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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9 지금이... 받을 때냐?

LNCK 2006. 8. 23. 10:51
 

◈홍정길 목사 미 한인 1.5세 젊은 목회자들에 충고                *출처:


 

“당신들의 목표가 무엇인가. 릭 워런인가, 빌 하이벨스인가?

슈퍼스타가 되길 꿈꾸기 전에

한 영혼에게 전할 메시지가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홍정길(64·남서울은혜교회) 목사는 젊은 목회자들에게 선배로서

솔직한 충고를 던졌다.

홍 목사는 지난 06.06.10. 서울 서초동 노보텔 앰버서더 호텔에서

글로벌 차세대 리더십 포럼(GELF)’ 참가 차 방한 중인 20여명의
후배 목회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선배 목회자로서 아낌없이 조언을 건넸다.


홍 목사는 무엇보다 ‘한 사람을 위한 뜨거운 마음’을 가지라고 말했다.

그는 “개인 전도를 못 한다면 목회를 하지 말라.

한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수 백, 수 천 명에게

메시지를 전할 꿈을 꾸는가?”라고 도전적인 질문을 던졌다.


그는 젊은 목회자들이 목자가 되기보다

경영인이 되려는 사람이 많다고 질타하면서

“목자는 양을 알고 양은 목자의 음성을 아는 게 목회다.

이것을 벗어나면 목회가 아니다”고 못 박았다.


목회 생활 중 위기를 맞은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홍 목사는 세 가지 위기를 꼽았다.

돈의 위기, 인간관계의 위기,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오는 위기였다.


“며칠 전에도 15분 연설하고 1백만원을 받았다. 이럴 때마다 두렵다.

목회자의 부요는 영성을 마르게 하는 지름길이다.

돈을 경계하면 평생 큰 위기를 피할 수 있다”고 충고했다.


홍 목사는 외부 강연 등으로 받는 사례비는 모두 자신이 갖지 않고

교회 관리자에게 맡긴다고 소개했다.

그는 목회 활동에 대해 “나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는 쉴 틈 없는 싸움이며

끝날 줄 모르는 이 투쟁은 정말 외롭고 힘든 싸움”이라고 토로하기도 했다. (후략)

 

 

◑지금이 받을 때냐? 

 

지금이 어찌 은을 받으며 옷을 받으며 감람원이나 포도원이나 양이나 소나

남종이나 여종을 받을 때냐? 왕하 5:26

 

▲나아만의 헌금을 거절한 엘리사 선지자

 

엘리사가 이르되 그 사람(나아만)이 수레에서 내려 너(게하시)를 맞을 때에

내 심령이 감각되지 아니하였느냐

지금이 어찌 은을 받으며 옷을 받으며 감람원이나 포도원이나 양이나 소나

남종이나 여종을 받을 때냐? 왕하 5:26


왜 엘리사 선지자는 나아만의 큰 헌금거절했을까?

자기는 때로는 남의 집에 얹혀서 더부살이할 정도로 가난하면서

그런 큰 헌금을 받아서 정상적으로 자기 앞가림 하는 것이 현명하지 않은가?

그리고 자기 종인 게하시가 탐하기 전에, 미리 나눠주면 도리어 좋지 않은가!


그리고 나아만 장군에게 그 헌금을 받는다고

나아만에게 경제적인 폐를 끼친 것은 분명히 아닐 것이다.

나아만에게는 그 정도 물질을 헌금한 여력은 충분히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요구한 것이 아니라, 나아만이 자원해서 드린 헌금이었다.


그리고 불치병인 문둥병을 고쳐주었는데,

그 정도 헌금을 받았다고 비난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럼 비난받을만한 일도 아닌데.. 왜 엘리사는 헌금을 굳이 받지 않았을까?


그럼 엘리사 선지자가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그랬을까?... 물론 아니다.


▲추측하건데,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추측이다.)


①당당히 말하고 싶었다.

돈을 받은 사람은, 돈을 주는 사람에게 종속된다.

돈에는 그런 힘이 있다.


오늘날 종은 없지만,

돈을 받는 사람은, 돈을 준 사람에게 종처럼 된다.  

그래서 돈을 주면 이발도 해 주고, 심부름도 해 주고, 청소도 해 준다.

더 심하게도 하는 것은, 돈이 사람을 종처럼 부리는 속성 때문이다.


