 '거기에는 밤이 없음이라'고 했죠.
그러니 천체의 변화가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예상합니다.)

하여간 성도는, 전혀 다른 그 세상을 위해 지음받은 존재라는 거에요. 
그리고 이 계시록에 기록된 모든 이야기들은 "선별과정" 이라는 거죠. 
거기에 들어갈 사람들을 선별하는 거예요. 

이것을 통과한 이들은, 이제 새로운 세계인 창조 2.0 의 세계로 
하나님과 함께 들어가게 된다는 거예요. 신부로 단장된 후에요! 할렐루야! 

▲여러분, 이 두 번째 세계로 들어가는 선별 기준은 
"신부로 단장" 되는 거에요.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로 단장된 성도들만
두 번째 창조 2.0, 새하늘과 새땅 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의 삶은 
창조 2.0 의 세계로 들어가기 위한 선별 과정이고 준비(단장)과정입니다. 

어떻게 단장되나요? 
예수 그리스도를 생명 다해 사랑하는 자들,
신랑 예수님께 생명 다해 충성하는 자들... 
그렇게 준비되고 단장 되는 줄 믿습니다. 

이 마지막을 이해할때, 우리는 우리가 현재 겪고 있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비로소 이해하게 됩니다. 

'아 우리는 창조 1.0 세상 만을 위해서 지음 받은 존재가 아니구나! 
창조 2.0 세상을 향해 가야되는 존재구나!'
 
신부 단장 되는 그 핵심은 뭐라고요?

신랑이 신부를 사랑하셨듯이, 생명을 주셨듯이 
우리도 신랑을 위하여 생명을 드리는...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것도 신랑 앞에 아낌없이 드리는... 
그 사랑, 그 충성, 그 마음의 진심! 이거를 성도가 증명하는 거예요. 

그게 증명된 사람들이, 단장된 신부인줄 믿습니다. 아멘! 


◑21:3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21:3절 이하는, 두 번째 세상(천국)에서 일어날 일을 기록하고 있죠.

위 구절에, (첫 번째 특징이 신부로 단장되는 거라면) 
두 번째 특징은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 그랬는데   :3

성도는, 지금도 하나님의 백성이고, 
구약시대에도 하나님의 백성이었잖아요.
저 천국에서도 '하나님의 백성'이라니.. 별로 달라진 게 없는 것 같아 보입니다.

 

3절에서 핵심은 뭐냐면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한다'는 거에요.

무슨 말이냐면, 창조 2.0 세상에서는 
영이신 하나님의 존재가, 손에 잡히고 눈에 보이듯이 
우리가 함께 하신다는 거예요. 

창조 1.0 세상에서는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가 분리 되어 있었어요.
그러다가 드문드문 하나님의 임재가 우리 가운데 내려와서 보였어요.

창조 1.0 세상에서는, 구약 성전이 
보이는 세계 보이지 않는 세계를 연결하는 통로 였고 

 

신약에서는 모든 믿는 사람이 성전이 되어서, 
우리 안에 성령께서 거하시면서 
우리가 두 세계에 끼어있는 존재였는데 

두 번째 창조 세계에서는, 이런 수준이 아니라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가 아예 같이 만나서 언제나 존재합니다. 

그래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서, 마치 우리가 옆 사람과 대화하듯이
우리 가운데 함께 거하신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게 두 번째 세상에서의 가장 큰 특징입니다. 
창조 2.0 세상에서는, 물질세계와 영적인 세계가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거에요.

하나님이 친히 그의 백성들과 함께 거하신다, 함께 하신다는 거예요. 와우! 

그래서 거기에는 성전이 없다고 말씀하죠.   21:22
왜 성전이 없겠어요? 
더 이상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세계를 연결할 필요가 없는 거예요. 
그러니, 그 연결하는 역할을 했던 성전이.. 필요가 없게 된 거죠.

그냥 어디나 성전인 거예요. 어디나 하나님이 계시는 거예요. 아멘! 
이것이 두번째 세상의 특징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게 어떤 상태인지, 현재로서는 감을 잡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그런 세계에 한 번도 살아 본 적이 없고 
그래서 현재로서는 감을 잡을 수 없는데 

사실은 힐끗 힐끗 경험 하긴 했을 거예요. 
그 대표적인 사람이 구약의 모세 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이 실제로 우리와 함께 계신 것 같은 그 상태가 어떤 것인지를 
경험하고 이렇게 기록합니다. 

