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씨는 스스로 자랍니다. *위 동영상 19:30초~ 다시 말해서, 씨를 자라서 열매 맺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막4:26~29절 말씀을 같이 한번 봅시다. '또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으니 그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되 어떻게 그리 되는지를 알지 못하느니라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 열매가 익으면 곧 낫을 대나니 이는 추수 때가 이르렀음이라'
▲이 비유에 제목을 붙인다면 뭐라고 붙이시겠어요? 요즘 성경들은 보면, 단락마다 제목들을 조그맣게 달아 놨어요. 성경도 어디서 출판한 거에 따라 제목이 좀 다르게 붙어 있지만 제가 갖고 있는 성경에는 <저절로 자라는 씨> 라고 소제목이 붙어 있네요.
이 비유의 핵심 내용은 뭐냐면 '스스로 자라는 씨, 저절로 자라는 씨' 예요. 씨 뿌리는 자가 씨를 뿌렸는데 이 씨가 싹이 나고, 열매가 되고, 큰 나무가 되어 열매를 맺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농부가 하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거에요.
물론 뭐 조금은 일하겠지요. 뭐 잔 가지 쳐주고... 이렇게 하겠지만 농부가 싹이 나도록 만드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그냥 농부는 밤낮 자는 중에 어느 순간 보니까 싹이 나 있어요. 어느 순간 보니까 나무가 됐어요.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는다..는 거예요.
하나님의 나라가 마치 이와 같다는 거예요. 하나님 나라에는 영적인 중요한 원리가 있는데, 그 원리는 뭐냐면 하나님께서 그 일을 주도해서 하신다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스스로 그 일을 하신다는 거예요.
내가 억지로 힘쓰고 노력하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니라는 거예요. 그게 혼으로 하는 일이에요.
근데 이게 처음에는 참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혼의 일과 영의 일을 참 구분하기 어려워요.
▲그러면 뭐 하라는 겁니까?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얘깁니까? 또 그런 얘기는 아니에요.
그럼 혼으로 일을 하면 안 되고, 영으로 하는 건 뭡니까? 사실 혼과 영은 일체라서.. 쉽게 구분이 안 되요. 섞여 있어요.
거듭나고 난 다음에도, 막 영과 혼과 육이 섞여 있어 가지고 이게 분명히 이제 성령께서 하시는 일이기는 한데 혼의 열심과, 육의 열정이.. 영으로 하는 일과 이렇게 막 뒤죽박죽 돼 있어요.
(*그래서 반대진영에서는 '영성'쪽으로 너무 극단적으로 빠지는 것을 경계합니다. 너무 육적/ 현실적 신앙을 무시한다는 거죠. 물론 이 설교는 극단적이 아닙니다)
'아무것도 하지 말란 말입니까?' 그런 건 아니에요. 그런데 일을 하면 또 혼으로 일을 해요...
(*혼의 일 : 자기 지, 정, 의가 주도해서 하는 일, 이성적, 합리적 일 *육의 일 : 죄악된 일 *영의 일 : 성령이 주도해서 하시는 일)
저도 거기서부터 (혼의 일로부터) 시작했습니다. 거기서부터 시작했고, 지난 35년 동안 하나님께서 계속 다루시고 고난을 통과하게 하시고, 자기를 부인하게 하시고...
이런 과정들을 쭈욱 겪어오다 보니까, 지금은 이제 조금 알아요. 조금 분별이 돼요.
제가 혼이 튀어나오지 않는 건 아니에요. 육도 가끔 막 튀어나와요. 운전할 때 그냥 막 육이 튀어나와요. 집사람이 옆에서 '목사가.. 목사가..' 하죠. 육두문자가 튀어나오니까요.
은사는 어느 날 갑자기 순간적으로 짠 열려요. 그런데 성령을 따라 사는 삶은, 어느 날 짠 하고 열리는 게 아니에요.
이게 마치 씨가 뿌려진 것처럼, 이렇게 점차적으로 조금씩 자라나는 거에요. 언제 자라는지 모르는데, 어느 순간에 보면 자라있는 거예요.
이게 마치 기적처럼 매직컬리 바뀌는 게 아니에요. 우리 인격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그래요.
▲성령의 역사를, 많은 분들이, 파도 타는 것에 비유합니다. 그래서 부흥을 '부흥의 파도'라고 그러지요.
여러분 파도 타는 거 보신 적 있으시죠? 큰 파도가 몰려옵니다. 그러면 서퍼가 아주 기술적으로 보드에 올라타죠.
그러면 자기가 힘을 쓰거나 손으로 젖거나 해서 가는 게 아니라 파도의 힘으로 그냥 앞으로 밀려 가지요.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타는 거지요.
그래서 부흥을 마치 이와 같다고 묘사를 합니다. 하나님이 뭔가 역사를 시작하시면, 그것은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니라는 거예요. 그냥 서퍼가 열심히 뭔가 노력하고 있습니다. 열심히 앞으로 가려고 해가지고, 얼마나 가겠어요?
그냥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그 파도를 타고 그냥 쭉 나아가는 거예요. 그냥 나는 그 자리에 서 있는 거 같은데 어마어마한 하나님의 역사가 날 밀고 가기 때문에 엄청난 속도로 앞으로 쭈욱 나가게 되는 거지요. 그것을 '부흥' 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영적인 원리예요.
파도의 힘으로 나아가기 때문에 파도를 타는 데는, 서퍼가 열심히 노를 젓지 않아도 돼요.
