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확증하라 (롬 5:6~11)
◑사랑 받기만 하고, 줄줄 모르면 못 쓴다.
헤르만 헤세 Hermann Hesse의 작품 중에 Augustus 라는 소설이 있다.
이 소설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어거스트 라는 아이가 세상에 태어난다.
태어나는 그 순간 특별한 사건이 생기는데,
한 노인이 찾아와서 그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 귀한 아기의 출생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이 아이를 위하여 한 가지 소원만 들어주겠다.
무슨 소원이든지 한 가지만 말하라.
그러면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이 어머니는 많은 생각 끝에 지혜를 다해서 이렇게 대답했다.
“이 아이는 아무에게나, 그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사람이 되게 해 주세요!”
정말 훌륭한 소원이었다.
그래서 이 아이는 정말 사랑받는 사람으로 자라갔다.
어려서는 부모님들에게, 조금 크면서 선생님들과 친구들에게,
그저 모든 주변 사람들에게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랐다.
그런데 사랑을 받기만 하다보니까, 베풀 줄 모르고 교만해지고,
자기는 항상 사랑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착각을 하면서,
다른 사람을 멸시하기도 했다.
이렇게 한평생을 살아갔다.
그 아이가 커서 장년이 되고, 이제 어느 듯 노인이 되었을 때,
그 옛날 나타났던 그 노인이 다시 찾아왔다.
그리고 그에게 물었다.
“이제 연세가 지긋해졌는데, 마지막으로 한 가지 소원을 또 들어주겠소!”
이제 평생 사랑을 받고만 살았던 그 사람이 곰곰이 생각한 후에 대답했다.
“이제 남은 생애, 누구나 사랑하며 살게 해 주세요!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게 해 주세요!”
여러분, 우리는 늘 사랑받기를 원한다.
복음성가에도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서 태어난 사람’이 있는데,
저는 그것이 별로 마음에 안 드는 면이 있다.
사람이 사랑만 받고, 줄줄 모르면... 못쓰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처음에 ‘사랑받는 사람’이 되더라도
점점 ‘사랑 주는 사람’으로 자라가야 한다.
(그래서 2절로, ‘당신은 사랑주기위해 태어난 사람’으로 불러야겠다.)
▲ 점점 식어지는 사랑
처음에 예수를 믿으면, 오직 사랑, 오직 은혜, 대부분 이렇게 출발한다.
그런데 도중에 선하게 살고, 진실하게 살고, 좋은 일 하면서 살아야겠다며
경건을 재촉하다 보면, 어느새 사랑하는 마음이 점점 식어진다.
뜨거운 사랑이 점점 흐려지고 자꾸 사람이 변한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이렇게 경고한다.
“믿음으로 시작했다가 율법으로 마치겠느냐?
은혜로 시작했다가 어찌하여 이렇게 율법주의자의 길을 가느냐?”
사도 바울이 걱정했던 바는 오늘 우리에게도 있다.
처음 시작할 때 첫 사랑의 은혜로, 하나님을 사랑으로 고백하다가도,
어느 사이에 사랑의, 그 은혜의 마음이 점점 흐려지면서
자신을 사랑받지 못한 자인 것처럼, 아니 ‘하나님이 정말 나를 사랑하시나?’
이렇게 물으며 현실 속에서 그 믿음이 흔들릴 때가 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자기 삶에 확증해야 한다.
◑사랑을 확증하라!
▲독생자를 주신 사랑
제가 외국에서 공부할 때, 신학자들과 얘기할 때 ‘독생자’ 얘기만 나오면
제가 꼭 한 번씩 연설을 하곤 했다. “당신들이 독생자를 알아?
독생자 only begotten son - 이것은 동양적 표현이다!”
라며 한바탕 설명을 하곤 했다.
우리 할머니가 식사기도를 하실 차례가 되면, 저는 큰 걱정이 생긴다.
기도하시다가도 ‘독생자, 하나밖에 없는 독생자를 주신 하나님...’
이 대목에서는 항상 기도가 중단되면서 엉엉 우셨다. 밥상을 코앞에 두고서...
왜냐하면 우리 아버지(할머니의 아들)가 삼대독자이셨다.
옛날에는 며느리가 아들 못 낳으면 쫓겨나든지, 첩을 맞아야 했었다.
그런 상황에서 조마조마하다가 마침내 삼대독자를 낳으셨다.
그 아들(독생자)이 얼마나 소중한지, 자기 생명보다 더 소중하게 키웠다.
