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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8 다툼이나 허영으로 말고

LNCK 2007. 1. 12. 14:35
 

◈다툼이나 허영으로 말고       



아무 일에든지 다툼(경쟁심)이나 허영(일류병)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빌2:3



▲모두가 낮아지는 사회가 되고 있다

바울은 어떤 일이든지 다툼으로 하지 말라고 합니다.

경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허영으로 하지 말라고 합니다.

일류 병(일등 집착)에 걸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남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라, 높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남을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남들보다 더 많이 갖고 남들보다 더 높이 올라가려고 살았습니다.

남을 경쟁해서 이기기 위해서 살았습니다. 

모두가 높아지려고 했기에 모두가 낮아지고 말았습니다.



◐다툼


▲‘경쟁’이라는 21세기 상업주의 이데올로기

1992년 신대륙 발견 500주년이 되던 해,

당시 발견을 주도했던 포르투갈의 리스본에 19명의 세계적인 학자가 모여

21세기의 지구촌 문명을 분석하고 비판한 소위

「경쟁의 한계: 리스본 그룹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이 보고서는 "21세기의 새로운 지배 이데올로기는

더 이상 자본주의도 사회주의도 아닙니다.

‘경쟁’이라는 새로운 이데올로기가 등장했습니다.


우리 시대의 시대정신은 한마디로 ‘경쟁력 향상’입니다.

무한 경쟁에 기초한 세계화는 향후 20년 내에 국가를 무의미하게 만들고,

산업의 독점 지배를 확대하고, 사회 복지 제도를 와해시키고,

대량 실업을 야기하고, 국가간/국가내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심화시키고,

생태계를 돌이킬 수 없는 지경으로 파괴시킬 것이다" 라고 경고합니다.


우리는 경쟁이라는 새로운 21세기의 이데올로기의 도전에 직면했습니다.

21세기의 새로운 시대정신은 ‘경쟁’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롬12:2)고 명령합니다.

‘경쟁’은 우리로 하여금 ‘서로 하나 되라’고 하신 주님의 교훈을 떠나,

서로 비교하며 분열을 일으키게 합니다.


원래 ‘경쟁’이라는 라틴어 단어의 어원상 의미는 ‘함께 추구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함께 추구한다.’는 개념이 21세기의 무한 경쟁의 세계화 시대에서는

‘승리자가 모든 것을 지배한다.’는 독점의 의미로 변질되었습니다.

 

이 경쟁심은 소수의 승리자와 다수의 패배자를 양산합니다.

결국 평균해서 보면, 다수가 실패하는 사회가 되고 맙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바는 '다수가, 모두가 성공하는 사회'입니다...



◑허영


▲일류 아니면 안 된다는 일류병 환자들

여러분은 음악회에서 박수를 얼마나 치십니까?

여러분은 성악가 하면 누구를 떠올리십니까?

적어도 파바로티나 도밍고나 카레라스 정도는 되야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그 외에는 더 이상 아는 사람이 없어서 그런지도 모릅니다.)


일류병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웬만한 전문가의 연주를 들어도 박수를 안 칩니다.

파바로티, 도밍고, 카레라스 아니면 성에 차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 성가대의 웬만한 연주에도 항상 코 방귀를 놓습니다.


▲끝이 없는 일등을 요구하는 사람들

A는 한국에서 꽤 수준 높은 대학을 졸업했습니다. 그러나 행복하지 못 합니다.

만나는 사람들은 A에게, '왜 최고로 좋다는 그 대학에 못 들어갔는지' 묻습니다.

걱정인지 격려인지 모르지만, 어쨌든 마음은 편치 않습니다.


B는 국내에서 최고라는 그 대학에 어렵사리 붙어서 졸업했습니다.

사람들은 가장 어렵다는 특정한 과에 왜 못 들어갔느냐고 뒤에서 수군댑니다.


C는 가장 좋다는 그 대학의 가장 어려운 과를 졸업했습니다.

정말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왜 외국에 유학을 다녀오지 않았느냐고 묻습니다.


D는 넉넉지도 못한 가정 형편에도 불구하고 외국 유학까지 마쳤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여전히 그를 인정해 주지 않습니다.

"왜 꼭 유학을 다녀와야만 했느냐, 안 가면 못 하냐?"며

시비 거는 사람도 있습니다.


E는 일류대학/일류학과를 졸업하고 유학을 가서 학위를 받고 돌아왔습니다만

여전히 사람들은 왜 외국의 ‘그 일류 대학’에서 학위를 받지 못했느냐고

묻습니다.


F는 한국에서 일류대를 졸업하고 외국의 그 일류 대학의 유학을 다녀왔습니다.

그래서 어렵사리 교수 자리를 구했습니다만...

사람들은 왜 그 대학밖에 못 갔느냐고 묻습니다.

왜 국내의 유명한 대학에서 교수 자리를 얻지 못했느냐면서 기를 죽입니다.


G는 일류에 일류를 모조리 거쳐서

국내의 일류 대학에서까지 교수 자리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왜 그 학교에서 특정한 보직을 받지 못했는지 묻습니다.