파도타기 하는데 더 빨리 앞으로 가려고 막 애쓰는 사람도 보셨어요? No 파도를 탈 때는, 너무 빠른 속도로 나가기 때문에 노를 젓고 어쩌고 할 여유도 없습니다. 그냥 중심잡고 서 있기도 바빠요.
이거를 여러분, 언제 손으로 막 젓는 줄 아세요? 파도가 없는 해변 가까운 곳에서는, 서퍼가 보드를 타고는, 손으로 패들링을 해서 나가지요. 발도 젓고요. 이게 뭐냐 하면 혼의 노력이지요.
혼의 노력으로 열심히 손으로 젓고, 발로 젓고 그래봐야 10미터 나가면 지칩니다.
그런데 파도를 타기 시작 하면, 수 백 미터를 그냥 힘들이지도 않고 엄청난 속도로 앞으로 나가지요.
▲본문은 이 이야기를 지금 하는 거예요. 씨를 뿌렸는데, 씨가 자라고, 싹이 나고, 큰 나무가 되고,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은 내가 아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라는 거에요.
그래서 하나님의 타이밍이 되고, 하나님의 때가 되면 내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하나님께서 빠르게 일하신다는 거에요. 자 이것이 영적인 역사라는 거에요.
그래서 여러분,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식을 보면요. 우리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일하십니다.
▲시2:4절 '하늘에 계신 이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그들을 비웃으시리로다' 영적인 역사의 특징 중에 하나인데 제가 예측을 하면 항상 틀린다는 거에요. 영적인 역사는 얘기지 못한 방식으로 일하세요.
아니 그러면, 인간의 지혜와 노력(혼의 일)은 하나도 필요하지 않다는 겁니까? 그렇지는 않습니다.
성령께서 뭔가 얘기치 못한 일을 확 일으키시면 그것을 우리가 잘 담아서, 많은 사람들이 누리게 할 때는 뭐 조직도 해야 되고, 인간이 할 수 있는 노력들을 쫙 하지만 파도를 인위적으로 일으킬 수는 없죠.
그런 인위적 노력은, 파도가 일어난 다음에 우리가 해야 되고, 또 성실하게 일해야 되는 영역들이 있는데 파도를 우리가 인위적으로 일으킬 수는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성령께서 일하실 때 보면, 항상 예기치 못한 방식으로 일하세요.
▲이번에도 터키에 다녀오는데, 이제 J목사랑 같이 비행기를 타고 왔다 갔다 하면서 많은 얘기를 나누다가, 그가 갑자기 '중동에 대부흥의 추수가 어떻게 일어날 것 같으세요? 그래도 고목사님이 중동 선교의 전문가시잖아요?'
제가 이렇게 답변했어요. '저도 몰라요. 항상 하나님의 역사는 예기치 않는 방식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중동선교의 추수도, 분명히 예기치 않게 일어날 것입니다.'
우리는 그냥 파도가 일어날 수 있는 곳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이지 우리가 파도를 직접 일으킬 수는 없다는 거예요.
'하늘에 계신 이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그들을 비웃으시리로다' 시편 2편에 보면, 인간의 열왕들이 모여서 수많은 계획을 세웁니다.
가장 똑똑한 사람들, 가장 권력 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수많은 계획들을 세우고 있는데 그때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늘에서 내려다 보시면서 웃으시며 또한 비웃으신다는 거죠.
그러니까 하나님은 인간의 혼의 계획과는 전혀 다르게 움직이신다는 거예요. 전혀 다른 차원으로 하나님은 움직이신다는 거예요.
이게 영적인 일의 원리입니다. 그래서 영적인 사람은, 파도를 인위적으로 일으키려고 하지 않고 파도가 일어나는 곳으로 찾아갑니다. 거기서 파도를 기다립니다.
그러나 혼적인 사람은, 열심히 뭔가를 합니다. 자기가 파도를 일으키려고 해요. 영적인 사람은 게으르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는 일의 포인트, 초점이 다르다는 거에요.
혼의 사람은, 열심히 앞으로 나아가려고 노를 젓는데, 영의 사람은, 앞으로 나가는 게 아니라, 깊은 곳으로 갈려고 그래요.
혼의 사람은 어떻게든지 혼의 힘으로, 앞으로 앞으로 나가려고 그래요. 그래서 조금은 앞으로 나갈 수도 있어요. 5~10 미터 앞으로 나갈 수도 있는데 그 정도 나아가는 동안에, 수십 가지 문제들을 일으켜 가지고서 나중에 뒤처리하느라 바쁘죠. 힘들죠.
인간의 힘으로 막 노력해서 갔는데.. 이제 뭔가 진전된 것 같은데, 이제 가가지고 건강검진 받아보니까.. 한 1년 쉬어야 된다는 식이죠.
앞뒤 안 가리고, 그냥 앞으로 앞으로 자기 혼의 모든 최선의 노력을 다해서 전진해 갔는데 가서 보니까 주변 사람들은 하나도 돌보지 않았어요. 관계가 다 깨졌어요. 그래서 나중에 수습하려다 보니까, 오히려 뒤로 한 십 미터 물러나 있어요. 이런 거죠. 이게 이제 혼으로 살아가는 거에요.
혼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요. 앞으로 가려고 열심히 노를 젓습니다. 그런데 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특징은 뭐냐하면 앞으로 가려고 그러는 게 아니고, 깊은 곳으로 나아가요. 왜냐하면 거기서부터 파도가 일어나는 거거든요.
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눈앞에 보이는 어떤 일의 성취를 위해서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깊게 알고 싶은 곳으로 가요.
