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의 사람 마3:1~4
▲이스라엘 땅은 광야
이스라엘 성지에 가서 가장 충격을 받고 놀라는 것은 광야 때문입니다.
낙심이 될 정도입니다.
‘이 땅이 무슨 성지냐? 이런 땅이 무슨 가장 축복받는 가나안이냐?
젓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했는데 물도 안 흐른다. 이런 땅이 어디 있느냐?’
이것이 바로 이스라엘 성지의 모습입니다.
이스라엘 땅은 면적도 얼마 안 되거니와 거의 광야입니다.
낮에는 4~50도 오르내리는 뜨거운 열기가 용광로 같고,
찜질방보다 더 훨씬 뜨거운 열기가 막 솟아오릅니다.
밤에는 한없이 춥습니다. 과일나무, 곡식하나 심을 수 없습니다.
아브라함 때부터 오늘날까지 곡식하나 심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지의 모습입니다.
아브라함이 살았던 헤브론 브엘세바는 광야입니다. 저주의 땅입니다.
예루살렘과 베들레헴도 좋은 땅 같지만, 사실은 그 주변이 전부 광야입니다.
사해바다에서 요단강을 거쳐서 갈릴리까지 남북 다,
동서남북 어디를 봐도 삭막하고 메마른 저주의 땅입니다.
설수 없는 깎아지른 듯한 절벽, 칼날 같은 계곡들이 천천만만을 이루고 있고
높은데서 돌 하나 구르면 몇 백 미터 아래로 곧장 떨어집니다.
전갈과 뱀이 있는 그 광야, 이스라엘은 거의 다 광야라고 보아도 됩니다.
▲그래도 광야가 좋다는 이스라엘 민족
왜 하나님은 이곳으로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왜 이곳으로 선민을 다시 이끌어 내셨습니까?
오늘날까지 유대인들은 왜 이 땅을 이렇게도 좋아하고
미국이나 영국같이 좋은 나라에 살면서도, 이스라엘인의 꿈은 시오니즘입니다.
팔레스타인에 사는 것입니다. 그 땅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엄청난 전쟁, 별의 별 일 겪으면서도
아무 가치 없는 그 땅을 왜 이렇게도 좋아합니까?
그 땅이 어떻게 이렇게 축복의 땅이 될 수 있습니까?
◑성경의 모든 지도자는 광야 출신
그러나 그것은 보는 것만 보아서는 안 됩니다.
이스라엘의 힘은 바로 이 광야에 있습니다.
광야는 성경이 말해주는 바로 모든 신비한,
숨은 비밀이 말할 수 없이 숨겨져 있는 거룩한 영적 보고의 땅입니다.
이스라엘의 축복과 능력은 바로 이 광야에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광야와 분리해서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 영적 힘은 바로 이 광야에서 나옵니다.
오늘날 세계에 이스라엘 민족이 우뚝 선 배경에는 광야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광야는 은혜의 땅입니다. 축복의 땅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이 놀라운 일들은 광야에서 일어나지 않습니까?
▲광야의 사람 세례요한
세례요한은 여자가 낳은 자 중에 가장 유명한 사람입니다.
세례요한은 원래 제사장의 아들입니다. 사가랴와 엘리사벳의 아들이지만,
그는 광야로 들어가서 메뚜기 잡아먹고 몸에는 약대 털옷을 간단하게 두르고
광야에서 살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400년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목마르게 갈급하게 기다렸습니다.
하나님의 계시를 전하는 선지자가 4백 년 동안 뚝 끊어졌습니다.
드디어 4백년 만에, 하나님께서는 선지자의 소리를 광야에서 들리게 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은 광야로 몰려들었습니다.
가보니까 완전히 수염이 온 얼굴에 가득한, 털이 나있는 형편없는 옷을 입은
세례요한이었습니다. 그는 광야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잘 먹고 평안을 누리며, 부유하게 잘 입고 아주 잘 살았을 텐데
제사장의 옷을 벗어 던지고 약대 털옷을 입으며,
양다리를 뜯어야 할 사람이 지금 메뚜기를 잡아먹으면서 광야에서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세례요한이 위대한 선지자였고
예수님은 세례요한을 찾아 광야로 가서 만나서 세례를 받지 않습니까!