사람은 돈을 받으면, 돈을 주는 사람에게 함부로 말을 못 한다.

그랬다가는 돈줄이 뚝 끊기기 때문이다. 도의적으로도 못 한다.


엘리사가 염려한 것은,

자기가 나아만에게 돈을 받음으로써

나아만에게, 선지자로서 올바른 소리를 하지 못할까봐 염려한 것을 아닐까?


하나님의 종인 엘리사가, 나아만의 종이 될 것을 염려한 것은 아닐까?

어쨌든 병을 고친 후에도

엘리사는 선지자로서의 당당한 사명 감당을 더 원했던 것 같다.


이 사건 앞서 성경을 보면

사자에게 물려죽은 두 선지자 이야기가 나온다. 왕상13:24, 20:36.


저가 가서 본즉 그 시체가 길에 버린바 되었고 나귀와 사자는 그 시체 곁에 섰는데

사자가 시체를 먹지도 아니하였고 나귀를 찢지도 아니하였더라  왕상 13:24


저가 그 사람에게 이르되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네가 나를 떠나갈 때에 사자가 너를 죽이리라

그 사람이 저의 곁을 떠나가더니 사자가 그를 만나 죽였더라  왕상 20:36


그들은 모두 선지자의 사명을 감당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이 시키신 그대로 하지 않았다가 그런 징벌을 받았다.

거의 90% 시키신 그대로 했는데, 10% 방심하다가... 큰 벌을 받았다.

 

한 선지자는, 주님이 시키신 사명을 잘 감당했다가

나중에 대접 받은 것 때문에 사자에게 물려죽었다.

하나님은 사명 감당 중에 아무 것도 먹거나 마시지 말라고 하셨는데,

어떤 늙은 선지자의 거짓말에 속아서, 대접을 받다가, 사자에게 물려죽었다. 

 

그러니까 엘리사는, '나아만을 고쳐주라'까지만 사명을 받았나 보다.

나아만에게 대접받는 것까지는 사명으로 받지 않았나 보다...

(신약시대에도 예수님은 주로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고 하신다.) 

 

그만큼 선지자의 사명은 엄중하다는 것을 하나님은 경고로 미리 보여주셨다.

이런 선행되는 '사고'들이 혹시 엘리사 선지자에게 경각심을 주었을까?

어쨌든 엘리사 선지자는, 보통 사람이 '지나치다'라고 느낄만큼 

선지자의 사명에 바짝 깨어있었다.   


②시국을 보는 긴장감이 달랐다.

게하시에게는 시국이 평화롭게 보였고, 잘 돌아가는 것처럼 보였으나

엘리사에게는 “지금이... 받을 때냐?” 라고 호통친 것을 볼 때

어떤 팽팽한 긴장감 가운데 살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 긴장 가운데서 한 치도 방심할 수 없으니까

나아만의 헌금을 받고 즐길 여유조차 가질 수 없었던 것이었다.

 

사람도 먹은 것은 몸 속에 들어갔다가 다시 잘 나와야 한다.

그것이 몸에서 원활하게 나오지 않고 막히면... 큰 탈이 나는 것이다.


▲오늘 일부 교회 목회자들이 설교의 힘을 잃어버리는 제일 큰 원인은

에 있다고 본다. 자세한 설명은 안 해도 다 안다.

(그러나 대부분 목회자들은 설교에 힘이 있다.)


만약 그런 것이 사실이라면,

“지금이... 받을 때냐?” 라고 외친 엘리사의 격노에 찬 음성이

오늘날에도 마땅히 들려져야 한다.


그것을 받아 누리려 했던 게하시에게 나아만의 문둥병이 옮겨진 것처럼,

누가 주는 대로 척척 받아서 물쓰듯이 쓰다가는

영혼에 물질의 문둥병이 퍼질 것이다.

그러면 설교가 죽 쑨다.


한국 교회는 ‘아름다운 빈손’(한경직 목사님)의 전통이 있다.

아직도 그런 훌륭한 목사님이 한국에 곳곳에 많이 계신다.


천주교는 한 달에 30만원씩인가 준다고 한다.(들은 얘기로 확인 요!)

예수님처럼 청빈한 삶을 사는 데로, 사람들이 따르는 것은 아닌지... <김지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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