뭐 사업이든지, 집안 일이든지, 교회 일이든지, 전도하는 일이든지 관계없이 앞으로 계속 가려고 하는 사람들은.. 혼으로 일하고 있는 거예요. 딱 보여요.
영으로 일하는 사람은, 앞으로 좀 안 가도 괜찮아요. 제자리에 머물러 있어도 괜찮고, 뒤로 가는 것 같아 보여도 괜찮아요. 안달하지 않습니다.
그는 끊임없이 어디를 찾아가냐 하면, 깊은 곳을 찾아가요. 끊임없이 깊은 곳을 찾아가요.
'어디서 하나님을 더 깊게 만날 수 있는가?' '내가 어떻게 해야 하나님과 더 깊은 교재가운데로 들어갈 수 있을까?' 이 자리를 계속 찾아가지, 앞으로 나가는 자리(실적, 외적 성장)를 찾아가지 않아요.
뭐 사역자들도 마찬가지예요. 사역자들도 보면 그냥 악착같이 앞으로 나가려고 그러는 사람들이 있어요. '어떻게 하면 사역을 더 크게 키울까?' '어떻게 하면 더 인지도를 넓히고, 더 이름을 낼까?'
결국 이게 다 앞으로 가려고 그러는 거거든요. 근데 그거는 혼으로 일하는 거에요.
영으로 일하는 사람들은, 앞으로 가는 것을 취하지 않습니다. 어떨 때는 손해보는 것 같아 보이고, '아니 저 사람 바보 아냐? 왜 저런 좋은 기회를 안 취해?' 이런 말도 듣죠.
근데 자기 눈에 보이는 거예요. '저걸 취하는 순간, 나는 깊은 데로 갈 수 없구나!' 그러면 아무리 좋아보이는 것도 놓아버리죠. 그리고 깊은 곳으로 갈 수 있는 데를 취해요. 그게 영으로 사는 사람들의 특징이에요.
▲기억하세요. 여러분, 너무 실적, 수치, 외적 평가에 휘둘리지 마세요. 나무가 되고 열매를 취하는 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라고 했어요.
그냥 자고 깨는 중에 어떻게 되는지 모르겠는데 보니까 열매가 맺어져 있더라는 거에요.
파도를 일으키는 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지 그거를 내가 열심히 해서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거죠.
그래서 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성취나 열매나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것들을 내가 억지로 막 만들려고 그렇게 애쓰지 않아요. 하나님이 하시면 감사한 거고요...
그 대신에 깊은 곳으로 가기를 힘써요. 왜요? 거기가 파도가 일어날 곳이거든요. 깊은 곳으로 가서 파도를 타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성령이 일하시는 곳으로 나아갑시다. 그러면 거기는 파도가 일어나요.
▲저희 교회가 중동선교를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중동선교를 열심히 하다 보니까, 요즘은 소문도 많이 나고 그래서 중동에 가면 이제 '수원하나교회'라 그러면, 거기 대부분 사람들이 다 압니다. 그래서 뭐 존중해 주시고, 또 끼워도 주시고 그래요.
그런데 여러분 이것이 저희가 어느 날 전략을 세워서 '그래 중동을 위해서 우리가 지금부터 전략을 세워가지고 이 일을 하자' 그래서 열심히 열심히 해서 여기까지 온 게 아니에요.
저희의 중동선교의 첫 시작은요. 제가 2005년인데 깊은 기도가운데 성령께서 말씀하신 거예요.
성령께서 말씀하셔서 '너희의 부르심이 있는데, 너희 교회가 비록 한국에 있지만, 너에게 준 유업은 무슬림들이고 네 교회가 비록 한국에 있지만, 너희 교회의, 너의 진짜 사역은 아랍에 있는 무슬림들이다'
전혀 뜬금없이.. 2005년도에는 우리가 파송한 선교사가 중동에 한 명도 없을 때고 그 때 우리는 인도네시아, 아프리카.. 이런데 집중하고 있을 때였거든요.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뜻밖의 그 성령의 음성! 근데 이게 여러분 어디서부터 부어진거에요? 깊은 곳에서 부어진거죠.
그때 제가 처음으로 교회 사역에서 손을 떼고 한 달 동안 기도하겠다고... 그래서 한 달간 기도에만 집중하고 있을 때였어요.
그래서 하루에 뭐 8~10~12시간, 어떨 땐 24시간, 계속 기도실에서 기도만 하고 있었을 때였거든요. 계속 기도 하는데, 그 깊은 기도 가운데 성령께서 말씀하신 거거든요.
그래서 그게 뭔지도 몰랐어요. 근데 깊은 곳에서 성령께서 하신 말씀이기 때문에 '중동으로 들어가라는 거구나' 그때 열매는 신경도 안 썼어요.
제 영적인 멘토가 이재환 선교사님 이시잖아요. 선교사가 제 멘토라고요. (보통은 목회자가 멘토)
그래서 목회보다도 선교를 먼저 배웠고 목회보다도 오히려 선교 쪽에 더 많은 어떤 지식과 선교 쪽에 더 많은 경험들을 갖고 있었는데 제가 중동선교가 뭔지를 모르겠습니까? (알죠)
거기는 열매가 나오는 곳이 아니에요. 선교역사에 대한 책도 제가 여러 권 봤거든요. 무슬림선교, 중동선교는 다 흑역사에요. 열매가 나온 적이 없어요.
평생 거기서 사역해봐야 '세 명 전도했다, 다섯 명 전도했다' 그러고 은퇴하는 거예요. 거기는 열매가 나올 수 있는 곳이 아니거든요.
