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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하는 일상

LNCK 2024. 4. 4. 09:01

승리하는 일상 | 요 19:30 | 이규현 목사 | 금고난주간특새 | 24.3.29 - YouTube

승리하는 일상           요19:30           24.03.29. 고난주간특새⑤      

◑실패처럼 보이는 십자가                    특새①     특새②

예수님의 십자가에 이르는 과정을 '수난, PASSION' 이라 그러죠. 
예수님은 일방적으로 당하시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권력자들의 횡포,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의 횡포에 떠밀려 다니시는 예수님, 
십자가로 가는 그 모든 과정에서, 그냥 예수님은 계속해서 매를 맞으시고, 또 넘어지시고 
또 피 흘리시는 모습... 여러분 이것은 공생애의 예수님의 모습과는 전혀 달라요. 

공생애에서 예수님은 풍랑을 잠잠하게 하시고, 또 병자를 낫게 하시고, 
또 말씀을 가르치실 때는 권세 있는 자와 같고, 
그 시대에 종교지도자들과 때로는 설전을 벌이기도 하시고, 
성전 입구에서 장사하는 자들의 그 상을 뒤집어 엎기도 하시고 
굉장히 강력한 그런 모습인데, 

십자가로 가는 이 과정에서는, 예수님이 너무도 힘이 없는... 
그야말로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 양과 같이 아무런 힘이 없는.. 무기력한... 

그리고 악의 세력들은, 예수님을 향하여 맹수처럼 달려드는.. 
물어뜯기 위해서 달려드는 그 맹수들 앞에, 예수님은 어린 양과 같은 모습이에요. 
다 뜯겨나가는.. 

들개들처럼 맹렬하게 다가오는 그들 앞에 
예수 그리스도는 너무도 무기력하고 초라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매달렸을 때는 
그 시대의 권세자들이 다 승리의 축배를 들은 거죠. 

그런데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그 조롱과 멸시를 그대로 받아들이시고 
고통을 피하지 아니하시고,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십니다. 

자 이 모습은 겉으로 이렇게 보면, 예수님은 이제 완전히 실패자의 모습이에요. 완전한 실패자! 
십자가에 매달려 있는 예수에게서, '승리자의 모습'을 찾아볼 수는 없는 거예요. 
그건 실패한 거잖아요. 여러분 십자가에 매달려 죽어 있는데 그건 실패죠, 완전한 실패! 

그리고 십자가 죽음을 통하여 모든 상황은 끝이 난 겁니다. 
자 그러면 예수는 실패하셨는가요? 

◑승리의 아이콘 십자가!

오늘 본문에, 예수님이 숨을 거두시기 직전에 하신 마지막 외침이 
오늘 우리에게 굉장한 메시지를 주는 거죠. 

숨을 거두기 직전에 하신 한 마디 외마디가, 오늘 본문입니다.
'다 이루었다' 그랬습니다. 테텔레스타이 It is finished!

다 이루었다.. 성취에 대한 선포에요. 이 한 단어의 엄청난 뜻이 담겨 있습니다. 
설교자의 황태자로 알려져 있는 찰스 스펄전 목사님은
'이 한마디 속에 모든 내용이 다 들어 있다. 
너무 심오해서 그 뜻을 우리는 다 알 길이 없다' 그런 얘기를 해요. 

'다 이루었다!' 주님이 이루시고자 하셨던, 
아버지가 아들에게 주셨던 그 임무를 완전히 임무를 완수하셨다는 
승리의 선언이고, 환희에 찬 선포에요. 

그렇습니다. 여러분,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은 승리하신 것입니다. 실패가 아닙니다. 
십자가는 완전한 승리입니다. 

▲골2:13~15절에는 이 승리를 이렇게 얘기합니다. 
'또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워버리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 

'십자가로 이기셨느니라' 
패배자처럼 보였던 예수는 승리자가 되고, 승리자처럼 보였던 자들은 패배사가 되었습니다. 
역전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인하여 죽었던 자들을 다시 살리시고, 
모든 죄를 사하시고, 불리하게 쓴 법조문 문서들을 다 지워버리셨습니다.

