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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 장애우 사역은 하나님 나라의 핵심

LNCK 2006. 4. 27. 09:25

◈장애우 사역은 하나님 나라의 핵심이다.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  요9:3

 

 

▲태어나면서부터 소경된 사람

예수님이 걸어가시는 길에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을 지나쳤다.

제자들이 물었다. “누구 죄 때문에 저 사람이 소경되었나요?” 요 9:1~2


제자들은, 저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소경된 것을 아예 죄 때문으로 인정하고,

다만 그것이 본인의 죄 때문인지, 부모의 죄 때문인지를 물었다.


당시 유대 문화에서는, 장애의 원인이 ‘범죄 때문’이라는

사회적 인식이 있었다. (인간의 권선징악적 본능이다)


제자들은, 소경을 보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보다

그 소경의 “죄”에 대해 더 관심이 많았다.

그것은 오늘 날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소경이나, 그 부모의 죄 때문이 아니라고 하셨다. 

제자들이 듣고 싶은 대답이 아니었다. 더 나아가 

그의 소경됨을 통해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들을 나타내려 한다는,

더 이해하기 힘든 말씀을 하셨다. 요 9:3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들이란?

→  http://blog.daum.net/ygbhygbh/7037563


예수님은 장애와 질병이 죄로 인한 것이라는 속설을 뒤엎어버리셨다.

주님이 평소에 더 심각하게 생각하신 것은

육신의 소경이 아니라

영혼의 소경이었다. 모든 사람이 ‘정상적’으로 생각하는...

 

▲장애에 대한 문화적 편견을 극복해야...

아프리카 자이레의 어느 부족은, 장애아가 태어나면

신이 부족에게 내린 축복이라고 해서 축제를 벌인다고 한다.


미국 메사추세츠 주의 말타 빌야드 섬에는 시각 장애인을

성스러운 사람으로 대접한다고 한다.


반면에 한국은, 장애인을 조상이 내린 이나 신이 내린 저주형벌

여기는 ‘문화’가 있다.

한국 성도들도 장애를, 샤머니즘의 영향으로, 하나님이 내린 로 본다.

이것은 결코 성경적 관점이 아니다.

 

하나님 나라의 본질적 사역

성경을 연구해 보면, 장애인 사역이

하나님 나라의 본질적 사역임을 깨닫게 된다.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 하실 즈음, 회당에 들어가셔서 성경을 펴시고

이사야 61:1~2절을 읽으셨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눅 4:18


가난한 자 등, 사회적 소외 계층

항상 복음과 함께 따라다녔다. 복음 수혜의 시작이자, 핵심계층이었다.

가난한 자, 눈먼 자는 예수님의 특별 관심의 대상이었다.

→이런 이유로, 장애인 등 소외계층을 돌보는 일은 하나님 나라의

본질적인 사역이다.


예수님은 모든 계층을 사랑하신다.

모든 사람은 영적으로, 심리적으로 가난하고 눈멀었다.

그렇지만, 현 사회에서 더 불쌍한 차별대우를 받는 사람들은 장애인이다.


비록 성경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전통적으로 교회는, 또한 사회적 인식 역시

소외계층을 떠안는 것이 교회와 하나님 나라의 본질적 사역으로 여겨왔다.

그것이 예수님 공생애 사역의 우선순위였다.



◑교회에서 배려해야 할 사항


▲신학적 문제

장애인들은 직장, 병원, 학교보다 오히려 교회에서 더 큰 아픔을

느끼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그 이유는

오늘날 한국교회가 가지고 있는 독특한 가르침과 분위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눈먼 자를 뜨게 하셨고, 걷지 못하는 자를 일으키셨는데

성경은 무엇이든지 구하면 다 이루어주신다고 가르치는데

그런데 왜 장애를 갖고 있으면서도 주님께 안 매달리느냐는 논리다.

그런 비난을 장애인과 그 가족들에게 쏟아낸다.

주위에서 기도 많이 한다는 사람일수록 그런 시험을 주기 쉽다.


장애인과 그 가족들이 주님께 간절히 기도로 매달리지 않았겠는가?

자기가 장애를 가졌는데, 목숨을 걸고 기도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가?