제가 그걸 몰랐겠습니까? 잘 알고 있었죠. 그래서 열매는 기대도 하지 않았어요. 거기서 뭐 결과가 나올 것을 정말 기대도 하지 않았고
유일하게 그곳으로 들어가겠다고 생각한 계기는 '성령께서 말씀하셨으니까!'
무슨 전략이 있었나요? 전략적으로 얘기하자면 들어가면 안되는 곳이죠. 거기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에요.
근데 왜 거기로 들어가기로 한 거에요? 성령께서 말씀하셨으니까! 그렇게 해서 우리 교회가 중동으로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2007도인가? 요르단에 있는 김경용 선교사, 그때 그분은 중국으로 들어가도록 결정이 되어있었죠. 부부 두 사람 다 전공이 중국어고
김경용 선교사는, 학생 때부터 중국선교사로 가겠다고 준비하고 있어서 중국에 교환학생으로 2년인가 들어가 살았었고, 그래서 중국말도 잘 하잖아요. 그래서 이제 티베트로 들어가기로 결정이 완전히 되어 있었죠. 그래서 이제 파송하기로 결정이 다 끝나고 그랬는데 어느 날 이제 경용 선생이 교회에서 기도를 하는데,
어느 날 새벽에 기도하다가, 깊은 곳으로 들어간 거죠. 오후에 저를 찾아왔어요. '목사님, 오늘 특별한 경험이 있었습니다. 제가 거기서 기도하다가 환상을 봤어요.' (그냥 가벼운 환상이 아니고)
갑자기 내 주변이 홀로그램처럼 바뀌더니 그 상황 가운데로 자기가 들어간 거예요.
영어로는 '트랜스' 라고 하는데 이런 경험은 굉장히 독특한 경험이죠. 이런 경험은 뭐 일반인들이 쉽게 할 수 있는 경험은 아니고, 흔한 경험이 아니죠.
그런데 그런 상황가운데 자기가 직접 들어간 거예요. 그래서 이렇게 눈을 떠서 돌아보니까, 전혀 다른 곳에 자기가 와 있고...
근데 갑자기 예수님이 나타나셔서는, 자기 손을 딱 붙잡고는 슈퍼맨처럼 하늘을 날아간 거예요. 그래서 '야! 신기하다' 그러고 날아가고 있는데 시리아 상공을 이렇게 지나가는 거죠.
시리아 상공을 이렇게 지나가는데 저쪽에서 천둥같은 소리로 '리바이블' 하는 소리가 들리면서 딱 정신이 깬 거에요.
그리고 그날 오후에 저를 찾아왔습니다. 그러곤 하는 얘기가 '티베트는 아닌 것 같습니다'
제가 '무슨 소리야? 십년 넘게 티벳을 준비한 사람이 갑자기 티벳이 아니라니?'
근데 자기가 트랜스 상태에 들어가서 체험한 환상들... 그래서 우리가 티베트에서 시리아 쪽으로 방향을 선회하게 된 거죠.
우리가 뭐 계획 세우고 이래서 시리아로 들어간 게 아니에요. 깊은 곳에서 성령께서 '가라!' 그러니까 ... 그래가지고 들어갔습니다.
근데 들어가서 언어 배우고 문화 배우고 있는데, 시리아 내전이 일어난 겁니다. 이제 시리아 사람들이 막 난민들이 생기는 거에요. *5백만 난민이 발생했죠.
그래서 어, 어, 어 하다가 (등 떠밀려서) 그들을 도와주기 시작한 거예요. 그 철옹성 같던 중동이, 지금 여러 경로의 난민 선교를 통해서, 돌파구가 보인다고들 말합니다.
이게 계획해서 된 겁니까? 아니면 뭐 열심히 일해서 된 겁니까? 그냥 파도가 일어나는 곳에 가 있다 보니까 파도가 일어났을 때, 그 파도를 탄 것 뿐이지요.
그곳에서 우리가 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엄청난 파도가 일어났을 때, 그냥 파도를 타고 내려온 것 밖에 없어요. 그랬더니 지금은 많은 열매들을 본 거죠.
그래서 시리아는 전쟁 중이라 요르단으로 센터를 옮겨서 사역중인데, 지금 많은 열매들을 보고 있고, 중동 요르단 뿐 아니라 여러 지역에서 지금 센터를 운영하고 있어요.
우리가 처음 시작해 가지고, 우리 네트워크를 통해서 세워진 센터(베이스)가 적어도 한 8~9 군데로 확장되었어요.
이게 도대체 어디서부터 시작된 건가요? 이게 열심히 이렇게 노 저어서 간 것인가요? 아니죠. 그냥 성령의 파도를 타고, 여기까지 온 것입니다. 이게 여러분, 성령께서 일하시는 방식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영으로 일하는 사람들은, 앞으로 가려고 그러는 게 아니에요. 깊은 곳으로 가는 거지요.
깊은 곳으로 가서, 성령의 지시를 듣고, 성령이 가리키시는 방향을 따라 가는 것이지요.
눅5:4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2. 심어야 열매를 거둡니다
두 번째 핵심이 있습니다. 4:26 '또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으니'
'4가지 밭의 비유' 에서 첫 번째 영적인 원리는 '씨는 스스로 자란다(하나님이 자라게 하신다)' 이고, 두 번째 원리가 있는데, 그렇다고 아무도 씨앗을 심지 않았는데 그냥 싹이 나오지는 않는다는 거에요. 그러니까 이게 두 번째 원리에요.
