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율, 받기 전에 주지 마라 마7:7~14 설교 듣고 정리
◑서론
황금율이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가 남을 대접하라'
이게 황금율이에요.
근데 이 말씀의 해석, 진의가 뭔지 살펴보겠습니다.
'이 황금율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7:12
율법서와 예언서 전체 내용을 총괄하는 최고의 규칙이라는 거예요.
구약성경 전체를 총괄한다고 봐도 됩니다.
(마22:27절 이하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크고 첫째되는 계명,
또한 둘째되는 계명과도 일맥상통 한다 하겠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말은 아니고, 후대 사람들이 만든 말이지만
'황금(율)'이라는 말이 무슨 뜻이겠어요? *Golden Rule
먼저, 황금이라는 뜻이 변함이 없는 최고의 가치를 상징하지 않습니까.
시대가 지나도 변하지 않는 최고로 좋은 계명, 이게 이제 황금율이에요.
이것은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네가 대우받기 원치 않는 것을 남에게도 행치 말아라 (소극적)
-네가 대우받기 원하는 것을 남에게도 행하라 (적극적)
물론 이것은, 남들이 나에게 선으로 갚아줄 줄 미리 생각하고
(투자하는 식으로) 행하라는 말씀이 아니고
남들이야 네게 어떻게 행하든지 상관 말고,
너는 그들에게 마땅히 행해야 될 원리를 가르치는데요. 물론 사랑이죠.
이거 하나만 제대로 되면, 부부관계가 황금의 관계가 될 수 있습니다.
부모와 자녀 관계가 황금의 관계가 될 수 있고,
직장에서의 생활이 황금의 관계를 맺어가면서 사는 삶이 될 수 있습니다.
거래처 직원과의 관계도 황금의 관계가 될 수 있습니다. 놀라운 계명이죠.
▲황금률 자체에 대해 우리가 쉽게 오해할 수 있어요.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
이 말씀의 의미를, 자꾸 사람들은 이타정신, 헌신, 희생, 양보
이런 것들과 연관시켜 이해를 하는 거예요. 이게 결정적인 오해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기독교가 뭐 공자의 유교나, 도덕주의와 별반 다를 게 없게 되죠.
(물론 기독교가 세상의 일반은총과 일부 공유하는 면이 있기는 합니다만)
굳이 세상에서도 얘기하는 '이타정신, 희생, 양보'를
기독교가 '황금율'까지 이름지어 부를 필요는 없죠.
실제로 회교는 '나를 위하는 만큼 남을 위하지 않는 자는, 신앙인이 아니다'
불교는 '내게 해로운 것으로 남에게 상처를 주지 말라'
힌두교도 '내게 고통스러운 것을 타인에게 강요하지 말라'
그럼 성경은, 표현만 다를 뿐이지, 비슷한 내용을 가르치고 계신 걸까요?
◑본론
12절을 다시 읽어봅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여기서 눈에 띄는 단어가 '그러므로'입니다. 접속사죠.
7:7~11절까지 내용과 황금율인 12절이 연결된다는 거죠.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로 시작되는 기도에 관한 말씀을 주시고,
마지막에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하는 황금율을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7:7~11절을 한 마디로 축약하면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입니다.
여러분이 성경을 직접 찾아서 읽어보세요. 그렇게 축약됩니다.
그런데 뭘 '구하고, 찾고, 두드리라 인가?' 하면,
'하나님을, 성령님을' 간절히 구하고, 찾고, 두드리라.. 입니다.
내 생활에 필요한 어떤 felt need가 아니에요.
*여기에 대해선 https://rfcdrfcd.tistory.com/15976961 를 보세요.
병행구절 눅11:13에도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하나님 또는 성령님을 달라고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것이며
그렇게 기도할 때, 하나님은 좋은 것(하나님, 성령님)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마7:7~11
:12 "그러므로" 누구든지 남에게 대접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렇게 문맥을 연결지으면
'하나님을 구해서 받아서 배부르게 된 다음에
다른 사람을 대접하라(대우하라)' *주제
그 결과는 (본문에 안 나타나지만) '그러면 모든 인간관계가 잘 될 것이다'
이것이 본문의 진의 라고 봅니다.
▲부모 자녀 관계가 황금 관계이기를 원하십니까? 황금율을 따르면 돼요.
부모가 하나님, 성령님으로 자기 내면이 충만한 가운데서 자녀를 만나보세요.
그 관계가 틀어지지 않습니다. 그 관계가 '황금 관계'가 됩니다.
사춘기 애가 아무리 빗나가도.. 부모가 다 커버할 수 있습니다. 성령의 힘으로!
부부 관계가 황금관계 이기를 원하십니까?
