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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0 예수님의 거룩한 습관, 안식

LNCK 2007. 5. 23. 08:45
 

◈예수님의 거룩한 습관, 안식                   마11:28~30



▲박귀영 님이 쓴 온라인 수필집 "하루에 한번은 하늘을 보며"에 보면,

아이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칠 때마다 공통적인 현상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것은 음표는 한 박자씩 잘 지키는데,

쉼표는 아예 무시하고 지나치는 경우이다.

이런 아이들에게 쉼표의 박자를 정확히 지키게 하는 일이란 여간 쉽지 않다.


흔히 음표는 연주 때 음가만큼의 소리가 귀에 들리는 것이기에

쉽게 느낄 수 있지만,

쉼표는 그렇지 않기에 무던히 그 시간을 기다리지 못함 때문이다.


내가 대학에 들어가서 작곡 레슨을 받는 시간에

“너는 어떤 의미로 여기에다 쉼표를 썼지?”

하는 교수님의 질문을 받고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물론 나는 궁색한 이야기를 늘어놓았지만, 

쉼표도, 음표와 마찬가지로 음악이야.

음표를 쓰는 의미만큼 쉼표도 의미 있게 써야 한다.”는

교수님의 설명이 있은 후, 나는 그 때부터 쉼표에 대한 인식 전환이 이루어졌다...

(그렇다. 쉼표도 음악이듯이, 우리 삶 속에 ‘쉼’도 ‘일’과 마찬가지로 중요한 것이다.)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쉼표의 레슨'을 가르치셨다.

막6:30~32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막 전도 여행에서 돌아온 후

미처 숨을 고르지도 못한 채 헐레벌떡 전도 보고를 하고 있는 장면이다.


그런데 예수께서 이 전도 보고를 중단하시며 뭐라고 말씀하시는가? 

"이르시되 너희는 따로 한적한 곳에 가서 잠깐 쉬어라 하시니

이는 오고 가는 사람이 많아 음식 먹을 겨를도 없음이라" 막6:31


이어서 예수님과 제자들은 배를 타고 따로 한적한 곳으로 가서 쉼을 취하셨다.

이와 같이 쉼은 예수님의 거룩한 습관이셨다.



◑참된 안식의 처방


사람은 영적인 평안이 있어야... 진정한 쉼을 누린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동일한 쉼을 추구하면서도

진정한 쉼을 누리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성경은 그 원인이 영적인데 있다고 가르친다.

우리가 쉼을 상실한 원인이 영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영적인 문제의 해결 없이는 진정한 쉼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모든 인생이 그렇게도 갈망하는 참된 쉼, 참된 안식의 처방은 무엇일까?

마태11:28~30이 그 대답을 들려주고 있다.


▲1. "내게 오라"는 것이다.  마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댜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11:28


주님께서 여기에 언급하신 수고의 짐은 '죄의 짐'인 것이 틀림없다.

창세기에 보면, 수고는 죄와 더불어 인류의 삶에 주어진 결과였다.

하나님께서는 범죄한 첫 사람 아담에게

"네가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창3:17)고 했고,

하와에게는 "네가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창3:17),

다시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라"(창3:16)고 하셨다.


도스토예프스키의 말처럼

"이제 죄인에게는 산다는 것 자체가 수고로운 짐이 된 것"이다.


누가 우리의 이 수고로운 인생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단 말인가?

우리 인간이 만일 스스로 노력으로 이 수고로운 인생의 짐을 벗을 수 있었다면

예수님은 오실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인간의 어떤 노력으로도 해결이 불가능한 ‘이 수고로운 인생의 짐’

해결하시고자 하나님은 메시아(구세주)의 오심을 약속하셨다.

그래서 일찍이 선지자 이사야는 오실 메시아의 사역을 이렇게 증언한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셨다” 사53:4


바로 그분, 우리의 죄와 수고의 짐을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께서

오늘도 ‘수고의 짐을 지고 안식을 모르고 살아가는 인생’들을 초대하신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Come to Me)고!


▲ ‘종교적 짐’이 아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께 온다"는 것은

단순히 기독교를 나의 종교로 갖는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종교를 갖는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에게는, 종교는 '또 하나의 짐'이 된다.


그것이 예수님께서 당시의 바리새 종교를 신랄하게 비판하신 이유였다.

"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하지 아니하며..." 마23:4


성경이 증거하는 복음적 신앙은

종교에의 예속이 아닌, 인격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이다.


그는 짐을 지워주시는 분이 아닌, 자유를 약속하시는 분이시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 요8:32,36


유명한 작가 톨스토이도

기독교를 인류를 억압하는 하나의 종교 시스템으로 오해하고

'자유를 억압하는 짐으로서의 신앙'을 떠나가 살았던 긴 시기가 이었다.


