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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들이 절실한 세상

LNCK 2006. 11. 13. 11:55


◈바보들이 절실한 세상        잠30:22 

‘곧 종이 임금이 되고 바보가 부자 되고’   (잠30:22, 공동번역)

▲부동산은 본질적으로 독점되어서는 안 된다
어느 외국 다국적 기업이 한국 기업과 합작 투자해서
한강의 물(수자원)을 독점적으로 차지했다고 가정해 보자. 물론 많은 돈을 지불했으리라. 
그러나 그 기업은, 투자한 돈의 몇 배~몇 십 배 비싼 값에 그 물을 되팔 것이다.
‘경제논리’로만 보면 하등 잘못이 없어 보인다. 

이번에는 다른 외국 다국적 기업이 한국 기업과 합작 투자해서 
한국 상공의 공기를 독점 계약 맺었다고 가정해 보자. 
그러면 그 기업은 투자한 돈의 몇 십 배 비싼 값에 공기를 되팔 것이다.

위의 두 가지 사업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물과 공기는 그 규모가 손에 구체적으로 잡히지 않는다.
그런데 아래 사업은 가능하다.

어떤 사람들이 토지를 사서 독점해 버렸다. 
그리고 매우 비싼 값에 토지를 되팔거나, 높은 지대를 매기는 것이다.

이 가설의 주제는, 토지는 물, 공기와 마찬가지로 공유개념이라는 것이다. 
그것을 누가 독점해 버리면... 큰 피해를 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독점을 못하도록 막아야 한다. 토지는 돈이나 물건과 다른 개념이다.

▲성경은 부동산 독점을 반대 한다 성경은, 
50년주기의 희년 제도를 통해, 토지를 샀더라도 원주인에게 반환하게 했다.
그래서 토지의 독점을 원천적으로 막고 있다.

▲부동산 독점은 가난의 대물림을 낳는다. 
필리핀이 가난한 것은, 하층민들에게 자기 소유의 토지가 없기 때문이다. 
스페인이 물러나면서, 일부 소수 귀족들에게 엄청난 토지를 나눠줘 버렸다.

물론 하층민은 자기가 벌어서 토지를 사면되지만,
하루 2~3천원 벌어서 사기엔, 그 땅 값은 엄청나게 비쌌다.
그래서 국민의 대다수인 하층민들은, 그냥 남의 땅 위에 판자촌을 치고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것이다. 

근본적으로 땅 문제다. 하층민들은 돈 모아서 가전제품은 사겠지만, 
땅이나 집을 살 생각은 아예 포기한다.

(우리나라에도 주택 구입에 대한 소망이 사라지고 
'하루 벌어 하루 먹는' 계층이 늘어나면큰 잠재적 사회불안 요인이 될까 우려한다. 
소위 막 가는 인생들이 생기는 것이다.)

유럽 역사를 보면, 농민이 가난했던 것은 자기 소유 토지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소수 귀족들이 방대한 토지를 대부분 소유하고(왕에게 하사받아)
소작농들에게 엄청난 소작료를 물게 했다.

추수의 대부분을 가져갔고, 일정량의 꿀, 민물고기, 베까지 만들어 바쳐야 했다. 
그러니까 결국 소작농은 자유인이었지만, 노예나 다름없이 살았다. 
그것을 어기면 가혹한 형벌이 뒤따랐다. 아니면 노예로 전락했다.

하나님의 제도는 토지 독점(소유와는 다른 개념)을 원천적으로 금하셨지만 
인간의 제도는 끊임없이 토지를 독점하려 했고 
그 결과 인간 역사는 가난의 대물림이 끊이지 않고 있다. 

▲사탄을 이긴 바보
톨스토이의 동화에 사탄이 사람들을 괴롭히고 종으로 삼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가 유일하게 이길 수 없는 사람이 있었다. 다름 아닌 바보 이반이었다.
그는 바보이기 때문에 아주 단순하다. 그래서 사탄의 속임수가 통하지가 않는다.
더구나 그는 욕심이 없다.
그래서 사탄이 돈으로도 무엇으로 유혹해도 욕심이 없으니 통하지 않는다.
아마 톨스토이가 말하고 싶은 것은 그것이었으리라.
바보와 욕심이 없는 사람, 바보처럼 사는 사람이 사탄의 유혹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을.  
 
◑바보 한 사람 때문에 평화를 되찾다(정 원 목사님의 글)  

십 여 년 전쯤에 동원 예비군 훈련을 일주일 간 적이 있다.
오랜만에 군복을 입고 훈련소에 입소하기는 했지만 훈련은 형식적이어서
축구 시합 등으로 소일하는 일이 많았다.

