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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장시대의 교훈 (역대상 1장) 2006.08.20.설교녹취
오늘 현재의 이러한 결실은.. 애써 노력한 과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과거를 무조건 부정적인 측면으로만 보고 비판해서는 안 된다는 주제의 글.
조상을 존중하고, 조상의 신앙 유산을 잘 계승하자는 뜻.
▲족장시대와 그 특징
성경에 ‘족장시대’라고 일컫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의 시대가 있었다.
그 특징은 ‘한 개인(족장)의 믿음’이 주로 돋보였던 시대였다.
족장 한 사람의 믿음이 가문 전체를 인도하던 그런 시절이었다.
족장 시대에는 가나안 땅이 아직 복음화 되지 않았다.
가나안 땅의 복음화는 여호수아 시대에 비로소 이루어진다.
그렇다고 족장들이, 자기 시대에 자기 사명을 게을리 한 것은 아니다.
왜 그 때 가나안 땅을 복음화 못 시켰느냐고 따지는 것은 어폐가 있다.
(*어폐 : 말의 폐단)
초창기 창세기의 족장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그 자리에 든든히 서 있는(개인신앙 수호)
것만으로도 자기들의 사명을 다한 것이다.
그러다가 다음 시대에 이르러, 한 개인의 믿음은 비로소
민족의 믿음으로, 공동체의 믿음으로, 나라 전체의 믿음으로 확장된다.
아브라함의 일생도 어떻게 보면 자기 가정 복 받는 일에 매달렸던 사람이다.
이삭도 우물을 파고 했지만, 주로 개인 가정사적 일이었다.
야곱도 마찬가지였다. 야곱이 세상을 구원하는 비전을 품고 나간 것이 아니라
성경은, 세월이 흐를수록 야곱 개인 신앙 성숙에 초점을 주로 맞추고 있다.
그것을 두고 오늘 우리 시각으로 세계선교, 사회책임 등의 잣대를 들이대면,
족장들도 크게 비난을 받아야 하지만... 그런 비판은 당연히 옳지 않다.
▲한국교회 과거사 비판... 옳지 않다
혹자는 과거 1970년대의 한국 기독교가 개인적, 기복적이라고 비난하는데,
그것은 비난할 문제가 아니라, 성장과정으로 이해해야할 문제이다.
그 때는 교회가 아직, 지금처럼 모든 여건에서 성숙되지 못 했다는 것이다.
한국 기독교는 120년 역사 만에 세계에 유래를 찾기 어려운 큰 부흥을 이루었다.
그런 성장역사에 만족 못 하고, 자꾸 과거를 들먹이며 자조함은 옳지 않다고 본다.
(*자조 : 스스로 조롱, 비웃음)
당시에는 개인적 (↔사회복음적) 믿음으로, 성도가 가정, 직장, 사회, 교회에서
든든히 서 있었던 것만으로도 자기 시대적 사명을 잘 감당한 것이다.
당시 주류 기독교회는 대부분 그렇게 잘 감당했다.
어느 나라든지 초창기의 기독교는 성경으로 치면, 족장시대에 비유된다.
그래서 그들의 믿음이 개인적, 기복적으로 보인다.
그 때 부흥사들도 주로 강조한 것이 개인 신앙부흥, 심령부흥이었다.
그 후에는 성숙의 시대였다. 그래서 성경공부, 제자훈련이 유행했다.
지금은 사회참여의 시대다. 교회는 국내에서 빛과 소금으로 봉사하며
해외에 활발한 복음전파로 나누어주는 시대가 되었다.
한국교회도, 한국의 국제적 위상도, 이제는 그럴 만큼의 여건을 갖추고 있다.
우리가 과거를 부정해 버리고 오늘 우리 존재를 인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시대가 아버지를 잃어버리면.. 그것은 우리 모두에게 비극이 된다.
성장기의 청소년시절인 과거에, 어른의 사명을 감당 못 했다고 다그치면... 잘못이다.
그 때 그 시절, 그 수준에서 그 만큼 한 것은... 잘 했다고 오히려 격려해 줄 일이다.
