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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0 40일이 지난 후

LNCK 2007. 9. 3. 21:09
 

◈40일을 지난 후                                    창8:6~12



◑성경에 나타난 숫자 40의 의미와 그 사례


▲40 - 준비, 고통, 방황의 시간을 의미

오늘의 본문은 “40일을 지나서...” 라는 말로 시작되고 있다.                          창8:6

성경에서 ‘40은 - 준비의 기간 혹은 고통과 방황의 시간을 의미하는 숫자’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방황의 기간이 40년이었고,

엘리야는 밤낮으로 40일 길을 걸어 하나님의 산 호렙에 도착했다.

모세도 40일간 시내 산에서 금식하며 율법을 전달 받았고,

이스라엘 12지파를 대표한 12정탐꾼도 40일간 가나안 땅을 정탐했다.


예수님도 40일간 유대 광야에서 금식하시며 사단과 영적 전쟁을 치르셨다.

오늘 본문도, 노아시대에 40일간 밤낮으로 호우가 내려 홍수 사건을 만들었다.


▲'40'이 지나면, 희망의 새출발이 있다. 

“물이 땅에서 물러가고 점점 물러가서 150일 후에 줄어들고...”

40일간 내린 집중호우가... 그 후에 물이 빠지는데, 150일 즉 5달이 걸렸다.

그 때가 10월 1일이었다.                                                                       창8:5


그리고 다시 40일이 지나간다.

40일을 지나서 노아가 그 방주에 지은 창을 열고

까마귀를 내어 놓으매 까마귀가 물이 땅에서 마르기까지 날아 왕래하였더라.                   8:6~7  


40일이 지난 후, 고난의 날이 지난 후, 드디어 새날이 밝아온다.

이런 뜻에서 ‘40’은 - 고통이 지나고 새 희망, 새로운 출발을 의미하는 숫자라고도

볼 수 있다. 

 

▲40일 만에 풀려난 아프간 피랍자

샘물교회 23명 아프간 피랍 사건으로, 우리는 어느 해보다 무더운 여름을 보냈다.

그런데 40일이 지나자, 거짓말처럼, 드디어 복음의 좋은 소식이 들려왔다.

두 명의 희생자를 내기는 했지만, 드디어 21명의 소중한 이웃들이 돌아온 것이다.


이번에 아프간에서 희생당한 두 분이, 그들이 아프간 땅에 흘렸던 뜨거운 피가,

사도행전의 순교자 스데반과 야고보처럼,                                          행8:2, 12:2  

한국 교회의 부흥의 불씨가 될 것을 믿고 기도드린다.


이제 이 사건의 막을 내리면서,

저는 지난 40일의 의미를, 노아와 그의 가족이 겪은 40일의 의미에 비추어

생각해 보고자 한다. 이 고통의 40일에서 배우는 레슨은 무엇인가?



◑1, 어떤 고통에도 ‘끝남의 시간’은 있다.  


▲기독교의 종말적 시간관

우리는 기독교의 시간관을 일컬어 ‘종말론적 시간관’이라 칭한다.

①모든 것은 시작이 있고, 동시에 ‘끝이 있다고 믿는다.’

(무한대로 끝없이 계속 진행될 것을 믿지 않는다.)


②그리고 그 끝은, ‘허무한 종말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완성’이라고 우리는 믿는다.


크리스천들도 불신자와 마찬가지로 동일하게

인생을 살면서, 고통과 시련의 밤을 지나보낸다.

그러나 저는, 그가 성경적 세계관을 가지고 사는 참된 크리스천이라면,

이런 고통과 시련을 견디는 일에 있어서 좀 더 강인할 수 있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든 고통에는 끝이 있고,

그 끝은 희망이고 완성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노아 시대, 뚜껑 열린 하늘에서 쏟아 붓던 장마 비도 때가 되니까(40일 후)

끝이 났다.

홍수도 때가 되니까(40일 후) 물러갔다.

 

틀림없이 노아 시대를 살던 사람들에게 그 장마는 도저히 끝날 것 같지 않았다.

온 지면을 덮던 창일한 홍수의 기세도 결코 꺾일 것 같지 않았던 범람이었다.


그러나 창8:2절에 보니,

깊음의 샘과 하늘의 창문이 닫히고 하늘에서 비가 그치매... 하지 않았는가!               창8:2

모든 것에는 반드시 ‘종말의 때’가 있는 것이다.


물이 땅에서 물러가고 점점 물러가서... 하지 않았는가!                                       8:3   

그 집어삼킬 듯 넘쳐나던 홍수의 기세도... 때가 되니 다 물러갔다.


