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 치료법 마26:26-27, 요11:40
◑땡큐 세러피 Thank you Therapy
크리스천 작가요 심리학자인 단 베이커(Don Baker)는
자신의 책 ‘땡큐 세러피’ Thank you Therapy 를 소개하며 이렇게 말했다.
▲염려가 생활화된 현대인
나는 최근 나의 사무실 간사들의 월급을 지불하지 못할 것을 걱정하고 있었다.
나의 아내는 최근 오른쪽 팔꿈치에 혹이 만져져서 MRI사진을 찍었는데
그 결과가 어떻게 나올 것을 걱정하고 있었다.
나의 아내 캐롤은 또한 호르몬 불균형으로 고생하고 있는데
아직 효율적인 치료책을 못 찾고 있어 걱정하고 있었다.
나는 최근 집안 정리나 청소할 시간이 없어
언제 시간을 내어 산만한 집안 살림을 정리할 것인가를 걱정하고 있었다.
나는 최근 미국 대통령의 국정 운영이 너무 맘에 들지 않아 걱정하고 있었다.
나는 물론 이런 모든 문제에 대하여 ‘너희는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라’는
성경말씀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그 말씀을 생각할 때 마다 염려를 떨쳐 버리지 못하는
내 자신이 더욱 염려가 된다.
나는 염려하지 않을 수 없는 내 자신을 염려하고 있는 것이다.
▲염려는 건강을 해친다.
나는 이런 증세가 어떻게 내 관절을 아프게 하는지,
어떻게 내 침을 마르게 하는지,
어떻게 내 손바닥에 땀이 나게 하는지,
어떻게 호흡곤란을 일으키는지,
어떻게 소화불량과 위경련을 일으키는지,
어떻게 우울증을 유발시키는지 잘 알고 있다.
▲감사 치료법 (thank-you therapy)
그런데 나와 아내는 우리들의 문제에 대한
너무나 완벽하고 강력한 치료책을 찾아냈다.
이 치료제의 효율성은 거의 기적적이다.
나와 나의 아내를 포함한 수많은 사람들이
이 치료제의 효율성을 임상적으로(실험적으로) 경험했다.
이 치료제는 식전이나 식후에 복용하면 된다.
호흡곤란을 느낄 때, 가슴에 통증이 느껴질 때, 수시로 복용할 수도 있다.
물과 함께 먹을 수도 있고, 물 없이 먹을 수도 있다.
이것은 특별한 처방전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이 치료제는 절대로 부작용이 없고 안전하다.
더욱이 이 치료제는 무료이다.
이 치료책을 일컬어 나는 ‘감사 치료법’(thank-you therapy)라고 부른다.
◑언제 감사할 것인가?
예수님은 ‘땡큐 세러피’를 자신의 평생에 적용하며 사신 분이셨다.
▲1. 음식을 취하기 전 감사하시라.
매끼 먹을 때마다 기도해야 하느냐고 반문하시는 분이 있다.
그러나 그것이 예수님이 보여주신 모범인 것을 잊지 마시라.
최후 만찬의 장에서 예수께서 또 잔을 가지사 무엇을 하셨는가?
감사기도를 하시고 떡과 잔을 나누셨다. 마26:26~27
이것은 최후의 만찬 때만이 아니었다.
5병2어의 기적에 앞서 주님은 먼저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셨다.’ gave thanks
‘감사했다’는 말이다. 감사는 그분의 거룩한 습관이셨다. 요6:11
일용할 양식을 위하여 기도하라고 가르치신 분이 주님이시라면
그 일용할 양식을 받고 이 땅에 생존의 은혜를 누림을 인하여
우리가 그분에게 감사하는 것은 얼마나 당연한 일이겠는가!
▲아직도 굶는 사람이 세상에 많다...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아직도 적지 않은 인구가 굶는 것을 생각하면,
세 끼를 먹을 수 있는 은혜가 작은 은혜이겠는가?
오늘처럼 문명사의 기적을 이룬 21세기에도
유엔 식량 농업기구(FAO) 2003년 통계에 의하면
지상에서는 세계인구 가운데 8억4천2백만이 기아인구라는 것을 아시는가?