출33:21~23 '여호와께서 또 이르시기를 보라 
내 곁에 한 장소가 있으니 너는 그 반석 위에 서라
내 영광이 지나갈 때에 내가 너를 반석 틈에 두고 
내가 지나도록 내 손으로 너를 덮었다가
손을 거두리니 네가 내 등을 볼 것이요 얼굴은 보지 못하리라'

하나님을 대면하는 경험이, 얼마나 강렬하고 얼마나 충격적이었는지
죽을 것만 같았다.. 라는 거예요. 그것도 뒷모습만 봤어도 그랬어요.

하나님의 현존,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된 사람은 
사람은 그것을 감당할 수 없다는 거예요. 

우리와 너무나 다르신 하나님의 완전한 영광, 완전한 현존을 우리가 보게 되면
사람이 감당할 수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모세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대면했던 다른 선지자들도 
거의 비슷하게 얘기합니다. 이사야는 그래요. '내가 죽게 되었도다'  사6:5

에스겔은 하나님을 잠깐 대면하고도
7일 동안 죽은 자 같이 부들부들 떨었어요.  겔3:15
'나는 그들과 함께 7일동안 머물러 있었는데, 얼이 빠진 사람처럼 앉아 있었다'

우리가 거룩하신 하나님의 임재를 대면하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닙니다. 
잠깐 대면 하는 것만으로도 일주일을 떨어야(정신이 나가야) 되었어요. 

그건 창조 1.0 세상이었고, 그런데 창조 2.0 세상, 즉 새하늘과 새땅에서는
그 하나님께서 아예 장막을 치시고, 우리와 함께 거하신다는 겁니다. 

와 이건 여러분, 사실은 보통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사실은 신부=새 예루살렘이 거룩하게 단장 되어야 하는 거죠.

우리가 여러분 감당할 수 없는 이유가 뭐예요? 죄 때문에 그런 거거든요.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현존이 
우리로 죽을 정도로 떨게 만드는 이유는, 죄때문에 그런 거예요. 

그래서 '단장된다'는 말은, '거룩해진다'는 뜻입니다. 
그래야만 하나님의 임재와 함께 할 수 있는 거죠. 

그 거룩함은 물론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 옷 입는 것이지요.
그러니 사실은 믿음의 거룩함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메인 거룩함이고,
그 다음에, 내가 하나님의 성품을 본받는.. 변화되고 성숙한 성품의 거룩함이죠.

▲그렇지만 하나님의 임재 앞에 나아가기 위한 절대적인 조건은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움을 옷 입는 거죠. 

이게 안 되면.. 하나님이 항상 우리와 함께하시는 그곳에는 
우리가 거할 수가 없는 거죠. 

그 임재 무게와, 하나님의 거룩함의 무게가 
그냥 (안 믿는) 사람을 죽게 만드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 옷 입은 자들만 그곳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게 뭐예요? 단장이죠. 
우리로 믿음으로 단장하는 거룩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옷 입은... 거룩한 단장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땅에 있을 때, 하나님의 임재를 대면하는 것을 
많이 연습해야 됩니다. 그게 뭐예요? 예배죠.

예배의 본질은, 그냥 좋은 말씀을 배우는 게 아니에요. 결코 그게 아니에요. 
예배는 단순한 종교 행사가 아니에요. 예배는 뭐를 연습하는 거예요? 
우리가 영원히 살아갈 삶을, 이 땅에서 예행 연습하는 거예요. 

예배의 본질은, 하나님을 대면하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이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시기 때문에, 항상 옆에 계시기 때문에 
이제는 천국의 모든 시간이 예배가 되는 거지요. *삶의 예배

그런데 그 천상의 예배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여기서 지금부터 하나님을 대면하는 연습을 하는 거예요. 예배를 통해!

그래서 모든 예배는 하나님의 임재가 있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예배는 좋은 말씀을 듣는 게 전부가 아니에요. 

말씀의 역할은, 하나님을 대면하도록 인도해 주는 거지, 
그 말씀에 역할은 지식만을 전달하는 게 아니라는 뜻이에요. 

지식은 우리로, 하나님의 임재로 나가도록 도와주는 하나의 방편일 뿐이에요. 

