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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3 바다를 주목하자

LNCK 2007. 9. 5. 09:20
 

◈바다를 주목하자                   눅21:25~28                  07.09.02. 옥한흠 목사님 설교 녹취



지구 종말의 징조는 바다에서부터 시작된다.

그것은 성경이 증거 하는 바요, 또한 과학자들이 지적하는 바이다.

깨어있는 성도는 바다의 변화를 유심하게 살피면서,

주님의 재림을 대비하는 삶을 살아야 된다는 주제의 설교문.



▲대단히 위험한 침묵

종말에 관한 설교 - 요즘 성도들 별로 듣기 좋아하지 않는다.

하기야 ‘세상 종말이 가까이 왔다’는 말을 반기는 사람은 드물다.


또한 교회가 지난 2천년 동안, 예수님이 재림하신다는 설교를 계속 해 왔지만,

아직도 예수님은 오시지 않고 계시다.

그래서 많은 성도들이, 이런 메시지에 면역성이 생겨서, 들어도 별 감각이 없다.


그 결과 요즘 교회에서는, 종말에 관한 메시지 듣기가 좀처럼 쉽지 않다.

사람들에게 별로 인기가 없으니까, 자연히 안 하게 된다.

이것은 대단히 위험한 침묵이라고 생각한다.


▲성경이 강조하는 “세상 종말과 예수님의 재림”

그러나 성경을 자세히 읽어보면,

세상 종말과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 성경은 결코 침묵하지 않는다.


신학자들에 의하면, 분량으로 따져볼 때, 성경 1/30 정도가

‘세상 종말과 예수님의 재림’에 관련된 말씀이라고 한다.


그리고 예수님이 베들레헴에 탄생하신 ‘초림에 관한 말씀’과 비교해 볼 때,

‘재림에 관한 예언의 말씀’은 8배나 더 많다고 한다.

그만큼 성경은, 세상 종말과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

쉬지 않고 우리를 가르치고 깨우친다.


특별히 예수님은 십자가를 앞두시고, 이제 가르치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집중적으로 세상 종말과 재림에 대해 제자들에게 가르치시고 경고하셨다.


그렇다면 교회가 어떻게 이 주제에 대해 계속적으로 침묵할 수 있다는 것인가?

우리가 ‘들어도 그만, 안 들어도 그만’ 이라는 식으로 생각한다든지,

‘듣기 싫은 주제니까 피하자’는 식으로 대처한다면... 대단히 위험한 태도이다.



◑바다를 주목하라


‘성난 바다’에 주의해야 한다

최근 저는, 눅21:25절 말씀이 강하게 인상적으로 다가옴을 느꼈다.

땅에서는 민족들이 바다와 파도의 성난 소리로 인하여 혼미하며 곤고하리라          눅21:25


전에는 이 말씀을 읽어도 아무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최근에 이 말씀 한 마디가, 제 마음 속에 딱 자리를 잡았다.


‘어떻게 온 세상 사람들이 바다로 인해 어려움을 겪을 때가 올 것인가?’

과거에는 읽어도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참 황당하고 현실성 없는 말씀이었다.


그런데 점점 그 말씀이 제게, 이제는 과거와는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아마 금년 들어, 과학자들이 세상 종말에 관해 경고하는 글들을

신문 지상을 통해 많이 읽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과학자들의 경고에 의하면, 세상의 종말은,

바다가 원인 제공을 한다고 한다.

즉, 바다가 말세 세상 종말의 진원지가 된다는 말이다.


그런 과학자의 증언을 토대로 눅21:25절을 보니,

그 말씀이 그저 장난이나 우연히 아닌,

매우 심각하고 두려운 말씀으로 제게 받아들여졌다.


제가 이 본문을 설교할 것인가 - 많이 망설였다.

그런데 성령께서 제게 이런 확신을 주셨다.