통치자들과 권세들은 누구입니까? 
예수를 죽임으로 몰아넣었던 악의 세력들, 마귀들,
근데 이제 더 이상 그들은 힘을 쓸 수 없게 되었다고 선포합니다.

여러분, 이 예수의 십자가 사건은 역사의 대반전입니다. 
십자가는 승리의 상징입니다. 

마치 적진으로 들어가 붙들려 있던 자들을, 포로 된 자들을 
다 풀어 자유케 하는 이 장면을, 우리에게 연상하게 하는 거죠.

어린양 예수는 죄와 사망에 사로잡혀 있던 자들을 풀어서 자유케 하는... 
그래서 그리스도는 '이 원수들을 무력화했다. 도리어 수치를 당하게 했다... 
사탄의 군대가 도망을 치게 했다...'  
우리를 괴롭히던 악의 영향력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게 하셨습니다.

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약한 자로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시는 
능력의 십자가라는 것입니다.

▲계시록에서도 어린양의 승리를 이렇게 노래합니다.
계5:12~13절 '큰 음성으로 이르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하더라 
13 내가 또 들으니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피조물이 이르되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 하니'

13절은, 어린 양의 죽음은 우주적 승리를 가져왔으며, 
모든 피조물이 그 앞에서 찬송과 영광을 돌린다.. 
승리하신 그리스도는 찬송받기에 합당하시도다.. 라고 말씀합니다. 

여러분 그리스도의 승리가, 우리에게 가져다 준 최고의 선물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장애물들이 제거된 것입니다. 

그 사이에 끼어들어,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갈라놓은 세력들이 
더 이상 장난을 치지 못하도록 하셨죠. 
이제는 그 어떤 것도,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가로막는 방해물이 없어져 버렸다는 거예요. 

 

이전에는 그 방해물들 때문에 하나님에게로 나아가는 일에 실패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 사이에 어린양 예수가 서 계시기 때문에, 
승리하신 그리스도가 서 계시기 때문에, 방해가 없습니다. 

이 예수는 지극히 낮은 곳으로 임하셨는데, 
그것은 십자가를 지시고 무덤까지 내려가셨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낮아지신 주님을 높은 곳에 다시 올리셨습니다. 

빌2:6~11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지극히 낮아지신 그분을, 하나님께서 지극히 높이셨습니다. 
여러분 그리스도는 십자가로 승리하셨습니다. 
'승리할 것이다'가 아닙니다. 이미 승리하셨습니다. 

그렇게 십자가는 그 자체로 완성이고, 
예수님은 이 십자가를 향해 달려오신 거예요. 
주님에게는 십자가가 목표였습니다.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서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공생애를 지나는 동안에, 한 번도 십자가를 잊은 적이 없습니다. 
그분은 살고자 오신 분이 아니라, 죽으러 오셨습니다. 
그는 십자가의 죽음을 기다리고 계셨어요. 

그리스도에게 십자가는 위대한 과업입니다. 
근데 제자들은 그걸 몰랐어요. 제자들은 십자가의 길을 방해하고 거부했습니다. 

그래요. 여러분, 십자가는 우리가 이해할 만한 그런 길이 아니에요. 
그래서 십자가의 길은 늘 오해를 받는 거죠. 

가장 가까운 제자들마저도,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실 때
제자들마저도 다 도망을 쳐 버리고 말았잖아요. 
십자가는 실패로 보이니까, 십자가의 길은 망하는 길처럼 보이니까, 
그래서 십자가는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을 때가 더 많았어요. 

사람들은 십자가를 저주로 보았습니다. 
누가 그것을 저주가 아닌 것으로 볼 수가 있겠습니까. 영락없이 저주입니다. 

