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te[#pg_il_#

분류 없음/2007

565 현세적 가치 와 영원한 가치

LNCK 2007. 3. 2. 18:40
 

◈현세적 가치 와 영원한 가치            요3:15          편집자 글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3:15

 

신약성경은 계속적으로 영생을 거듭 강조해서 가르친다.

그런데 사람들은 계속적으로 현생을 거듭 강조해서 가르친다.

물론 현생도 영생과 맞닿아 있긴 하지만,  영생을 동경함 없는 현생은 무가치하다...
 

▲아일랜드 전래 동화

옛날에 어떤 왕이 살았고, 후계자로 삼을 아들이 없었는데,

전국 방방곡곡에 왕의 후계자를 구한다는 방을 붙였다.

관심 있는 사람은 왕에게 면담을 신청할 수 있었고,

왕은 인터뷰를 통해, 그의 신앙심과 기타 자질을 시험해 보려고 했다.


그 때 한 훌륭한 시골 젊은이가 어떤 영감을 받았는지,

한번 왕을 찾아뵙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런데 너무 가난해서 왕궁까지 갈 여비도 없었고, 입은 옷도 형편없었다.


그래서 그 결심을 한 날부터, 젊은이는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오랜 시일이 지나서, 옷을 마련하고, 여비를 준비한 젊은이는

드디어 동네 사람들의 환송을 받고, 왕궁을 향해 출발했다.


그런데 한참을 가다가 보니, 길가에 앉아 구걸하고 있는

어떤 노인을 만나게 되었다.

거지 노인은 추운 날씨에 벌벌 떨면서

“자비를 베푸소서!”라며 간청했다. 


그 훌륭한 젊은이는 발걸음을 멈추고 잠깐 깊은 생각에 빠졌다.

그러더니 자기 겉옷을 벗어 그 추워서 떨고 있는 노인에게 덮어주었고,

여비까지 털어서 그 가련한 손에 모두 쥐어주었다.

그리고 가던 길을 되돌아서 고향으로 돌아갔다. 


▲생뚱맞은 종결

이 이야기는 거기서 끝났다.


제가 이 이야기를 읽고, 뭔가 찜찜했던 이유는

‘그래서 그 젊은이가 잘 되었다! 큰 보상을 받았다!’

이런 내용이 책에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동화책을 많이 읽었기 때문에

저런 선행을 베풀면 반드시 큰 보상을 받았다, 대박 났다 등의 헤피 엔딩을

은연중에 기대하는데, 이 책은 그런 헤피 엔딩이 없어서 사뭇 의아했다.


▲한국인의 3대 가치관

흑인이 자기 검은 피부를 바꾸지 못하고

표범이 자기 반점을 없애지 못하듯이  렘13:23

한국인이면 도저히 벗어나지 못하는 3대 가치관이 있는데,

- 권선징악, 인과응보, 입신양명 이다. (제 개인적 판단임)


설교를 가만히 들어보면, 대부분 결론은 저 3대 카테고리 안에 포함된다.

이 세 가치관의 공통점은 모두 <현세적>이다.


이런 한국의 전통적인 현세적 가치관에서 볼 때,

위 아일랜드 전래 동화는 의아스러웠던 것이다.

심청이나 흥부처럼 권선징악으로 끝나야 되는데... 이야기 끝이 흐리다.


▲성경=복음=십자가의 도=역설의 진리=욥의 주장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욥의 입장보다는 욥의 3친구의 입장에 서서

말하고, 판단하고, 생각하는 것을 본다. 

 

즉 권선징악, 인과응보, 입신양명을 토대로 한다는 뜻이다.

이것은 샤머니즘, 유교, 불교 등 타종교와 공유하는 가치관이다.


위의 세 개의 가치관은 옳다. 결코 틀리지 않다.

그러나 거기 일반은총적 차원에 머무르면 안 되고,

한 차원 더 올라가야 한다는 것이다.

기독교 복음=십자가의 도=역설의 진리까지 나아가야 한다.

욥의 차원에 서서 판단할 줄 알아야 한다.


제가 믿기에 기독교 복음은,

잘 믿어도 세상적인 복 “못 받을” 수도 있고,

이 세상에서 성공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런 것들에 초연하다.

 

영원한 천국에서의 보상이 기다리고 있기에,

이 현실 세상에서 좀 잘 풀리지 않는다 하더라도,

별로 개의치 않는다는 것이다.

 

2천년 교회역사의 증거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베드로, 요한, 바울 사도도 그랬고, 초대교회 로마제국의 핍박,

16세기 신교도, 17세기 청교도 등 신앙의 부흥의 역사에는

언제나 핍박과 고난이 뒤따랐다. 

 

베드로, 요한 사도와 달리, 야고보 사도는 억울하게도? 일찍 순교했다.

현세적 관점에서만 본다면, 억울하기 짝이없다. 

그러나 영원한 관점에서 보면, 천국에서는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영원한 가치를 회복하자!

우리가 믿는 것은,

우리 현실은 영원한 미래와 맞닿아있다는 것이다.


비록 현실에서 보상을 충분히 못 받는다 하더라도

영원한 미래에 반드시 보상을 받을 것이다.


사실 신약의 복음이 약속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영원한 미래에서의 보상이다.

그래서 성경은 자신 있게, 모든 것을 버리고 (쪽박 차는 한이 있어도) 따르라고 한다.


권선징악, 인과응보, 입신양명 이런 것들은,

오직 현세에서만 보상 받는 것을 강조한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성경은,

(현세적 보상을 깡그리 무시한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주로, 궁극적으로’ 미래적,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보상을 약속한다.


위 아일랜드 이야기에 현세적 보상은 없다.

그러나 행간의 뜻을 묵상해보면,

왕 되는 것보다, 더 값지고 귀한 영원한 상급이 있다는 뜻은 아닐까? <김지윤 

 

 

◑죠지 휫필드의 이름은 사라지게 하라                            *이 단락 출처 

 

영국에서 감리교 운동이 확장되어 가면서

웨슬리와 휫필드 사이에 교리적인 논쟁으로 인해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휫필드의 추종자들이 몰려들어

웨슬리와의 분리를 강조하며 말하기를

“지금 이 일(분리)을 하지 않으면, 당신은 영원히 사라지고 맙니다.” 라고 하자,

휫필드는 의연히 “죠지 휫필드의 이름은 영원히 사라지게 하라!” 라고 말한 뒤

자신의 추종자 그룹을 해체하고 아예 미국으로 건너갔다.


감리교 신앙개혁 운동이 분열의 위기를 딛고 당시 하나로 남은 것은

그의 희생이 밑거름이 되었다.

당시 그의 추종세력이 웨슬리 못지않았지만,

그는 자신을 버림으로써 하나 되는 위업을 만들었다.


그의 원대로 그의 이름을 기억하는 이는 별로 없지만

세상이 다 아는 웨슬리 못지않은 평가가 천국에서는 더 확실히 이루어지리라

'분류 없음 > 2007' 카테고리의 다른 글

567 광야의 사람  (0) 2007.03.03
시간이 빨리 지나가니...  (0) 2007.03.03
564 2007년 성경 1독  (0) 2007.03.02
562 시간에 관한 글 모음  (0) 2007.02.28
561 없는 은혜  (0) 2007.0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