어릴 적부터 지은 죄를 되새기고 되새기면서, 금식하면서, 통곡하면서,

하소연하면서, 눈물로 몸부림치는 기도를 안 했다고 생각하는가?


장애인에게, 또는 환자에게 ‘아직도 해결되지 못한 죄가 있어서...’

‘헌신을 안 해서, 십일조를 바치지 않아서’ 식의 설교나 권면은

매우 조심해야 한다. 아예 안 해야 된다.


일부 강단에선, 건강은 축복이요 질병과 장애는 해결되어야 할 문제로

보는 메시지가... 장애인과 그 가족들을 더욱 슬프게 만든다.

원래 목적은 그렇지 않겠지만, 들리는 사람의 귀에는 그렇게 들린다.

 

(장애우 뿐만 아니라, 가난한 사람, 성공하지 못한 사람에 대해서도

같은 '신학적 문제'가 있다고 본다.)


 

어쩌면 더 열심히 주님을 찾아야 할 장애인들이

더욱 주님을 멀리 하고 있는 이유는(장애인 신자비율 5% 미만)

혹시 장애인들이 교회에서 느끼는 불편함 때문은 아닐까?


그래서 맹인교회, 농아교회, 장애인교회가 생겼는데(미국에는 없음)

이것은 장애인들이 편하게 모여서 예배드릴 수 있다는 배려가 있는 대신

장애인 차별이라는 현실적 문제로 인해 씁쓰레해 진다.

 

▲장애인 배려가 차별이 되지 않도록 주의하자.

장애인 차별은 인권문제이다.

미국은 장애인이 정상인과 똑같이 직업적으로 차별받지 않고

일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어 놓았다.

장애인이라고 특별히 우대/차별하지 않는다.

장애인이 정상인처럼 일할 수 있는 직장 풍토를 조성하자.

 

눈빛을 조심해야 한다

장애인과 가족들이 주님을 갈급해서 교회를 찾았는데

일부 교회가 장애인들을 오히려 몰아낸다.

물론 의도적으로 그런 것은 아니지만

세심한 배려가 없으면, 예민한 장애인들은 그런 느낌을 받기 십상이다.


장애인이 교회에 가면, 노골적으로 다음 주부터 나오지 말라고 하지 않지만

눈빛, 또는 적극적으로 환영하지 않는 태도를 보임으로써

장애인이 스스로 다음 주부터 나오지 않도록 유도한다.

 

▲장애인은 결코 호기심의 대상이 아니다.

정상인이 장애인을 교회에서 만나면

한결같이 대화 내용을 장애에 관한 것으로 시작한다.

“어떻게 장애가 되었는지?, 언제부터 그렇게 되었는지?” 물으면

매 번 대답할 때마다 자기 아픔을 수 백 번 되새겨야 한다.

심지어 “부부생활은 가능한가?” 등의 지극히 사적인 특별관심이 오히려

장애인들을 괴롭힌다. 평소 자기가 궁금한 점들을 마구 쏟아내는 사람들

앞에서 장애인들은 인격이 무너지게 되고, 사람 만나는 것을 겁내게 된다.


▲마치는 말

미국은 장애인의 천국이지만, 한국은 상대적으로 뒤떨어진다.

그러므로 한국은 상대적으로 장애 사역을 할 여건이 풍부하게 조성되는

셈이다.


장애사역을 하면 하나님 나라가 열린다.

이것은 구제 사역의 일환이 아니다.


예수님이 갈릴리에서 하신 사역을 그대로 따른다면

장애인 사역은 하나님 나라를 여는 첨병(시작) 역할을 한다.


교회를 부흥하게 할 목적으로 장애인 사역을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사랑으로 장애인 사역을 하다보면

빛과 소금된 교회의 모습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받아서, 이 일에 동참하게 되고

그래서 결국은 개인 신앙과 교회 부흥에도 도움이 되는 면이 반드시 있다.

‘장애사역을 하면 하나님 나라가 열린다.’라는 말은 이런 뜻이다.


보이는 자기 형제자매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요일4:20 

 

장애우도 마찬가지다. 눈에 보이는 장애우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결국 그 마음에 진정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다.


<인터넷 설교 요약, 편집. 06.04.23. *원제목 : 주님 사역 중심에 있는 장애우


[주제별 분류] 리더십, 목회자 http://blog.daum.net/bible3/80023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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