제가 세례요한이 세례를 베풀었던 자리도 가 보았습니다.
요단강 지역인데 거기도 완전 광야입니다.
▲예수님도 광야를 거치시다
또한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세례 받으시고 바로 성령에게 이끌리어 광야로 가셔서
40일 동안 금식기도를 하십니다.
예수님도 광야, 세례요한도 광야.., 보십시오, 광야가 얼마나 놀랍습니까?
성령께서 예수님을 광야로 이끌어 가셨다 그랬습니다.
성령이 인도하는 곳은 옛날이나 오늘이나 광야입니다.
광야로 간 사람들은 다 위대한 하나님의 사역에 쓰임 받고
인류역사에 최고의 큰일을 했습니다.
광야로 간 사람들, 광야를 귀히 여긴 사람들은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 외에도 수두룩한 광야의 사람들
아브라함이 광야 출신이지 않습니까?
사도바울도 갈라디아서 1:17절에 보면 광야로 가서
예수님을 믿은 후 3년 동안 광야에서 기도하고 은혜 받으며,
새 사람 되고 변화되며 주의 일을 했습니다.
모세는 40년 광야에서 양을 쳤고 이스라엘을 광야에서 인도했으니
그의 생애는 80년을 광야에서 살았습니다.
엘리야도 광야에서 하나님을 만나며, 광야에서 살았습니다.
◑성도가 거쳐야할 곳 - 광야
우리가 가야할 곳이 어디입니까? 광야입니다. 광야는 메마른 곳입니다.
삭막한 곳입니다 그러나 영적으로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은 곳입니다.
광야는 모든 생명이 살 수 없는 식물 동물이 죽어가는 곳이지만
영적으로는 내 영혼이 사는 곳이 광야입니다.
▲광야로 들어가면 내 영혼은 살게 되어져 있습니다.
아무것도 먹을 것, 입을 것이 없는 메마른 황폐한 땅이지만
영적으로는 오아시스가 터져 나오는, 생수가 터져 나오는 곳이 바로 광야입니다.
겉모양은 약대 털옷을 입고 형편없지만,
그의 심령은 거룩하고 새로워지며 정결함을 입는 곳이 바로 광야입니다.
광야를 찾아서 불행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오늘 현대인들이 유흥가를 찾으며, 쾌락을 즐길 장소를 찾아 가서 모두 불행해지지,
광야로 간 교회, 광야를 찾은 사람은 망한 일도 없고 불행한 일도 없습니다.
현대문명이 우리로 하여금 광야를 없게 하고,
인간의 지식과 물질과 능력으로 에덴동산같이 아름답게 꾸몄지만
우리의 가정은 파괴되고 실질적인 우리 삶은 광야같은 비참함이 왔습니다.
광야로 간 사람들은 다 새로움과 거룩함으로 지음을 받는데
이러한 현대문명 속에서 만족을 얻으려고 하는 현대인들은
소돔 성을 찾았던 롯과 같이 패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가 갈 곳은 바로 광야입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광야로 들어가는 사람은 새로운 삶을 얻습니다.
광야에서 주님을 만납니다. 광야를 거쳐야 담대해집니다.
그런 곳을 지나야 두려움이 없어지고 용기가 생깁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은, 아무것도 두렵지 않습니다.
▲광야를 거치면, 담대해 집니다.
현대인들은 염려가 너무 많습니다. 두려움이 왜 그렇게 많습니까?
조그만 것도 참지 못하고 요즘 자살을 얼마나 많이 하는지...
비록 자살은 안 해도, 조그만 일에 흥분하고 좌절합니다.
다 광야를 몰라서 그렇습니다.
현대인들은 광야가 없어서 그렇습니다.
광야를 거친 사람은 어떤 일, 환경에 적응합니다.
광야에 그 모든 어려운 환경이 있었기 때문에 어떤 일에도 적응합니다.
여러분! 자녀를 그냥 편하게 길러놓으면,
그 자녀는 광야 같은 세상에서 승리할 수 없습니다.
영적으로 광야를 거쳐야, 광야 같은 세상을 잘 이기고 살 수 있습니다.
▲광야를 지나봐야, 모든 것이 감사합니다.