이것은 적어도 이 땅에 살고 있는 전 세계 인구의 14%,
즉 7~8명 중 한 사람은 하루 한 끼 양식을 해결하기 위해 전전긍긍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 중 매년 약 2천만 명이 기아로 죽어가고 있다.
이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의 생존의 현실이라면
우리가 한 끼의 식량을 앞에 놓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라는 기도는 얼마나 절실한 일상의 기도이겠는가?
가정이든 직장이든 식사 전에 기도드림으로써
나의 생존의 원천이 그분 이신 것을 고백하는 것을 잊지 마시라.
그러나 동시에 나처럼 먹지 못하는 이웃들에게도 먹을 수 있는 은혜를 달라고
기도하는 것을 잊지 마시길...
▲2. 축복을 인지할 때 감사하시라.
예수께서 식사 전에 ‘감사하셨다’를
많은 경우 ‘축사하시고’라고 번역한 것을 볼 수 있다.
거의 신약 성경에서는 ‘감사’와 ‘축복’이 동의어처럼 사용되고 있다.
예수님은 아무리 작은 식량이라도
먹을 수 있는 것이 하나님의 축복으로 말미암은 것임을 인지 하셨고,
그래서 그분의 식전 ‘감사의 기도’는 동시에
그 축복이 다시 나누어지기를 소원하신 ‘축복의 기도’이셨던 것이다.
그리고 이런 축복의 기도는 다시 축복을 나누는 기적을 초래하였던 것이다.
그것이 바로 5병2어 기적의 본질이었던 것이다.
마태 14:19의 소위 5병2어 기적의 현장의 리포트를 다시 읽어 보시라.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감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매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니”
사실 이 상황에서의 감사는 매우 비현실적인 것이지 않았는가?
무리들의 필요는 엄청났는데(마태14:21에는 먹은 사람이 여자와 어린이외 5천 명,
그러니까 실제로 2만 명 가까운 군중들이 거기에 있었던 것이다.)
한 아이가 가져온 점심은 겨우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라도 감사했을 때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그러므로 5병2어의 기적의 정체는 차라리 ‘감사의 기적’이라고 할만 하다.
▲3. 삶의 위기 앞에서 감사하시라.
예수님은 또 언제 감사하셨는가?
그는 위기 앞에서 감사하셨다.
오늘의 두개의 본문은 다 삶의 위기를 다루고 있다.
① 최후의 만찬 석상에서의 예수님은 감사하셨다.
예수님은 이 마지막 만찬이 끝나면 당신이 체포당하시고
십자가로 가실 것을 알고 계셨다.
그가 지금 나누시고 있는 떡은 잠시 후 십자가에서 부서져야 할 그의 몸이셨다.
그것이 ‘이것이 내 몸이니라’ 고 하신 뜻이었다.
그리고 그가 지금 나누시고 있는 잔은 잠시 후 십자가에서 흘리셔야 할
그의 피였다. 마26:28
주님은 이런 자신의 인생의 최대 최후의 위기인 죽음의 위기 앞에서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계셨다!
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감사기도 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마26:26~27
② 요11장은 예수님의 사랑스런 친구가 직면한 위기를 다루고 있다.
친구가 병을 앓다가 갑자기 죽어간 것이다.
그런데 지금 그는 친구의 무덤 앞에서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계시는 것이다.
물론 그는 친구의 죽음이 친구의 부활의 현장이 될 것을 알고 계셨다.
그러나 죽음은 여전히 슬픈 것이고 아픈 것이다.
예수께서도 친구의 무덤에서 눈물을 흘리셨다.
그러나 그의 슬픔은 이내 감사로 이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돌들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요11:41
이 죽음의 마당에서도 기도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기도하면 그 기도를 들으실 아버지가 계시다는 사실을 인하여
감사하고 계신 것이다.
어떻게 주님은 자신의 죽음 앞에서
그리고 친구의 죽음 앞에서도 감사할 수 있으셨을까?
만일 우리가 이 질문을 깊이 숙고해 보면
우리는 소위 축복된 순간만이 아닌
어떤 삶의 위기, 어떤 삶의 상황에서도
범사에 감사하며 살수가 있을 것이다.