자라게 하시는 건 하나님이 하시는데 영적인 일에는 반드시 씨를 심는 게 있어야 해요.
아무것도 심지 않았는데, 결과가 나오지는 않아요. 반드시 심는 게 있어야 돼요. 누군가는 심는 사람이 있어야 돼요.
이 심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열매를 거두게 되는 줄 믿습니다. 반드시 그래요.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해 주시려고 할 때, (심지 않고) 그냥 구원해 주시면 안 됩니까? No! 그런데 꼭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를 심으셔야 됐어요. 그래야만 구원의 열매가 나타났잖아요.
또 이방인의 사역이 시작되려고 할 때 그냥 하늘에서 하나님이 직접 이방인들을 구원하고 돌아오게 하시면 안 됩니까?
그런데 꼭 스데반의 순교를 요구하세요. 그러니까 뭔가 심겨지는 게 있어요. 거기서부터 거두는 거에요. 이게 중요한 영적인 원리에요. 심은 게 없으면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는 거에요.
2020년도에 여러분이 정말 성령의 역사를 보기 원하신다면 -깊은 곳으로 가고 -심을 줄 아셔야 돼요. 뭔가를 심을 줄 아셔야 돼요.
▲그래서 흥미로운 것은, 이것은 성경에서 제가 발견한 건 아닙니다. 근데 경험에 의해서 보면, 참 재밌는 사실이 있는데
영적인 것을 심으면, 땅의 열매를 얻고요, 땅의 것을 심으면, 영적인 열매를 얻더라고요.
이게 아마 심는 사람의 마음을 보호하시기 위해서 그런 것 같아요. 왜냐하면 심는 것은 투자가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이런 거에요.
저희 부모님 같은 경우에는, 저희 부모님 세대가 많이 그러셨지만 교회 헌금을 참 많이 하셨어요. 저희 가정 형편보다 더 많이 하셨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그 헌금한 것만큼 하나님이 재정의 복을 부어주셔서 갑부가 됐느냐? 그렇지 못했어요.
그런데 영적인 복은 받으셨어요. 그 자녀들이 보면 목사가 나왔잖아요.
또 영적인 것을 심잖아요. 그러면 육적인 복을 받아요.
교회 근처에 '하얀 풍차'라는 유명한 빵집이 있어요. 막 줄서서 사서 먹는 빵집이에요. 거기가 주기철 목사님 손자가 하는 집이거든요.
영적인 것을 심으셨어요. 그랬더니 후손들이 돈을 많이 벌었어요. 이런 식이더라는 거죠.
그러니까 이게 우리의 마음을 (교만치 않도록) 보호하시기 위해서 그런 것 같아요.
그러니까 심고 거두는 것에 대해서 이제 제가 조금 잘못된 가르침이라고 생각하는 것 중에 하나는 '헌금하세요, 헌금하시면 결국 심는 거라서 나중에 그거에 몇 배를 하나님이 주실 거라'고 했습니다.
근데 저는 그게 영적인 원리는 맞는데, 임상적으로 봤을 때, 꼭 그렇게 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그런 논리는, 여러분 투자하는 거지, 심는 게 아니죠.
'오케이, 내가 교회에 필요가 있는 것 같으니까 하나님한테 천만원을 심어야지 그러면 육십 배로 받으면, 육억을 주실 거야..'
이런 심리는 투자이지, 심는 게 아니란 말이에요.
그래서 아마 우리 마음을 보호하시기 위해서 그런 거 같아요. 그래서 여러분 헌금을 많이 하십시오. 그러면 물질은 몰라도, 영적인 복은 분명히 주실 거에요.
또 여러분들이 영적으로 여러분들의 무언가를 하나님 앞에 심으십시오. 그럼 물질이 많이 생길 수 있어요.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분명히 심으면, 뭔가로 갚아주시는데 그 갚아주시는 내용은 우리의 마음이 망가지지 않도록 갚아주시는 것 같아요.
그래서 헌금을 많이 하면 '하나님께서 내가 헌금 한 것만큼 갚아 주시겠지' 이렇게 일하시는 일차원 적인 분은 아니에요. 하나님이 그 마음을 아시거든요. '이 친구는 돈을 주면 망가지겠구나!' 그래서 그 대신 더 좋은 걸 주시지요. 고난을 주시고.. 신령한 걸 주세요.
그래서 여러분, 사실 '심으라'고 하는 것은 그래서 돈을 심으라는 것이 아니고요. 우리의 마음을 심으라는 얘기입니다.
우리 하나님 앞에, 우리의 마음을 심는 거예요. 마음을 심는다고 하는 것은 반드시 뭔가가 따라가는 거죠. 그래야 영적인 열매들을 얻게 됩니다. 이게 '심고 거두는 원리'입니다.
2020년도에 여러분들이 정말 열매를 얻기 원하신다면, 심으세요. 뭔가를 심으세요. 그래야 영적인 열매를 얻습니다.
▲4:25 '있는 자는 받을 것이요,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도 빼앗기리라' 이것도 굉장히 심오한 영적인 원리입니다.
영적인 원리는, 몰아주는 거예요. 몰아주는 것! 공평하게 나눠주는 게 아니라는 거죠.
그래서 있는 자는 더 받게 되고요, 없는 자는 있는 것까지도 빼앗긴대요.
'있는 자'가 무슨 뜻입니까? 이것은 마음에 대한 얘기입니다.
일차적으로 마음에 넉넉함이 있는 사람, 그래서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것도 그렇고, 이웃들과 나누는 것도 그렇고 이 부한 마음이 있는 사람들은.. 더 받게 되는 거고
그 안에 가난한 마음이 있는 사람들이 있어요. 부자인데도 불구하고 마음이 가난해요.
