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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없음/2007

846 내 믿음의 분량

LNCK 2007. 8. 31. 20:55
 

◈내 믿음의 분량을 깨닫자                                   롬12:3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중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롬12:3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사람은 자기를 있는 모습 그대로 정확히 볼 수 있는 눈이 필요하다.

자기에 대해 과대평가해도 안 되고, 과소평가해서도 안 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뭣이든지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착각이고,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도 오판이다.


<라인홀드 니버의 기도문>

하나님이여,

나에게 내가 변화시킬 수 없는 일에 대해서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평정을 주시고,


내 힘으로 고칠 수 있는 일에 대해서는

그것을 고칠 수 있는 용기를 주시며,


그리고 이 두 가지를 분명히 깨달을 수 있는

지혜를 허락해 주옵소서!



▲우리는 남과 같이 되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내게 주신 분량대로 내가 제일 잘 할 수 있는 것, 내가 가장 즐겁게 할 수 있는 일

- 거기에 몰두하면.. 우리 모두는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다.


하나님은 우리 각자에게 각기 다른 은사를 주셨다. 

여기서 말하는 은사talent는,

①성령의 은사talent도 되겠지만,

②우리가 나면서부터 부여받은 특별한 재능talent을 말한다.

③또한 후천적 교육과 환경을 통해서도 남다른 은사talent를 가질 수 있다.


예를 들면, 자기는 ‘언어’에 별 소질이 없어도,

자기가 부모님 따라 어릴 적에 중국에서 자랐으면,

중국어를 남보다 잘 구사하는 은사를 -후천적으로- 가질 수 있다.  


어쨌든 성령의 은사이건, 선천적이건, 후천적이건

하나님은 내게도 특별한 은사를 주셨다.

그래서 지금의 ‘내 모습’이 형성되어져 있다.


그래서 내가 받은 남다른 고유한 은사가 내게 반드시 있다.

남들과 비교해서, 스스로 자기는 아무 것도 아니라고

자괴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뜻이다.



▲은사의 양면성 - ‘극대화’ 와 ‘한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각자에게는 한계가 있다.

내가 가진 재능과 능력을 극대화해서 사용해야 하지만,

동시에 하나님은 우리 각자에게 한계를 주셨다.


(보통 설교는 ‘극대화’를 강조하지만, 이 설교는 ‘한계’를 강조함)


하나님께서 주신 한계 - 이것은 내가 극복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로 받아들여야 한다. 기꺼이 수용해야 한다.

이것이 성숙하고 건강한 성도의 삶의 지혜이다.


내게 주어진 것으로 최선을 다하면서, 기쁨과 만족이 넘치는 삶을 살아야지,

자기에게 없는 것 때문에 괴로워하며, 남의 것을 탐만 내면... 건강하지 못하다.


내가 남처럼 되려고 할 필요 없고,

우리 교회가 다른 특정 교회처럼 되려고 할 필요 없다.

나는 나로서 만족하고, 우리 교회는 우리 교회로서 만족해야 한다.



▲예수님의 한계 수용의 예


①30세까지 평신도 생활 수용

예수님의 생애를 생각해 보면, 주님은 33년 동안 이 땅에서 사셨는데,

그 중에 공생애 기간은 3년밖에 되지 않는다.

그 외 30년은 그냥 평범한 한 가정의 아들이요, 목수로 사셨다,


물론 예수님도 -30세 이전에-, 안식일이 되면 회당에 가셨을 것이다.

거기서 누구를 가르치려 하시지 않았을 것이다.

예언하려 하시지 않았을 것이다.

그냥 평범한 일반 청년회원으로 안식일을 지켰을 것이다.


②시험과 유혹 때에도 자기 한계를 지키심

그리고 때가 되자 공적인 그 분의 삶이 시작된다.

먼저 세례를 받으시고, 광야에서 공생애의 시험기간도 거치셨다.


3가지 유혹을 받으실 때, 돌들로 떡덩이 되게 하라, 꼭대기서 뛰어내리라,

내게 절하면 천하만국을 다 주겠다는 시험에도 끄떡도 하지 않고 다 거절하셨다.

- 왜냐하면 예수님은 자기 한계를 인정하셨기 때문이다.

굳이 돌을 떡으로 만들려고 하지 않으셨다.

자기 한계 밖의 일을 엄격히 구분하여, 실행에 옮기지 않으셨다.


예수님의 시험과 유혹은 한마디로,

자기 한계를 지키느냐, or 그것을 넘어서느냐... 그것이 관건이었다.


다행히 예수님은 자기 한계를 엄격히 지키셨다.

첫째 아담은, 그 한계를 넘어서 선악과를 따먹고 말았지만,

둘째 아담은, 다행히 자기 한계를 엄격히 지키셨다. 