어느 한쪽이라도 기도의 골방에 들어가서 성령의 충만을 입고 나서
배우자를 대해 보세요. 아무리 술 먹고 들어와도, 또는 사치하고 들어와도
싸우지 않습니다. 오히려 불쌍히 여기고 '내 탓이요' 합니다.
내가 가진 본래 인간성으로, 누구를 만나든지,
처음에는 오랫만에 만나서 잠시는 반갑겠지만
두 세 시간만 지나면, 금방 서로 상처받고 시험에 듭니다. 동창회가 그 예죠.
앞다투어 자랑하는 가 하면, 또한 교묘하게 깎아내리고 험담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구하고 찾아서 하나님으로 충만해진 사람이 있으면
상처를 주지도, 받지도 않으며.. 오히려 그 자리에서 아우라를 나타냅니다.
*관련글 : 배부른 상태에서 봐야 정확 https://rfcdrfcd.tistory.com/15972460
오늘날 세계 인구 78억 중에 종교가 없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특별한 철학자 빼고는, 다 종교가 있습니다.
뭔가 자기에게 배고픈, 갈구하는 욕구가 있고, 그걸 신에게 빌고 있습니다.
종교의 모양은 다르지만, 구하는 내용은 거의 다 똑같습니다.
물질 욕구, 성적 욕구, 출세 욕구, 건강 욕구, 탐욕 등으로
모든 사람들은 나름 배고픔, 목마름, 갈증, 채워지지 않는 불만족이 다 있어요.
중요한 것은, 이것이 원래 "하나님이 없음으로 인해 가지는 불만족"인데,
마귀가 그걸 교묘하게 돌려, 바꾸어 놓았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하나님이 없음으로 인해 가지는 불만족" 인줄 모르고,
자꾸 물질, 사랑, 출세, 건강, 탐욕 등을 더 가지려고 하고,
그걸 가지면.. 그 배고픔이나 갈증이 채워질 것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으로" 자기 내면이 충만한 사람은,
나머지 세상 것들에 대해서 갈급, 갈증 내지 않습니다.
빈들에서 나무 막대기 하나 갖고 있어도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합니다. 시23:1
중요해서 다시 말씀드립니다.
그러니까 우리한테서 뭔가 세상 것들을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욕구 에너지가 발동되는 이유는
하나님 사이즈로 지음받은 우리 마음에
하나님이 가득 안 계시기 때문에
부족함, 결핍, 채우려는 욕구가 발동하는 것인데
이 결핍 욕구, 채우려는 에너지를
마귀가, 하나님 대신에
재물욕, 성욕, 식욕, 소비욕구, 권력 욕구, 자녀출세 욕구로 대체해 놓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끊임없이 불만족, 불행, 빈곤의식 가운데 살아간다는 것이죠.
이것은 마치 어떤 것과 마찬가지냐면
친구가 결혼을 해서 그 결혼식에 참여하는데, 호텔 음식이 나온답니다.
그래서 점심 때 결혼식장에서 될 좋은 음식을 먹으려고
아침부터 굶고 결혼식장에 가고 있었습니다.
근데 직장 상사로부터 전화가 온 거예요.
급한 일로 비상이 걸렸으니까, 빨리 근무지로 들어오라는 겁니다.
그래가지고 눈물을 머금고 근무지로 돌아가서,
호텔 결혼식 식사를 먹는 대신에,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는 것과 같다는 거죠.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오셔서 뭐라고 하시냐면
이제 진짜 내가 왔으니까 '(나를) 구하고 찾고 두드려라'
이것을 바울은 '위엣 것을 찾으라',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이라 말했고,
*관련글 :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 https://rfcdrfcd.tistory.com/15981111
사도 야고보는 '속지 말라'고 설교했습니다.
*관련글 : 형제들아 속지 말라 https://rfcdrfcd.tistory.com/15981023
'이제까지 너희가 돈 구하고 살았지? 건강 구하고 살았지?
좋은 애인 만나고 결혼하게 해달라고 구하고 살았지?
그거 구하고 찾고 두드렸지?
다 아니다. 이제 내가 왔으니까, 진짜 구하고 찾고 두드려야 될 게 무엇인지
가르쳐 줄게' 이 말씀을 하신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기도 응답 받아서' 내가 배부르게 되면
(이렇게 '배부르게 되면'을 본문에 빠져 있지만, 넣어서 해석하면 이해가 쉽죠)
'그러므로 누구든히 대접받고자 하는대로 남을 대접하라'
즉 내가 배부른 상태에서, 내가 성령님으로 만족한 상태에서,
'남을 대접하면' .. 즉 남을 만나면
그게 '황금관계'가 된다는 거예요.
