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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없음/2002~2003

454 새끼 빼앗긴 암 곰

LNCK 2007. 1. 10. 23:13

◈새끼 빼앗긴 암 곰   



저희는 들에 있는 곰이 새끼를 빼앗긴 것 같이 격분하였고  삼하17:8

 

엘리사가 돌이켜 저희를 보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주하매 곧 수풀에서

암콤 둘이 나와서 아이들 중에 사십 이명을 찢었더라  왕하2:24


 

▲하나님의 격분

성경에는,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격분하는 모습을

‘새끼 빼앗긴 암콤’으로 표현했습니다.


차라리 새끼 빼앗긴 암콤을 만날지언정...  잠17:12


내가 새끼 잃은 곰 같이 저희를 만나 그 염통 꺼풀을 찢고 거기서 암사자 같이

저희를 삼키리라 들짐승이 저희를 찢으리라  호세아13:8


저희는 들에 있는 곰이 새끼를 빼앗긴 것 같이 격분하였고  삼하17:8


그런데 하나님이, 마치 새끼 빼앗긴 암콤처럼,

흥분이 극에 달하신 모습이 성경에 나옵니다. 

‘네가 내 아들을 놓아주지 않으면, 내가 네 아들을 죽이겠다!’ 출4:23

10번째 재앙의 경고였습니다.


내가 너에게 나의 아들을 놓아 보내어 나를 예배하게 하라고 하였건만,

너는 그를 놓아 보내지 않았다. 그러므로 이제 내가 너의 맏아들을 죽게 하겠다.

출4:23

 

이렇게 하나님의 진노로 인해 죽음이 올 때는 보통 '편안히' 죽지 않습니다.

상상입니다만 애굽 사람들이 자녀를 잃을 때도 편안히 잃지 않았을 것입니다.

마치 곰에게 찢긴 것처럼, 큰 어려움 가운데 처했을 것입니다.

(물론 선하게 살다가도 욥처럼 극심한 고난을 당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사우디에서 있었던 일

지금부터 30년 전에, 신문에 이런 기사가 났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있었던 실화입니다.


거기서 어떤 미국인이 교통사고로,

사우디 사람의 아들 한 명을 차에 치어 죽게 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우디 부친은 재판정에 나와서 결코 합의에 응해주지 않았습니다.

그는 미국인에게 아무 보상금도 싫고, 옥살이시키는 것도 싫다고 했습니다.


오직 그가 원하는 것은 “미국인이 내 아들을 죽였으니,

그의 아들도 똑같이 차에 치어 죽게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아마도 구약의 율법과 비슷한 코란을 문자적으로 적용하려 했던 모양입니다.


어쨌든 ‘네가 내 아들을 죽였으니, 나도 네 아들을 죽이겠다!’는

무서운 복수심이요, 무서운 부정(父情)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보호본능

출애굽 때, 사전 경고를 무시한 애굽 사람들은,

결국 장자들을 모두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이와 같이 당신의 아들에 대한 하나님의 보호 의지는 대단했습니다.

마치 새끼 빼앗긴 암콤을 연상케 합니다. 


십자가 때에도, 친아들을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자녀보호본능’은

마침내 분노로 폭발했습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외아들을 죽였습니다.

그랬으니 하나님의 마음은 어떠했겠습니까.

“네가 내 아들을 죽였으니, 나도 네 아들을 죽이리라”는 마음이셨습니다.


그래서 사탄과 그의 추종자들을 무저갱에 가두어 버리셨고,

또한 장차 불 못의 영원한 형벌 받음을 작정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하나님의 아들”입니까?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마5:9

우리가 화평케 하면 ‘하나님의 아들 peacemaker’이 됩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아들=화평케 하는 피스메이커’ 입니다.

 

화평케 하는 자는, 사람과 사람사이를 화평하게 하며

하나님과 사람사이를 화평하게 만드는 일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당신의 자녀들을

이 세상에 그 누구보다 잘 보호해 주십니다.


나는 오늘 ‘하나님의 아들’인가요?

하나님의 보호가 당신을 뒤따를 것입니다!


<02.06.02. 인터넷 방송설교를 듣고서 편집


[주제별 분류] 리더십, 목회자 http://blog.daum.net/bible3/10709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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