주일예배는, 하나님을 대변하는 시간인 줄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영광의 임재를 지금부터 연습해야 돼요. 
하나님의 임재를 대면하는 일에 익숙해져야 돼요. 무엇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 

그래서 복음서에 혼인 잔치에 초청받았는데 
예복을 안 입은 사람은 쫓아내쳐 지잖아요.   마22:11~12
그 예복은, 예수 그리스도의 의.. 이지요.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서는 수위조절을 해주세요. 
그냥 하나님의 영광을 다 보여 주시면, 아마 우리 가운데 절반은 죽을 거예요. 

절반 이상 죽을지도 몰라요. 

완전한 영광을 다 보여 주시지는 않고, 우리가 견딜만큼 해주시면서 
계속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나오도록 훈련시키시는 거지요. 

예배를 훈련하십시오. 예배는 하나님의 영광을 대면하는 것을 
끊임없이 훈련하는 시간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준비된 것만큼, 하나님께서 그 영광을 보여주시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 옷 입는 것만큼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대면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그것을 계속 예배 가운데 연습해야 돼요. 
그게 예배의 본질인 줄 믿습니다. 

▲21:22~23 '성 안에서 내가 성전을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침이 쓸 데 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치고 어린 양이 그 등불이 되심이라'

이게 두 번째 세상의 모습이라는 거예요. 
마치 이 땅에서 해나 달을 보듯이 그렇게 볼 거라는 거예요. 
하나님의 영광을 그렇게 대면해서 살 거라는 거예요.

더 이상 밤이 없고요. 
하나님의 영광이 밤낮으로 24시간 365일 계속 머물 거라는 거에요. 
그것이 두 번째 세상의 모습입니다. 거기에 1년 365일 개념이 아마 없겠죠.

22:4 그의 얼굴을 볼터이요 그의 이름도 저희 이마에 있으리라
5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저희에게 비취심이라 저희가 세세토록 왕노릇하리로다

이게 창조 2.0 세계의 모습입니다. 아멘! 
그러므로 여러분 하나님의 영광을 대면하는 것에 익숙해 지십시오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 들어가는 것에 익숙해 지십시오. 

그것이 영원한 '창조 2.0 세상'을 살아가기 위한 준비 입니다. 


◑21: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창조 2.0 세계는, 더 이상 눈물도 없고, 고통도 없고, 애통하는 거,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않습니다. 사망도 없습니다. 
와~ 우리를 그토록 절망과 고통으로 몰아넣었던 사망도 더 이상 없다는 거죠. 
처음 것은 다 지나갑니다. 아멘! 이전 것은 지나갑니다.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4

우리가 이 땅에서 겪는 모든 아쉬움, 고통들, 눈물들, 슬픔들, 
한스러운 것, 억울한 것... 이게 모두 처음 것들이고, 
두 번째 세계에서는 다 지나가게 되는 겁니다. 없다는 거예요.
 
눈물도 없고, 애통하는 것도 없고, 곡하는 것도 없고 
처음 것은 다 지나갔음이러라! 아멘!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창조 1.0 의 세상에 영원히 머물 게 아닙니다. 
처음 것은 지나간다는 것입니다. 이 땅의 시간은 지나갑니다. 

창조 2.0의 세계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사망도 없고, 눈물도 없고, 죄도 없는... 

우리는 처음으로, 정말 처음으로 
하나님의 창조의 온전한 축복을 거기서 누리게 될 것입니다. 
와~ 진짜 생각만 해도 너무 흥분이 되는 거 있죠. 

▲너무 감사한 것은, 이 미래의 축복을, 지금도 약간 맛볼 수 있다는 거죠.
한 그릇 다 먹을 순 없지만, 한 숟가락 맛은 볼 수 있어요. 
이것이 여러분, 믿음의 위대한 능력입니다.

이 창조 2.0 세계(새하늘과 새땅)는
모든 죄와 고통과 눈물이 다 지나가고 
온전한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는 곳인데,

미래에만 있는 게 아니라 
믿음으로 지금도 약간은 맛볼 수 있다는 거예요. 
한 그릇 다 먹을 순 없지만, 한 숟가락 맛은 본다는 겁니다.

여러분 믿음은 참 위대합니다. 
믿음에 대해서 내가 예전에 가르칠 때 

'믿음은, 하늘의 것을 이 땅으로 끌고 오는 거'라 그랬어요. 
'믿음은, 미래의 것을 현재로 끌고 오는 능력'입니다.
믿음은, 미래 소망을 현실로 만드는 능력입니다. 