종말론에 관한 설교는 아직도 베일에 가려 있기 때문에

세상에 그 누구도 완전무결한 해석, 완전무결한 설교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분적으로 깨달은 것만큼만 설교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설교를 듣는 성도들이 깨어나, 말세를 준비하는 신앙을 가지게 된다면,

그것은 충분히 설교할 가치가 있다고 결론 내리게 되었다. 그래서 이렇게 설교하는 바이다.

  


▲종말에는 하늘과 땅이 변한다.

눅21:25절(↑)은, 재림 직전에 나타날 세상 종말과 예수님의 재림에 관한 것이다.

이 징조는 하늘에서 나타난다. → ‘일월성신에는 징조가 있겠고...’                        눅21:25

그리고 바다에서도 나타난다. 

반드시 꼭 ‘하늘이 먼저’ 순서적이라고 해석할 필요는 없다.


하늘의 일월성신에 나타나는 징조는 마24:29절에서 더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고,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고, 하늘의 영광이 흔들리리라                                                 마24:29


말만 들어도 공포가 엄습하는 무서운 징조이다.

그런데 이 ‘하늘의 징조’는 아직 현실적으로 우리 주변에 나타나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때가 되면, 한 순간에, 하루만에라도, 이런 징조들이 나타날 것이라고 본다.


땅에는 '민족들이'(=전 세계가) 바다와 파도의 성난 소리로 인해 혼란한 중에 곤고하리라

                                                                                                    눅21:25

온 세계 사람들이 바다에서 들려오는 성난 소리 때문에

‘심리적 공황 상태’에 빠지게 되리라는 예언이다.

그리고 바다 때문에 엄청난 고통을 겪게 된다는 것이다.

왜 그런가?


바다가 변하고 있다는 과학자들의 증언.

지금 바다가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온이 상승하면서 각종 기상재해와 이상기후를 만들어 내고 있다.) 

성난 파도소리 - 옛날에 들은 파도 소리가 아니다.

세계를 불행에 빠뜨릴 수 있는 공포의 바다 소리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인류의 미래를 염려하는 과학자들은, 지금 그 시선을 바다에 주목하고 있다.

바다를 살려야 지구가 안전하다는 소리를, 지금 우리는 귀가 아프게 듣고 있다.


국제기후변화위원회는 앞으로 7~80년 안에,

전 세계 해안의 30%가 바다 속에 잠기게 될 것이라 예측했다.

해안도시 1/3이 물에 잠기게 될 것이라고 한다.

이렇게 될 때, 뉴욕 시, 그리고 방글라데시는 엄청난 타격을 받을 것이다.


지금 우리가 실감나게 겪는 기상이변, 폭염, 수퍼 태풍, 게릴라성 집중 호우,

지진해일(쓰나미) 등으로 인해 생태계 파괴는 물론

엄청난 인명 피해를 지금도 당하고 있지만, 앞으로 더할 것이다.


이런 재난은 그 규모가 너무 커서

그 파괴력과 피해가 거의 핵무기에 맞먹을 정도라고 한다.

수년전 인도네시아의 지진해일로 인해, 한 순간에 30만 명이 사라지지 않았는가!


지금 북극과 남극의 빙하가 점점 녹고 있다.

그런데 그 속도가 지금 너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지금으로서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어서

손놓고 바다만 바라보고 앉아 있을 수밖에 없다’고 과학자들은 말하고 있다.


초조한 과학자들은 ‘지구 종말 5분전’

또는 ‘지구를 살리는데 남은 기간은 8년 밖에 없다’는 말을 공공연히 하고 있다.

우리가 지금 무서운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을 인식할 수 있다.


이런 과학자들의 말이 놀랍게도 눅21:25절에 나타나는 주님의 예언과

결코 무관할 수 없다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이 말씀이 가까운 장래에 현실로 나타날 것이라고 지금 예측하고 있다.



▲무관심한 교회

교회가, 이런 말세의 징조를 코앞에 두고, 한가한 말씀만 전하면 되겠는가?

예수를 믿지 않는 과학자들도 말세가 가까웠다고 야단들인데,

교회는 오히려 잠잠하고 있다니... 안 될 말이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대비할 것인가?


물론 전 세계가 힘을 합해서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여야 한다.