그러나 그의 나이 55세 되던 해,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고 나서

그가 얻은 참 마음의 안식에 대하여 그의 책 '신앙론'에서 이런 고백을 남긴다.


“나는 지난 55년 살아온 나의 인생을 통 털어, 최초의 15년의 소년기를 제외하면

안식을 누리지 못하고 살아왔다.

내 나이 18세 되던 해 나의 친구가 내게 찾아와,

신이 인간을 만든 것이 아니라, 인간이 신을 만든 것이라고 한 말에 설득되어

나는 어릴 적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을 떠났다.


나는 종교를 포기하는 것이 자유를 얻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나에게 있어서 종교는, 속박 그 이상이 아닌 것으로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제 내 나이 55세,

나는 내가 스스로 버린 어머니 같은 신앙의 품으로 다시 돌아왔다.

나는 단순히 종교로 돌아온 것이 아니다.

나의 구주인 그리스도께로 돌아온 것이다.

그 안에서 나는 처음으로 참된 안식을 발견한 것이다.”


당신에게도 참된 안식, 영혼의 쉼이 필요하지 않으신가?

그러면 당신은 무엇보다 그리스도께로 돌아오셔야 한다.


▲2. “내게 배우라”  마11: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마11:29


이 말씀에서, ‘배우라’는 말이 혹시 여러분에게 스트레스를 주지 않는가?

아니, 예수님 앞에 왔으면 되었지, 다시 또 무엇을 배워야만 하는가?


그러나 구원을 얻어서 영혼의 안식을 얻은 사람에게

이제부터 중요한 것은, 그 안식을 내 안에서 계속 유지시키는 일이다.

-그래서 영적 훈련, 바로 ‘배움’이 필요한 이유이다.  마11:29


▲그런데 여기서 ‘배움’을, ‘노동’으로 생각하시면 안 된다.

그것은 나의 행복을 위한 즐거운 여가선용이어야 한다.


영어로 여가를 레저leisure라고 하는데,

이 단어는 본래 희랍어 ‘schole’에서 유래한 것인데,

여기서 영어의 ‘school’도 파생되었다.

즉, 레저(놀이, 쉰다)나 학교(배운다)는 같은 어원에서 온 말이다.

진정한 '배움'은 짐이 아니라, '놀이'처럼 쉬는 듯한 평안과 흥미를 준다.  


예수님에게 나아가 즐겁게 놀이하듯 학습하는 사람들에게

주님은 마음의 쉼을 누리는 평생을 약속하고 계신다.


▲3.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볍다  마11:30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께 배우는 학습이나 훈련을

힘든 또 하나의 수고로 오해하지 않기를 원하신다.

그래서 이어지는 말씀이

이는 내 명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마11:30 이다.


새는 자기 날개를 짐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예수의 제자들은 그래서 그분에게 배우는 훈련을 짐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즐거운 특권인 것이다.

그래서 어거스틴은 이 구절을 언급하면서

“예수님에게서 배우는 일은 무거운 짐이 아닌, 날을 수 있는 새가 된다!”고 했다.


소 두 마리가 한 멍에를 메게 될 때,

유능한 소에게 다른 한 마리의 소가 그 의지를 복종시키고 따르면,

그는 자기 임무를 '쉽고 즐겁게' 성취하게 된다.

그러나 이런 최소한의 훈련을 거부하는 사람에겐, 진정한 안식은 없을 것이다.


누가 즐겁게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인가?

주일만 땡하고 나왔다가 사라지는 분들인가?

아니면 성경공부하고, 훈련받고, 섬기는 사람들인가?



◑창조를 위한 멈춤


▲‘고도원의 아침편지’에 이런 글이 실린 적이 있었다.

“자동차로 말하자면 가장 위험한 차는, 브레이크가 고장 난 차입니다.

멈춰야할 때 멈추지 못하면 사고가 납니다.

인생의 쉼표는, 인생의 브레이크입니다!”


▲밀라노 한마음 교회의 성도 이현주 님이 쓰신 아름다운 묵상글인

“잠시 쉼표가 주는 여유”라는 글을 들어보시라.


아름다운 음악을 들으면서도

소리만 들릴 뿐 마음에 감동이 흐르지 않는다면

지금은 쉴 때입니다.


식구들 얼굴을 마주 보고도

살짝 웃어 주지 못한다면

지금은 쉴 때입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창문을 비추는 아침 햇살이 눈부시게 느껴지지 않는다면

지금은 쉴 때입니다.


오래 만에 걸려온 친구의 전화를 받고

‘바쁘다’는 말만 하고 끊었다면

지금은 쉴 때입니다.