그래서 그 십자가의 길은 외로운 길이에요. 가는 사람이 없어요. 
오직 주님이 홀로그 길을 가셨어요. 그래서 그 길을 비아 돌로로사 라고 그래요. 
“Sorrowful Way”또는 “Way of Suffering” 이란 뜻이죠. 외롭게 주님이 홀로 걸어가신 그 길!

정복자의 행진에는 수 없는 사람들이 환호를 하며 따릅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길에는 따르는 사람이 없어요. 경멸과 조롱소리만 가득했어요. 
누가 실패자처럼 보이는 사람을 좋아하고 따라가겠습니까. 

자 그런데 전복, 전환이 일어났습니다. 
십자가 사건으로 모든게 뒤집어졌어요.
인류의 역사의 이처럼 위대한 반전은 없어요. 
인류의 역사를 완전히 뒤집어 놓은 사건이 십자가였습니다. 

'다 이루었다' 여러분 무엇을 이루신 것입니까? 
이것은 '대가를 온전히 지불하심' 
그러니까 영수증을 쓸 때 '지불 완료, 더 이상 지불할 금액이 없음' 
또는 채무자가 채권자에게 빚을 다 갚고 난 다음에 하는 말입니다. 테텔레스타이!

십자가는 인간의 죗값을 완전히 지불하신 사건이요, 
완전한 속죄의 제사를 드리셨다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통하여 하나님의 공의를 완벽하게 만족시키심으로써  
인류의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셨다 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 이루었다'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이 완성된 거예요. 
그가 죽으심으로 우리가 구원을 얻게 됐습니다. 
더 이상 인간의 죄 때문에 심판을 받는 일은 없어졌어요. 
그리스도가 다 지불하셨기 때문에! 

그래서 그리스도를 통한 인류의 구원의 길을 활짝 열어 주신 사건이 십자가에요. 
생명의 길이 활짝 열렸어요. 십자가의 보혈로 우리의 모든 죄로부터 자유케 하시고, 
죄의 속박으로부터 자유케하시고, 죄와 사탄의 노예가 된 자를 풀어 자유케 하신 것이죠. 

십자가는 하나님과 화평을 이루게 했고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인하여, 이제 더 이상 막힌 것이 없어졌어요. 

그래서 십자가는 인간의 삶을 짓누르는 사단의 권세를 무너뜨리신 겁니다. 
십자가로 인해 사탄은 결정적인 타격을 입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창3:15절, '원시복음'이라고 부르는 이 말씀의 성취예요. 
창3:15절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이게 십자가의 예언이에요.
'여자의 후손이신 그리스도가, 사단의 머리를 밟을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마귀의 머리를 타격한 것이 십자가 사건입니다. 
십자가로 악한 자들의 모든 계획이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십자가로 마귀의 세력은 꺾여 졌습니다. 
인간을 지옥으로 몰아 놓으려고 하는, 마귀의 모든 시도들이 깨어졌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사망의 권세를 무너뜨리시고, 사망의 권세를 이긴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들을 무덤에 오랫동안 가두어두지 않으셨습니다. 
그 무덤에는 이미 부활의 빛이 스며들어 있었어요. 

그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심으로, 사망의 권세는 힘을 잃었어요. 
무덤은 부활을 여는 출입구가 되었고, 
이 십자가 - 부활이 우리의 신앙에 출발점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다 이루었다' 우리는 승리하신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의 신앙을 출발하는 거에요. 
그래서 우리는 이 수난주간에 승리하신 그리스도를 만나는 거예요. 
승리를 노래해야 되는 거예요. 

침울한 수난주간이 아니에요. 장송곡을 부르는게 아니라, 승전가를 부르는 거예요. 
그리스도가 승리하셨기 때문에! 

여러분 십자가를 생각 없이 무심하게 바라보면, 그건 실패요, 승리의 흔적을 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영안이 열려야 돼요. 

