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오늘까지 겸비치 아니하며 두려워하지도 아니하고
내가 너희와 너희 열조 앞에 세운 나의 법과 나의 율례를 준행치 아니하느니라 렘44:10
◑큰소리 치고 사는 것을.. 알기나 합시다.
우리가 말하는 것을 모두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면
우리는 영원히 침묵해야 할 운명에 놓이게 될 것이다.
비록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완전히 실천하지 못하는 삶을 사는 경우에도
때로는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선포해야 할 것을 요구받는다.
이것마저도 우리가 위선자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
오직 우리 자신의 말이, 더 이상 우리에게 변화를 요구하지 않을 때
우리는 위선자가 되는 것이다.
어떤 사람도 자기의 이상과 비전을, 완전히 실현하는 삶을 사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우리의 이상과 비전을, 강한 확신과 두터운 겸손으로 선포할 때,
우리는 차츰 우리가 말하는 진리 안에서 성장할 수 있다.
우리의 삶이 우리의 말보다 언제나 큰소리로 말한다는 것을 우리가 아는 한,
우리의 말이 항상 겸손한 상태에 머물게 될 것이다. <헨리 나우웬
◑사람은 스스로 자기 언어의 함정에 빠지기 쉬운 존재입니다.
죄인인 인간은 스스로 주님의 십자가를 결코 자랑할 수없는 존재입니다.
십자가를 자랑하면서 사실은
그 십자가를 자랑하는 자기를 자랑하게 되는 것이 인간입니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효도’를 강조하게 되면
그것은 자기가 효자라는 점을 은근히 자랑하는 것 아닐까요?
(물론 반대로 자기가 불효자라는 뼈아픈 과거의 반작용도 있고,
또 정해진 커리큐럼에 따라, 아무런 ‘의도 없이’ 강조할 수도 있습니다.)
교회에서 기도 열심히 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자기는 기도를 많이 하는 사람이라는 점을 은근히 드러낼 수 있습니다.
물론 자신이 그것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해도 말입니다.
-진정한 효자는, ‘효’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는 자가 아니라
자기가 천하의 불효자라는 사실을 진심으로 깨닫는 자이며,
-주님 안에서 진정으로 기도하는 자는, 기도를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스스로 기도 잘 할 수 없는 부족한 존재임을 깨닫는 자입니다.
마찬가지로 십자가도,
자신이 평소에 십자가를 잘 지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뉘우치는 것이
어쩌면 ‘십자가의 도를 가장 깊이 있게’ 이해한 것이요,
십자가의 도를 이해하는 출발점이 됩니다.
자칫 십자가를 많이 이야기함으로써,
자신을 십자가를 중요시하는 훌륭한 신앙인의 자리에 놓게 되거나
자신이 십자가를 잘 지고 있다는 듯이 착각하는 점을 경계해야 합니다.
십자가의 사역은 인간의 언어에 달린 것이 아니라,
주님의 십자가 사역 자체에 있는 것이지요.
신자들 가운데 누구는 신앙이 더 좋거나 덜 좋은 것은 아닙니다.
신자들 가운데 특별히 지혜로운 자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택함을 받아 진정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하나님의 자녀라면
주님께서 스스로 취하신 십자가의 은혜에 감격할 따름입니다. *이 단락 출처 :
평소에 ‘십자가’라는 말을 잘 인용하는 제가 가슴이 뜨끔했습니다.
어떤 분은 이 글이 다소 ‘공격적’으로 느껴질 것입니다만, (그렇다면 아예 아무 말도 못 꺼내겠네!)
이 글이 주는 통찰력이자 핵심적 메시지인
-언제나 언어에 겸손하라- 만 잘 붙잡으면 되겠습니다. 좋은 지적이었습니다. <편.
'분류 없음 > 2007' 카테고리의 다른 글
536 식초가 되어버린 포도주 (0) | 2007.02.14 |
---|---|
535 보는 축복 (0) | 2007.02.14 |
나이 먹을수록 조심해야 하는 것 (0) | 2007.02.13 |
복수(배에 차는 물) (0) | 2007.02.13 |
531 요시야 왕의 개혁 (0) | 2007.02.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