메뚜기 하나 잡아먹어도 감사하니, 과일 하나 있어도 감사하며,
집에서 밥을 주어도 감사하고, 밥 안주면 라면 끓여 먹고도 감사하며,
먹을 것 있는데 왜 감사 안 하겠습니까?
옷을 입으면 입어서 감사하고, 잠을 자면 잠을 자서 감사하며,
걸어가면 걸어가서 감사하고, 차타면 차타서 감사하며,
버스타면 버스타서 감사하고 모든 것이 다 감사합니다.
건강하게 살아있는 이 모든 삶이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놀라운 은혜이니
항상 감사가 넘치는 줄로 믿습니다.
▲광야를 거쳐야, “오직 주님!” 중심적 신앙생활 합니다.
주님 중심한 삶입니다. 사람 믿을 거 없습니다.
내 주변에 사람 바글바글하고, 인기가 많고, 먹을 거 입을 거 많은데,
하나님을 찾습니까? 실제로는 예수님 없는 삶을 살아가기 쉽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광야로 가야하고, 광야가 소중합니다.
하나님이 함께하는 사람은 광야로 인도됩니다.
교회는 항상 광야와 같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갈 곳은 어디입니까? 우리의 설 곳이 어디 입니까?
한국 교회가 살려면, 우리 모든 성도들이 살려면, 영적으로 승리하려면,
광야로 가야합니다.
광야에 가서 기도해야 합니다. 광야에 가서 부르짖고 회개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다 살아날 수 있습니다.
광야에서 눈물 흘리고 광야에서 회개하며, 광야에서 성령 충만한 사람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복음전하는 증인으로 사명을 다하고
하나님의 몸 된 교회에 충성하는 기둥 같은 성도들이 될 수 있습니다.
▲광야를 안 거치면 “재앙”
광야 없이 하나님을 만나니 예배의 기쁨이 없습니다.
교회 나와도 은혜를 못 받습니다.
광야를 떠나서 주님을 만나지 않고 세상으로 나가니 만신창이가 됩니다.
광야를 거치지 않고 사람 만나니 사람에게 속고 사기당하며,
사람에게 온갖 상처 다 받습니다.
광야에서 하나님은 만나지 않고 사업하니,
사업이 짐이 되어 사업 때문에 고민하고 걱정하다가 그만 자살해 죽습니다.
하나님 만나지 않고 부부간에 만나니까 오히려 싸움만하다가 세월 다 보냅니다.
부부로 만나 참 사랑을 하나도 못하고, 동물적인 사랑이나 하고,
정말 인간적인 성숙한 사랑 하루도 못하고 툭탁거리다가 툭 끊어집니다.
광야를 거쳐야 이 모든 축복을 축복으로 알고, 은혜를 은혜로 알고,
잘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광야는 소중합니다.
▲과거 한국교회 축복은 어디에서 왔습니까? 광야에서 왔습니다.
일제시대 때 그 많은 환란, 순교, 엄청난 핍박,
6.25사변의 그 많은 전쟁 등,
우리 한국 교회는 광야가 있는 민족입니다.
많은 고난을 당하고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눈물로 모두 밤을 새워 부르짖고
우리 믿음의 어머니들, 믿음의 선조들,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습니다.
저는 60년대부터 목회를 했는데 설교하면 성도들 90%가 웁니다.
웃는 일은 없었습니다.
기도한번 하고 일어나 보면 마룻바닥에 콧물, 눈물, 다 떨어집니다.
우리는 콧물, 눈물 흘리며 살아왔습니다. 이것이 한국교회의 힘입니다.
그럴 때 교회는 살았습니다. 광야가 있으니까 삽니다.
광야가 있으니까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한국교회는 광야를 잃어버렸습니다.
너무 많은 축복과 은혜 속에, 부유함과 번영 속에,
광야에다 나무를 심어 교회마다 에덴동산 같습니다. 풍성합니다.
이것이 바로 교회의 위기입니다.
저는 우리 한국 교회에 안티(반대 세력)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물론 그들이 무차별로 비난하는 것은 잘못이지만,
기독교는 안티가 있어야 됩니다.
교회도 안티를 만나야 교회가 삽니다.
사도행전의 교회는 항상 안티가 있었습니다. 이걸 나쁘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한국 교회는 끝까지 안티가 있어야 됩니다. 그냥 두면 안 됩니다.