주님은 완전한 실패처럼 보이는 그곳에서, 완전한 승리를 거두셨어요. 
가장 수치스러운 자리에서 영광을 드러내셨어요. 
가장 비극적인 사건 속에서, 가장 복된 결론을 맺으신 거예요.

 

이게 테텔레스타이, 인류의 역사를 바꾼 순간, 
'다 이루었다'는이 외침으로, 어두운 세상에 빛을 비추신 거예요. 

오랫동안 묶여 있던 인류가, 죄로부터 묶여 있다가 
거기에서 풀려나 자유를 선포하신 말씀이 테텔레스타이!

그래서 여러분 여기에 '다 이루었다' 한글은 두 단어지만, 원문에는 딱 한 단어예요. 

'테텔레스타이!, 다 이루었다' 기독교는 이 한 단어의 근거해서 서 있는 거예요. 
한 단어이지만 엄청난 의미를 갖고 있어요. 이 단어의 감춰진 뜻은 우리가 다 알 수 없어요. 
주님이 십자가로 인하여 이루신 그 일이 어떤 것인가를 우리는 다 알 수 없어요.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예수의 십자가로 충분하다, 
우리의 죄로 인하여 구원받기에 예수의 피는 충분하다. 
그 십자가로 구원이 완성된다..  

 

주님은, 나의 구원을 위해 내가 할 일이 조금 더 남아 있다고 말씀하지 않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보태야 될 일이 남아 있지 않고, 
우리가 도울 일도 없고, 
온전히 십자가로 인하여.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충분히 이루신 사건이 되었다는 거예요. 

십자가로 인하여 우리 하나님이 더 이상 우리에게 요구할게 없다는 거예요. 
충분히 고통을 당하셨어요. 
더 이상 예수님에게 받으실 고통이 남아 있지 않아요. 십자가로 끝을 맺으셨어요. 

그렇습니다. 여러분, 그리스도의만이 끝을 내실 수 있어요. 그게 승리란 말이죠. 
그리고 그 승리는, 우리의 승리로 연결됩니다. 
그 승리를 우리는 이제 믿음으로 받아들이면 되는 거예요. 

◑십자가를 주도하신 하나님

 

그러면 여러분, '이 십자가의 승리는 진정으로 누구로부터 온 것인가?' 하는 거예요.
이 승리의 원천을 알아야 돼요. 승리를 주신 분이 누구냐?

이 십자가의 승리를 가져오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 누가 예수를 십자가에 매달았습니까? 

외견상으로 보면, 예수를 십자가에 매달기 위해서 달려든 자들이 한 둘이 아니에요. 
당시에 종교지도자들, 대제사장들, 장로들, 서기관들, 본디오 빌라도, 헤롯 들이었죠.

그 시대의 로마의 정권과,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야합, 
무수한 사람들이 예수를 죽이기 위해서 가담을 했어요. 

그러나 진짜 예수를 십자가에 매다신 일은 누가 한 것이냐? 
여러분, 십자가에 매다는 일에 가장 적극적으로 행동하신 분이 계세요. 바로 하나님이세요. 

 

이건 신비중의 신비예요. 모든 것은 하나님의 계획 안에서 이루어졌어요. 
하나님의 완전한 계획 속에서 이루어졌음을, 무엇을 통해 알 수 있습니까?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길로 가는 모든 일들은, 이미 구약 성경에 예언되어 있었습니다. 
나귀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하는... 
아무도 타보지 않았던 그 나귀를 타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십자가 아래서 예수의 옷을 가지고 나누고 제비를 뽑는 모든 일들에까지 
우연히 일어난 일이 아니라, 성경에 예언된 바대로 이루어진 거예요. 

시편 22편만 여러분 보십시오. 얼마나 구체적인지 몰라요. 
그래서 '성경의 말씀을 응하려 하심이라' 라는 말씀이 성경에 종종 나오죠.
모든 것은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 속에 있었어요.