그래서 지구 생태계를 보전해야 한다.

이런 노력도 물론 병행해야 하지만

기독교적으로,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데...(↓)



◑말세가 될 수록 “잠자는 신자”가 많아진다.


▲징조를 살피는 이유 - 잠자지 말고, 깨어 있기 위함!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고 깨어있으라 하시니라                                              눅21:36

물론 예수님은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여라’는 말씀은 안 하신다.

예수님 경고의 궁극적인 목적은 예수님의 재림이다.


그 재림을 앞두고 지금 바다에서 징조가 일어나고 있다.

우리가 이런 ‘징조’들을 주의 깊게 살피는 이유는

- 항상 기도하고 깨어있기 위함이다.


‘깨어있으라’는 말씀은, 주님이 세상 사람들 보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그들은 영적으로 잠자고 있어서, 무슨 말을 해도 도무지 귀에 안 듣는다.

‘깨어있으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자녀들, 교회 안의 성도들에게 하시는 말씀이다.


마땅히 깨어있어야 할 시간에, 의외로 잠자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이

- 말세의 한 특징이다.

10처녀의 비유에 보면, 절반 50%가 잠자고 있다.

그런 위험한 상황이 올 수 있기 때문에, 예수님은 ‘깨어있으라’고 경고하신다.


▲1. 술 취함, 방탕함, 쾌락에 잠자는 신자 (부자들)

깨어있다는 것은 - 세상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조심하며 산다는 뜻이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 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눅21:34


우리는 자칫 잘못하면, 방탕함과 술 취함에 마음이 빠져버린다.

세상 쾌락과 세상사는 재미에 푹 빠져 있으면 안 된다.


여러분, 성공해 보시고, 돈 좀 벌어보시라!

하고 싶은 것을 다 할 수 있는 능력이 여러분에게 있다고 한 번 생각해 보시라.

많은 사람들이 여러분을 칭찬하고, 부러워한다고 한 번 가정해 보시라.


모든 것이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을 때,

나도 모르게 방탕하지 않는다고 누가 자신할 수 있겠는가?

술에 안 빠진다고 과연 자신할 수 있겠는가?

즐기고 쾌락을 누리는데 관심을 갖지 않는다고... 과연 그렇게 자신 하겠는가?


돈이 두둑하고 성공하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그리로 빠져버리기 쉽다.

그렇게 세상사는 재미와 쾌락에 푹 빠지는 것도 - ‘잠자는' 것이지만

가난한 자들에게는 색다르게 '잠 자는' 이유가 있다. 


▲2. ‘생활의 염려’로 잠자는 신자 (빈자들)

반대로 빈자들은 세상의 생활고의 염려로,

이들은 밤낮 생활고를 염려하는 일에 마음을 온통 다 빼앗겨 버리며 산다.


부자에게 '방탕함과 쾌락'이 문제라면,

가난한 사람에게는 '생활의 염려'가 문제다.

말세에 이렇게도 ‘잠잘 수’ 있다. 즉, 점점 ‘마음이 둔해 진다’는 것이다.


▲3. 일상생활에 빠져서 잠자는 신자 (중산층)

눅17장에 노아시대 사람들은 홍수 때문에 망했는데, 예수님은,

홍수가 나는 그날까지 사람들은 먹고 마시며 장가가고 시집가고 하다가

홍수가 나서 저희가 다 멸망할 때까지 ‘마음이 둔해지고 잠자고 있었다’고 하셨다.

                                                                                                     눅17:27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그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경고하셨다.


우리가 먹고 마시고, 열심히 돈 벌고, 자녀 잘 키우고,

장가가고 시집가는 것 - 뭐가 잘못인가?


다 주님께서 허락하신 일이고, 성도들이 최선을 다해서 해야 될 일 아닌가!

그러나 여기에 나도 모르게 홀랑 정신이 빠져버리고

말세의 징조에 대해 관심도 없고,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 관심도 없으면

그것도 우리를 잠자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이다.


