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판 삭개오가 필요한 시대 눅19:1~10
삭개오는, 오늘날 우리 현대인의 고뇌를 적나라하게 투영해 보여주고 있다.
적당히 출세하고 적당히 돈도 모았지만, 뭔가 채워지지 못하고 공허한 현대인의 모습...
또한 오늘날의 정체된 교회는, 이런 삭개오와 같은 사람을 절실히 기다리고 있다.
적당히 자기의 겉포장을 잘해서 사는 외식이 성행하고,
어떻게 해서든지 남의 것은 많이 빼앗고, 반면에 자기 것을 꼭 움켜쥐는
그런 이기심이 극도에 달한 현실적 난국을 타개하는데 있어서
‘삭개오 같은 radical한 과감한 변화’는
정체의 늪에서 허덕이는 교계에 신선한 충격과 새물결을 주고도 남을 것이다...
이런 사람이 단 몇 사람만 나타나도.., 그 공동체는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배경 설명
▲성공한 세리장 삭개오의 고민
예수님 시대, 유대 땅에서 동족에게 가장 멸시 천대받는 두 계층이 있었으니,
여자로서는 창녀요 남자로서는 세리였다.
그러니 삭개오가 세리직업을 택할 땐, 처음부터 비장한 각오를 했을 것이다.
그는 세상 사람들의 조롱소리에 귀를 막고 월급을 모으고,
20여년(추정)이 지난 이제 지방유지급에 해당하는 세리장이 되었다.
삭개오가 못 듣는 곳에선 욕할는지 모르지만,
세리장이 되고 부자가 되고 보니, 세상인심이란 간사한 것이어서
자기를 대하는 여리고 사람들 태도가 눈에 띄게 달라졌음도 느꼈다.
제법 자기를 여리고 성의 유지 대접을 해주고,
권세가들이 돈푼께나 얻어가려고 아부하는 말수를 걸어오기도 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요즘 삭개오는 맘이 밝거나 즐겁지 않았다.
우울증이라고까지는 할 수 없지만, 속이 허하고 텅 빈 것 같기도 했다.
가난하고 천대받던 시절엔, 돈만 벌면 해결될 줄 알았던 인생살이가
다른 그 무엇이 부족한 것이 맘속에 늘 있었다.
삭개오는 참 말을 걸어주는 사람소리가 그리웠을 런지도 모른다.
듣기 좋으라고 알랑대고 치켜세우는 아부소리나
또는 남을 모함하는 소리 말고,
참으로 자기를 사람대접해주는 진정한 대화가 그리웠을 것이다.
어차피 로마치하 현실 속에서, 세리장이 동족에게 떳떳한 직업은 아니지만,
큰 죄짓는 일도 아니라는 항변도 맘속 깊은 곳에서 소리치고 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교만한 바리세인, 사두개인, 사제들,
그리고 각종 장사하는 사람들과 농사꾼과 양치기들도 알고 보면 자기처럼
로마식민통치 정책아래 순응하고, 그 제도 그 정책 아래에서 먹고살고 있음을
환히 꿰뚫어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삭개오는 자기의 지금의 사는 꼴이
스스로 긍지를 가질만한 삶이 아니란 것도 잘 알고 있었다.
무언가 근사한 일도 하고 싶지만, 그럴 기회도 없었고, 용기도 없었다.
(중략)
▲삭개오의 변화
여리고 성 사람들에게 갈릴리 랍비와 그 일행이
세리장 삭개오의 집에 들어가 식사까지 한다는 소문이 쫙 퍼졌다.
입 가진 사람마다 모두 한 마디씩 비난을 했을 것이다.
특히 바리새파 사람과 사두개인 등 식자들과
돈푼께나 있는 부자들이 더 많이 비아냥거렸을 것이다.
“갈릴리에서 무슨 별난 랍비가 나올리 있나?
랍비는 무슨 랍비며, 예언자는 무슨 얼어 죽을 예언자란 말인가.