남을 다 이해하고 용납하게 되고, 남을 다 사랑하고, 불쌍히 여기게 되는 거죠.
그래서 자식과의 관계에서, 부부 관계에서,
직장에서, 친구 관계에서.. 나는 언제나 푸근하고, 따뜻하고, 온정있는 사람이 되죠.
그게 '남이 나에게 대우받기 원하는 것'입니다. 마7:12
그런데 반대로, 내가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으로 가득 채워지지 않은 상태,
내가 결핍, 부족, 불만족의 상태에서
자녀를 만나고, 배우자를 만나고, 직장동료를 만나고, 친구를 만나면..
정말 결국은 '만인이 만인과의 투쟁'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포장마차 사장님 말에 의하면,
저녁 6~7시에 직장동료, 친구끼리 포장마차에 들어온대요.
사이가 그렇게 좋을 수가 없대요. 마치 축제하고, 잔치하는 것처럼 따뜻하대요.
그런데 9시~10시에 헤어질 때 보면, 꼭 서로 싸우고들 떠난대요.
하나님으로 충만하지 못한 상태에서, 서로 결핍과 갈증 상태에서 만나다 보니,
인간의 본성과 죄성이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수면위로 드러나서,
결국은 험담, 비난, 뒷담화, 훈계, 지적... 그게 번지면 몸싸움까지 가죠.
그게 친구 사이면 남이니까 그래도..
만약 가정에서, 부부사이에, 자녀사이에.. 그렇게 전쟁이 일어나면 얼마나 괴로울까요...
황금관계가 아니라서 그렇죠. 황금율이 적용되지 못해서 그런 거죠.
하나님으로 충만, 만족하지 못한 가운데서, 사람을 만나니까 당연한 거죠.
그래서 심지어는 이렇게까지 조언합니다.
부부싸움을 자주 하는 집안이 있으면,
어느 한쪽이라도, 퇴근 (만나는) 시간에 맞추어,
골방에 들어가서 기도 30분 하고 나서 배우자를 만나라고요...
그러면 안 싸운다는 것입니다. 신기하게도 이게 효과가 있대요.
▲그리고 황금율에 이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7:13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14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시베리아 횡단철도가 블라디보스토크 ~ 모스크바까지 거의 1만키로 입니다.
60개가 넘는 역을 거치게 됩니다.
지나는 터널이나 교량의 길이 만도 100키로가 넘어요. 8일 동안 달립니다.
근데 그 철도의 폭은 1.45M 라고 합니다. '좁은 길'이란 뜻입니다.
시베리아 벌판이 종과 횡으로 얼마나 넓습니까? 어마무시하게 넓은 땅이죠.
그 넓은 대륙에 1.45M 되는 '좁은' 기찻길을 놓은 겁니다.
근데 그 좁은 기찻길을 통해서, 안 가는 곳이 없습니다.
60개가 넘는 도시를 거치면서, 시베리아의 거의 모든 곳을 다 지나갑니다.
여러분, 그렇지 않고 시베리아 벌판을 통과하려면 얼마나 힘들까요?
눈이 내리고, 비가 오고, 바람이 불어도.. 기차만 타면 계속 갑니다.
7~8일이면 다 횡단합니다. 지금 '좁은 길' 비유를 들고 있습니다.
그 기차 안에는 쉼이 있고 평안이 있고 가벼움이 있어요.
내가 달리는 게 아니니까요.
직전 구절 황금율과 연결지키면,
황금율이 곧 '좁은 길'이에요.
내가 하나님 한 분으로 충분히 먹고, 배부르고, 만족해서
그 배부름과 만족함으로 배우자와 자녀를 대하면
그게 좁은 길이지만, 사람들이 찾지 않는 길이지만,
그게 못 가는 곳이 없고, 못 하는 일이 없는 겁니다. 행복한 가정이 되지요.
힘들지 않습니다. 눈보라 치고, 비바람이 거세어도, 기차는 달리는 겁니다.
내가 아니요, 하나님이 이끌어주시는 가정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1.45M 너무 좁은 길이지만, 그 길이 시베리아 라는 험한 환경을 건너는
가장 확실하고 안전하고 평안한 길이라는 겁니다. 예수님 등에 업히는 겁니다.
다른 길 고집하지 마세요. 다른 넓은 길로 달려가지 마세요.
시부모님, 친정부모님을 기대할 필요 없습니다.
배우자가 달라지길 기대할 필요도 없습니다.
자녀가 철들길 기다릴 필요도 없습니다.
나 자신이 하나님으로, 예수님으로, 성령님으로 충만해지면 됩니다.
그게 '황금율'이고, '좁은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