아름다운 자연을 보면서도

마음에 아무런 감동이 흐르지 않는다면

지금은 쉴 때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진 뒤

멀어지는 뒷모습을 보기 위해 한 번 더 뒤돌아보지 않는다면

지금은 쉴 때 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약속하는 쉼은, ‘단순한 활동의 중지’만이 아닌, 그 이상이다.

마11:29의 ‘쉼’은 희랍어에서 ‘아나포신anapausin’인데,

‘아나’는 ‘다시’라는 뜻이고,

‘포신’은 영어의 ‘pause’ 즉, 멈춤이란 뜻이다.

그러니까 ‘쉼’(아나포신)은 ‘다음단계의 행동을 위한 멈춤’이란 뜻이다. 


쉬고 나면 새로운 창조를 위한 새 힘을 얻게 된다.

그래서 안식은 새로운 창조인 것이다.


▲「행복한 멈춤」에 보면,

이 책의 본래 제목은 ‘능력 있는 멈춤’ Power pause 이다.

저자는 우리가 하루에 단 3분만 멈추어 서서 행복한 생각을 하고,

그 생각이 이루어진 것을 믿고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다면,

우리의 인생은 경이적으로 달라질 것이라고 약속한다.

쉼은 허비가 아니라, 파워의 원천인 것이다.


▲능력 있는 사역의 비결 - 쉼

미국 워싱턴 시내에 ‘구세주의 교회’ The Church of the Saviour 라는

독특한 교회가 있는데, 제가 워싱턴에서 목회할 때 가끔 방문하곤 했다.

이 교회는 교인 숫자는 크게 많지 않지만,

미국 내에서 매우 영향력이 있는 교회요,

사회봉사의 모델 교회로 연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약 10개의 공동체로 흩어져, 각 모임마다 백 명 전후로 모이는 교회인데

(다 합해도 천명 미만의 교회) 이 교회가 감당하는 사역은

이 교회를 방문하는 모든 이들을 놀라게 한다.


이 교회가 감당하는 대표적인 사역들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 The Potter's House/카페와 서점 사역

2. Jubilee Housing/저임금 가족을 위한 주택보급 사역(350세대 아파트 운영)

3. Jubilee Jobs/직업 및 직장 알선 사역(매년 1천여 명 훈련)

4. Columbia Road Health Care Center/저임금 가족들을 위한 진료사역

5. Christ House/노숙자 병원 사역

6. Good Shepherd Ministries/방과 후 아동 지도 사역

7. The Family Place/학령 전 유아 탁아 사역

8. Sarah's Circle/노인 사역

9. Samaritan's Inn/알콜 및 마약 중독 치유 사역

10. Festival Center/교회 섬김 훈련 총괄 행정 사역


그런데 우리를 더 놀라게 하는 것은,

이들이 적은 인원으로 이렇게 많은 사회봉사 사역을 감당한다는 사실 말고도,

이 봉사자들은 대부분 20~30년 이상을 섬기고 있는 분들이라는 사실이다.


그런 오랜 기간의 섬김이 어떻게 가능한가를 한 번은 제가 물어보았다.

그런데 한 나이 드신 할머니 대답이

“우리는 매일 한 시간의 기도와, 한 달에 한 번씩 방문하는 데이 스프링스

(Day springs)에서 우리가 필요로 하는 새 힘을 공급 받습니다.”라고 대답하셨다.


그래서 “데이 프링스가 무엇하는 곳이냐?”고 물었더니,

‘침묵 수양관’이라고 하면서,

아무리 힘들고 지쳐도 한 달에 한 번 그곳에 가서 엎드리면

주의 손이 그들을 다시 일으켜 주신다고 대답하셨다.


그래서 저도 그곳을 방문하여 그분들이 누리는 안식의 영성을

함께 경험해 보기도 했다.


▲가평 지구촌 필그림 하우스 비전

우리 교회에서는 좀더 효율적인 안식의 누림을 위해

가평에 영성센터/전원교회를 건립하게 된다.


저는 우리 지구촌 성도들이 좀 더 자연 친화적인 환경에서 인생을 쉬어가며

영성 훈련으로 주께서 허락하신 아름다운 안식을 누리는 모습을 보고 싶다.


이 수양관은 우리가 멈추고 싶을 때 멈추어 가며

동시에 보다 행복한 미래를 설계하는 우리들의 영혼의 치유센터가 될 것이다.


앞으로 1년 후에 문을 여는 가평수양관(가평 지구촌 필그림 하우스)이

바로 우리들의 이런 ‘데이 스프링스’가 될 것이다.


<07.05.20. 인터넷 설교 발췌, *원제목 : 예수님의 거룩한 습관, 안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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