그래, 자기가 신세지려고 들어간 그 집이
하나님의 율법을 어기고 로마정권에 빌붙어
유대동족의 고혈을 짠 세금을 걷어 부자 된 죄인 삭개오라는 것도 모르남?”
한편, 식탁의 분위기가 한창 무르익을 무렵,
삭개오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예수 랍비를 보고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아무도 예기치 못한 놀라운 결단적 선언이요, 약속이요, 고백이기에
모두 놀라고 충격을 받았다.
“선생님, 제가 재산의 절반을 갈라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겠습니다.
그리고 자세히 세금징수 원부를 검토하여,
만약 부정하게 세금을 조금이라도 법을 위반하여 늑탈한 것이 발견되면
율법규정대로 4배를 되갚아주겠습니다.”
예수님은 조용히 말씀하셨다.
“오늘 구원이 이집에 이르렀구나. 저 사람 집 주인 삭개오 씨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니더냐!”
◑시대를 바꾼 말씀 한 구절
▲13세기에 앗시시의 프란시스는 마10:8~10절에 큰 충격을 받았다.
“가면서 전파하며 말하되, 천국이 가까웠다 하고,
병든자를 고치며 죽은자를 살리며,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너희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이나 가지지 말고,
여행을 위하여 주머니나 두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이 말씀이 프랜시스의 맘을 흔들 때, 청빈, 봉사, 사랑, 순명, 노동을
서원덕목으로 하는 13세기 성 프랜시스 탁발수도회가 탄생하였다.
이 수도회는 당시 부자로 치닫던 교계에 신선한 개혁과 부흥을 가져왔다.
▲16세기, 1517년 독일에서 성서를 연구하며 고민하던 마틴 루터에게
어느 날 로마서 1:17절,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에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살리라”라는 한 구절이
젊은 루터의 마음을 흔들 때,
중세기 로마교회 성직주의에 포로가 되었던 기독교 왕국이 흔들리고
종교개혁이 시작되었다.
▲그러면 21세기, 이 시대 우리의 귀에 들려오는 하나님의 말씀은 무엇일까?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제게는 눅19:1~10절 삭개오 이야기가
제 귀에 천둥소리처럼 몇 년 째 쿵쿵 귓가에서 계속 울려온다.
왜냐하면, 소위 지구촌 시대에 세계화 물결 속에서
국가간 빈부격차와 한 사회 내 빈부격차가 심화되고,
농민들이 자식 같은 쌀을 불태워버리면서 억울해 못살겠다고 아우성을 치고,
학교 공교육이 상급학교 진학학원으로 변질된 아픔에도 불구하고
학교를 졸업한 수많은 젊은이들이 취업문을 두드리며,
오늘도 웃음을 잃고 길을 헤매는 이 지구촌 문명 한복판에서
크리스천들은 삭개오 이야기를 통해 시대적인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된다.
◑삭개오의 교훈이 이 시대에 중요한 이유
▲1. 내가 곧 삭개오임을 통감한다.
삭개오만 로마제국의 식민치하라는
정치적, 군사적, 경제적, 구조악에 메인 세금징수원이 아니라,
우리 지구촌 오늘의 상황 전체가 구조적으로 엄밀히 말하면
로마제국으로 식민치하와 다름없다.
나는 목사로서, 신학교수로서, 거의 35년을 깨끗한 월급 받아서 살아왔지만,
그 월급의 밑바탕엔 학생들 등록금과 교인들 헌금이 대부분인데,
그 등록금과 헌금이 오늘날 이 어려운 시대에
부모들의 피와 땀으로 이룩된 것임을,
그리고 그 아래 단계까지 파고 내려가면
지구촌의 가난한 사람들의 몫이 단 얼마만큼이라도 있음을 발견하고
나는 “제가 (고혈 징수원) 삭개오입니다”라고 고백한다.
▲2. 나에게는 삭개오처럼, 진실한 자기를 찾고자하는 구도정신이 없다.