모든 사건의 주도는 악인들에 의하여 한 것이 아니고, 
그 시대의 권력자들의 의해서 일어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적극적인 악행마저도, 하나님의 주도 안에 있었던 거죠. 

십자가는 예언의 성취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십자가는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그분은 조금도 실수가 없으신 분이십니다. 
십자가는 실패될 수 없는 일입니다. 왜요? 
구원의 역사를 이루는 사건의 중심에 십자가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냥 인간들의 손에 맡겨 두실 리가 없습니다. 
겉으로는 하나님이 보이지 않아요. 
십자가에 아들이 매달려 고통을 당할 때, 하나님은 계시지 않는 것 같아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모든 사건의 중심에 서 계십니다. 
하나님은 십자가를 통해 구원의 역사를 완전히 이루셨습니다. 
그분이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신 거예요. 

십자가를 통한 그리스도의 승리를 자세히 보세요. 
십자가로 넘겨진 것은, 악의 승리가 아닙니다. 마귀가 이긴 게 아닙니다. 
단지 일시적으로 악의 승리로 보였을 뿐이에요. 

그들이 십자가에 매단게 아니라, 하나님이 아들을 매다신 거예요. 
더 깊이 들어가면, 하나님이 당신을 스스로 죽이신 거예요. 

예수를 죽음의 넘겨줄 수 있는 권한은, 오직 하나님에게만 있습니다.
십자가는 실패 될 수 없어요. 
사단의 권세도 예수를 무덤에 가둘 수 없어요. 
하나님이 그를 다시 살리십니다. 사망권세를 승리하신 것이시죠.
이 모든 승리는 하나님으로 온 것이니, 승리의 영광은 하나님께 돌려야 합니다. 

 

◑적용

 

우리의 삶 가운데도 미스터리한 일들이 많이 일어납니다. 
십자가는 미스테리예요. 난해한 사건이었어요. 

우리의 삶에 무수한 고통들이 밀려옵니다. 너무 가혹한 일들이 일어납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내가 지기에는 너무도 무거운 인생의 짐들'이 있어요. 

때로는 죽음의 문턱에 선 듯한 질병에 걸려 있을 때.. 얼마나 힘들어요?
인생의 밑바닥을 칠 때, 모든게 끝난 것 같은 상황.. 
누가 보아도 끝이요, 누가 봐도 저주받는 것 같은 그런 삶을 살아갈 때가 있어요. 

그래서 그때 인생이 해석이 안 되는 거예요. 
'왜 이런 일이 나에게 닥치는가?'
그때 우리는 하나님께 질문합니다. '하나님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까?' 

십자가가 그런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그런 어려움을 당할 때마다, 우리는 십자가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여러분 십자가를 통해서 주시는 메시지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가서, 십자가에 말을 걸어 보세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당해도, 십자가의 주님을 만날 때, 해석이 달라져요. 
십자가는 여러분 놀랍습니다. 신비롭습니다. 
십자가는 각도에 따라 다른 빛이 스며들어요. 

사람들마다 겪는 고통도 달라요. 
십자가 역시, 사람들에게마다 십자가는 다르게 다가가는 거예요.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당하셨던 그 고난, 
그 의문스러운 것 같은, 설명이 안 되는 그 고난에는 
이거는 다각도에서 다.양한 빛을 드러내는 메시지로, 상징으로... 
오늘도 우리 곁에 와서, 우리의 의문에, 수 없는 고통에 답을 하는 것이 십자가예요. 

십자가 앞에 가 보세요. 인간이 겪는 것과는 비교가 안 되는 고통이 십자가에 있습니다. 
십자가는 고통을 재해석하게 합니다. 

만약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없었다면, 고통에 대한 해석은 어려워요. 어려워졌을 겁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이후에, 우리가 겪는 고통은, 새로운 해석이 되는 거죠. 