◑하나님의 주권을 믿으므로... 감사드린다.
한마디로 성도는 하나님의 선하신 주권을 믿는다.
이 슬프고 아픈 상황에도 하나님의 선하신 주권이 다스리고 있음을 믿는다.
바울 사도의 고백처럼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롬8:28을 믿으면 된다.
저는 예수님께서 바로 그런 확신위에서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계셨다고 믿는다.
그 분의 죽으심이 인류의 구원이라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 질 것을 믿으셨기에
십자가의 피의 잔도 감사로 받으실 수 있으셨던 것이다.
또한 친구의 죽음조차도 인류에게 부활의 소망을 가르치는 도구가 될 것을
믿으셨기에 감사하실 수 있으셨던 것이다.
만일 우리도 우리의 삶에서 부딪히는 모든 역경의 상황 배후에
존재하고 움직이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
오늘도 보이지도 않고 이해도 안 되지만 내일에 보여 지고 이루어질
그 선하신 뜻을 믿을 수만 있다면
바울 사도가 가르친 그대로 우리도 ‘범사에 감사하는 자’가 될 것이다.
살전5:18에 보면,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그러므로 이 설교 서두에 언급한 소위 ‘땡큐 세러피’는
이런 하나님의 주권을 수용하고 살아가는 성도들만이 적용할 수 있는
인생의 처방인 것이다.
그들은 언제나 어디에서나 감사하는 사람들이다.
그 때 인생의 고난은 승리로,
죽음을 부활로 바꾸어지는 기적이 일어날 것이다.
▲제이 데니스(Jay Dennis)라는 한 설교자가 소개하는
‘감사 세러피’의 위력을 증언해 드림으로 이 설교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당신이 많은 세금을 내야 한다면 감사하십시오.
당신에게 안정된 직장과 사업장이 있다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몸무게가 늘어 옷이 맞지 않는다면 감사하십시오.
당신은 먹을 것이 넉넉한 인생을 살아오신 것입니다.
세탁할 옷이 집안 한 구석에 쌓여 있거든 감사하십시오.
당신에게는 적어도 갈아입을 옷의 여유가 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집에 대 청소가 필요하고 문고리를 갈아야하고
창문을 갈아야 한다면 감사하십시오.
당신의 몸을 위탁할 집이 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멀리라도 주차할 공간을 찾았다면 감사하십시오.
당신에게 잠시라도 걸어갈 운동의 기회가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당신에게 불평할 대통령이 있다면 감사하십시오.
당신은 언론의 자유가 보장된 나라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 뒷자리에 앉아 있는 교우의 찬송 음정이 엉망으로 들려오고 있다면
감사하십시오!
당신의 청각은 정상이기 때문입니다.
아침에 울리는 자명종 소리가 고통스럽게 들리거든 감사하십시오.
당신에게 일어나 일해야 할 하루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루해가 저물어 온몸이 나른하고 피곤하거든 감사하십시오.
당신은 오늘 하루를 생산적으로 사신 것입니다.
▲범사에 감사의 예
어떤 장로님 가정에 부자지간이 식탁에 함께 앉아서 이야기를 나눕니다.
"아버지, 오늘 하나님 은혜에 참 감사합니다.
제가 차를 몰고 오다가 운전을 잘못해서 자동차가 두 바퀴나 굴렀는데도
전혀 다치지 않아서 감사합니다. 하나님 은혜에 참 감사합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계시던 아버지 장로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참 감사하구나. 그런데 나는 너보다 더 감사하구나.
나도 오늘 차를 타고 시외를 다녀왔는데,
뒹굴지도 않고, 사고도 안 나고, 아무 탈 없이 집에까지 잘 돌아왔으니 참 감사하구나.
나는 너보다 훨씬 더 감사하구나!"
<인터넷 설교 발췌, 07.04.01. *원제목: 예수님의 거룩한 습관: 감사(마26:26-27, 요11:40)
[주제별 분류] 크리스천 리빙 http://blog.daum.net/bible3/114233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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