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te[#pg_il_#

분류 없음/2002~2003

459 악을 제거하려 할 때

LNCK 2007. 1. 13. 14:28
 

◈악을 제거하려 할 때        

- 너의 증오심을 먼저 처리하라!



네 이 뺨을 치는 자에게 저 뺨도 돌려 대며...  눅6:29


성경은 ‘악을 묵인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도리어 ‘악을 제거하라’고 가르친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에겐 올바른 판단력과 분별력이 꼭 필요하다.

사회와 교회의 현실 상황 속에서, 무엇이 옳고 그르며 판단해야 하며,

만약 문제가 있다면 그것이 어떻게 잘못되었는지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이렇게 꼭 필요하고도 올바른 판단력과 분별력을 가진 성도들이

알곡이 되지 못하고 도리어 가라지가 되고 마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


예수님은 누가 너희 오른뺨을 치거든 왼뺨을 돌려대라고 하셨다.

왜 이렇게 말씀하셨을까? 그 의도는 무엇인가?

→ 내가 뺨을 한 대 맞았을 때, 즉각적으로 내 속에 생기는 감정은 어떠한가?

뺨을 한 대 갚아주는 것이 아니라,

순간적으로 상대를 죽여 버리고 싶을 정도로 미운 감정이 생긴다.


이렇게 증오심이 끓어오르는 와중에,

가해자인 상대방의 불의를 보면,

그 악을 뽑아버려야 한다는 정의감으로 충만해서

당장 그를 고소해서 감옥에 보내야 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예수님의 말씀하신 의도는 상대방의 악을 제거해야 한다. 그러나 먼저

자기 마음속에 솟구쳐 오르는 증오심과 분노를 먼저 해결하라 이다.


종종 가라지 신자들은 악을 제거하려 들지만,

그 악을 행하는 상대방에 대해 끓어오르는 증오심으로 덤빈다.

크리스천 중에도 이런 사람들이 많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결코 악을 제거하지 못한다.

어쩌면 상대방의 한 가지 악을 제거할지 모르지만,

그보다 더 큰 악을 자기 스스로 뱉어 놓는다.


우리가 악을 대항해서 정의의 싸움을 싸울 때,

주님은 “왼뺨을 돌려대라”하시면서

“너의 증오심을 먼저 처리하라!”고 종용하신다.


그러므로 악을 제거하려는 사람은,

악을 행하는 상대방을 포용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먼저 가져야 한다.

우리는 교회에 유익이 되는 바른 말과 옳은 말을 한다고 하지만,

그것이 사랑 없이 행해진다면,

유익은커녕 도리어 그것이 교회를 죽이는 독소가 된다.


그러므로 판단과 비판하기에 앞서, 항상 포용하고 이해하고

그를 위해서 진심으로 중보 기도하는 마음을 먼저 가져야 한다.

그 다음에 비로소 악을 제거할 수 있다.


시중에 교회를 비판하는 사람들의 말이나 글들을 읽어보면

어떤 분야에선 적지 않게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가라지’로 분류되어지는 것은

미움과 분노심으로 교회를 비판하기 때문이다. <인터넷 설교 02.02.03.



자존심 상한 전도사님


주일 점심시간에 어떤 전도사님이 장로님 때문에 큰 시험(심적 고통)들었다.

장로님은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 길이었고,

전도사님은 마침 식사하러 들어가는 길이었다.


문제의 발단은 현관 신발장 앞에서 장로님이

“어이 전도사님, 거기 있는 내 신발 좀 갖다 주세요!”라고 말한 데 있었다.

바로 그 때 전도사님은 마음에 큰 시험 들었다.

‘내가 뭐 장로 신발이나 집어주는 사람인가? 명색이 그래도 교역자인데....

대학도 나왔는데....’


세례 요한은 스스로 예수님의 신발 끈을 풀기에도 감당치 못할 자로

자신을 낮추었다. 물론 신발 갖다 달라는 분이 주님이었으면

전도사님은 그렇게 시험 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수건을 허리에 두르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주님을 생각했더라면,

공손히 장로님의 신발을 갖다 드릴뿐만 아니라

그 신발에 묻은 먼지까지 털어서 드렸을 것이다. <02.01.27. 인터넷 설교 발췌


[주제별 분류] 리더십, 목회자 http://blog.daum.net/bible3/10709248



'분류 없음 > 2002~2003' 카테고리의 다른 글

488 사회를 위한 교회  (0) 2007.01.24
487 '조용히' 변화시키는 누룩  (0) 2007.01.23
성령충만의 영향  (0) 2007.01.11
454 새끼 빼앗긴 암 곰  (0) 2007.01.10
452 말씀의 대언자  (0) 2007.0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