▲여러분, 고통의 순간이 왔을 때, 무조건 그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하지 마십시오.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은 충분히 이해해요. 빨리 벗어나면 좋아요. 

그러나 고통을 벗어나는 것만 전부가 아니에요. 
왜요? 인생의 고통은 또 시작되니까! 
고통이 하나가 끝나면, 또 다른 고통이 찾아오는게 우리의 인생이니까요. 

고통에서 벗어나는게 전부가 아니라, 
그 고통을 통하여, 그 고통의 순간에 
우리는 십자가 앞에 가야 하고, 그 앞에서 시간을 보내는 동안에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독특한 하나님의 은혜를 누려야 돼요. 

여러분, 십자가 앞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셔야 돼요. 
이번 고난주간도 여러분들 어떻게 보내시는지 모르겠는데, 
십자가 앞에 깊이 나가셔야 돼요.

▲오늘 이 시대가 너무 피상적인 시대가 되어서 
십자가 앞으로 밀고 들어가려고 하는 우리의 집요한 묵상적 태도가 
좀 결여된 시대를 우리가 살고 있어요.

너무 가벼운 것만 막 보는 거죠. '짤' 보고, Short 보고, 틱톡 보고...
그게 아니라 십자가 앞으로 깊이 나아가야 도비니다. 
십자가를 충분히 묵상하셔야 돼요.

십자가에 매달려 계신 하나님의 아들을 누가 이해할 수 있어요? 
여러분, 인간의 이해를 넘어선 사건이잖아요. 
그 고통을 누가 헤아릴 수가 있습니까? 
누가 그 십자가와 함께 하십니까? 홀로 십자가를 지셨어요. 

그 억울한 죽음이잖아요. 왜냐면 죽음도 다양한데요.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 같은 죽음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아요. 
인간적으로 보면 십자가는 기괴한 죽음입니다.

근데 그 십자가의 죽음은 모든 걸 뒤집어 엎었습니다. 
그가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기게 하셨습니다. 

십자가는, 인류의 굿뉴스가 되었습니다. 
최악의 스토리가, 가장 아름다운 뉴스가 되었습니다.

오직 십자가를 통해서만 이루시는 하나님의 목적이 있었기 때문에
이 기괴하고 의문의 잔인스러운 죽음의 고통을, 예수님은 통과해 내시는 겁니다. 

◑십자가를 받아들이시라

 여러분, 우리의 삶에 찾아오는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을 통해서, 하실 하나님의 목적에 있어요. 
그게 인류의 구원이었다면, 
나사렛의 요셉도 그의 삶 속에 찾아오는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목적을 발견했어요. 

여러분, 십자가를 받아들이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나에게 설명이 안 되는 일들이 많아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고통들이 있어요.

그럼에도 우리가 받아들이는 거예요. 약해지도록 약해지는 걸 받아들이는 거예요. 
실패를 받아들이는 거예요. 고통을 거부하지 않는 거예요. 그게 십자가예요. 

근데 하나님은 우리의 고통을 사용하신다는 거예요. 
우리의 고통과 하나님이 만나면, 다른 칼라가 된다는 거예요. 

어두운 색채에, 황홀한 색채가 덧입혀지는 거죠.
하나님이 우리의 삶에 찾아오시면, 그 의문의, 설명될 수 없는 고난, 
그 고난으로만 덩그러니 있는게 아니라, 하나님과 만나면 
그 고난은 새로운 색채를 띠고,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 안에 하나님의 신비가 있는 겁니다.
그게 십자가가 우리에게 말씀해 주려고 하는 것이에요.

롬8:28절 말씀처럼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들,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그 고난이 고난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겁니다.

십자가를 통해 확신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십자가의 방법으로,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신다는 거죠.

우리에게 찾아오는 불행처럼 보이는 일들로 통하여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신다는 거죠.

십자가가 우리에게 주는 은혜는 무엇입니까? 승리에 대한 확신이에요. 
십자가는 승리를 보장해 줍니다.