잡초는 가만히 두지만은 곡식을 그냥 두면 안 됩니다.
교인은 가만히 평안하게 있으면 안 됩니다.
살아있는 하나님의 교회가 되고 능력 있는 교회가 되려면
안티하고 같이 있어야 됩니다.
너무 지지자들 일색으로만 있으면, 그러면 더 큰 위기가 옵니다.
한국 교회에 앞으로 그런 일이 와서는 안 됩니다.
권력의 주변에 주의 종들이 얼렁거리면 안 됩니다.
왔다 갔다 하면 안 됩니다.
교회는 항상 광야에서 주님과 함께 외롭게 ‘아버지! 우리를 살려주세요.’라고,
하나님 앞에 눈물로 부르짖어야 목사도 살고 교회도 살며,
성도가 사는 줄로 믿습니다.
교회가 당하는 어려움, 성도들이 겪는 어려움은 축복의 자원입니다.
광야가 이스라엘의 영적 힘이라면,
여러분의 가정에, 여러분의 앞날에, 여러분 자녀에게 광야가 닥칠 때,
영적으로 보면, 은혜를 주시려고 하시는 하나님의 선물인 줄로 믿습니다.
◑육상 강국, 에티오피아의 교훈
▲에티오피아가 육상 강국인 이유 - 고산지대 (일종의 광야)
에티오피아에는 유명한 맨발의 마라톤 선수 아베베가 있습니다,
1960년 로마 올림픽에 금메달을 따고 당시 2시간 20분대의 세계기록을
2시간 10분대로 처음 단축한 사람입니다.
그는 1964년 동경 올림픽에서 또 금메달을 땄습니다.
올림픽 마라톤에서 두 번이나 금메달 딴 기록은 역사에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아베베 외에도,
2004년 세계육상 올해의 선수로 뽑힌 사람 케니시아도 에티오피아 사람입니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 1만m, 3천m에 우승한 베켈라도 에티오피아인입니다.
데파르 라는 이 여자는 3천m, 5천m, 1만m 3개 분야에서 세계 1위입니다.
그 외에도 훌륭한 육상선수들이 에티오피아에 굉장히 많습니다.
에티오피아에서 왜 이렇게 세계적인 선수가 많이 나올까요?
에티오피아는 수도 아디스아바바는 해발 2,700m 넘습니다.
그 도시의 제일 윗동네는 해발 3천m가 넘습니다.
그러니까 산소가 얼마나 부족한지 모릅니다.
그런데서 늘 걸어 다니고 그런데서 훈련 받으니까
과학적인 훈련을 안 해도, 과학적인 훈련보다 열배나 더 좋은 결과를 냅니다.
산소가 희박한 그 어려운 곳(광야 같은 곳)에서 뛰어 다니니,
밑에 내려오면 마치 새가 되어 날아다니듯 뜁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매일 숨차게 사는 것, 어려운 것 같지만
그것을 활용하는 민족, 영적으로 그것을 잘 활용하는 민족이
세계적인 국가가 되고, 각계에서 세계를 움직이는 지도자를 배출할 것입니다.
▲광야의 야성이 필요하다
우리를 넘어뜨리려는 원수 마귀가 방방곡곡에서 얼마나 많은데
우리 각 사람은 광야 정신이, 야성이, 근성이, 헝그리 정신이 있어야 됩니다.
교인은 약할 때는 어린 아이한테도 지지만,
믿음을 지킬 때는 세계가 달려들어도 못 이겨야 그게 진짜 교인입니다.
말 한마디에 나가 뚝, 뚝 떨어지고, 공갈치면 뚝, 뚝 떨어지고,
어려운 시험 오면 뚝뚝 떨어지는 거 올바른 교인 아닙니다.
광야를 거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성도는 노예 근성이 있어야 됩니다.
‘벤허’ 영화에 보듯, 마지막 경주할 때 대적이 채찍으로 막 때려도
맞으면서도 계속 달리는 이런 정신이 있어야 됩니다. 할렐루야!
구속받은 하나님의 자녀는 이 세상을 살 때에 강하고 담대한 믿음으로
‘예수 안에서 누가 나를 대적하겠느냐?’ 이렇게 담대해지는 것입니다.
