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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없음/2007

516 거드름이 없으신 예수님

LNCK 2007. 2. 5. 21:22
 

◈거드름이 없으신 예수님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마3:15


 
소설가 박완서 씨가 신약성경을 읽다가,

성경의 이 대목에 발목이 잡혀 신약을 통독하게 되었다고 하네요.

예수님이 요단강에서 세례요한에게 세례 받으신 부분...

자초지종은 다음과 같습니다...


▲거드름, 티를 내고 싶은 인간의 본성

세상에 조금 출세한 사람은 거의 예외 없이 거드름을 피우게 된다.

사실 ‘거드름’이란, 출세 못한 억울한 사람들의 한이 스민 표현방식이요,

출세한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어쩌면 ‘당연히 받아야 할 대접’이다.


예를 들면, 식당에 가더라도 격이 있는 곳에 가야 되고,

회의석상에 나가면 적어도 ‘으흠!’하며, 훈시 한 마디 할 기회는 있어야 한다.


무슨 공연장에 가도 소위 ‘로열 석’에 좌석 배치가 안 되면 속이 상하고, 

무슨 대회장에 순서지를 척 펼쳐 봐도, 사실 자기는 아무런 관여를 안 했어도

자기 이름이 그 순서지에 어딘 가에 들어가 있어야... 속이 편안하다. 


출입국 심사나 세관검사까지도 누가 대행해 주기 바라고,

출퇴근 할 때, 입구에서 경비원들이 거수경례라도 올려주면 우쭐해진다.


사모님들은 가사도우미를 써야, 어느 정도 진짜 사모님 행세를 할 수 있으며

사장님들은 수행 비서를 대동하고 다녀야, 어느 정도 사장 행세를 할 수 있다. 


우리는 누구나, 티를 내기 위해,

남이 알아주는 것을 즐기기 위해

성공을 꿈꾼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위에 거론한 예는 꼭 ‘나쁘다’라고는 볼 수는 없다.

‘티’나 ‘거드름’ 없이 겸손하면 좋겠지만,

죄성을 타고난 인간에게 어찌 그것이 호락호락 하랴!

 

그런데 크리스천은 좀 달라야 한다.

우리 사부님 때문이다. 


▲박완서 씨가 받은 충격

그런데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 쯤 되는데도

전혀 티를 안 내셨다는 것이다.

그의 표현에 의하면 ‘(이것은) 말도 안 된다!’는 것이다.


세례요한이 요단강에서 세례를 베풀 때,

예수님은 태연히 그에게 나아가서 (무릎을 꿇었는지, 고개를 숙였는지)

겸손히 세례를 받으셨다.


세례요한이 ‘나는 저 분의 신발 끈을 풀 정도의 자격도 못 됩니다’ 라고 말할 정도면,

예수님은 요단강 물가 바위 위에 편하게 걸터앉은 자리에서,

그를 십분 정도 그저 옆에 세위 놓기만 하셔도, (결재 받는 자세로)

거기 모인 군중들 앞에서, 으흠하며 ‘티’, 또는 ‘거드름’을 피우실 만도 한데...


더 심하면 이렇게 나와야 한다.

“죄 없는 내가 여기 왔는데, 네가 무슨 자격으로 내 보는 데서 세례를 베푸느냐?

즉시 동작정지하고 대기해!”

“죄 없는 내가 여기 이렇게 시퍼렇게 살아있는데,

네까짓 게 감히 회개하라고 뭇사람을 가지고 놀다니...!”

(평소에 고분고분 하다가도, 주위에 누가 쳐다보면 갑자기 언성이 높아지는 분들도 많다.)


그런데 전혀 ‘하나님의 아들’이신 티를 안 내시고, 거드름도 없으시고

겸손히 그에게 세례를 받으신 부분을 읽고서,

박완서 씨는 처음에 ‘그럴 리 없다. 이것은 위선이다.’라고 단정했다.


그 위선의 증거를 까발리기 위해,

그는 40세 즈음에 비로소 신약을 작심하고 통독했고, 그것을 마쳤다.

다음은 그의 신약 통독 후 소감이다.


▲어떤 계층의 사람과도 입장을 바꿀 수 있는 능력

“그러나 저는 그분이 위선을 부렸다는 증거를 끝내 잡아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분은 처음부터 끝까지 보통 사람, 병든 사람, 미천한 사람, 천대받는 사람과

진정으로 더불어 계셨습니다.


이제야 알겠습니다. 어떤 계층의 사람과도 입장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오직 하나님의 아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거드름, 티 내지 맙시다!

자기보다 낮고, 어리고, 가난하고, 못 배운 사람들 앞에서

티내거나 거드름 피우지 맙시다.


자기보다 낮은 사람에게도, 누구에게도 겸손과 인간 존중,

- 예수님 닮은 지도자의 표지입니다.


오늘 나는,

사람들이 내가 돌아선 뒷모습을 쳐다보면서

뇌리에 예수님을 떠올립니까?

아니면 '주님의 이름'을 막 욕합니까?   

 

<박완서 묵상집「옳고도 아름다운 당신」참조. 김지윤 씀. 

 

 

◑두 종류의 지도자


우리는 그 지도자가 어떤 신앙의 인격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지 알기 위해서

굳이 그 사람에게 다가가지 않아도 됩니다.

그 사람 주위에서 그와 함께 섬기고 있는 동역자들을 보면

그 사람이 어떤 형의 지도자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소인배형 지도자는 자신의 주위에 똘마니 같은 사람들을 두고 보스처럼 군림하며,

군자형 지도자는 자신의 주위에 하나님께 매인 사명자들을 두며

공통의 사명을 완수해 갑니다.


소인배형 지도자는 자신이 지도자라는 이유 때문에, 자신과 함께 동역하는 사람들이

인격적으로 자기 밑에 종속되어 있어야지만 안정감을 느끼고

그들 위에 군림해야지만 만족하는, 결코 훌륭한 지도자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저는 이따금 군자형 지도자들을 교계에서 만납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인격적으로 자신에게 매이고 아부하는 사람들을 원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관심이, 사역을 미끼로 사람들을 지배하는 것이나

동역자들에게 섬김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봉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지도자로 하고 있는 공동체는 개성도 다르고 성향도 같지 않은

다양한 사람들을 포용하고 더불어 하나님을 섬기는 공동체를 이루어 갑니다.

그들은 생각이 크고 마음이 넓습니다. ⓒ 김남준 목사님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