▲말세불감증 신자들

잠자는 신자의 상태를 가장 잘 보여주는 예가, 소돔 성에 살던 롯의 사위들이다.

지금 당장 하늘에서 유황불이 떨어져 소돔 성이 멸망당할 것을 예언 받아도,

그들은 빨리 피하기는커녕 농담으로 여겼다. 그래서 유황불에 타 죽었다.


‘잠자는’ 사람들의 반응은 - 아무리 심각한 말을 해도.. 절대 자기 귀에 안 들린다.

요즘 말에 ‘안전 불감증’이란 말이 있는데, 한 마디로 ‘말세불감증’이다.


몇 십 년 후에 해안가 저지대가 침수 한다는 경고를 듣고도

사람들은 해안가에 ‘자유무역센터’를 지으려 하고 있다.

그러니까 ‘설마 진짜 그런 일이 일어날까?’ 하는 태평한 마음들인 것이다.




◑깨어 있으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경건의 훈련이 필요하다.


위엣 것을 찾으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에 것을 생각지 말라                                       골3:21

내가 내 마음을 세상에 주지 않으려면

마음을 ‘위에’, 즉 하나님 나라와 재림의 소망 등에 갖다 두어야 한다.


제가 경험해 보니까, 이것은 신앙이 있다고 결코 자연스럽게 되지 않는다.

가만히 있는데 되지 않더라.


아무리 중생한 신자라도, 목사라도, 인간의 부패한 본성이 아직 남아있다.

그래서 가만히 놔두면, 우리 마음은 항상 중력의 법칙에 따라... ‘아래’로 흘러간다.

나도 모르게 세상 쾌락, 정욕, 욕심을 따라간다는 뜻이다.


이렇게 아래로 흘러가기 쉬운 마음을 위로 끌어올려야 한다.

물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수고스럽게 펌프질을 해야 하듯이

거기에는 ‘경건의 훈련’이 필요하다.


여러분, 세상의 중요한 일 치고, 훈련 없이 되는 일 보셨는가? 없다.

언어 공부, 체력 단련 같은 일도 쉽게 되지 않는데,

‘마음을 하나님께 두는 영적 삶’은 - ‘내 몸을 쳐서 복종시키는 훈련’이 필요하다.

이것을 제대로 할 때, 세상으로 흐르는 마음을 ‘위엣 것을 찾게’ 할 수 있다.


그럼 경건의 훈련은, 실제로 어떻게 할 수 있는지 3가지만 생각 해 보자.


▲1. 고독 훈련

현대 사람들은 너무 바쁘고 정신없이 산다.

내가 사는 세상 분위기가, 마음을 세상에 두고, 자연히 세상일에 골똘하게 만든다.


보통 현대인들은, 아침에 기도 약 5분 드리고 나오면,

그 다음부터는 정신없는 일과를 숨 가쁘게 살아간다.


너무 바쁘기 때문에, 우리는 반대로 고독, 침묵, 묵상 훈련이 필요하다.


고독은 하나님과 독대하는 자리를 만든다.

현대인은 너무 바쁘므로, 억지로 이렇게 독대하는 시간을 내는 훈련이 필요하다.


많은 사람들과 만나며 네트워킹을 하되,

동시에 혼자 하나님과 독대하며, 대화하며, 그 시간을 즐기는 훈련이 필요하다.


▲2. 침묵 훈련

침묵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원하는 기다림이다.

사실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고 사는 신자들이 너무 많다.

가장 소중히 여겨야 할 일을, 가장 무시하고 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원한다면 - 침묵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


입만 열면, 쉬지 않고 중얼거리며 기도하는 습관보다는

침묵하면서도 기도에 집중하는 훈련도 필요하다.

그 때 하나님의 음성이 내 귀에 들리기 때문이다.


우리의 친구관계에 있어도, 만나면 90% 자기 혼자 떠들고

내게 말할 기회를 주지 않는.. 말 많은 사람도 있다.

그러면 차츰 그런 사람과 만나기 싫어진다.

 

마찬가지로 하나님도, 내가 만나기 싫어지면 안 된다.