이 승리는 막연한 승리가 아니에요. 
'참아내면 언젠가 좋은 날이 올 거야' 라는 막연한 기대가 아니에요. 

이미 승리를 거두신 주님을 따라가는... 
그분의 승리가 우리의 승리가 되었어요. 

십자가가 승리였기 때문에, 
우리도 그분을 믿고 따라가는 한, 실패가 불가능하다는 거예요. 롬8:28

여러분, 십자가를 붙들고 산다면, 우리를 파멸시킬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아요. 
그래서 우리의 소망은 십자가에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어둠을 걷어내요. 십자가는 모든 두려움을 몰아내요. 
우리의 모든 묶여 있는 것을 풀어 자유케 하며, 
아무리 휘몰아치는 폭풍 같은 것들이 우리에게 닥쳐도 
십자가를 붙들면 승리가 주어지는 것입니다. 

아직도 이 십자가, '다 이루셨다'라는 이 선포, 
이것을 우리가 믿지 못하면
이미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를 만끽하지 못하게 됩니다. 

죄와 사망의 권세를 두려워하고, 
죽음에 위축당하고... 
여러분 우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우리의 모든 주의 부채를 갚으시고, 
모든 원수를 멸하신 것을 믿어야 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인해 주어진 것을 의심하면 안 돼요.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원수를 격파하시고, 대승을 거두신 사실을 믿어야 돼요. 

마귀는 이미 힘을 잃어버려서, 심각한 타격을 입었기 때문에, 더 이상 겁낼 일이 없습니다. 
이제 우리가 힘들고 어려울 때는, 승리하신 그리스도께 피하면 되는 것입니다. 

때로는 우리가 연약하여 넘어지고 깨어져도 
다시 우리의 신앙의 여정에서, 그 힘든 순간에 도망가지 말고 
승리의 주님에게로 피하면 되는 것입니다. 

승리하신 그리스도는 우리의 일상 가운데 함께 하십니다. 
우리를 승리의 삶을 살도록 도우시는 것이, 
더 이상 패배에 몰려 전전긍긍하는 것이, 우리의 신앙생활이 아닙니다. 

승리하신 그리스도를 따르는 우리가, 활기에 차서 
믿음 속에 확신을 가지고 이제 더 이상 이전으로 돌아가지 않고 
승리를 선포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제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부활을 기다립니다. 
모든 일을 다. 이루신 그 십자가의 자리에서, 부활의 열매가 맺힙니다. 
십자가로 마무리되고 부활로 다시 시작되는 거죠. 
고통의 끝에서 환희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면에서 신약의 교회는 매우 밝아요. 신약의 우리는 너무 밝아요. 
십자가의 신앙은 어둡지 않아요. 우리 안에 있는 모든 어둠을 다 몰아내 버렸어요. 
끌려다니듯이 예수 믿는게 아니에요. 

그래서 기쁨으로 산 제물이 되는 것, 십자가도 그냥지는게 아니라 
'기쁘게 십자가 지고 가리' .. 저는 그 찬송이 너무 좋고, 그 대목이 너무너무 좋아요. 

'다 이루었다' 이게 복음이에요. 십자가는 새로운 시대를 열었어요. 
패배는 끝이 났습니다. 어둠은 물러나고, 새 날이 밝아 왔습니다. 

구약시대 때 그토록 기다렸던 것들이 성취되었어요. 
십자가는 우리의 삶을 완전히 바꿔놓고, 우리의 삶을 압도하는 힘이 있습니다. 
우리가 승리의 삶을 살도록 이끌어 주시는 능력이죠. 

▲여러분, 십자가를 통해서 하나님은 계속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가를 말씀해 주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가를, 십자가를 통하여 크게 말씀하신 거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흔적이 수도 없이 많지만, 
그러나 십자가만큼 하나님이 우리에 대한 사랑을 
그렇게 절절히 간절하게 크게 말씀하신 적이 없어요. 