이만 하면 됐다는 자만한 마음과,
의인은 아니지만 한국사회에서 크리스천으로서 평균수준 이상의
도덕적 시민이라는 자기교만이 나를 온통 사로잡고 있다.
▲3. 나는 삭개오처럼, 진정으로 예수님을 내 맘 중심과 내 집안 중심에
모시려고 하는 진솔한 열린 마음이 없었다.
나의 의식과 지식과 경건은 예수님을 앙모하고 늘 앞에 모시고,
인생과 윤리생활과 신앙생활의 표준으로 삼고 우러러 보며 뒤따르고는 싶지만,
내 맘 한복판에 좌정하시거나 내 집 안에 오시면
어쩐지 부담스럽다는 생각이 나를 지배하고 있다.
▲4. 나는 삭개오처럼 부자가 아니므로,
재산 절반을 나누어줄만한 살림형편이 못된다고 늘 생각해왔다.
그렇지만 지구촌 65억 인구 경제적 삶의 평균수준에 비하면,
나는 너무나 많이 소유하고 있으며, 나의 과다한 소유가
지구촌 그 누군가가 생필품으로 사용해야 할 물질적 재화를
박탈, 독점한 것임을 부정하고 살아왔다.
나는 나눔의 즐거움과 축복을
실천 속에서보다 말 속에서 더 많이 살아왔는데,
그래서 내 맘엔 구원받은 자로서의 기쁨도 시들해지고
신앙의 창조적 비전도 흐려지고 있음을 깨닫는다.
빈부의 격차가 국내와 해외에서 날로 심해지고 있는 이 시점에
말로만 전하는 복음이 아니라,
삭개오처럼 과감하게 자기 삶으로 복음을 전한다면
세상은 놀랍게 변화될 것이다.
나는 그렇지 못하는데, 그런 삭개오가 부럽기도 하고, 존경스럽기도 한 것이다.
더욱이 세리장이라고 욕만 먹던 삭개오가,
아무도 못하는 일을 했던 것이다.
▲현대판 삭개오의 실제 예
2005년 11월 당시 신문에 이런 기사가 났다.
처녀시절에 간호사 수녀로 전남 소록도에 들어가서
평생 소문내지 않고 문둥병 환자들을 돌보다가,
이제 50년이 지나 늙은이가 되었으므로 소록도 주민들에게 폐가 될까봐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오스트리아 본국으로 돌아간 두 수녀!
이 신문기사를 읽으면서, 우리 영혼이 정화되는 것을 느낀다.
거룩한 사랑의 봉사는, 때 묻고 죄로 상한 영혼들을
은혜로서 고치고 정화시키고 소생케 한다. http://blog.daum.net/ygbhygbh/4485319
▲외식적 신앙을 극복하는 길
20세기 개신교의 큰 신학자 칼 바르트는
우리 가운데 하나님의 형상이 실현되는 4가지 필요충분조건을 제시한바 있다.
①사람과 사람이 서로 사심 없는 마음으로 눈과 눈을 정답게 마주 치면서
서로를 두려움 없이 바라볼 수 있을 것.
②맘 문을 열고 진정으로 말하고 듣는 대화의 사건이 일어날 것.
뒤틀리고 은폐되고 위장된 언어생활이 없을 것.
③서로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필요한 것을 주고받는
상부상조 사건이 일어날 것,
④그러한 일들이 정치사회적 강제성, 또는 도덕적 의무감에서가 아니라
자발성과 기쁨 속에서 이뤄지게 할 것... 이라고 갈파한바 있다.
삭개오 이야기 속에서 그 4가지 사건이 모두 함께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다.
그리고 영적으로 죽었던 삭개오가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여
빛 안에서 생명으로 부활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삭개오의 기쁨과 구원이 우리 모두에게 함께하기를 기원한다.
*출처: http://christdb.com/xbbs/bbs.php?table=sermon_2&query=view&uid=5&p=1
[주제별 분류] 물질과 성공 http://blog.daum.net/bible3/11362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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