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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없음/2007

845 주여, 보는 눈을 주옵소서!

LNCK 2007. 8. 31. 11:16
 

◈주여, 보는 눈을 주옵소서!                                         눅10:23~24



너희가 보고 있는 것을 보는 눈은 복이 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많은 선지자와 임금이 너희 보는 바를 보고자 하였으되

보지 못하였으며, 너희 듣는 바를 듣고자 하였으되 듣지 못하였느니라.                  눅10:23~24



▲비범하게 보는 눈

오늘날 우리는 모두 두 눈을 뜨고 뭔가를 보며 살고 있지만,

진짜 필요한 뭔가를 주의 깊게 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


많은 사람들은 새가 날아다니는 것을 아무 생각 없이 쳐다보았다.

그러나 라이트 형제는, 새의 날개 윗면이 둥그렇게 약간 굽어져 있는 것을 ‘보았다.’

양력(뜨는 힘)을 많이 받아서 잘 뜨기 위함이다.

그림처럼 날개 등이 굽어져 있으면 윗면으로 공기가 빠르게 움직이고,

날개 아랫면으로 공기가 상대적으로 느리게 이동하면서, 양력이 발생한다.

 

보통 사람들은 땅콩을 볼 때, 그저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바라보았지만,

조지 워싱턴 카버 박사 눈에는 땅콩이 결코 예사스럽게 보이지 않았다.

그는 땅콩으로 만들 수 있는, 인간에게 혜택을 줄 수 있는

수 십 가지의 물건들을 바라보았던 것이다.


보통 생물학자들은 작업실에 생기는 곰팡이를 무심코 바라보았다.

그러나 알렉산더 플레밍은 그 곰팡이 속에서 항생제 페니실린을 볼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인류 보건 증진에 큰 역할을 감당했다.

 

 

*We Are All Watchers


We are all watchers but few of us are seers. Many watched the birds fly,

but it was the Wright brothers who saw that their wings were curved

on the upper surface, thus enabling us to fly, too.

Many had seen the lowly peanut plant, but Dr. George Washington Carver

saw in it a host of products and derivatives that have blessed our lives.

Many biologists had watched mold form in the culture dish,

but Alexander Fleming saw penicillin and an advance in human health resulted.  

Wallace H. Kirby, CSS Publishing Company



▲황폐한 사막에서 꿀을 보는 눈

캘리포니아의 사막 주위엔 많은 종류의 새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들 중 어떤 새들은 커다란 원을 그리며 먹이를 찾아 날아다님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찾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그곳에 캘리포니아 벌새라는 기적의 새가 있습니다.

벌새는 황무지를 날아다니다가 멀리 떨어져 핀 선인장 꽃을 발견하면

쏜 살 같이 내려가 핏빛처럼 새빨간 선인장 꽃의 심장을 헤치고

꿀을 빨아 먹습니다.

다른 새들이 아무런 먹이도 발견하지 못하고 있을 때

이 벌새는 선인장 꽃을 찾아냅니다.


황무지뿐인 곳에도 새들이 먹을 꿀이 있습니다.

가시뿐인 선인장에도 꽃은 있습니다.


우리의 눈에 보이는 것이 모두 절망뿐이라 해도

하나님을 믿는 자에겐 꿀이 있습니다.

그 꿀을 볼 수 있는 눈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겨자씨만한 믿음만으로도 산을 움직일 수 있는 분이십니다.

여러분에게는 겨자씨만한 믿음이 분명 있습니다.

믿음이 있는 자는 큰 기적을 이룰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자입니다.


부정적인 말을 듣는 자는 어리석은 자입니다.

긍정적인 말을 듣는 자가 지혜로운 자입니다.

믿음을 주는 말을 듣는 자가 지혜로운 자입니다.

믿음의 글을 읽고 믿음의 사람들을 만나고 믿음을 주는 말을 들어야합니다.

믿음을 가지기만 하면 기적의 사람이 됩니다.


여러분 주위에 있는 널어져 있는 꿀을 보는

놀라운 ‘보는 눈’을 가지도록, 주님께 기도로 부탁드립시다!  (이 단락, 펀 글)



◑자기를 보는 눈이 달라져야...


예수님을 믿는 것은, 자기를 보는 눈이 달라지는 것이며,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지는 것이다...


▶자화상에 따라 달라진다

자기가 스스로 자기 모습을 보는 눈이 명랑하고 활달하면→ 삶이 밝고 명랑하다.

자기의 자화상이 어둡고 부정적이면→ 매사의 삶이 어둡고 부정적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부정적인 자화상을 가지고서 평생 괴로워하며 살아간다.

예수를 믿음으로써 부정적→긍정적인 자화상으로 변화되어 행복하게 살 수 있다. 


▶한 여직원의 변신

회사에서 한 여직원이 평소에 얼굴에 수심이 차 있었고 말 수가 적었다.