그 십자가를 바라보면 '내가 너를 이토록 사랑한다.' 
여러분 십자가 상에서 누구보다도 하나님은 적극적이었어요. 

하나님은 십자가에서 소극적이나 중립적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향한 그 사랑의 의지를, 십자가를 통하여 강력히 드러내셨어요. 

그렇지 않았다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알게 되었을까요?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는 거죠. 

우리가 언제 그분 앞에 녹아졌어요? 
얼마나 우리가 그분 앞에 무릎을 꿇게 됐어요? 십자가에요. 
그분이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시는지... 
그분이 얼마나 집요하게 우리를 구원의 길로 이끌기 위해서 애를 쓰셨는지... 
그 하나님의 열심, 그 하나님의 탁월함, 거기에 우리가 무릎을 꿇은 거예요. 

여러분, 십자가만큼 우리의 삶에 궁극적 문제를 풀어 주신 것은 존재하지 않아요. 
그리스도가 죽으심으로 우리가 구원을 얻었습니다. 
예수의 고통으로, 우리의 모든 고통으로부터 구원을 얻게 하셨어요. 
그의 손과 발에 난 상처로, 우리의 삶에 참된 치유를 허락해 주셨어요. 

승리하신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 한둘이 아닙니다.
여러분 신앙의 여정에서 흔들릴 때마다
'다 이루었다' 이 주님의 외침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우리를 자유하게 하십니다. 우리를 죄의 속박에서도 풀어 자유하게 하셨습니다.
사탄의 권세에 묶여 있던 우리를 자유하게 하십니다. 이 승리를 만끽하셔야 돼요. 

▲이제 우리가 할 일은 하나 있어요. 주님은 다 이루셨어요. 
그런데 우리에게는 남아있는 일이 있어요.
주님이 다 이루심으로 이루신 이 놀라운 십자가의 은혜를,
이 구원의 도를 세상에 알리는 거예요. 그게 우리에게 남겨진 사명입니다. 

예수의 십자가의 복음을 세상에 전하는 것입니다.
이 '다 이루었다'는 이 복음의 복된 소식을, 아직 듣지 못한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거예요. 
일차적으로는 교회 안에도 있어요. 교회 안에도 여전히 십자가의 복음을 모르고 
부활의 복음의 영광을 모르고 다니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도 많아요. 
그들에게 전하셔야 돼요. 

여러분 교회는 10년 20년 다니는데, 이 십자가의 절절한 사랑을 모르고, 
십자가의 도를 모르고 신앙생활을 하는, 무늬만 그리스도인 사람들이 있다면,
이 십자가의 도, '다 이루었다' 하신 이 놀라운 복음을 알려 주어야 돼요. 

그리고 오늘 우리를 통하여, 이해하지 못하는... 
여전히 죄에 묶여 있고, 여전히 사단의 속박에 사로잡힌 자들,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이 승리의 주를 우리만 알고 있지 않고, 
승리하신 그리스도가, 온 세상의 유일한 복된 소식임을 선포하며 자랑하며 외칠 때 
주님의 십자가에 그 죽으심은, 가장 고귀하고 보배로운 소식이 될 줄로 있습니다. 

여러분, 이미 우리는 승리하신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고 있습니다. 
승리할 것이다가 아니에요. 이미 승리를 했어요. 그 승리를 만끽하셔야 돼요. 누리셔야 돼요. 

그리고 이제 죄와 사망의 권세를 향하여 호령하시고 
믿음으로 말씀을 따라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에 쓰임 받는 
복음의 도구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찬송가를 부르겠는데요. '갈보리 산 위에 십자가 섰으니'
특별히 그 후렴은 우리가 반복해서 부르겠습니다. 

최후 승리를 얻기까지, 주의 십자가 사랑하리 
빛난 면류관 받기까지, 험한 십자가 붙들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