그런데 성경을 읽으시다 깜짝 놀라신 것이다.
“독생자를 주시고... 십자가에 목 박혀 죽으시고...”
이 보다 더한 감격은 없었다.
그래서 할머니는 그 때부터 ‘독생자’라고만 하면 우는 것이었다.
가슴에 찡하게 다가오는 것이었다.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롬 5:6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셨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를 선택해 주셨다.
주님이 먼저 나를 주도적으로 사랑하시며 의롭다하시고 키워주셨다.
마치 어린 아기가 부모의 사랑을 받는 것을 모른다. 너무 어리니까...
우리는 간난 아기 때 부모사랑을 듬뿍 받은 것을 기억 못 한다.
마찬가지로 주님은, 우리가 연약할 때에,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사랑해 주셨다.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의 사랑이란...사랑받을 만한 자격이 있어서 그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사랑받을 자격이 전혀 없지만... 먼저 사랑하고, 사랑스러운 자로 키워가는
것이다.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에, 원수 되었을 때에 5:8, 10
우리가 이런 죄인, 원수가 된 처지에서 사랑을 받고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
그런데 우리가 이웃의 죄인, 원수들을 볼 때 노여워한다면...
그게 옳은가!
그러므로 원수사랑을 사랑의 극치로 생각하지 마시라.
그것은 기본이다!
내가 받은 사랑이 죄인으로서, 원수로서 용서 받은 사랑이라면
그 사랑을 받고 깨닫고 체험했으니
우리는 이제 이웃을 기꺼이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렇다. 사람들은 네 살 이전에 어머니가 기저귀 갈아 채우고 목욕시킨 것
아무도 기억 못한다. 그 때 참으로 귀한 사랑을 받았는데, 기억이 안 난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 받은 것을 너무 쉽게 잊어버리고 사는 것은 아닌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우리는 애당초 죄인 되었을 때부터 사랑받은 것이다.
의인으로 살 때, 사랑받은 것이 아니다.
지금도 의인으로 사랑받는다는 것은...( 글쎄 의인은 당연히 사랑받겠지만)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는, 의인보다는 죄인으로서 사랑받는 것이 될 것이다.
그런고로 내 의를 고집하지 말자.
뭐 무슨 선한 일 하고, 착한 일 한다고 거만해지지 말자.
아무 소용없다.
어차피 우리는 죄인이다. 죄인의 모습으로 사랑받는 것이다.
▲심리학자 마틴 셀리그만 Martin Seligman 은 이렇게 말했다.
삶을 우울하게 만들고 비판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의 심리상태는 이러하다.
①영구성 - 스스로 생각할 때 자신의 실수는 영원한 것으로,
자신은 구제불능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 순간 사랑을 거절하게 된다.
②확산성 - 한번 그런 일이 있고, 또 한번 그런 일이 반복되면
나머지 환경도 다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더 이상 믿지 않는다.
아주 운명적으로 생각하고 절망한다.
③개인성 - ‘모든 것이 나 때문이다. 저것도 나 때문, 이것도 나 때문이다..’
참 좋은 마음, 착한 마음 같지만 그렇지 않다.
이런 자괴감이 문제다.
위의 3가지를, 하나님의 사랑으로 스스로 확증하고 물리치시기 바란다.
혹시 자식이 잘못되면 부모는 ‘나 때문이요, 내가 죽어야지...’ 하는데
그런 쓸데없는 생각 마시라.
이런 과정을 통해 주님은 당신의 뜻을 이루실 것을 멀리 바라보시라.
▲사랑을 확증해야
여러분, 이 사랑을 확증해야 한다. 다시 확증해야 한다.
내가 그 동안 모르고 받은 사랑을, 이제는 깨달아야 한다.
내 의가 아니고, 죄인 되었을 때 사랑받았다는 것을 잊지 마시라.
내가 부족하지만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애쓰고 있는데
하나님이 왜 버리시겠는가?
하나님과 원수 되었을 때, 주님은 나를 위해 십자가에 돌아가셨다.
십자가로 그 사랑을 확증해 주셨다.
다시 십자가를 쳐다보시라!
그 속에서 내가 얼마나 엄청난 사랑받고 있는 존재라는 것을 확증하셔야 된다.
그러할 때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
새로운 자기 존재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런고로 나는 소중하다. 나는 참으로 소중한 존재이다.
<인터넷 설교 발췌, 요약 *원제목 : 자기 사랑의 확증 (롬 5:6~11)
[주제별 분류] 사랑 http://blog.daum.net/bible3/9519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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