그래서 뭐 하는 거 보면, 진짜 좀팽이에요. 주변에서 진짜 고생 하는데도, 뭐 아주 그냥 막 구두쇠처럼 살아요.
이게 마음에 대한 얘기를 하는 거에요. 그러면 결국 있는 것까지도 다 뺏긴다는 거예요. 이게 영적인 원리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기도하실 때, 부한 마음을 주시도록 기도하세요. 이 부한 마음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그 마음 상태만큼 채우세요.
아무것도 없어도, 마치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마음이 넉넉해요.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모든 재물을 다 가지신 분이시거든요. 그 마음을 가지고 사세요. 그게 영적인 원리에요.
▲그래서 고린도후서 해보면 이렇게 얘기합니다. 고후9"6~7 '이것이 곧 적게 심은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각각 그 마음의 정한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이게 우리의 마음에 대한 얘기를 하는 거예요. 우리 마음에서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내는 사람들은 심지 않는 거라는 거예요. 이게 '없는 자'입니다. 막4:25
'있는 자'는 그 마음에 부한 마음이 있는 거에요.
◑3. 하나님의 나라는, 처음에는 조그맣게 시작합니다.
4:30~32 '또 이르시되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비교하며 또 무슨 비유로 나타낼까 겨자씨 한 알과 같으니 땅에 심길 때에는 땅 위의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심긴 후에는 자라서 모든 풀보다 커지며 큰 가지를 내나니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만큼 되느니라'
하나님 나라 역사는, 처음에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아요. 예수께서 이 땅에 처음으로 오셨을 때,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어요.
아주 촌 동네,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아무 주목도 받지 않고 그렇게 오셨어요. 그렇지만 결국 예수님께서 시작하신 이 일이 전 인류를 구원하는.. 인류역사상 가장 크고 놀라운 일이 됐잖아요.
이게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식입니다. 오늘 우리가 심는 것들이 있습니다. 2020년이 시작된 이후 지난 3주 동안 여러분은 무엇을 심으셨습니까? 금년에는 무엇을 심을 겁니까? 무엇을 심든지 간에 기대하십시오. 무엇을 심든지 간에,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큰 역사들이 일어날 겁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심지 않는 사람은, 결국 아무 열매도 보지 못할 거예요. 심으세요. 우리의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드리세요. '심으라'고 하는 건 마음에 대한 얘기이에요.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 앞에 심으세요.
지금은 조그만 씨앗처럼 보일지 모르겠지만 영적인 원리가 있어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큰 열매들을 보게 될 거예요. 할렐루야, 기대하십시오, 소망하십시오! 오늘 여러분들이 무엇을 심든지 간에 그 심은 것을 하나님께서 크게 키우실 거에요.
제가 오늘 말씀을 준비하면서 제 안에 감동이 정말 있었어요. 믿음으로 이 설교를 취하는 사람들은, 이 말씀이 이루어지게 될 거에요.
오늘 심는 사람들은, 오늘 주 앞에 무엇인가를 심는 사람들은 이 엄청난 열매를 보게 되겠지요. 지금 그게 별게 아닌 것 같아 보여도, 상상할 수 없는 열매들을 보게 될 거예요. 그래서 제안에 막 뭐가 올라왔냐 하면 욕심이 막 올라왔어요. '야~ 우리 성도들이 이 복을 다 받아야 되는데...' 막 이런 마음이 막 올라왔어요.
여러분 한 명도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성령께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오늘 여러분이 심으시는 것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열매를 보게 될 거에요.
내가 무엇을 심든지 간에, 그 심은 것에 싹이 나게 하실 것이고 그 싹에서 엄청난 열매들을 보게 하실거에요. 이 축복들을 누리시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먼저 주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주의 나라를 위하여 심는 자들은 절대로 하나님께서 모른 척하지 않으세요. 제가 평생을 살아오면서 봐 온 원리입니다. 주의 나라를 위해서 심었던 사람들은, 그것이 재정이 됐던, 생명이 됐던, 시간이 됐던, 인생이 됐던 간에,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잊어버리지 않으세요. 절대로 잊어버리지 않으세요.
그 사람 때가 됐던, 그 자녀 때가 됐던, 아니면 그 후손 때가 됐던 간에 하나님께서 반드시 갚으시고 축복하세요... 아멘!
제가 이렇게 사람들하고 얘기를 해 보면 제가 지난 1년 동안 '성령에 대한 설교, 영으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설교를 계속했는데,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 하시는 거 같아요.
당연히 그럴 것 같기도 해요. 우리의 육과 혼은 영의 이야기를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니고데모를 만났을 때 그에게 성령으로 거듭나야 되는 얘기를 하시니까 니고데모가 도무지 무슨 얘긴지 알아듣지를 못 합니다.
세상에서 많은 공부를 했고, 그런 거 가지고 영의 진리들을 이해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이것은 신비 mystery 니까요. 뻔히 알려줘도 못 알아듣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계속 '영으로 살아야 됩니다.' 아무리 얘기를 해도 이게 도대체 무슨 얘긴지.. 도무지 몰라 하는 분이 있어요. 뭐 맞는 말 같기는 한데, 그게 어떻게 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는 거예요.
뭐 충분히 이해는 됩니다. 이게 처음부터 되는 게 아니에요. 저도 이 영적 여정을 시작할 때, 무슨 말인지 이해를 잘 못 했어요.