물론 완전한 수준은 아니지만 
우리는 이 모든 것이 지나가고 
눈물도 없고. 애통하는 것도 없고. 곡 하는 것도 없고. 사망도 없는
이 완전하신 하나님의 위로와 축복을.. 믿음으로 현재, 지금 누릴수 있습니다. 

 

만약에 지금 누릴 수 없다면 
나중에 저 천국에서도 못 누릴 가능성이 큽니다.

정말 나중에 저 천국 2.0 세상에서 누릴 사람은, 
그 모든 계21~22장의 약속을, 지금 이 땅에서도 <약간 맛보기>로 누립니다

성경의 모든 말씀은
지금 우리 삶 가운데 적용되고 누려지는 겁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 속에서 그분의 영광을 대면할 때 
지금 현실에서도, 모든 슬픔과 고통이 이미 지나간 
미래의 시간을 누리게 될 겁니다. 

여러분, 우리가 고통이 존재하는 현재 시간을 살지만 
동시에 우리는 고통이 다 지나간 미래의 시간을, 창조 2.0 시간을 
함께 가져와서, 이 땅에서 누릴 수 있어요.  


◑21:5 '보좌에 앉으신 이가 이르시되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하나님은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모두 새롭게 된다는 거예요.

창조2.0 세상에서는 새롭게 되는데 
우리만 새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모든 만물이 새롭게 됩니다. 
이것이 창조 2.0 세계의 중요한 특징 중의 하나입니다. 
예전과는 다르게 되는 거지요. 

창조1.0의 세상은 슬프게도 죄로 말미암아 어그러진 세상이었어요.
그래서 우리 안에 아쉬움도 있고, 불만도 있고, 
'아~ 이렇게 됐으면 좋겠다' 하는 그런 것도 있고, 
하여간 부족하고, 부패하고, 망가진 곳입니다. 

그러나 창조 2.0 의 세상에서는, 이 모든 것이 새롭게 될 줄 믿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새롭게 되어야 되는 존재고, 새롭게 될 존재입니다. 
지금은 비록 우리가 부족하고, 불완전하고, 아프고, 
지금은 비록 우리가 죽고, 고통스럽고, 슬픔 가운데 있을지라도 
우리는 천국에서 살게 될 겁니다. 아멘! 만물을 새롭게 하실 거예요. 

저와 여러분은 새롭게 될 겁니다. 이게 우리의 소망이고, 믿음입니다. 
그리고 이 소망과 기대는, 믿음으로 현실에서 약간 맛볼 수 있어요. 

▲그래서 2023년도에 주신 키워드가 이제 "새로움 new start"에 대한 것입니다.

이 새롭게 되는 것은, 어떻게 보면 창조 2.0 의 속성이고 
더 나아가서 하나님의 속성입니다. 
성령의 속성은 계속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어제와 오늘이 다르고 
오늘과 내일이 다르고 
그래서 계속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이 새로움은, 창조 2.0 세상에서는 만물이 모두 새로워질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도 믿음으로 우리는 그 일부를 맛볼 수 있다는 거죠.

완전한 수준은 아니지만, 
(미래) 소망은.. 믿음으로 현재가 됩니다. 

우리는 매일 새롭게 되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건 뭐냐면 
22:5절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그들에게 비치심이라. 그들이 세세토록 왕노릇 하리로다'

이 새롭게 하시는 역사에, "우리가 함께 하신다"는 거예요. 
그 새 창조 사역에, 우리를 끼워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왕노릇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새롭게 하는 역사가, 하루만에 일어나기도 하지만, 
그 이후 매일 계속 일어나는데.. 거기서 우리가 왕노릇하며, 그 일을 동역함)

그러므로 여러분, 오늘 교회가 어떤 존재인지를, 여기서부터 깨닫게 됩니다. 
교회는 만물을 새롭게 하는 일을 하는 곳이라는 거예요. 아멘?

물론 완전한 수준으로는, 예수께서 다시 오셨을 때 이루어질 창조 2.0 에서 
이루어지겠지만, 
오늘도 우리는 '만물을 새롭게 하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뭐하는 존재냐? 
만물을 새롭게 하는 존재입니다. 