한 주일동안 같이 훈련을 받다보니 낯선 사람끼리 서로 친해졌다.
밤에 잠자리에 들면 온갖 살아가는 이야기들을 나누게 되었다.
아내 자랑을 하는 사람도 있었고, 복잡한 삶의 사연을 나누는 사람도 있었다.
신앙 토론이 벌어지기도 했고, 어쨌든 참 즐겁고 재미있는 시간이었다.

그런데 작은 문제가 생겼다.

우리 소대는 15명이었는데 왜 그런지는 모르지만
소대원의 숫자보다 숟가락이 하나가 적게 지급되었다.
그러니까 한 사람은 식사시간에
다른 사람들이 먼저 식사가 끝나기까지 기다려야 했다.

숟가락 하나가 부족하다는 것 - 이것은 얼마나 사소한 일인가! 사실 그랬다.
하지만 그 파급효과는 작지 않고 매우 컸다.

숟가락이 없는 한 명은, 단순히 동료의 식사가 끝나기까지 기다리는 괴로움보다, 
뭔가 자기는 남들 밥 먹을 때 같이 못 먹는, 능력이 떨어지는 바보라는
그런 괴로움이 더 컸던 것 같다. 그래서 마침내 작은 소동이 벌어졌다.

이제 숟가락이 없는 사람은, 틈을 봐서 다른 사람의 숟가락을 슬쩍 했다.
그러면 그 사람은 가만히 있겠는가? 또 다른 사람의 숟가락을 슬쩍했다.
결국 숟가락 한 개가 부족했지만, 모든 사람이 긴장하고 살아야 했다.
자기의 숟가락이 언제 없어질지 몰랐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숟가락을 관물대에 놔두지 못하고, 군복 주머니에 항상 넣고 다녔다.
어떤 이는 목걸이를 만들어서 숟가락을 거기에 매달고 다녔다.

우리는 항상 서로 경계를 하면서 다녔다. 정말 웃기는 일이었다.
훈련을 받을 때도 자기의 숟가락이 무사히 있는 지 종종 확인을 했다.
결국 숟가락 하나 때문에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쨍그랑 깨지고 말았다.

식사시간이 되면 여기저기서 고성이 들렸다.
“당신은 아까 아침에 숟가락이 없지 않았느냐, 근데 지금 어디서 생긴 거냐?
당신 솔직히 이야기해봐라. 내 것을 언제 슬쩍 한 것 아니냐?”

“아이고. 이 사람이 사람 잡네.
내가 아침에 멀쩡하게 내 숟가락으로 밥 먹는 것 당신도 봤지?”

뭐 이런 식의 대화가 많이 오고 갔다. 너무 유치하다고? 바로 그렇다.
그렇게 유치한 것이 인생이고 사람이다.


그런데 이 '숟가락 사건'을 통한 갈등이 끝나는 시간이 왔다.
어떻게 끝이 났는지 아시는가?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숟가락을 잊어버리다가
드디어 나에게까지 차례가 온 것이다. 내 숟가락도 없어진 것이다.

나는 그까짓 밥 한 끼 굶어도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리고 밥을 좀 늦게 먹어도 되는 것이고
또 손가락으로 먹어도 내게는 상관없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나는 호시탐탐 남의 숟가락을 슬쩍할 기회를 엿볼 필요가 없었다.
따라서 더 이상 숟가락을 잃어버리는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화기애애하고 의리로 똘똘 뭉친 소대원으로 되돌아갔다.

◑욕심 없는 바보가 필요한 세상  

예화의 메시지는 무엇인가? 한 두 사람이 욕심이 없다면
그것은 전체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전체가 이상한 길을 가도, 한 두 사람이 좋은 길을 가면
그것은 전체에 파급효과를 미칠 수 있다.

욕심이 없다면 우리는 사탄의 지배를 받지 않을 수 있다.
그 어떤 마귀도,
그들의 화려한 제안과 유혹이 통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주기적으로 부동산 시장이 불안정하고 폭등 운운 하는 것은
그곳으로 돈이 몰리기 때문이다. 
‘현명한 투자자’들이 너무 많아서 그곳으로 몰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격이 더 상승되는 악순환을 낳고 있다.

(부동산에 투자 안 하는) 바보들이 많아지면, 자연히 진정될 것인데,
큰 빚을 내서라도 투자하는 현명한? 사람들 때문에, 가격 폭등 사태가 벌어지면서
사회는 더 어려워지고 있다.

▲바보들이 필요하다 토지는 공유개념으로 보는 것이 성경적이다. 
자산 증식은 증권, 은행이자 등 부동산 이외에 다른 수단으로 하되 
부동산으로 하는 것은 비인간적이다. 그래서 그들을 '투기'라고 매도한다.