제가 사실 이런 영적인 것에 대한 관심을 처음으로 가지기 시작했던 게 대학교 2학년 때였는데, 그때 워치만 니가 쓴 <영에 속한 사람> 이라는 책이 있었어요. 3권짜리 책이었는데, 어떻게 해서 2권 반까지는 읽었어요. 그러다가 나머지는 그냥 때려 쳤어요. 신경질이 나가지고요. 무슨 말인지 도무지 모르겠는 거에요.
이게 알듯 말듯 한 거예요. 분명히 성경에 나오는 예를 들어 가지고 얘기를 하는데 알듯 말듯 하면서 손에 잡힐 듯 말듯 한 거예요. 맞는 말 같기는 한데, 뭔 얘긴지 정확히 모르겠다는 거죠. 그래서 책을 읽다가 도중에 놔 버린 거죠.
근데 제가 몇 년 전에, 한 4~5년 전에 그 책을 다.시 한번 구입해서 읽는데 무슨 말인지 너무 명확한 거에요. '이렇게 명확한 얘기를, 그때 내가 왜 못 알아 들었을까?'
이게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니라는 걸, 제가 그래서 압니다. 영의 감각이라는 것은, 계속 오랜 세월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이게 성장하고 개발 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냥 하루 아침에 되지는 않습니다. 그러니 너무 서두르지 마세요.
그러나 계속 영으로 살아가는 것들을 추구하셔야 돼요. 지금 다 깨달아지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계속 추구하셔야 돼요.
그래서 어저께 J목사님도 말씀하셨지만 저도 그렇고요. 오랫동안 그렇게 살아 오신 분들은, 진짜 보이는 게 있어요.
어떤 사람하고 이렇게 대화를 해보거나 그 사람이 선택하고 행동하는 거 보면 나 '아, 지금 혼으로 행하고 있구나, 혹은 영으로 살고 있구나' 거의 100% 보여요. 그냥 뭐 이렇게 애쓰지 않아도 그냥 알아요.
참 신기해요. 그냥 몇 마디 말만 들어봐도 알아요. 이렇게 한 두 가지 행동하는 것만 봐도 '영으로 행하는 사람'과 '육으로 행하는 사람'이 금방 파악돼요.
궁금하면 나중에 제게 개인적으로 와서 물어보세요. 제가 여러분의 상태를 얘기해 줄 수 있어요. 시험에 들지 않을 자신만 있으면 오세요.
그런데 살다 보면, 제 안에도 가끔 혼으로 살아갈 때가 종종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계속 추구하는 게 있어요.
제가 계속 추구하는 게, 제가 혼을 사용 해서 살아가는 사람이 되지 않고 정말 영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되도록 계속 추구해요. 계속 성령을 따라 살아가기를 추구해요.
팁을 하나 드리면, 결국 '성령충만 하다' 하는 것은 성령께서 우리의 혼과 육을 컨트롤 하시는 상태예요. 여기서 이것은 순종하고 깊게 연결되어 있어요.
물론 우리가 아는 순종 이라는 것은, 처음에는 의지적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그 안에서 뭐 자발적으로 기쁘게.. 물론 그게 순종의 원칙인 하지만 처음부터 그렇게 움직여지지는 않아요.
처음에는 그냥 싫어도 성경에서 하라 그러니까, 싫어도 그렇게 하면 안 되니까, 그렇게 해서 순종을 드리는 거예요.
그런데 이것이 쌓여야 돼요. 계속 순종하는 것이 쌓이고, 쌓이고 반복하다보면, 그것이 어느 순간에 나의 일부분이 되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성령께서 지배하시는 것이 조금씩 조금씩 늘어가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래서 자존심이 강하고, 자아가 강한 사람은 100% 혼으로 살아요. 자아가 십자가에서 깨어지지 못한 사람은 100% 혼으로 살고 있어요.
자존심이 강하고 자아가 강한 사람은, 100% 혼으로 살아가는 겁니다. '자아가 강하다'는 게 무슨 말이에요? 남의 말 듣기 싫어 한다는 거죠. 자기 생각이 강하고, 자기 고집이 강하고, 자기 안에 에고가 강해요. 이런 사람은 성령의 음성을 혹시 들어도.. 따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게 굉장한 유사성이 있는데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듣고, 다른 사람이 권하거나 충고해주는 말을 귀 기울여 잘 듣고 따라 갈 줄 아는 사람... 이게 겸손한 사람이죠. 그 사람은 성령의 음성도 그렇게 잘 들으려고 해요.
그래서 진짜로 성령을 따라 사는 사람들은 주변의 관계가 반드시 부드럽게 돼 있습니다.
성령을 따라 사는 사람인데, 관계가 굉장히 불편하고 그 사람을 다른 사람들이 불편해 해요.
그는 성령을 따라 사는 게 아니에요. 영으로 살아가는데 그렇게 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성경에 보면 '자기(자아)를 부인하고 따라 오라' 그랬어요.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조건은, 자아가 부인 돼야 되는 거에요.
자아가 부인되지 않으면, 반드시 그건 혼으로 일하는 거예요. 뭐 일을 열심히 할 수는 있어요. 혼적인 열심인 거죠.
영으로 산다고 하는 것은, 여러분 끊임없이 자기를 부인하는 거예요. 현대인들의 특징 중의 하나가 뭐냐면, 자기 부인이 안 되는 거에요.
▲그래서 사람들이 언제 진짜 성령충만해 지냐면, 거의 죽을 고비를 넘기고 났을 때, 병에 걸리거나, 사업이 망하거나... 그래서 완전히 죽기 직전이 됐을 때, 그럼 사람이 넋이 나간 상태가 되어버리죠.