<인터넷 설교 발췌 요약 06.08.20.
◑성난 얼굴
-동아일보 기사 http://www.donga.com/fbin/output?sfrm=1&n=200608190066
▲영국 노동계층의 성난 얼굴을 연극화 하다
대학까지 나왔으나 낮에는 노점상, 밤에는 재즈 바에서 트럼펫 연주로 생계를 이어가는
지미 포터는 터질 듯한 분노를 억누르며 산다.
지미는 중산층 출신의 부인 앨리슨을 학대하고 조롱하는 것으로
자신의 좌절감과 박탈감을 분출한다.
영국의 전위(前衛)작가 존 오스본이 1956년 연극무대에 올린 희곡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의 줄거리다.
이 작품은 영국 노동계층의 찌든 일상을 ‘성난 얼굴’로 묘사함으로써
제2차 세계대전 후 상실감에 빠져 있던 사람들의 반향을 얻었다.
▲이 희곡의 제목을 연상케 하는 일들이 지난 10여 년간 우리 사회에서 벌어졌다.
더구나 종결형이 아니라 진행형이다.
정치인, 시민·사회운동가, 학자 할 것 없이 우리의 과거를 온통 잘못된 것인 양
‘성난 얼굴’로 매도, 규탄하는 데 열을 올린다.
그런 과거를 청산, 단죄하지 않고는 한 발짝도 미래로 나아갈 수 없을 것처럼 행동한다.
대한민국 역사를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한 역사’로 규정한다.
▲권태준 서울대 환경대학원 명예교수는
“우리는 왜 성난 얼굴로 뒤(과거)만 돌아보느냐”고 묻는다.
그는 이번 광복절에 낸 저서「한국의 세기 뛰어넘기」에서
“지금 일부는 과거에 대한 비판과 부정으로 자신들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있다”
고 지적했다.
요즘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은 어느 때보다 자신감에 충만해 있는데,
그것은 과거의 성공적이고 역동적인 ‘국가 만들기’와
그에 따른 정치 경제 사회적 발전의 터전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냐고
권 교수는 반문한다.(후략)
이진녕 논설위원, 동아일보 06.08.19.
◑종교개혁자들이 당시에 해외선교에 등한시했던 이유
도 같은 맥락에서 설명될 수 있다.
개신교의 해외선교는 소위 ‘위대한 세기’라고 일컫는
19세기에 비로소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이전에는 윌리엄 케리가 근대선교의 선구자 역할을 했고(1792),
그 이전에는 모라비안 과 독일 경건주의자들이 해외 선교를 감당했는데
경건주의자들은 매우 작은 분파였다. 개신교의 비주류 한쪽 구석 변방이었다.
그러니까 종교개혁이 일어난 16세기 초부터 ~ 18세기 말에 이르는
근 3세기 동안 개신교는 이렇다할 해외선교 활동이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같은 시기에 천주교는 종단(수도회) 중심으로
활발한 해외선교 활동을 벌여서
그 결과 남미 전체가 천주교로 개종되었다.
아시아에도 필리핀 등이 스페인에 의해 그 때 천주교화 되었다.
바른 신학과 바른 신앙을 주창했던 종교개혁자들이
해외선교에 대해 거의 참여하지 못했던 이유가 여러 가지 있지만
가장 설득력 있는 것은... 당시에 먼저 생존에 급급했다는 것이다.
기득권을 가진 천주교는, 개신교도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했고
신, 구교간의 종교전쟁은 유럽대륙에서, 영국에서,
나아가 식민지인 남미대륙에서 서로 살육의 피비린내를 풍겼는데
아무래도 신진세력인 개신교가 많은 탄압과 죽음과 핍박을 당했다.
그런 생존의 기로에 섰던 당시 개신교회는 해외선교를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개신교회는 16~18세기가 ‘족장시대’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오늘날 우리의 시각과 잣대로
당시 해외선교에 등한시했던 종교개혁자들과 그 후예들을 비판할 수 없다.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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