▲하나님이 기억하신다.

혹시 여러분 중에, 도저히 끝날 것 같아 보이지 않는, 어두운 인생의 40일을

오늘 지나고 있는 분들이 계신가?

기억하시라! 그 비는 곧 그칠 것이며, 홍수도 때가 되면(40일 후) 물러갈 것이다.


이 모든 상황의 반전은 무엇 때문일까?

그 비밀은 창8:1절에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들짐승과 가축을 기억하사

하나님이 바람을 땅위에 불게 하시매 물이 줄어들었고...                                                 창8:1


여기에 비밀의 열쇠가 있다.

그것은 하나님이 기억하셨다는 것이다.


우리가 고통의 한 밤중을 통과할 때, 우리는 아무도 내 고통을 모른다고 말한다.

그 말은 일면 맞다. 아무도 내 고통을 알아주거나 대신해 줄 사람은 없어 보인다.

때로는 가까운 친구들도 욥의 친구들처럼 내 상처를 더 깊게 하는 자객이 될뿐이다.


그러나 단 한 분, 당신의 밤을 함께 아파하며 기억하는 분이 계신다.

그리고 그 분이 기억하고 계시기에, 이 고난은 때가 되면 반드시 끝나게 되어 있다.


▲기다리며 버티기

그러므로 조금만 더 견디시라! ‘40’이 곧 차게 될 것이다.

희망의 끈을 결코 버리지 마시기 바란다.


종종 이런 고통의 시간을 보낼 때,

기다리는 것 말고는 아무 것도 할일이 없을 때가 있다.


노아와 그 가족도 그랬다.

또 칠일을 기다려...                                                                                                       8:10


기다리다가 지치지 않고 또 기다렸다.

또 칠일을 기다려...                                                                                                       8:12

 

그렇다. 노아 가족들이 한 일, 우리가 할 일 -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것이다.

기왕에 기다릴 바엔 잘 기다려야 한다. 기도하며 기다려야 한다.

고난이 끝날 것을 확실히 믿는 믿음으로 기다려야 한다.



◑2. 고통 이후, 축복의 새날이 준비되어 있다.


▲고통이 지나면 새 날이 온다.

노아는 처음에 까마귀를 방주 밖으로 날려 보냈는데, 접족할 곳이 없어 되돌아왔다.

그 다음에 7일 후에 비둘기를 내 보냈는데, 감람나무 잎사귀를 물어왔다.

또 7일을 기다려 비둘기를 내 보냈는데, 아예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그때 비로소 하나님은, 노아에게 방주에서 나올 것을 명하신다.


너와 함께 한 모든 혈육 있는 생물, 곧 새와 가축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 이끌어내라

이것들이 땅에서 생육하고 땅에서 번성하리라                                                                 8:17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 하라.                                                                                  9:1


▲새 언약의 반지를 끼워주신다.

하나님은, 이제 새로운 번영의 시대가 도래 한 것을 선언하셨다.

비온 후에 맑은 날이 기다리듯,

환난 후에 축복의 새 날이 예비 되었음을 선언하시는 것이다.


그렇다. 인생의 비바람, 길고 지루한 홍수와 같은 역경의 시절이 지나가면,

주께서 저와 여러분을 위해 축복의 날을 준비하실 것을 믿으시기 바란다.


거기서 끝나지 않고 주님은, 그 시대를 사는 당신의 백성들이 또다시 그렇게

홍수로는 고통 받지 않을 것을 언약하고자 9:8절 이하에 보면,

하늘에 무지개를 걸어놓으시겠다고 하신다.


누군가 무지개를 이렇게 설명하는 것을 읽은 적이 있다.

무지개는 하늘 위에서 보면 완전한 둥근 원circle이라고 한다.

그런데 땅에서 보면 반원이다.


그래서 무지개는 하나님과 인간이 반반씩 나누어 낀 사랑의 반지라고 말이다.

그렇다. 이제부터는 새로운 허니문이 시작되는 것이다.

위에 계신 하나님과 우리사이에 허니문이다.


자, 노아 식구가 보낸 고통의 40일에서 배우는 교훈은 무엇인가?



◑3. 예배함으로 축복의 새 날을 열어야 한다.


▲노아, 새 시대를 여는 제물을 여호와께 바치다.

노아가 방주에서 나오자마자 제일 먼저 한 일이 무엇인가?

노아가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과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제물을 취하여

번제로 드렸더니...                                                                                                        8:20


그렇다. 노아가 방주에서 나오자마자 제일 먼저 한 일은

하나님을 경배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여기 새 날을 열기 위해서는 정결한 제물이 필요했다.