가정을 새롭게하는 존재,
직장을 새롭게 하는 존재,
학교를 새롭게 하는 존재, 
국가를 새롭게 하는 존재,
한 세대를 새롭게하는 존재입니다.    주1)

그게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거예요. 저와 여러분의 정체성입니다. 
만물을 새롭게 하는 것이, 교회의 능력이며, 영광이며, 사역의 본질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이 땅을 살아가면서 해야 될 사명들, 사역들이 있잖아요. 

그 사역의 본질이 뭐냐면, 만물을 새롭게 하는 거예요. 
무엇으로? 믿음으로! 

미래에 일어날 예수 그리스도 함께 세세토록 왕 노릇할 
우리의 미래 아이덴티티를 

오늘날 믿음으로 현재로 갖고 와서 
이 땅에서부터 새롭게 하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가 하나님의 백성이고, 교회의 정체성 인줄 믿습니다.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계21:5

이렇게 우리가 이 땅에서 끊임없이 새롭게 하는 
하나님의 역사를 감당할 때,
어느 날 우리는 하늘로부터 하나님의 놀라운 음성을 듣게 되는데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창조 2.0의 세계를 보게 되는 거예요. 아멘! 

▲그래서 어떻게 보면 이 창조2.0의 세계는
어떤 물리적으로는 단절된 세계 일 수 있는데 

우리의 본성과, 우리가 하는 일에서는 연속적입니다. 

계속 이 땅에서 새롭게 하는 일이 있는 자들이
결국 그 곳에서 세세토록 왕 노릇 하게 되는 거예요. 
하나님의 창조에 함께 참여하는 동역자가 되는 거예요. 왕노릇 하는 거죠.

하여간 하나님의 창조의 역사에, 우리가 함께 하는 건 분명해요.
함께 세세토록 왕 노릇 한다고 했으니까요.  22:5 


정리하면, 
우리는 창조 1.0 세계 만을 위해서 지음받은 사람들이 아닙니다. 
천국은 추상적이고 막연한 곳이 아니에요.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눈에 보이는 이 세계를 하나님이 창조하셨다는 걸 
믿으십니까? 아멘입니다.

그러면 그분이 다시 창조(계21:1)할 수 있다는 게 이상합니까? 
한번 창조하신 분이, 두 번은 왜 못 하시겠어요?

정말 창조주가 있다고 믿으면, 두 번 창조하시는 게 이상한 게 아니지요. 
더군다나 성경에 그렇게 하시겠다고 말씀하고 있거든요.

계21: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위 구절에 '창조'란 말은 안 나오지만, 행간에 그런 의미가 있죠.

그러므로 천국은, 우리가 눈에 보이는 이 세상 만큼이나 실제적인 곳이예요. 
지금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을 만드셨던 그 분이 
두 번째 새하늘과 새땅을 다시 만들겠다고 하셨는데, 
그곳이 바로 천국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죠.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에게 약속 돼 있는 천국은 
추상적이고 애매한 그런 종교적인 언어가 아닙니다. 

눈에 보이는 이 세계를 창조한 창조주께서
다시 한번 창조하시겠다는 거죠.

죄가 없는, 완전한..
그리고 그 세계로, 단장된 신부들을 이끌고 가십니다.
지금 이 현실 세상에서, 그들을 준비 (단장) 시키시는 거죠.

그러므로 창조 1.0의 세계에서 너무 일희일비 하지 마십시오.
여기는 그냥 선별과정이요, 온전케 하시는 성화의 과정입니다.

세상에서 대단한 성공을 했다고 자랑하지도 말고,
실패했다고 해서 슬퍼하지도 마세요.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내가 선별과정 가운데 
정말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신부로 준비되는 것인데,
그것은 내 온 마음과 뜻을 다해서 신부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창조 2.0 세계에서 누리게 될 수많은 축복들을 
우리가 현실에서 지금도 맛볼 수 있어요. 
물리적인 천국은 지금 우리가 누릴 수 없겠지만, 그 본질은 맛볼 수 있어요. 
어떻게요? 믿음으로! 

믿음으로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들어가며, 
믿음으로 우리가 그분의 놀라운 평강과 축복을 누리며 
믿음으로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우리 현실의 삶 가운데 만들어 가는 일을... 지금도 우리가 누릴 수 있습니다. 

이런 천국의 놀라운 축복들을 놓치지 않고, 
오늘부터 영원까지 누리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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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엔트로피 법칙' 이 있죠. 
우리 말로 '열역학 제2법칙'입니다. 

