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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에 관한 글 모음

LNCK 2007. 9. 4. 19:57

‘겸손’에 관한 글 모음 - YouTube

◈‘겸손’에 관한 글 모음                       이사야57:15

  

(여호와는)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거하나니...                    

이는 겸손한 자의 영을 소성케 하며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성케 하려 함이라  사57:15

  

▲낙타의 겸손

사막을 횡단하는 낙타는 아침마다 묵묵히 주인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그리고 주인이 얹어주는 짐을 자신의 등에 짊어집니다.

하루 일과가 끝나는 저녁 시간이 오면 낙타는 또 다시 주인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그리고 등에 있는 짐이 내려지길 조용히 기다립니다.

 

언제나 주인 앞에 고분고분 무릎을 꿇는 낙타 모습에서

참된 겸손이 무엇인지를 배웁니다.

 

매 순간 자신의 본분을 잊지 않고 주인 앞에 말없이 무릎 꿇는 모습,

매일 자신의 의무를 기꺼이 행하는 모습,

주인이 매일 얹어주는 짐을 아무 불평 없이 지고 가는 모습에서

진정한 겸손이 무엇인지를 깨닫습니다.

 

낙타는 자신이 지고 가는 짐으로 인해 의미가 있습니다.

낙타에게 짐은 무거우나 짐으로 인해

낙타는 자신의 존재가치를 발휘하는 것입니다. ★

 

마찬가지로 신자들에게 있어 고통과 십자가는 언제나 부담스러운 그 무엇이나

그 고통과 십자가로 인해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존재의미를 찾습니다...

 

 

▲다윗이 사울을 공격하지 않은 겸손

다윗은 하나님이 심판하실 때까지, 사울을 참고 대적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사울이 자기 보다 더 의로울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다윗은, 아들 압살롬이 반역을 준비할 때에도 가만히 쳐다보고만 있었다.

하나님이 혹시 -자기보다 압살롬을 더 들어 쓰실지 모른다는 겸손한 마음-

때문이었다.

 

다윗처럼, 내가 함부로 대적을 심판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

혹시, 내가 저 사람의 대적이요, 악역을 감당하고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대적하는 것 - 그것은 자기가 악인이라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는 것이다.

겸손한 태도 - 그것은 자기가 선인이라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는 것이다.

 

 

 

◑베드로처럼 겸손한 사람

 

충성을 다하는 사람들의 공통된 약점

→자기가 충성한다는 교만, 독선, 자랑이 강하다.

충성하면서 겸손한 사람, 충성과 겸손을 둘 다 갖춘 사람은 매우 드물다.

 

베드로의 겸손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리리이다"

고기잡이 전문가 베드로가,

그 방면에 문외한인 예수님의 말씀에 묵묵히 겸손히 순종했다.

 

바울이 치고 올라오는 것을 봐 주는 베드로

후배 바울이 선배 베드로를 공개 석상에서 공격했다(갈2:11).  

 

세상 사회였다면, 바울은 커 보기도 전에 선배들에게 치여 죽었을 것이다.

그러나 베드로는 잠잠하고 아무 말 하지 않는 '겸손'을 보여 주었다.

 

바나바도 마찬가지였다. 원래는 '바나바와 바울'이었는데,

어느 새 성경은 순서를 바꾸어 '바울과 바나바'로 기록하고 있다.

그래도 바나바는 관용하고 겸손했다.

 

"연보는 많이 드리고 말은 안 한다" ←어느 장로의 철학

5백 명 모이는 교회에서, 교회 전체 연보의 1/3을 드리는 장로가 있었다.

보통 교회에선, 연보를 많이 드리는 장로가 발언권이 세다.

 

그러나 이 장로는;

"저는 연보를 많이 드리므로 당회가서 발언 많이 안 해요.

연보를 많이 하든지 발언을 많이 하든지, 둘 중 하나만 해야지

둘 다 많이 하면 못 써요!"

 

연보를 많이 드린다고 발언이 많은 사람은

교회를 주식회사로 잘못 생각하기 때문이다.

주식회사는 돈으로 주식을 많이 소유할수록, 발언권/의사 결정권이 세다.

 

"충성은 많이 드리고 말은 안 한다" ★

충성과 헌신을 잘 하는 사람들의 약점은

그것을 도저히 감출 수 없다는 것이다.

 

그 자랑의 말을 줄일 수 없고,

자기의 공로를 잊어버리지 못 한다는 것이다!

 

위의 훌륭한 장로처럼

충성은 일등하되, 말은 안 하고 줄이는 사람이 되자.

둘 다 하면 못 쓴다.

 

<01.08.19. 김동호 목사님 설교, 

 

 

▲성공 이후의 겸손

어떤 사람의 그릇이 얼마나 되는가 알아보려면... 형통을 줘 보면 안다. 

큰 그릇은,  승승장구 할 때 더욱 겸손히 하나님을 찾는다.  

작은 그릇은, 축복을 주면.. 새카맣게 잊어버리고 세상을 향해 나아간다.