H는 위에서 말한 국내와 외국의 일류를 모조리 거쳐서

거기에 보태서 국내 일류대학에서 특정한 보직까지 받았습니다.

정말 험난한 경쟁사회의 최후 승리자인 셈이지요.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여전히 그를 인정해 주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그에게 언제쯤 학장/총장, 교육부장관 한 자리 할 수 있는지 묻습니다.


이쯤 되면 대한민국에서 성공적으로 인생을 산 사람은 한 사람도 없게 됩니다.

이런 기준에서는 남들로부터 진심으로 인정을 받기는 이미 틀린 겁니다.


그러므로 남들의 인정받는 것은 일찍 포기할수록 좋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인정을 못 받는 사회

‘일등만 인정받는 사회는 결국은 모든 사람들이 인정을 못 받는 사회’입니다.

사람은 한 분야에서만 일등일 따름입니다.

그는 다른 제반 분야에서는 일등이 아니므로, 열등감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최고의 학벌을 가진 사람이 동시에 최고의 부자가 될 수도 없고,

최고의 권력자가 된다고, 다른 분야에서까지 최고로 인정받을 수는 없습니다.

최고를 지향하다가는... 모두가 패배자가 되는 게임입니다.


▲한국 청소년들 어른 존경심 꼴찌

유엔아동기금(유니세프) 아태지역 사무소의 조사 결과에 의하면,

우리나라 아동 청소년들이 부모, 교사 등 권위 있는 인물을 존경하는 정도가

아시아 꼴찌라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01.10.11.각 일간지 일제 보도)


사람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당연한 결과입니다.

지금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 세대가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못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어른들의 부조리를 아이들이 솔직히 반영해 주는 것입니다.


그 원인을 분석하면, 신문들이 지적한 바에 의하면

핵가족화, 부모의 무절제한 자녀사랑, 인터넷으로 인한 정신/언어의 황폐화,

입시 위주의 획일적인 교육,

조령모개식의 교육 정책으로 인해 일선 교사들의 갈팡질팡하는 모습,

최근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각종 비리 등을 그 원인으로 꼽았습니다.


그러나 이 원인들 중에 빠진 가장 중요한 이유가 바로 일류병인 것입니다.

부모들 세대는 자녀들에게,

끊임없이 일류(일등)를 요구하며 자녀를 인정해 주지 않았습니다.


이런 구조와 풍토 속에서 자녀들은 가족/사회 속에서

자신들이 인정을 못 받으니까

어른들을 비롯한 사회의 모든 어른들을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스트레스를 풀 길이 없으니까 욕설과 폭력으로 해소를 합니다.

아이들끼리 욕설과 폭력은 예사고,

어른들을 향해서도 욕설과 폭력을 하는 것입니다.


이 모든 일은 어른들의 잘못입니다.

오늘날 아이들을 키우는 어른 세대의 책임입니다.

어른들의 황폐한 정신과 삶이 아이들에게 붕어빵처럼 그대로 재생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


▲자신을 비우신 예수님

우리는 늘 자신을 채우려고 살아 왔습니다. 우리의 삶을 지식으로 채우며,

재물로 채우며, 업적으로 채우며,

더 많은 인정으로 채우기 위해서 휴식을 거부하고

밤잠을 설치며 살아 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나를 비우면서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빌2:6-8 


자기를 비워 남을 높이면, 결국 그가 나를 존경하고 모두가 윈윈하게 됩니다.

자기를 비워 남이 성공하도록 도와주면, 결국 그가 나를 성공하도록 도와줄 것입니다.

자기를 비워 남이 잘 되도록 희생하면, 결국 그가 나를 잘 되도록 희생할 것입니다.

이렇게 모두가 윈윈 win win 되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우리는 사업을 하든지, 직장에 다니든지 그 목적을 ‘남을 잘 되게 하는 것’에 두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고 ‘경쟁에서 이기는 것’에 둘 때, 결국 모두가 망할 것입니다.


경쟁적 사회는, 결국 모두를 패망으로 몰고 가게 되어 있습니다.

패배자가 사회의 절대 다수가 될 때, 언제나 폭동이 일어났던 것이 인류역사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

나는 항상 사람들에게 ‘만나고 싶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나를 만나면, 자기들이 높아지니까,

사람들은 부담 없이 나를 만나고 싶어 합니다.


늘 겸손히 상대를 높이면, 사람들은 항상 나를 만나고 싶어 합니다.

"자네를 늘 만나고 싶네!" 우리는 이런 고백을 늘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신분이 낮아서 열등의식을 가진 사람에게

"나는 목수의 아들이다, 너는 괜찮다..."


외모가 못생겨서 고민하는 사람에게

"나는 볼품도 없고 풍채도 없다"(사 53:2)


학력 때문에 고민하는 사람에게

"나는 배운 것이 없다"


물질 때문에 괴로워하는 자에게

"나는 집도 없었지... 너는 괜찮아"


이렇게 예수님은 만나는 사람마다, 자신을 낮추시고, 상대를 높이셨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나고 싶어 했습니다.   

<01.10.14. 인터넷 설교 편집

 

[주제별 분류] 기독교 사상 http://blog.daum.net/bible3/6740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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