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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4 절대 절망 중에 절대 소망 온다!

LNCK 2007. 7. 19. 16:01


◈절대 절망 중에 절대 소망 온다!                렘33장                            편집자 글



예레미야는 1~29장까지는 하나님의 심판을 주로 예언해 왔습니다.

30~33장에서는 주제가 확 바뀌어서, 미래의 소망과 위로를 전하고 있습니다.



▲절대 절망의 위기 상황

시드기야 재위 10년째 되던 해였다.

느부갓네살이 바벨론 왕이 된지는 18년째 이다.

그러니까 예루살렘이 완전히 망하기 딱 1년 전인 주전 587년경이다.         렘32:1


그 때 바벨론 군대는 예루살렘 성을 이미 포위하고 있었다.

그리고 예레미야는 경호대 뜰에 갇혀 있었다.                                         32:2

사방은 공황(패닉) 상태였다.



◑ 최악의 상황에서 최고의 회복이 선포되다


지금 같은 상황은 예레미야가 아무리 좋은 소리를 해도, 곧이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 같은 공황의 한 복판에서,

생뚱맞게도 예레미야는 비로소 ‘소망의 메시지’를 던지는데...

 

타이밍이 너무 이상하다.

다 죽거나 포로가 되기 직전인데, 모두가 캄캄한 절망중에 있는데,

시위대 뜰 감옥에 갇힌 예레미야는 비로소 절대소망을 외친다... 


▲1. 애시 당초 잘 되게 하려는 징계


내가 이 성 백성을 치료하여 낫게 해 주고

평화와 번영을 누릴 수 있게 해 주겠다.

이스라엘과 유다를 옛날처럼 회복시켜 주겠다, 다시 세워 주겠다!

... 너희를 용서해 주겠다...

예루살렘은 다시 세상에 이름을 떨치게 되겠고, 그 곳 백성은 행복해질 것이다.          33:6~9


이것은 과거에 ‘거짓선지자’들이 남발하던 공수표였다.

예레미야는 지금까지 계속 ‘절대절망, 항복, 포로’만 선포해 왔다.            27:12등


너희들이 돌이키면 용서해 주시겠다고 선포하기도 했지만                       26:13

백성들이 돌이키지 않았기 때문에... 무서운 심판만이 지금까지 예고되어 왔다.


그래서 자기가 전한 예언 그대로, 무서운 심판이 시행될 찰나,

예레미야는 180도 말을 바꾸어서... ‘절대 희망’을 선포하고 있다.


    그러니까 유대를 향한 하나님의 징계는

    애당초 자기 백성들을 잘 되게 하시려는 징계였던 것이다.


    정말 하나님이 화가 나서 손을 대신 것이라면

    ‘내가 그렇게 말했는데 불순종했으니... 이제부터 어디 한 번 당해 봐라!’ .. 하셨을 것이다.


    그러나 막상 무서운 회초리를 맞게 된 백성들에게

    ‘너희들은 다시 회복되어 이전처럼 명성을 날리게 될 거야!’ 하시며 소망을 주신다.

    - 이것은 애당초 ‘잘 되게 하시는’ 징계였던 것이다.

 

예가 적절한지 모르겠지만, 부모가 자기 애의 잘못을 보고 매 때릴 때도

세워놓고 '좋은 말'로 일장 훈시하고 나서, 때리는 것과 같다. 자기 분노의 무절제가 아닌 것이다.



▲2. 하나님의 주권적인 회복


이는 내가 나의 백성에게 베풀 좋은 일들을 그들도 들을 것이다...

내가 예루살렘에 가져다 줄 복과 평화를 보고

모든 나라들이 놀라며 떨 것이다.                                                                                 33:9


이 모든 회복은, 하나님이 주도적으로, 주권적으로 행하시는 역사다.

백성이 근신하고, 뼈를 깎는 회개를 하는 등 - 이런 조건도 꼭 제시되지 않았다.


내가 너희를 포로로 보내겠지만,

내가 너희를 회복시켜 줄 것이다... 라는 하나님의 주권적 회복이다.


앞서 예레미야는 항아리(오지병)을 깨는 퍼포먼스를 통해

하나님과 백성 간에 맺어졌던 언약이 깨졌음을 선포한 적이 있었다.             19:11

언약이 파기되었으니, 하나님의 자기 백성 보호 의무도 자동 폐기되었다.

그래서 포로로 잡혀가려는 찰라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주권적으로 새언약을 제정하신다.                                   31:31

그것은 돌비석이 아닌, 마음에 새기는 언약이다.

마음으로 자발적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새 백성을 만드시겠다는 약속이다.


이 모든 일은 하나님의 주권적으로 일어날 것이다.

이것은 신자의 특권이자, 축복이다.

한 번 쓰러진 신자도, 망한 신자도...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로 다시 회복될 것이다.


바벨론 포로의 징계 역시 하나님의 주권적 허락이었다.

예레미야애가 3장에 보면 ‘주께서’ 라는 단어가 수 십 번 나온다.

