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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0 불변의 신앙

LNCK 2007. 3. 5. 16:12
 

◈불변의 신앙    단3:13~18



오늘까지 우리 기독교의 발전은, 또한 인류 역사의 발전은,

어떠한 손해와 어려움을 당해도 자기 신앙을 꿋꿋이 지키고,

진리를 목숨 걸고 사수한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서였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매우 이해 타산적이 되어가면서

기독교 신앙마저도 이해 타산적으로 변하는 경우가 많은데...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은 희한한 꿈을 꾸었는데 (단2장)

자기가 꾼 꿈을 도저히 기억해 낼 수 없었다.

그래서 그 꿈이 무엇인지 바벨론의 박사와 술객들에게 물어보았으나

당연히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다니엘은, 왕의 꿈이 신상이었다고 가르쳐준다.


▲그런데 느부갓네살 왕은 그 꿈과 정 반대로 행한다.(단3장)

자기에게 세계를 다스리는 권세를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고,

도리어 자기의 권세를 자랑하는 우상을 만들었던 것이다.


고대국가들은 이렇게 왕의 동상을 세우고 우상화하는 관습이 유행했었다.

요즘까지도 김일성 우상화 작업을 하지 않는가!


그는 두라 평지에 높이 약 30미터, 넓이 약 3미터 가량의 금신상을 세웠다.

아마 자기가 꿈에서 본 우상과 비슷한 모양이라 생각된다.

아마 후에 술객과 박사들의 잘못된 조언을 듣고 따른 것으로 예측된다.

‘왕이 그런 꿈을 꾸신 것은, 그것을 행하라 하심이니...’

다른 술객과 박사들이, 다니엘에 대한 질투심으로, 엉뚱한 조언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금신상에 절하기를 거부하는 자는 불타는 용광로 속에 던지기로 했는데,

이것은 다니엘과 세 친구들을 제거하려는 음모가 숨어 있었을 것이다.


그 때 다니엘의 세 친구들은

여호와를 향한 불변의 신앙을 지키고, 우상숭배를 단호히 거부했다...  


▲만약 우리가 똑같은 핍박을 당한다면?

지금 우리에게는 이런 신앙적 핍박이 없다.

아니, 국가에서 신앙을 장려하고 도와주는 측면도 있다.


그런데 일제시대 때는 교회가 극심하게 핍박당했다.

우리가 만약 주기철, 손양원 목사님 같은 핍박을 똑같이 당한다면

과연 그 분들처럼, 다니엘의 세 친구들처럼 승리할 수 있을까?


우리는, 자기가 직접 겪어보지 않은 일에 대해 호언장담해서는 안 된다.

그런 일을 당하고 그것을 이겨냈을 때 비로소 큰소리칠 수 있는 것이지,

당하지도 않은 일을 미리 큰소리 쳐봤자 아무 설득력이 없다.


그런데 실제로 그런 일을 당하면, 이기기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사참배자를 비판할 때 조심해야 한다.

만약 내가 그 때 그 자리에 있었다면, 어떻게 처세했을지 생각해봐야 한다.


1938년 9월, 조선예수교총회를 할 때, 거기 참석한 193명의 대표는

신사참배를 가결했다. 반대한 사람은 외국 선교사 단 1명뿐이었다.

만약 내가 거기 참석했더라면 어땠을까? 목숨 걸고 반대했을까?


▲핍박을 감당할 수 있는 힘을, 현장에서 주신다.

다니엘의 세 친구들이 용광로 불속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그 시험을 이길 수 있는 특별한 은혜를 주셨기 때문이다.


우리가 주기철, 손양원 목사님처럼 훌륭한 위인은 감히 되지 못하지만,

하나님의 뜻에 절대 순종하겠다고 결단할 때,

그 시험을 감당할 힘을 그 현장에서 주신다.

우리가 잘나서가 아니라, 겸손히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할 뿐이다. 


너희가 관원에게 끌려가 핍박을 당할 때 무슨 말을 할 것인가 미리 염려하지 말라

그 때를 당하면, 아버지께서 할 말을 주실 것이다. 마10:19, 막13:11


그러므로 미리 장담해서는 안 되지만, 미리 겁낼 필요도 없다.

때가 되면 이길 수 있도록, 현장의 은혜로, 하나님이 주신다.

그래서 장차 우리가운데도, 이길 수 있는 사람들이 나올 것이다.


▲교부 크리소스톰

그는 어떤 어려운 환경을 당해도, 이기는 신앙을 가진 사람으로 유명하다.