 

요셉은 풍년의 유혹을 이겼다.

그는 성공했지만 교만해서 타락하지 않았다. 

 

 

◑자기중심적 인간

 

언제 교회의 질서가 흔들립니까? 대개 자기중심주의가 넘칠 때 흔들립니다.

그것이 은혜로운 교회생활을 막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기중심주의를 버려야 합니다.

 

▲자중(자기중심적 교만형) 과 자겸(스스로 겸손형)의 평신도 시절

두 명의 교회를 잘 다니는 평신도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성향이 전혀 다릅니다.

자중은 목회자에게 요구를 많이 합니다;

"왜 목회자가 사랑도 없어, 왜 겸손하지 않아, 왜 예수님처럼 살지 않아?"

라고 합니다.

 

반대로 자겸은 목회자를 많이 이해하려고 합니다.

"목회자도 사람이니까 이해해! 많은 사람들 이끌려면 얼마나 힘들겠어!

두 세 명 되는 내 자녀 잘 인도하는 것도 힘든데.... 정말 힘들 거야!"라고 합니다.

 

어느 날 자중과 자겸이 두 사람 다 신학교에 가서 졸업하고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때부터 참으로 신기한 일이 벌어집니다.

거의 예외 없이 그런 일이 생깁니다.

 

▲자중의 (자기중심적) 목회 생활

자중은 평신도였을 때 항상 목회자한테

"왜 예수님처럼 살지 않아!"라고 말했기 때문에

그러한 정의감을 가지고 정말 예수님처럼 살면서 목회 할 것 같은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때가 되면 완전히 또 자기중심적으로 바뀝니다.>

그래서 이제는 평신도를 막 야단칩니다.

 

자기가 평신도였을 때 목회자가 예수님처럼 살기 원했으면,

이제는 자기가 실천할 때인데

성도들이 약간이라도  불평하면

"성도들이 못됐어! 못된 염소야!"라고 성도만 탓합니다.

 

참으로 신기합니다.

자기중심적인 사람이 획기적으로 바뀌지 않으면 대개 그렇습니다.

 

평신도 때도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고,

목회자가 되니까 또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합니다.

얼마나 옹졸합니까? 얼마나 부끄러운 모습입니까?

 

무엇이 문제입니까?

자기중심적인 생각과 편견이 사람을 그렇게 옹졸하게 만듭니다.

 

▲자겸이의 목회 태도

그런데 평신도 때 목회자를 이해하려고 했던 자겸은,

목회자가 되고 나서 어떨까요?

 

자겸은 평신도를 이해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인내하면서 평신도를 품어줍니다.

"평신도니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지! 내가 참아야지! 더 이해해야지!"라고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왜 예수님처럼 안 살아!"라고 하는 분은 더 예수님처럼 살지 않고,

"믿는 사람도 부족한 점이 많지!"라고 하는 분은 더 예수님처럼 산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오늘 이 시간부터 자기중심형 인간성에서

자기겸손형 인간성으로 변화되길 바랍니다.

 

교만한 자기중심형 인간성은 은혜가 떠나지만

겸손한 인간성은 은혜가 넘칩니다.

 

▲두 분의 개척 목회

자중 목사와 자겸 목사 두 분 모두 십 년 동안 개척 목회 했는데

여전히 교회가 어려웠습니다.

그때 쉽게 함정에 빠지는데, 그것은 한과 질투심 때문에 좌충우돌하며

비판이 많은 목회자가 되는 것입니다.

 

자중 목사님은 그 함정에 빠져 큰 교회만 보면

"잘못됐다!"고 하면서 비난만 했습니다.

 

반대로 자겸 목사님은 10년 동안 교회가 어려웠지만

마음의 평안을 잃지 않았습니다.

 

어려움 속에서 생길 수 있는 한과 질투심의 공격을 물리치고 내일을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큰 교회에 대해서 "큰 교회도 공헌하는 일이 많이 있지!"하고 칭찬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자중 목사님과 자겸 목사님이

모두 하나님의 은혜를 입게 되었습니다.

신도시에 들어가 급속히 교회가 부흥한 것입니다.

그래서 신도시에서 새로 시작한지 약 10년 만에 큰 교회가 되었습니다.

 

큰 교회가 되니까 주변의 개척교회 목사님들로부터

이런 얘기가 심심찮게 들렸습니다.

"저 교회는 큰 교회이면서 자기만 생각해! 구제도 안 하고! 선교도 안 하고!"

 

10여 년 전에 자중 목사님이 하던 소리 그대로였습니다.

그런 소리는 항상 있습니다.

 

그런 소리를 들으면 옛날에 그런 소리를 했던 자중 목사님이

더 잘 이해할 것 같은데, 더 이해를 안 합니다.

"그럼 작은 교회는 잘 하나? 못된 자들이야"하고 무시해버립니다.

 

자기중심적인 교만한 삶의 태도는 좀처럼 변하지 않았습니다.

 

반면에 자겸 목사님은 "작은 교회들의 심정을 이해해!"하고

그 심정을 이해해줍니다.