주께서 주권적으로 진노하시고, 포로로 보내셨다는 뜻이다.

(그래서 그 징계를 당할 때는 '잠잠히 당해라'는 것이 예레미야애가의 주제이다)


▲3. 이전처럼 회복, 이전보다 더 나은 회복


지금 이 땅은 사람도 살지 않고 짐승도 살지 않는 황무지가 되었다.

지금은 예루살렘 거리와 유다 마을들이 조용하다...

(그러나) 내가 옛날처럼 이 땅을 회복시킬 것이다... 나 여호와의 말이다. 33:10~13


상식적인 얘기지만, 우리 주변에도 큰 시련을 겪었다가 회복된 사람들을 보는데,

그들은 이전처럼 회복되고, 어떤 면에서는 이전보다 더 낫게 회복되었다.


이전에는 평탄했지만.. 어딘지 모르게 자만했는데

회복된 후 지금도 평탄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겸손해져 있다.


이스라엘은 이제 곧 심판을 받는 마당에서,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너희들은 이전처럼 회복될 것이다.’                                                    33:11

 

동시에 이전보다 더 좋게 회복될 것이다.

백성들이 감사의 표시로 여호와의 성전에 제물을 바칠 것이다.

그들은 여호와를 찬양하고, 여호와는 선하시며 그 사랑은 영원하다고 외칠 것이다. 33:11 

- 이 말씀은, 그들이 이전보다 더 뜨거운 신앙, 더 신실해질 것이라는 예언이다.

 

고난 후에 회복된 사람은, 그 마음과 신앙이, 당연히 과거보다 더 좋게 회복 된다.


▲4. 사명을 감당하는 회복

 

그래서 연단(징계, 70년 포로)을 통해 회복된 이스라엘은

하나님 나라의 사명을 감당하는 그릇으로 변화된다.


그 날이 오고 그 때가 되면

내가 다윗의 집안에서 의로운 가지가 나게 하겠다...  33:15

이제야 비로소, 하나님은 구속의 역사를 일으키시겠다는 예언이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서도 심심찮게 목격되는 일이다.

누가 주님 나라를 위한 신실한 일꾼이 되는가?


과거에 한 번이상 큰 재난을 당하거나, 큰 시험을 당했지만... 극복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변화되었는데,

이제는 주님의 일꾼이요, 하나님 나라의 용사로 탈바꿈되었다.


▲밭을 사는 퍼포먼스

지금 온 이스라엘은 공황 상태에 놓여 있다.

바벨론 군대가 온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있었고,(총 1년 6개월만에 함락, 39:1~2

굶어죽느냐, 잡혀죽느냐... 이런 최후의 선택 속에서 저울질 하고 있을 때,


그런데 엉뚱하기 짝이 없게도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고향 땅 아나돗의 밭을 산다.

그는 감옥에 갇힌 상태에서 그 밭을 샀다. 32:9

(33장은 시위대 감옥에서 두 번째 예언,

32장 '토지 구입'은 시위대 감옥에서 받은 첫 번째 예언임) 

 

전쟁이 나면 다 죽고 난리가 날 터인데,

그 때는 밭을 사도 아무 소용없을 것이다. 난리나고 죽으면 그것으로 다 끝인데...


하나님은 절대절망의 위기상황에서, 난간에서 막 아래로 떨어지는 사람에게

‘너는 앞으로 잘 될 거야!’를 약속하신다. 당장 죽는 사람에게 적금들어라는 식이다.


하나님은 절대절망의 위기에 처한 사람에게

비로소 ‘신앙 안에서의 절대 희망’을 약속하시는 것이다.

(다른 말로, 절대 절망이 없으면... 절대 소망도 없다는 뜻!)

 

하나님의 소망의 메시지가

가장 절망적인 순간(망하기 직전, 주전587년)에 비로소 선포되었다는 '타이밍'은

신자가 망해도... 완전히 망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아니, 보다 더 새롭게 회복되기 시작하는 시점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마치는 말

아이러니한 것은, 그렇게 쉴 새 없이 심판과 재난을 외치던 예레미야가

실제로 피할 수 없는 재난에 닥치게 되자, 오히려 회복과 소망을 외치고 있다.


이스라엘의 변화, 회복, 새롭게 됨은

바벨론 포로라는 정화기간을 거친 다음에 (안 그랬으면 더 좋았겠지만)

비로소 주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절대절망에 처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귀에

절대 소망의 메시지를 불어넣어주시고,

실제로 예레미야에게 그 표적으로 ‘밭을 사게’ 하신다.


오늘도 우리 주변에 보게 되는.. 많은 환난 당한 신자들, 절대 절망에 처한 자들,

그들에게 ‘절대 소망’이 있다.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그들을 회복시키실 것이다.

그리고 그들을 ‘하나님 나라의 사명자’로 쓰실 것이다.

 

예레미야는 시위대 감옥 속에서 부르짖는 기도 중에

'이 크고 놀라운 비밀'을 깨달았던 것이다. 33:3                                 [주제별 분류] 선지자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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