③사역의 한계를 지키시고, 거기에 만족하심

수많은 병자들이 예수님께 몰려왔다.

그러나 그들을 다 고쳐주시진 않으셨다.

예수님은 어떨 때, 피곤하시거나 너무 사람들이 많이 몰려올 때는

슬그머니 그 자리를 피하기도 하셨다.

어떻게 보면, 인정도 없고 매정하며, 자기 직무를 유기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많은 사람을 제자로 뽑을 수 있었지만, 이스라엘 12지파를 대표하는 상징으로

12사람만 제자로 뽑아서 데리고 다니셨다.


예수님은 교회를 세우지도 않으셨고, 거대 교회를 꿈꾸지도 않으셨다.

예수님께서 분명히 세상에 복음을 전하러 오셨다고 선포하셨지만,

이집트를 넘어, 지중해를 넘어, 멀리 지구 한 바퀴를 다 돌지 않으셨다.

이스라엘이라는 좁은 땅에서 주로 머무셨다.

그 한계를 넘어가는 일은... 제자들이 할 것이라고 믿으셨다.             행1:8    


④일을 많이 하는 것보다, 한계 안에서 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수님이 마지막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이렇게 기도하셨다.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요17:4


‘아버지께서 내게 시키신 일’만 하였다는 뜻이다.

그 결과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이었다.


우리는 ‘가능한 짧은 시간에 가급적 많은 일’을 해야 한다는,

그래서 ‘가급적 더 많은 업적을 남겨야 한다!’는

그런 경제논리적 가치관을 갖고 살고 있다. 

그래야 하나님께 영광을 더 크게 돌릴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러나 자기 한계를 인정하고, 그 한계 속에서 즐겁게 살아가는 것이

정서적으로 건강한 교회요, 건강한 성도요, 건강한 믿음이다.

이것이 바로 사도바울의 메시지였던 것이다.                            롬12:3



▲자기 한계를 인정한 교수님

어느 평교수가 학장직을 제안 받았지만, 기도와 고심 끝에 거절했다고 한다.

그 교수의 은사는 연구하는 일과 강의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휴가를 즐기면서 쉬는 일을 귀하게 여기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학교를 경영하는 학장직을 맡고 나면,

학장직이라는 명예와, 결재 판에 사인을 하는 학장의 권위를 가질 수 있지만,

자기가 좋아하는 연구와 강의시간도 대폭 줄어들 것이고,

여름휴가를 즐길 수 없을 만큼 학교 업무에 바쁘게 쫓아다녀야 할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자기가 학장직을 맡는 것은,

자기를 위해서나, 학교 전체를 봤을 때

바람직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는 자기 한계를 잘 깨달았다. 학교의 행정가가 되기보다는,

연구하고 가르치는 일이 자기 천직임을 깨달았던 것이다.



▲성격적 한계, 시간적 한계를 파악하라

우리는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해야 한다.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않는 것이 믿음의 생활이다.        롬12:3


①자기 성격과 취향을 파악해야 한다.

가령 내가 혼자 조용히 지내는 시간을 통해서 에너지를 더 얻는가?

아니면 여러 사람들을 만나는 시간을 통해서 에너지를 더 얻는가?


②또한 자기 인생의 때를 파악해야 한다.

70대를 지나면, 한창인 40대보다는 활동반경이 줄어들게 되어 있다.

그 때는 자기 나이를 한탄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그 나이에 따라 주신 한계(바운더리)를 겸허히 인정해야 한다.

그 나이가 되면, 이제 자기 나이 안에서 만족하며 즐겁게 사는 법을 익혀야 한다.



▲자기 한계를 즐거워하라

성숙한 크리스천의 삶은, 무조건 많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허락하신 한계(바운더리) 안에서 만족하며 -즐겁게 살아가는- 것이다.

나 자신의 한계에 대하여 좌절하거나 슬퍼할 이유는 없다.


내가 할 수 없는 것들은, 즉 내 영역 바깥의 일은,

억지로 포기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기쁜 마음으로 그것을 포기해야 한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믿음의 분량만큼, 지혜롭게 분별해야 한다.


해외 이민을 가거나, 해외에서 선교사역을 하다보면,

그 나라에서 매우 중요한 일이라서 목숨 걸고 종사했지만,

막상 한국에 와 보면, 그것이 목숨 걸 만큼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마찬가지로 막상 천국에 가 보면,

지금 우리가 이 세상에서 목숨 걸고 하는 일이

-많은 부분- 그렇게 중요한 일이 아니었음을 깨달을 것이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한계 안에 일은, 매우 중요한 일이지만,

하나님이 내게 주신 한계 밖에 일은, 아무 중요한 일도 아니다.