남을 이해하는 겸손한 삶의 태도 역시 좀처럼 변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살면서 절대로 자중형(자기중심적 교만형) 사람으로 살지 마시고

자겸형(스스로 겸손한) 사람으로 사시길 바랍니다. <어느 목회자의 글 스크랩

 

 

◑선물?을 받을 때의 겸손

 

나는 크리스천으로서 정직하게 살려는데,

직장 생활 하다보면 종종 비리의 유혹이 나를 엄습해 온다. 

어떤 사람이 슬그머니 떡값이 든 봉투를 내밀었다고 가정해 보자.

 

그 때 그 자리에서 "받을 수 없다"고 정색을 하며 딱 부러지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 결단을 한다는 것은 정말 귀한 일이다. 그러나 지혜로운 처사는 아니다.

 

거기에는 자기 의를 드러내려는 과시욕이 짙게 배여 있다.

상대방의 도덕성을 깔보고, 그 인격을 무시하는 교만함도 바탕에 깔려 있다. 

상대방은, 기독교인의 도덕성을 존경하기보다, 도리어 반감을 품게 될 것이다.

 

'성의는 감사합니다만, 나는 당신의 요청을 들어줄 수 없어서 매우 죄송합니다'

는 겸손한 마음과 자세가 필요하다.

 

자신의 도덕성을 지키는 단계를 더 뛰어넘어서,

상대방의 자존심을 지켜주는(기분 나쁘게 하지 않는) 겸손함이 배여 있어야 한다.  

 

▲선물?을 줄 때의 겸손 

선교지에서 합법적인 선교활동 허가를 받으려면 자주 행정기관을 출입하게 된다.

세상 사업적 경험과 수완이 없는 선교사는, 인허가를 받는데 큰 어려움에 부닥친다.

선물을 아예 주지도 않고, 주더라도 요령이 없어서, 번번이 상대가 받기 거절한다.

 

물론 뇌물성 선물은 아예 안주는 것이 선교사로서의 자존심을 지키는 길이다.

그러나 감사의 표시로써 작은 선물을 주는 것은 -개도국에서- 꼭 필요한 일이다.

 

선물을 줄 때는, 아무리 적은 것이라도, 남들 보지 않는데서 줘야 한다.

남들 다 보는데서 선물을 불쑥 내밀면, 받는 사람이 매우 당황하게 된다.

주위에서 지켜본 다른 사람이, 받은 사람을, 뇌물수뢰죄로 고발할 수도 있다.

 

선물을 줄 때에도 상대방의 자존심을 다치지 않게 주는 테크닉(겸손)이 필요하다.

'선물을 탐내는 욕심쟁이 죄인이여!'라는 교만과 비판적인 마음으론 절대 실패한다. 

 

대부분 성공적인 선교사는 '작은 선물'과 '큰 기도'로 난관을 뚫고 나간다.

대부분 실패하는 선교사는 '큰 선물'과 '작은 기도'로 문제를 해결해 나간다. (펀 글)

 

..................................... 더 읽으실 분 .....................................

 

▶배우자에게 겸손해야

어떤 가정에 남편은 박사되고 출세했다. 반면 부인은 초등학교도 못 나왔다.

남편은 항상 부인을 구박했다;

'이 무식한 것, 나랑 같이 사는 것을 고마운 줄 알아라'

 

부인은 속으로 대꾸했다.

'잘난 사람 맘대로 해. 나야 그저 식모로 살다가 갈 거니까!'

 

세월이 더 지나 박사 남편에게 치매가 왔다.

부인 왈; "이 사람 좀 봐요. 제 나이도 몰라요. 제 이름도 몰라요!"

 

이럴 줄 알았으면 좀 겸손하게 살걸...

배웠고, 출세했다고 교만하다가는 큰 코 다친다.

 

 

◑링컨의 겸손에 관한 일화

 

미국 제16대 대통령이었던 링컨이

하루는 집무를 하는 가운데

갑자기 누군가를 만나야 될 일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급히 나오는 바람에

꼭 챙겨야 할 서류를 빼놓고 말았습니다.

 

백악관 수위실을 지나갈 때쯤

서류를 두고 온 사실이 생각난 링컨 대통령은

근무하는 수위에게 부탁했습니다.

 

“내가 급히 나오다가 서류 하나를 빼놓고 왔는데,

자네가 젊으니까 얼른 가서 가져올 수 있을 걸세.

책상 위에 보면 노란 봉투가 하나 있으니,

그것을 좀 가져다주게!”

 

수위는 링컨의 말대로 서류를 가지러 뛰어 갔습니다.

그런데 돌아와 보니 놀랍게도 대통령이

수위인 자기 자리에 앉아서

대신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아니, 각하께서 이렇게 하찮은 자리에

앉아 계시면 어떻게 합니까?”

 

그러자 링컨이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여보게, 무슨 말을 그렇게 하는가?

자네가 나를 위해서 대신 일 해주는데,

내가 자네 자리에 앉아서

대신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

무엇이 이상한가?”        (펀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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