그러면 기도시간에 침묵할 줄도 알아야 한다. 들을 줄도 알아야 한다. 

그 음성을 귀담아 듣는 훈련도 필요하다.


▲3. 묵상 훈련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어떤 말씀을 마음에 담고,

조용히 되새기며, 그 말씀을 통해서 내 영혼의 양식을 삼는 작업이다.


이렇게 고독, 침묵, 묵상

말세에 잠자지 않고 깨어 있기 위해서

신자들에게 꼭 필요한 ‘경건의 훈련’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직업을 포기하고, 수도원에 들어가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제 경험으로 봐도, 성경 암송은 매우 좋은 경건의 훈련이다.

한 번, 하나님의 말씀을 24시간 틈날 때마다 혼자 중얼중얼 해 보시기 바란다!

수시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암송하는 훈련을 해 보시기 바란다!


말씀을 암송하는 시간은, 내가 하나님과 단 둘이 만나는 독대의 시간이다.

말씀을 묵상하는 시간에, 나도 모르게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그 순간에 나는, 그 말씀을 통해서 주시는 은혜를 흠뻑 내 영혼에 담게 된다.


달라스 윌라드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영적인 훈련 가운데 하나만 골라서 하라면, 나는 주저 없이 성경암송을 택하겠다.

성경암송은 우리의 생각을 꼭 필요한 것을 채워주는 기본적인 방법이 되기 때문이다!


성경암송은 내 마음과 생각에, 쓸데없는 잡동사니가 아니라,

꼭 필요한 것만 넣도록 채워준다.

세상에서 살다보면, 우리 마음과 생각에 너무 많은 잡동사니, 쓰레기가 들어온다.

그러나 잠시 시간을 내어 말씀을 묵상하는 훈련이 된 사람은,

무엇보다 자기 마음을 항상 정돈하고, 꼭 필요한 생각들로만 채우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세상 유혹, 땅의 것에 끌려가지 않게 된다.

우리 영혼이 물가의 심겨진 나무처럼 싱싱하게 되는 것이다.


▲제가 최근 암송하는 말씀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므로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로다.

이러므로 내 마음도 기쁘고 내 영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거하리라.               시16:8~9


이렇게 말씀을 늘 묵상하면,

그 말씀이 내 마음을 단단히 지켜주므로

세상이 나를 유혹하지 못 한다.


우리가 하나님과 가까워지면, 세상과는 멀어지고, 내가 영적으로 강해진다.

반면에 내가 하나님과 거리가 점점 멀어지면, 세상과는 금방 거리가 가까워진다.

그리고 내 마음을 지킬 수 있는 영적 힘은 점점 약해진다.


그래서 세상을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래서 고독, 침묵, 묵상을 통해서 나와 하나님과 거리를 최대한 단축해야 한다.

‘지근거리에 계신 하나님’을 뵈어야 한다.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 하나님을 지근거리에서 만난다는 뜻이다.


다시 한 번 정리하면,

이 말세에 (富者는) 방탕함과 술취함으로, (貧者는) 생활의 염려로,

모두가 마음이 둔해지고, 영혼이 잠자며, 주님의 재림마저도 기다리지 않는 때에

어떻게 하면 깨어있을 수 있는가?


그것은 혼자 산책을 하며 주님만 생각하며 고독하고,

조용히 침묵하며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또한 잠시라도 틈만 나면 말씀을 묵상하는 중에 하나님을 내 앞에 모시는 것이다.

한 번 실행해 보시기 바란다.



◑바보 되는 것을 두려워 마시라



▲바보가 되어야 한다.

우리가 이렇게 온 세상 사람들이 잠들어 있는 세상에서

자기 혼자 깨어 있으려 하면 바보 되기 십상이다.


교회 안에서도 교제해 보면, 잠자는 사람들이 수두룩해서

날마다 만나면 온통 돈 버는 이야기, 집 사는 이야기로 무성하다.

이런 상황에서 자기 혼자 ‘나는 바다를 바라보며,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며

깨어 있으며 산다!’ 하는 사람은 웃음거리 되기 딱 알맞다.