성경도 토지의 공유개념을 가르치거니와 자연적 이치로 봐서도 그렇고(공기, 물 등) 
역사적 교훈으로 봐서도
땅을 독점하는 것은 비윤리적이다.
이런 공감대의 형성, 국민적 의식화도 필요하리라고 본다.
(무식하고, 전문분야가 아니라서 상세한 자료로 설명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미국 부자는 70%를 금융자산에 투자하고, 30%를 부동산에 투자하는데 
한국 부자는 반대로 70~80%를 부동산에 투자한다고 어느 신문에서 읽었다.
한국 사람들이 더 영악한 것이다.
과거의 (특히 노태우 대통령 정권부터) 잘못된 전통과 관행이
시정은 커녕 더욱 확대, 지속되고 있다. 기승을 부린다고 말한다.

한국에 (부동산 상승에 꿈쩍도 하지 않는) 바보들이 많아지면
부동산이 잡힐 것이라고 내다보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법도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남용, 오용하면 아무 소용없다. 
부동산 대책이 쏟아져 나와도, 사람들은 또 피해가는 꾀를 낸다. 
결국 국민 의식개혁 없이, 법제도의 개혁만으로는 안 될 것 같다.

이제 한국에 누가 바보가 될 것인가? 
부동산이 천정부지로 올라도 끄떡도 하지 않는 바보들 말이다. 
부동산에 돈이 집중되는 세태의 물살을 거슬러(반대로)가는 바보들 말이다.

영악한 사람들은,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힘들다는 것을 
천국 문 앞에 가서야 비로소 깨달을 것이다.  

진짜 초등학교 교과서부터 '부동산 투기 해악론'을 싣고 가르치며,
'부동산 투기 방지 캠페인'을 언론방송이 매일 내보내면
사람들이 낯뜨거워 다른 데로 투자처를 찾을 것이다. 
'소프트 파워' 즉, 문화적인 해결책이다.

 

◑「자유롭고 행복한 그리스도인2」 에 계속 되는 이야기

-정 원 목사  
*출처: http://blog.daum.net/omnibusomni/10170662

마귀가 바보 이반에게 유혹한다.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를 세계적인 사람으로 만들어 줄게.” 
바보는 대답한다. “그게 좋은 건가요?” 
“그럼. 모든 사람들이 너를 알아줘.” 
“그럼 그들과 같이 노는 건가요?”

“아니. 놀다니?
네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람이 되는 데, 아무 하고 놀 시간이 어디 있어?
너는 바쁜 몸이야. 가족들과 지낼 시간도 없어!”
“에이. 난 그거 재미없어요. 안 할래요!”

마귀는 “저런 무식한 놈 같으니!” 하고 혀를 차고는
말귀가 조금이라도 통하는 똑똑한 사람들에게 갔다고 한다.


똑똑한 사람이 마귀를 이길 것 같은가?
지혜롭고 지식이 많은 사람이 마귀를 이길 것 같은가? 그렇지 않다.

단순한 사람이 마귀를 이긴다. 바보가 마귀를 이긴다.
욕심이 없는 사람이 마귀를 이긴다.

예수님의 제자 중에서 똑똑한 사람이 있는가?
똑똑한 사람은 다들 잘 나가는 바람에 바빴다.
촌에서 온 목수를 따르려는 사람은, 똑똑한 사람 중에는, 없었다.

그래서 예수님의 제자들은 다들 멍청하고 답답한 사람들뿐이었다.
무엇을 가르쳐도 도무지 알아먹지를 못 하고 이해가 느렸다.
예수님 질문에 대부분 헛다리짚는 대답으로 일관했다.

그 중에서 제법 똑똑한 제자도 한 사람 끼어있었다.
그래도 머리가 좀 돌아가는 편이었기 때문에 제정을 맡겼다.
그 사람의 마지막이 어떠했는지는 당신도 잘 알 것이다.

지혜로운 사람이 마귀를 이길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외국에서 박사학위 몇 개쯤 따온 사람이 마귀를 이길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시장에서 장사하고 파출부를 하시는 단순한 할머니들이 마귀를 이긴다.
욕심 없고 야망이 없는 바보들이 마귀를 이긴다.


이제 이야기를 마무리 지어보자.
왜 사람들은 허탄한 숫자 놀음에 중독 되는가?
마귀가 만들고 사람들이 만든 함정의 틀 속에 그리도 쉽게 빠지는가?
그것은 그들의 속이 허무하기 때문이다. 비워져 있고 허전하기 때문이다.

그 비워진 부분에
남들의 시선을 받고 싶고
인정을 받고 싶어 하고
세계적인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비워진 부분 때문에 예금 잔고를 높여서 이것을 사고 저것을 사고 싶어 한다.
사 봤자 쓰지도 않을 것이고, 또 다른 것을 사려고 하겠지만
깊은 속이 비워져 있기 때문에 그래도 계속 사야한다.

우리는 이제 아주 간단한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당신의 비워진 그 속, 우리의 빈 마음은 오직 주님만이 채워주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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