▲새 시대를 여는 데는 순교의 제물이 필요하다! ★★

저는 어떤 의미에서 이번 아프간 봉사에서 희생된 두 분은,

한국 교회의 ‘새 시대 선교의 장을 열기 위한 순교의 제물’이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지나간 역사 속에 있었던 모든 순교 사건들이 당시에는 비극이었다.

대동강변에 제너럴셔먼호를 타고 입국하다가 생명을 버린 토마스 선교사 사건도

당시에는 큰 비극이었다.

그러나 그의 희생으로 오늘의 한국, 그리고 한국 교회가 있었다면,

그의 희생은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열기 위한 거룩한 제물이 아니었던가!



▲(새 시대를 열기 위해) 내가 바칠 정결한 제물은?

그러나 이제 더 중요한 것은 아프간 선교단도 아니고,

토마스 선교사도 아닌 각자 우리 자신들이다.

내가 바칠 정결한 제물은 무엇인가?


이번 아프간 사건을 둘러싸고 교회 밖 사람들은, 홍수처럼 넘쳐나는 비난이 있었다.

제가 큐티 시간에, “주님, 이 엄청난 비난을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여쭈었다.


그 때 주님의 단순하고도 고요한 응답이 내 마음속에 세미하게 들려왔다.

‘네 마음은 알겠는데, 억울한 것은 내게 맡기고, 잘못한 것은.. 고치면 되지 않겠니?’


그렇다. 우리 모두가, 그리고 한국 교회가 (이런 엄청난 비난을 계기로)

자신을 돌아보고 새로워지는 계기를 삼을 수 있다면,

이런 회개운동이야말로, 우리가 그렇게 사모하는 ‘어게인 1907년 부흥운동’의

새 전기가 될 것이다.


우리의 이기심을 회개 드리자.

우리의 교만을 회개 드리자.

우리의 탐욕을 회개 드리자.

우리의 시기심과 질시를 회개 드리자.

우리의 허영심을 회개 드리자.

우리의 이중성을 회개 드리자.

가정에서, 직장에서 우리의 불성실을 회개 드리자.

우리의 거짓말을 회개 드리자.

정결한 제물로 우리의 남은 인생을 주께 드리자.

이것이 바로 거룩한 예배의 본질이 아니겠는가!


진실로 우리가 다시 거룩한 예배로 우리의 인생을 드리기 시작한다면,

노아시대 새로운 축복의 날을 여시던 주께서,

다시 한 번 이 땅에 그리고 한국 교회의 미래에

축복의 새 날을 열어 주시지 않겠는가!


▲「반성문」

「연탄 길」의 저자인 이철환 님이 최근에「반성문」이란 책을 펴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얼마나 많은 공감을 느꼈는지 모른다.

저도 많이 반성하고 회개했다.

그의 책은 이런 고백으로 시작된다.


지나온 삶을 돌아보면,

내가 받은 상처보다 내가 준 상처가 더 많았습니다.

나는 뒤늦게야 잘못을 뉘우쳤습니다.

마음은 아팠지만 뉘우침은 나를 밀고 갔습니다.

올바른 것도 진실이지만, 뉘우침도 진실이었습니다.

나를 버리지 않고는, 한 움큼의 진실도 얻을 수 없었습니다.

나를 부정하지 않고는, 한 걸음도 앞으로 걸어 나갈 수 없었습니다.


그는 그의 고백의 절정에서 이렇게 기도를 토해내었다.


하나님, 저는 나비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나방이 되고 말았습니다.

촛불 속으로 몸을 던지는 나방이 되고 말았습니다.


아내와 딸아이에게 혈기를 부리고, 막말을 하고,

죽이고 싶도록 제가 싫어 당신의 이름조차 모른다고 했을 때,

당신은 끝끝내 제 손을 놓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 저는 죄인입니다. 용서해 주세요.

저를 믿을 수 없어서 당신을 믿었습니다.


그렇다. 40일은 지났다.

우리가 만일 노아처럼, 이철환 님처럼

절절한 반성으로 회개의 무릎을 꿇고 주님을 경배하기 시작한다면,

우리는 오늘 저녁 해가 지기 전 무지개를 볼 것이다.

그 분과 우리의 새로운 사랑의 정표로 빛나는 언약의 무지개를 말이다.


<07.09.02. 인터넷 설교에서 발췌


[주제별 분류] 순 교 http://blog.daum.net/bible3/10007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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