▲축복 때문에 도리어 망하기 쉽다
우리가 어디에서 은혜를 얻습니까?
잘 먹고 좋은 곳에 가서 대접받고 그런데서 우리가 은혜를 받습니까?
아닙니다.
우리는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잔을 기쁨으로 받고,
인도하는 곳 광야라고 하여 피하지 말고 나가면,
그 곳에서는 다 황금을 캐냅니다.
그런데 반대로 편한 곳만 찾아다니다가는, 돌밖에 못 캘 것입니다.
오늘 우리 한국 교회는 너무 많은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광야를 버리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성도들이 은혜를 받고 광야를 피해 삽니다.
광야 없는 곳에 가서 지상낙원을 누리고 살려고 하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흥청거리며 놀고먹고 마시는데, 이걸 축복으로 착각합니다.
교회마저도 그렇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것은 종말론적으로 하나님 앞에 저주받는 길입니다. 안 되는 길입니다.
▲아베베의 비극
에티오피아 육상선수 아베베는 원래 황제 근위병이었습니다.
원래 졸병이었는데, 금메달 따고 나서 장교로 승진했습니다.
그때 황제가 폭스바겐 독일차를 선물로 하사했습니다.
여러분! 사람이 성공하면 인기도 따라오고 영광도 따라오며,
사병이 장교가 되고, 돈이 많아지며, 여자도 생기고 흥청거립니다.
폭스바겐 타고 막 다니다가 교통사고 나서 평생 아베베는 불구자가 됩니다.
그러니 육상선수생활은 끝났습니다.
이걸 잘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이 축복해 주시면 차오고 집 따라오며,
명예 따라오고 인기 따라옵니다. 성공해 보십시오.
인기가 오면, 다 따라오고,
출세하면 돈 생기고, 집 생기고, 명예 생기고, 안 생기는 게 없습니다.
다 따라옵니다. 그러나 조심해야 합니다.
▲아베베의 비극이 주는 교훈
교회도 주의 종들이 기도해서 교회 일으켜 부흥하고 나면,
교인들이 은혜 받았다고 자가용도, 집도 선물해주고, 돈도 가지고 옵니다.
그러나 그거 날름날름 받으면 거기에 올라타다가 목사는 사고 납니다.
그걸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제게도 얼마나 차가 많이 들어왔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저는 안탔습니다.
저는 17년 동안 전세 살았습니다. 몇 만 명 모여도 전세 살았습니다.
우리 장로님들이 좋은 집들 얼마나 구하러 다니고 ‘이거하세요!’ 해도
제가 끝끝내 안 받았습니다.
‘장로님과 나와의 관계는 개척했기 때문에 긴장관계 사는 게 좋아.
형님 먼저 아우 먼저 이런 식으로 우리 교회 가면 안 돼.
나는 주의 종으로 내 사람 하나 없이 외롭게 살아야 되고,
장로님들도 그렇게 살아야 돼!’
그 집 받았더라면 지금 4~50억 되었을 것입니다. 필요 없습니다.
그게 다 아베베의 폭스바겐처럼 됩니다.
저는 폭스바겐 안합니다. 끝까지 난 안 합니다.
주님이 함께 하시면 됩니다. 할렐루야! (중략)
▲자원해서 광야로 간 국회의원
며칠 전에 제가 어떤 분하고 식사를 했는데
우리나라 국회에서 힘이 있는 분인데,
일주일을 기도원에 금식하고 간답니다.
광야(기도원)로 누구(높은 사람)를 만나러 가는 게 아닙니다.
자기가 1월1일이 되면 하나님 앞에 기도하러 자원해서 갑니다.
그래야 광야 같은 세상을 국회의원을 하면서도 상처받지 않고
승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악한 세상, 전갈이 이글거리는 세상,
광야를 거치지 않으면 이겨낼 수 없습니다. 기도해야 됩니다.
영적으로 깊이 들어가야 육적인 삶이 피곤하지 않고
독수리 같은 새 힘을 얻어 승리할 줄로 믿습니다.
<인터넷 설교 정리 07.02.18. *원제목 : 광야의 사람
[주제별 분류] 고난의 신학 http://blog.daum.net/bible3/10964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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