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는 축복
선진국에는 세련됨이 있다. 상당한 질서를 유지한다. 문화적인 품위가 있다.
선진국의 못한 것이 후진국의 앞선 것보다 더 나을 때가 많다.
선진국 사람들과 후진국 사람들의 근본이 다르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타고난 머리가 좋고 나쁨의 문제도 아닐 것이다.
그러면 왜 이런 차이가 나타나는 것일까?
차이를 만드는 결정적인 이유는 보는 것이 다르기 때문이다.
선진국은 세련된 것을 보고 자란다. 그래서 세련된 것이다.
선진국은 올바른 질서를 보고 자란다. 그래서 질서를 지키는 것이다.
품위 있는 문화를 보고 자란다. 그래서 문화적인 품위를 유지하는 것이다.
좋은 것을 보는 것이 차이를 만든다.
교육이란 무엇인가? 좋은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좋은 것을 보여주면 사람들이 따라한다. 젊은이 사역을 하다보면
일종의 법칙을 발견하게 된다. 결혼이 늦은 사람들이 있다.
대개 아름다운 가정을 보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
아름다운 가정들의 탄생을 본다. 사랑이 깃든 결혼 생활을 옆에서 관찰한다.
이후에 가정에 대한 강한 열망이 생기는 것을 보았다.
사람은 보면 변화된다. 지휘자 금난새 씨는 이렇게 말했다.
“아이들에게 좋은 것을 보여주십시오.
좋은 자연환경을 보여주십시오.
아름다운 산천을 보여주십시오.
누구나 자연보호의 첨병으로 나서게 될 것입니다.”
아름다움을 보여주면, 아름다움의 지지자로 변화된다는 것이다.
효도를 보여주라.
질서를 보여주라.
살아있는 예배를 보여주라.
따뜻한 사랑을 보여주라.
그것이 물려줄 수 있는 최대의 유산이다.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것은 축복이다.
그런데 아름다움을 별로 볼 수 없을 때도 있다.
그때는 의도적으로 아름다움에 눈을 맞출 필요가 있다.
오랜 기간 교회를 떠난 중년의 딸이 있었다.
어머니의 간절한 호소에 몇 십 년 만에 교회로 가게 되었다.
그런데 예배 참석한 첫날, 남 욕하는 소리, 청탁하는 비리,
싸우는 욕설 등을 듣고 보았다.
화가 치밀어 오른 딸이 어머니에게 소리 질렀다.
“교회가 이게 뭡니까? 다시는 교회 가지 맙시다.”
자초지종을 들은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평생 교회 다니면서 예수님만 봤는데,
너는 딱 하루 교회 나와서 많이도 봤구나”
보는 것이 수준이다. 낮은 수준만 보이면, 수준이 낮은 것이다.
높은 수준의 사람은 가시밭에서도 백합화를 본다.
어디에서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기회는 남아있다.
참 교육이 무엇인가?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도 아름다움을 보게 만드는 힘을 길러 주는 것이다.
성도는 축복의 통로이다.
복을 나누는 가장 중요한 행동은 예수님과 함께 할 때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것이다.
부를 때마다 감동이 넘치고, 시보다 더 아름다운 시가 있다.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온전히 나를 주장하사
주님과 함께 동거함을 만민이 알게 하옵소서.”(찬217장 4절)
사람들은 보면, 변화된다. <전병욱 목사님 칼럼 스크랩 07.02,01.
◑바알세붑에게 물었던 아하시야 왕하1:2~4
열왕기하 1장에 보면, 정말 이해하기 힘든 장면이 나오는데,
북 이스라엘 왕 아하시야가 병들었을 때, 이방 신 바알세붑에게 물어본 것이다.
아하시야가 사마리아에 있는 그 다락 난간에서 떨어져 병들매 사자를 보내며
저희더러 이르되 가서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이 병이 낫겠나 물어 보라 하니라
여호와의 사자가 디셉 사람 엘리야에게 이르시되
너는 일어나 올라가서 사마리아 왕의 사자를 만나서 저에게 이르기를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없어서 너희가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물으러 가느냐
그러므로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올라간 침상에서 내려오지 못할지라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다 하라 엘리야가 이에 가니라 왕하1:2~4
왜 아하시야는 이런 어리석은 짓을 했을까?
이유를 추측하건데, 아하시야의 부모는 아합 왕과 이세벨이다.
그가 어릴 적부터 보고 자란 것이 ‘우상에게 묻는 습관’이었던 것이다.
부모가 항상 우상숭배를 했으니
특히 모친 이세벨이 항상 우상에게 물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아하시야가 취한 해결책은
어머니 이세벨로부터 보고 배운 것밖에는 다른 길이 없었던 것이다.
이것은 자식을 둔 부모,
제자를 둔 스승들이
깊이 생각해 봐야 할 문제다.
▲그래서 미국 부모들은
미성년 자녀들이 보는 앞에서는 절대 술을 마시지 않는다.
술을 딱 한 잔 하고 싶을 때가 있어도
미성년 자녀들이 보는 앞에서는 ‘교육 목적상’ 하지 말 것을,
학교에서 열리는 학부모회의 때 교육시킨다고 한다.
자녀들에게 좋은 습관만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인터넷 설교 발췌 편집
[주제별 분류] 리더십, 목회자 http://blog.daum.net/bible3/10947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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