인생이 완전히 무너져서 그냥 넋이 나간 상태가 됐어요. 그러고 나면, 그 고비를 지나고 나면, 사람들이 성령의 사람이 되는 것을 봅니다. 진짜 그래요.
내 자아가 계속 내 삶을 주관하고 끌고 가고 있으면, 그냥 혼으로 살아가게 되지, 영어로 살아가게 되지 않습니다.
정말 여러분들이 영으로 살아가기를 원하신다면, 이 자아의 문제들을 항상 대면해서 극복하셔야 되요.
그래서 바울도 뭐라 그랬냐면 '자기를 쳐서 복종 시킨다' 그랬어요. 자기 안에 있는 자아를, 계속 쳐서, 성령께 복종시키는 거예요.
▲그래서 사실은 이 영적인 권위가 참 중요한 거예요. 그 영적인 권위란, 하나님께서 내 위에 두신 사람, 내 위에 있는 리더쉽, 그 사람한테 순종하는 것들을 계속 연습하고 반복할 때 성령께 순종할 수 있는 우리의 마음 상태들이 준비되어 지는 거예요.
성령께서 우리의 자아를 누르시고, 우리를 끌고가는 거랑 사람에 의해서 자아가 눌리고 끌려 가는 거는, 내 안에 일어나는 현상은 비슷한 거거든요. 누군가 다른 존재에 의해, 내 자아가 부인되고 내 삶이 끌려가는 거거든요.
그런데 사람에 대해서, 한 번도 안 이끌려가던 사람이 갑자기 성령님께 대해서 이끌려 갈 수는 없는 거거든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상하) 질서 속에 두셔서 특별히 영적인 권위 아래 두시고 영적인 질서 속에 두셔서, 성령과 동행하는 삶들을 계속 배워가게 하셨어요.
그래서 보면, 반골 기질이 있는 사람이죠. 권위에 대해서 순복이 안 되는 사람은 미안한데 영적인 삶을 살 수가 없어요.
'반골'은 뭐냐면, 자기의 자아가 강하다는 뜻이거든요. 반골은, 자기의 생각을 가지고,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고 싶다는 뜻이거든요.
이것은 그 데피니션 자체가 영을 따라 살 수 없는 상태라는 뜻이에요. 그래서 제가 지난 30년 동안 신앙생활하면서 봐온 통계적 진리를 보면 (통계적 진리란, 직접적으로 성경에 나오는 진리는 아니라는 말)
영적인 권위에 반항하고, 그 권위에 대해서 부딪히는 사람치고 결국 영적인 삶을 살았던 사람은 한 명도 못 봤어요.
진짜 영적인 사람은 어떻게 사냐면 위에 있는 권위가 잘못 할 수도 있어요. 사람이니까.
그렇지만 그거는 사실은 그렇게 빅딜(큰 문제)이 아니에요. 어차피 눈에 보이는 세상은 지나가는 거에요.
우리는 영원을 준비하는 사람들이지 이 땅에서 승부 보겠다는 사람들이 아니거든요.
이 땅은 여러분 70년 80년 살아가는 것은 영원한 하나님의 삶을 준비하는 인턴 기간이지, 이게 지금 메인 이벤트가 아니라고요. 이해가 되십니까?
이 땅에서, 위에 있는 리더가 조금 잘못 할 수도 있어요. 그런데 그 리더가, '우리 오늘부터 배교합시다' 이러지 않는 이상 (사소한 것은) 그냥 그 아래 순종하려는 거예요.
근데 진짜로 이 리더는 아닌 거 같아요. 그를 계속 따라가다가는 내 인생 망할 거 같아요.
그러면 치고받고 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냥 조용히 떠나면 되는 거예요.
'정의감을 가지고 내가 바로잡겠다' 이렇게 하지 말래요. 왜냐하면 내 영이 망가지기 때문에! 이게 성경에 나와 있는 명확한 원리에요.
사울이 아무리 잘못했어도, 다윗이 사울을 바로잡으려고 하지 않았어요. 그냥 사울을 피해서 도망갔지요.
그럼 사울은 어떻게 되는 거예요?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거예요.
내가 그 리더를 바로 잡으려고 하는 건 뭐냐면, 하나님께 대한 신뢰가 없기 때문이에요.
내가 바로 잡아야 될 건 뭐냐면,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권위가 있어요. 내 권위 아래 있는 것들은 내가 바로 잡아야 돼요. 왜냐하면 하나님이 내게 주신 권위의 영역 이니까요.
그런데 '내 위에 있는 권세'는 바로 잡으려고 하지 마시고, 그냥 피하면 됩니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난다는 말이 있죠.)
그래서 여러분 위에 있는 권세, 리더에게 순종하는 것들을 계속 연습하셔야 돼요. 내 마음에 안 들어도! 그가 좀 부족해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족한 인간 리더' 밑에 두신 것은 윗 권위를 통해서, 우리로 하여금, 성령과 동행하는 성품들은 만드시는 거예요. 그래서 내 자아가 부인 돼야 돼요. 자아가 부인 되지 않는 사람은 그냥 100% 혼으로 살아가고 있는 거에요.
그렇게 혼으로 계속 살아가다 보면 결국 마지막에는 그 대가를 치를 날이 와요. 시간이 지나도 변화가 일어나지 않아요.
진정한 변화는, 영을 따라 살 때, 성령을 따라 살 때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지 계속 혼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은, 변화가 일어나지 않아요. 아멘! 영을 따라 살아가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