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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없음/2007

671 예수님의 평온의 비결

LNCK 2007. 5. 4. 08:46
 

◈예수님의 평온의 비결



역사는 아래 글의 삶을 실천하신 분들 때문에 지금까지 발전해 왔습니다.

오늘 이 땅에도, 아래 글과 같은 분들이 많이 나오기를 기도해 봅니다.


 

*출처: http://blog.naver.com/eunicegodm/120037370263

 


한 때는 예수님은 오르지 못할 나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알아갈수록 참된 믿음생활은

예수님처럼 사는 것임을 인정하게 됩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전능하신 하나님처럼 된다는 차원이 아니라...

예수님의 성품을 본받는 삶을 사는 것을 가리킵니다.


이 며칠동안 베드로전서 2:21 말씀을 먹고 누렸습니다.


▲‘이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다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해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다."   벧전2:21


여기서 '이를 위하여'를 특히 더 많이 누렸는데 그것은

직전 구절들인 18~20절의 내용을 가리킵니다.


'이를 위하여'란, 애매히 고난 받는 환경을 뜻합니다.

그것을 위해, 크리스천은 부르심을 입었다고 합니다.

 

그것을 본문은 다시 설명하고 있는데,

'그리스도께서 본을 끼치신 그 자취를 따라가는 삶'입니다.

 

그것은 과연 어떤 것일까요?


▲1. 그리스도께서 끼치신 본

대부분 사람들은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

속상해 하거나 따지기 십상입니다.


예수님의 삶이 우리의 본인데,

그분의 삶은 부당한 핍박과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그야말로 '말구유'에서 시작하신 인생이 '십자가'에서

마감된 그런 삶을 사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이 소위 '팔자타령'을 했다거나 '자기 연민'에 빠졌거나

이런 삶을 비관하며 주변사람들에게 '울분을 토로했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대신에 그분은 고요하고, 평강과 위엄을 누리셨으며,

늘 다른 이들의 필요를 관심하는 여유를 간직하셨습니다.


어떻게 이런 것이 가능할까 묵상하는 가운데

그 이유를 두 가지로 생각해 보았습니다.


▲2. 그분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노예로서 섬기러 오셨습니다. (막10:44-45),


지금 나는 자신을 '노예'(slave)로 생각하는가? 입니다.

예수님은 종처럼, 노예처럼 섬기러 오셨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섬김을 받는 자의 위치에서 생각하면... 울분이 많습니다.

그러나 섬기려고 생각하고 '종'이라 생각하면,

고난을 당해도... 평강과 위엄을 누립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도 자신을 '종'처럼 섬기러 오셨다고 했는데,

자기가 별 볼일 없는 '종'임을 부인해서는 안 되겠지요!

 

(사실 샤마니즘에서는, 무당을 신처럼 굉장히 높입니다.

그래서 무당에게 돈도 갖다 바치고, 무당은 반말로 사람들을 막 대합니다.)

 

 

▲3. 그냥 심심해서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을 행하러 오셨습니다. (히10:7)


‘그 목적에 충실하신 것’이 평온함을 유지하는 비결임을 깨달았습니다.


지금 내가 사명으로 생각하는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요?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것입니까?

복음에 먼지를 털어내고 청소하는 것입니까?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까?

병들고 가난한 사람들을 돌아보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뜻’과 그 뜻에 따른 ‘자기 사명’에서 빗나가지 않는다면

우리도 주님 발자취를 따라 감으로써

그분처럼 살수 있게 될 것을 확신합니다.  (펀 글 정리)

 


[주제별 분류] 크리스천 인격 http://blog.daum.net/bible3/11627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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