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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3 최후 심판의 기준

LNCK 2007. 3. 7. 09:09
 

◈최후 심판의 기준    마25:35~40



▲최후 심판의 기준

학교 다닐 때 시험 보기 전에, 간혹 ‘문제를 집어 주시는’ 선생님이 계셨다.

그 때는 평소에 조는 아이들도 귀를 쫑긋 세운다.


예수님은 최후 심판의 기준에 대해 ‘문제를 집어 주셨다.’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마25:35~36, 40



▲한국인이 잘 틀린다.

세어보니 총 6문제다.

문제를 다 가르쳐 주었는데도, 틀리는 사람은 꼭 나온다.


그런데 통계를 내면, 한국 개신교인의 틀린 비율이 제일 높을 것 같다.

이유인즉 ‘이신칭의 교리’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뻔히 집어준 문제’도 턱없이 간과해왔던 것이다.   


운전면허는 낙방하면, 석 달인가 기다렸다가 재시험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문제는 틀리면 안 되므로,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위 문제의 핵심은 ‘작은 일’이다.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마25:21

 

또한 지극히 작은 자에게 베풀어야 한다. 


여기에는 장로, 권사, 남선교회 회장 등 높은 직분 받아야 된다는 말도 없다.

받으면 좋지만, 안 받아도 무방하다.


내가 교사를 50여 명을 거느리고, 수 백 명 주일학교 아이들을 책임졌다는 사람도,

그런 큰 일 보다는 작은 일에 눈을 돌려야 한다.


당신이 교회에서 큰 예산을 운용하는 큰 일을 하고 계신가?

전기세도 많이 내고, 물품구매도 억대로 하실지 모르지만,

주님의 채점기준은 작은 일에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아무리 큰 일을 하더라도,

작은 일에 무관심하면, 말짱 도루묵이라는 뜻이다.

큰 일 하느라 정신 팔려서, 작은 일에 무관심하기가 쉽기 때문이다.


큰 일엔 스포트라이트도 받고, 많은 군중이 모이며, 많은 인기가 있다.

사회적으로 높은 사람과 또는 성공한 사람들과도 만나서 교제하는 등 

그런 큰 일을 하는 와중에도, 작은 일에 꼭 세밀한 신경을 써야 한다.

큰 일은 선택optional 이지만, 작은 일은 필수과목required 이기 때문이다.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배고픈 사람들에게 구제하고.. 달동네나 제3세계 빈민촌에 많다.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영적으로 적용하면, 내가 깨달은 말씀을 나눠주는 것이다.

목마른 소자에게 시원한 '냉수 한 그릇'(말씀) 주는 일이다. 이 블로그 이름.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외국인 노동자에게 친절하게 대하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영적으로 옷은 ‘신분’을 말한다. 아담과 하와에게 입혀주신 옷,

탕자에게 입혀진 옷, 대제사장 여호수아에게 입혀진 옷 등은 슥3:3~4

그의 ‘신분 회복’을 도와줌을 뜻한다. 죄인들을 전도해서 회복시켜 주는 일이다.

 

실제로 노숙자의 신분, 탈북자의 신분을 회복시켜 주는데 힘쓰는 교회들도 있다.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병자들 찾아가서 진심으로 기도해 주고

사업에 망하거나 크게 낙심하면, 종종 병도 같이 찾아온다.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제3세계일수록 빽 없는 사람들이 주로 감옥에 간다.

그리고 갇힌 자들 가운데, 거기서 돌이켜서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도 많다.

 

물론 위에서 주님이 드신 예는 60가지도 될 수 있고, 6백가지도 될 수 있다.

그러나 공통된 초점은 ‘작은 자’에게 베푸는 ‘작은 일’이다.


큰 일 하면 좋지만, 그것은 꼭 해야 되는 일required 은 아니다.

그러나 작은 일은 최후 심판의 기준이므로, 늘 명심해야 한다.

 

큰 일은 실천 못 하면 변명이라도 할 수 있다. 못 배우고, 못 살았다는 등...

그런데 작은 일아무도 변명 못 한다. 작은 일누구든지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중에 큰 일 못 한다고 기죽는 사람이 많은데,

작은 일에 충성하면서 자부심을 가지는 것이 '성경적'이라고 본다.

 

이런 사람이 많아져야...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다.

교회의 가르침도 큰 일 보다는 작은 일에 더 초점이 있었으면 좋겠다. <김지윤

 

*관련글: 엑스트라의 영성, 엑스트라가 주인공이다!

 

 

◑최후 심판의 기준

 

주님은 최후 심판 때, 너희가 가장 작은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마25:40


최후의 심판 때 그 기준은

우리가 어떠한 죄와 잘못을 저질렀는지를 헤아리시기보다는,


우리가 타인을 위해 얼마나 도움을 주었고,

또 얼마나 이해타산 없이 온전한 마음으로 선행을 베풀었는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죄를 짓지 않는 것에 초점을 둘 것이 아니라,(소극적 방식)

얼마나 이웃을 위하고 또 얼마나 진정한 마음으로 선행을 하는지에

초점을 두어야 하겠습니다.(적극적 방식)


선행이야말로 악행을 이겨 내고 치유하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악행을 저지르지 않으려고 노력하다 보면

그 마음의 초점이 늘 악행에만 머무르기 때문에

평생 악행과 싸우는 데 소중한 시간을 허비합니다.


그러나 선행을 베풀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자신의 온 삶이 선을 쌓으려는 의지로 향하기 때문에

어느덧 자신의 삶이 긍정적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삶의 마지막 심판 때에 하나님께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악을 피하려는 것보다는

적극적으로 선을 행하려는 의지에 있습니다... (펀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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