한계 밖에 일을 열심히 하면 할수록, 오히려 ‘업무 방해’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내게 적당히 한계를 그어주신 일은

정말 감사하고 -즐거워할 일-인 것이다.

내 한계 바깥의 일, 즉 남의 일을 보면서 시기, 질투할 일이 아니다.

그래서 오늘 설교 제목도 ‘나의 한계-하나님의 선물’이다.



▲상대방의 한계를 인정하라

또한 상대방을 향해서,

‘왜 당신은 그것밖에 못하느냐?, 더 잘 할 수 없느냐?’ 하며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해서도 안 된다.


자신의 한계에 대해서도 만족하고,

상대방의 한계에 대해서도 인정하는 것이

건강한 신앙인격이다.



▲자기 한계 안에서 교회에 봉사하라

뉴욕에 피터 스카지로 목사님이 담임하시는 New Life Fellowship 교회가 있다.

이분은 특히 교회 지도자들에게 이렇게 강조한다고 한다.

교회에 우선순위를 두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삶과 가정에 우선순위를 두는 모범을 보여주는 것이 교회지도자입니다.”


그의 목회철학은, 교회에 우선을 두는 것이 아니라

성도 각자의 삶과 가정에 우선순위를 두고

자기의 신앙 및 삶의 관리를 먼저 잘 하라는 것이다.


자기 한계 안에서 자기 은사에 충실하여 스스로 즐겁고 행복하게 살다보면,

그것이 자기만 좋게 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은 성도들에게 선한 파장을 미친다.


반대로 교회 봉사를 열심히 하는데, 자기 한계를 넘어서 무리하면,

그래서 피곤하거나 탈진하면, 도리어 교회와 성도에게 부정적 파장을 미친다.


그런데 교회지도자가 만약 우선순위를 교회에 둔다면,

결국 자기는 무너지게 될 것이고, 그렇게 개인이 무너진다면

(개인의 집합체인) 교회도 결국은 무너지게 되어있다.

반대로, 개인이 건강하면, 교회도 결국 건강하게 세워지는 것이다.


과거에 한국교회는, 한 일꾼이 서너 가지 일을 한꺼번에 도맡아서 충성해왔고,

그런 일꾼을 높이 칭찬해 왔다.

그래서 칭찬은 받았는데, 지나고 보면 자기 가정과 직장이 다 무너져 버렸다.

그런 것은 건강한 교회가 아니다.

그러므로 이제 교회 일도, 자기 한계를 인정하면서 봉사해야.. 바람직하고 지혜롭다.



▲다윗이 인정한 자기 한계

다윗은 이런 위대한 기도를 드렸다.

오직 우리 하나님은 하늘에 계셔서, 원하시는 모든 것을 행하셨나이다.                        시115:3

 

우리는 각자가 자기의 한계를 가지고 있지만,

하나님께는 한계가 없으시다. - 이 사실을 다윗은 노래했다.

하나님은 당신이 원하시는 모든 것을 행하시는 분이시다.

한계를 가진 인간과는 다르다는 사실이다.

 

다윗은 이 사실을 깨닫고,

자기 개인적 소원은 성전을 자기 손으로 짓는 것이지만,

'하나님이 너를 통해서 성전 건축을 하지 않겠다'고 하셨을 때,

‘너는 준비만 하고, 네 아들이 성전을 건축할 것’을 일러 주셨을 때,

거기에 기꺼이 순복했다.


다윗은 버티지 않았다. 자기 한계를 겸허히 인정했다.

자기는 성전건축을 너무 원했지만, 그 한계를 하나님의 ‘사랑의 선물’로 받아들였다.


우리는 <내가 원하는 모든 일을 모두 다 하려고> 하면 안 된다.

그것은 하나님 같은 분이나 하시는 일이다.

우리 인간이 하는 일은, -한계 안에서- 이다. 



▲마치는 말

세상은 자기 한계를 타고 넘어서, 무조건 크고 위대한 사람이 되라고 가르친다.

그러나 성경은 자기 한계 안에서 즐겁게 살라고 가르친다.


아담과 하와가 자기 한계를 벗어나서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 했듯이

그 후손인 인간에게는 자기 한계를 벗어나고픈 욕구가 언제나 상존한다.


성도는 자기 한계가 - 어떤 족쇄요, 징계가 아니라,

그것이 자기를 위한 하나님의 배려요, 선물인줄 깨달아야 한다.


그러므로 그 한계 안에서, 평안과 안식을 누리는 성도님들 되시기 바란다.

너무 사역에 눌리지 말고, 주 안에서 즐겁게 사십시오! 그게 하나님 뜻이라는 말이다.


<07.08.26. 인터넷 설교 녹취,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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