자세한 설명은 오른쪽 주소에 클릭! http://blog.naver.com/yunchun4/100010506718

 

 

그에게는 신비한 능력이 있었다.

어떤 사람도 그를 만나면, 그와 비슷한 사람으로 변화되게 했다.


진짜 예수 믿는 사람들은, 핍박하면 할수록, 크리소스톰처럼, 더욱 강해진다.

그냥 가만히 내버려두는 것이 차라리 더 상책이다.

이런 진짜 크리스천들이 로마제국의 어두운 핍박 속에서도,

불변하는 신앙으로 세상을 환히 밝혔다.


오늘날도 이것이 진짜 크리스천의 모습이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그것을 이겨내며, 어려울수록 더 빛을 발하는 모습!


▲신앙의 불변성

하나님을 믿고 사는 사람들은 이 한 가지만은 분명해야 한다.

손해가 나더라도 신앙의 불변성이다.

옳은 일에 대해 굽히지 않는 불굴의 신앙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상업주의적 문화와 가치관이 지배하고 있다.

즉, 이익이 되는 일만 하고, 자기에게 손해가 되는 일은 절대 하지 않는다.


친구를 사귀고, 결혼을 할 때도, 손익 관계를 따져서 한다. 사랑은 뒷전이다.

심한 경우 교회도 이익을 따져보고 나온다.


원래 기독교의 십자가 신앙은, 주님의 십자가 은혜에 감격해서

순교자적으로 주님 뒤따라 죽으려고 나오는 곳인데, 사람들은 손익을 따진다.

‘그 교회 가서 내가 무슨 자리 차지할 수 있을까?’

‘내가 얻을 수 있는 이익benefit이 뭘까?’


이런 것을 면밀히 계산하면서,

자기 계산대로 되지 않으면, 입에서 원망과 불평이 나온다.


나와 복음을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막8:35

주님이 가르치는 바는, 자기 목숨이 죽기를 각오하고 따르라는 것이다.

즉, 어떤 손해라도 감수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가르치신다.


그래서 다니엘의 세 친구가 풀무불속에 들어갔고,

주기철, 손양원 목사님과 순교자들이 앞서 그 길을 걸어가셨다.


그런 권위 있는 믿음의 결단, 불변의 신앙이 오늘날 내게 있는가?

지금 우리 상업주의 문화 속에서 그런 신앙 유산이 점점 멸절되고 있지는 않는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마지막' 카드는 순교당해서 죽는 것이다.

거기까지 갈 수 있는 각오를 불태울 때

비로소 올바른 신앙이라 할 수 있다.


▲오늘 우리가 이만큼 살게 된 것은...(이 설교문의 주제)

다니엘의 세 친구들이 신앙 때문에 받는 고통을 달게 받겠다고 나섰기 때문에

당시 바벨론 이방문화 속에서 여호와 신앙이 소멸되지 않고 도리어 빛을 발했으며,


크리소스톰 같은 분들이 불변의 신앙의 절개를 지켰기 때문에

로마 시대에서도 기독교가 타락하지 않고 살아남고, 도리어 빛을 발했으며,


한국에도 주님을 위해 목숨을 버리겠다는 각오를 가진 분들 때문에

오늘날 우리 사회에 기독교가 활짝 꽃을 피우고 있다.


오늘날 지금 우리가 이만큼 인간답게 살게 된 것도

옳은 일을 위해서 순교자적으로 자기 목숨을 버린 그 분들 때문에 된 것이다.

 

예수님이 자기 목숨을 버리시고 지신 십자가 때문에,

오늘날 우리 모두에게 구원 얻는 영생의 길이 활짝 열린 것처럼...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이제 우리의 시대가 되었다.

진리와 복음을 위해 기꺼이 자기를 희생하는 사람들이 나올 때,

자기 목숨까지 버리려 할 때,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점점 더욱 좋아질 것이다.


지금은 사순절 기간이다.

이런 예수님의 십자가 정신을 새롭게 다짐하는 기간이 되기를 바란다.


내 인생의 최고의 가치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따라 살겠다!” (죽겠다!)

이런 각오를 새롭게 다짐하시는 사순절이 되시기를 바란다.


<07.03.04. 인터넷 설교 발췌, 정리  *원제목 : 불변의 신앙 (다니엘서 3:13~18)

 

 

[주제별 분류] 십자가 http://blog.daum.net/bible3/11154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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