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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없음/2007

626 자기 성찰

LNCK 2007. 4. 7. 15:39
 

◈자기 성찰


너희는 육체를 따라 판단하나 나는 아무도 판단하지 아니하노라   요8:15


 

▲나의 내면

내가 하는 말은 언제나 옳다고 믿는 것은... 나르시시즘(자기애)의 단편이며,


틈만 나면 잘난 척하려고 하는 사람은... 깊은 내면에 열등감이 숨어있을 수 있다.


타인에게 충고한다는 것은

또한 자신의 삶에서 실천해야 하는 덕목들(자기 약점, 자기 실패)일 수 있다.


타인이 주는 거 없이 밉다는 건,

자기 모습이 (특히 인정하고 싶지 않은 싫은 부분이) 투사됐다는 거고,


한 없이 부드럽고 온화한 사람은

의외로 내면에 엄청난 분노를 누르고 사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타인의 싫은 점은 자신의 내면이다

만일 당신이 누군가를 미워한다면,

당신은 그 사람 안에서 당신의 일부인 그 어떤 점을 발견하고 미워하는 것이다.

우리 자신의 일부가 아닌 것은 아무 것도 우리를 괴롭힐 수 없다. - 헤르만 헤세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살다 보면 이런 경우도 많은 것 같군요)


▲문제의 원인 - 외부에서 찾지 말라

우리는 어떤 문제가 생기면 반사적으로 그 원인을 외부에서 찾는 습관이 있다.

‘저 사람이 내게 상처를 주었다, 저 사람이 나를 미워한다,

저 사람이 나를 속였다’ 등으로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관계의 주도권을 상대에게 넘겨주는 행위다.

문제의 원인뿐 아니라 해결책 역시 상대에게 있다고 믿으면서,

자신은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무력한 사람의 자리로 물러나게 된다.

그러면 끊임없이 타인에게 휘둘리면서 남의 탓만 하게 된다...


▲자신들에 대한 비판을 싫어하는 직업군

성직자, 교수, 법조인, 기자처럼

남들을 가르치고 판단하는 이들은

오히려 자신들에 대한 비판을 아주 싫어한다.

(늘 남을 가르치기만 하다 보면, 그럴 수도 있겠군요...) 


▲칼릴 지브란의 솔직한 지적

'칼릴 지브란'은 자신의 작품「예언자」에서 이 같은 글을 남겼다.


"살해당한 자, 자기의 살해당함에 책임 없지 않으며,

도둑맞은 자, 자기의 도둑맞음에 잘못 없지 않음을,

정의로운 자, 사악한 자의 행위에 전혀 결백할 수 없으며,

정직한 자, 중죄인의 행위 앞에서 완전 결백할 수 없음을...

그대들은 결코 부정한 자와 정의로운 자를,

사악한 자와 선한 자를 가를 수는 없다."


이 말은 살인자, 도적을 두둔하거나 면죄부를 주는 말은 물론 아니다.

우리는 쉽게 자신이 ‘피해자’라고 말하지만, 깊이 성찰해 보면,

정도 차이지, 내게도 그런 비슷한 허물과 잘못이 있다.


어떤 사람은, 외국에서 불쌍한 현지인들을 위해 많은 봉사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평가보다는, 현지인들에게 도리어 비난과 모욕을 받았다.

처음에는 자기에 대한 비난자들을 무조건 기도로 하나님께 억울하다고 고소했으나

가만히 생각해 보니, 자기의 허물이 하나씩 깨달아졌다.

잘난척하기, 빈자들 앞에서 돈을 막 쓰기, 고함지르고 노려보기, 군림하기 등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절대 상대방을 판단하거나 비판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비록 그가 가해자라 하더라도 그를 비판하지 말고,

가만히 기도해보면, 나의 허물이 하나 둘씩 떠오르게 된다.


어떤 전도사님은 불친절한 운전기사를 고발하는 엽서를 보냈다고 한다.

며칠 후에 자기도 교통경찰에게 딱지를 뗐다. 그런데 엽서 보낸 게 마음에 걸렸다.

가급적이면 관용하는 게 낫겠다.


▲사람의 판단이 주관적인 이유

 

나사렛 사람들이 예수님을 냉대한 원인은

예수님을 바라보는 고향 사람들의 비뚤어진 관점 때문입니다.

좀 어려운 말로 표현하면, 고향 사람들의 태도는

‘구체적 사실에 대한 객관적 관점’이라기보다는

‘투사적 관점에 대한 주관적 관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곧 예수님을 있는 그대로 보기보다는

예수님에 대한 자신들의 생각과 감정에 기준하여 바라본 것입니다.


인간의 마음은 참으로 신기하여, 사물이 있는 그대로 인식되지 않고,

자신이 바라보고 싶은 대로 보이고,

듣고 싶은 대로 들리게 되는 특성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은 자신의 마음의 방향에 따라서

오감을 포함한 감각 기관과 인식 기관이

객관적이라기보다는 주관적으로 바뀐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미운 마음으로 보면, 그의 행동 하나에서 열 까지 다 미워 보입니다.

그러나 사랑스런 마음으로 보면, 같은 행동 하나에서 열 까지 다 사랑스럽습니다.



▲내 수준을 알아보는 법...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

어느 날 고양이 한마리가 런던을 방문 했습니다.

루이스는 런던을 방문하고 돌아온 의기양양한 고양이에게 묻습니다.


“키티야, 키티야 너 어디 갔다 오니?”

“나는 여왕폐하를 만나기 위하여 런던 왕궁에 갔다 오는 길입니다.”


“키티야, 거기서 뭘 보았니?”

“아! 나는 거기서 여왕이 앉아있는 왕좌 밑에 생쥐가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고양이 눈에는 생쥐만 보이는 법)


대단히 풍자적인 이야기입니다.

고양이는 런던의 아름다운 왕궁에 가서 찬란한 궁궐의 아름다움이나

역사적인 사적을 보지 못하고, 겨우 왕좌 밑에 생쥐만 눈에 띈 것입니다.


어쩌면 오늘 우리도 하나님 만나러 교회 와서

육신의 안목으로 바라보고 기도하다 보니

진정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좋은 것 즉 성령의 은혜는 맛보지 못하고        

육신적인 것만 구하다가 돌아가지 않습니까?


나는 무엇을 보고 있습니까?

그것이 내 ‘수준’을 대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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