그런데 한 달 휴가를 다녀온 이후에, 밝고 활기찬 성격으로 확 변했다. 이유인즉;

그녀는 휴가 기간에 코를 살짝 올리는 성형 수술을 했었다.


그전에 그녀는 자기 코에 대한 열등감 때문에 매사에 자신감이 없었다.

이제는 반대로, 매사에 자신감이 넘치는 성격으로 확 변했다.


▶코가 아니라, 실제로는 자화상이 달라진 것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지 않으면, 그녀가 코를 살짝 올렸다는 사실은 남들이 잘 모른다.  

남들이 자기를 쳐다보는 눈은, 수술 이후에,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그러나 자기 스스로 자기를 쳐다보는 눈(자화상)은, 수술 이후에, 크게 달라진 것이다.


'성형 수술'도 꼭 필요한 사람은 해야 한다.

그러나 자연인은 모두 '심령 수술'을 통해서, 자화상이 크게 180도 달라진다.


▶잘못된 자화상을 가진 사람이 많다


①죄악에 포로된 자화상

자기는 죄를 짓지 않고는 도저히 살 수 없다며 스스로 자포자기한다.

습관적 죄악의 속박에서 결코 자유할 수 없다는 패배주의적 자화상


이런 사람들은 실제 삶에서 죄악과 마귀의 속박에서 풀려날 수 없다.   

정욕과 알콜과 도박을 죽어도 끊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②불행한 자화상

나는 가족과 타인에게 결코 사랑을 받을 수 없는, 미움 받는 소외된 사람이다.

비행 청소년들이 특히 이런 삐뚤어진 자화상을 가지고 있다.


'사람들은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 이 사회가 나를 따돌리고 싫어한다'

거기서 사회에 대한 분노와 복수심이 차올라서- 불특정인을 대상으로 범행, 복수한다.


③병약한 자화상

항상 병에 대한 불안과 공포를 떨쳐 버리지 못하는 사람.

늘 자신은 허약하고 병에 잘 걸리기 때문에 결코 건강한 삶을 살 수 없다며 포기함.


병과 싸워볼 정신적 저항력을 상실한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병에 대한 면역성이 매우 약해서 쉽게 병에 걸리며 평생 골골거리며 산다.


④실패한 자화상

나는 무능력하고, 가난하고, 내가 남보다 더 잘 할 수 있는 일은 없다고 여긴다. 

세상의 각박한 생존경쟁에서 자신은 언제나 뒤진다고 생각한다.

나 같은 사람은 이 세상에서 결코 성공할 수 없는 실패자로 스스로 포기한다.  <이 설교부분 2001년 인터넷 설교에서 발췌,



◑예술가 - 진짜 아름다움을 보는 눈을 가진 사람


자기 내면세계가 아름답고 안정된 사람은, 아름답고 안정된 예술작품을 만들어낸다.

인간과 대자연의 선함goodness, 진실함, 친절함, 믿음, 거룩함,

순수한 사랑의 아름다움 등 - 이런 것들은 정말 아름다운 것들이다.


자기 가슴 벅차게 느끼는 이런 아름다운 것들을

문자, 선율, 붓끝으로 표현하면 - 예술이 된다.

예술이란, 자기가 본 아름다운 것에 대한 감동받음의 ‘외적 표현’인데,

우리는 세상에서 ‘진정한 아름다움’을 보고 감동되어 예술작품으로 표현해야 한다.    


성경은, 특히 시편이, 이런 아름다움을 구구절절 잘 표현했다.


온전히 <아름다운> 시온에서 하나님이 빛을 발하셨도다.                                               시50:2


내가 여호와께 청하였던 한 가지 일 곧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나로 내 생전에 여호와의 집에 거하여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며

그 전에서 사모하게 하실 것이라.                                                                                 시27:4


너의 눈은 그 <영광(아름다움)> 중의 왕을 보며 광활한 땅을 목도하겠고...                     사33:17

 

 

이와 같이 진실한 아름다움(↔감각적인 것)에 감동된 사람들은 붓을 들거나 노래하게 된다.

 

그런데, 불신자들도 이런 아름다움을 보고 감동받아 아름다운 예술 작품을 만들어 낸다.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일반은총’ 영역을, 신자나 불신자들이 함께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선인과 악인에게 똑같이 햇빛과 비를 주시듯,

인간성과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똑같이 주시고,

특히 예술작품을 만드는 창조적 재능creativity을 신자나 불신자에게 똑같이 부어주신다...


<이 단락 출처    #17. 기독교 예술관 中에서 



그래서 길에 버려진 큰 바위를 보고, 많은 사람은 교통의 장애물이라 생각했지만,

어떤 조각가는 그 속에 있는 위대한 조각품을 바라보는 영감을 가졌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세계에 우리가 할 일은 너무 많이 있다.

다만 내 눈이 못 보든지, 아니면 애써 고개를 돌려

그것을 보지 않으려고 외면할 뿐이다...                                          <편집자

                      

[주제별 분류] 삶의 통찰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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