'모든 물질은 점점점 질서에서 무질서로 변해간다'는 거죠. 
퇴화하고, 점점 소멸해 가고, 부패해가고, 늙어가는 거죠.
모든 것들이 다 질서에서 무질서로 점점 변해간다는 게 엔트로피의 법칙이죠.

그런데 '생명체'는 엔트로피의 법칙을 따르지 않고 
'신트로피' 라는 법칙을 따른다는 것을 강조하는 책입니다. 

생명체는, 무질서에서 질서로 향하는 신트로피에 법칙이 작용해서 
점점점 질서도가 더 높아진다는 거죠. 

그런데 이 세상을 보면 엔트로피 법칙만 존재하는 것처럼 
세상은 점점 더 무질서해 지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죄로 말미암아 사람들은 점점 미워하고, 갈등하고, 분쟁 하고, 싸우고, 
전쟁하고... 이것은 물질 세계에 존재하는 '엔트로피의 법칙'에 사람들이 
사로잡혀 살아가기 때문이죠.

그런데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사람들 안에는 
'신트로피 법칙'이 더욱 강하게 작용하는 거죠. 

서로 모르던 사람이 모여서 서로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루게 되고 
서로 갈등했던 사람들이 모여서 화목하게 되고 
깨어지고 상처입은 사람들이 회복하게 되고... 
이것이 모두 신트로피의 법칙, 
즉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법칙인 거죠.

이 세상에는 엔트로피의 법칙을 따라 사는 사람들이 있고 
반대로 신트로피의 법칙을 따라 사는, 두 종류의 사람들로 구분됩니다.

엔트로피의 법칙을 살았던 대표적인 인물을 
오늘 본문에서 예를 들죠. 바로 가인입니다.

아벨을 질투해서, 미워해서 살인까지 한 가인!
아무 이유 없이, 자신 안에 있는 미움과 질투로 말미암아 
동생 아벨을 죽였던 가인!
그것이 바로 엔트로피의 법칙을 따라 사는 대표적인 인간입니다. 

그 가인의 후예들의 모습들이 성경역사에 기록되어 있죠. 
요셉의 형들을 보십시오. 그 요셉을 질투하고 미워함으로써 
요셉을 죽이려 하지 않았습니까. 

사울을 오십시오. 백성들의 사랑을 받는 다윗을 질투하고 미워해서 
죽이려고 했죠. 다 동일한 패턴입니다. 

세상에서 죄에 사로잡힌 '엔트로피의 법칙'을 따라 살아가는 거죠.
두세 사람이 함께 모이면, 하나 되는 것이 아니라 
갈등하고, 서로를 미워하는... 그래서 붕괴되고 점점점 썩어가는 
그러한 엔트로피의 법칙을 따라 살아가는 자연인들입니다. 

그러나 정반대의 흐름이 또 있습니다. 신트로피의 법칙입니다. 
요셉은 형들을 용서했고, 그들을 축복함으로
새로운 백성들의 물줄기를 탄생하게 했습니다. 

다윗은 그 사울을 복수하지 않고, 의를 따름으로써, 그 모든 고난을 이기고
하나님의 나라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었죠. 신트로피의 생명 창출이죠.

예수님을, 당시의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 지도자들은 
엔트로피의 법칙을 따라, 예수님을 질투하고 미워하므로 그를 죽이려고 했죠.
그리고 십자가에 죽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음에서 부활하심으로, 
우리에게 신트로피의 법칙을 따라 살아갈 수 있는 
죽음(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놀라운 축복을 우리 모두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안에도, 이 엔트로피의 법칙과 신트로피의 법칙이 늘 상존하죠.
우리는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이들이기에
우리는 '신트로피의 법칙'으로 살아가는 백성인 줄로 믿습니다. 

질투와 미움의 원리를 따라 살아가는 인생이 아니라 
사랑과 용서와 축복의 법칙을 따라 살아할 때 
우리는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사람이라는 것을 증거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죽기까지 사랑하셔서, 자신을 죽인 모든 사람들을 포함해서 
그들이 용서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심으로 사랑하셨죠. 

요일3:16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예수님은 자기 목숨을 내놓는 사랑을 통해 
세상에 신트로피의 드라마, 신트로피의 법칙을 시작해 주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