▲바보가 되었던 노아

그때 우리는 노아를 묵상해야 한다.

노아는 마른하늘에 홍수가 난다고, 방주를 지은, 그것도 120년(이견 있음)동안이나,

그래서 장장 수십년 이상을 바보요, 희대의 비웃음거리로 살았던 사람이다.

그러나 결국은 노아가 현명한 사람이었다.


▲최근 ‘바보’가 된 사람들

아프간에 피랍되었던 형제자매들이 드디어 무사히 돌아왔다.

그동안 거기서 말로 다 할 수 없는 고생을 한 그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특별히 희생당한 두 분을 생각하면 가슴이 매인다.


(정부와 국민에게 큰 부담을 안겨 준 것은, 한국 교회가 머리 숙여 빌어야 한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조심해야 한다.)


그렇지만 다른 한편으로 볼 때, 그들은 예수와 복음을 위해

바보가 되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그들을..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

보시라, 지금 그들은 세상 사람들 앞에 바보 되지 않았는가!


다들 휴가를 즐기는 무더운 여름철에, 자기 휴가 내서, 자기 돈 써서

환경이 열악한 아프간으로 날아간 사람들.. 바보다.


왜 거기에 갔는가? ‘사랑으로 봉사하면 그 불쌍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틈새가 생기지 않을까?

그래서 한 영혼이라도 구원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인도하시지 않을까?’

라는 단순하고 소박한 마음을 가지고 달려간 것이다.


그들 중에는 몸이 불편하지만, 간 사람도 있었다.

갑상선 수술을 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지만, 달려간 사람도 있었다.

그 가운데는 신혼의 단꿈에서 깨어나지 못한 사람도 있었다.

한참 신혼부부가 즐겁게 살아야 할 시간에, 남편 버리고 달려간 여자도 있었다.


불신가정이 다 반대하는데도 간 청년들이 있었다.

심지어는 어린 자녀들과 남편을 떼놓고 간 부인들도 있었다.

정신 나간 사람들(바보)이다.


오해하지는 마시라,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는 모든 삶이 다 하나님께 드리는 거룩한 제사이다.

그래서 여름휴가를 가서 쉬는 것도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재미있는 오락을 가지고, 휴가를 즐기는 것도 물론 하나님이 기뻐하신다.

가족들과 오순도순 시간을 만들어 한 여름에 여가를 즐기는 것도 좋은 일이다.


그러나 깨어있기 원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일상적이 삶에만 매달려 있지 않는다.

그렇게 살면 좋긴 한데, 참 만족 없고, 어딘가 한쪽이 비어있는 듯한 느낌 받는다.


그럴 때는, 얼마간 시간을 떼어서 특별한 소명에 몸을 던질 수 있다.

주님이 가라고 하시는 곳이면 달려가는 것이다.

위험한 줄 알고, 고생이 될 줄 알면서도 바보처럼 달려가는 것이다.

아프간에 간 형제들이 그래서 달려간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 그들은 온 세상 앞에, 그리스도를 위한 바보가 다 되어버린 것이다.


▲바보가 될 각오를 하시라

여러분, 지금 우리는 모두가 다 잠자고 있는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에,

나만이라도 깨어있기 원한다면, 그리스도를 위하여

기꺼이 바보가 될 각오도 해야 한다.


세상 사람들에게 오해를 받기도 하고, 욕을 먹기도 하고,

바보 같다는 말도 들어야 한다.


독일 교회의 양심이요, 순교자였던 본회퍼 목사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세상 앞에서 그리스도의 바보가 되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사람은

값없이 은혜로 구원받았다고 이야기할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주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다.

그래서 우리는 바보가 될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다.

바보가 되어서라도 말세에 깨어있는 것이 중요하다.


▲돌발적으로 일어난다.

주님은 반드시 오신다.

재림은 속히 오리라의 긴박성,

도적같이 오리라의 돌발성을 내포한다.

언제든지 돌발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이요,

예상치 못한 순간에 찾아올 수 있는 사건이다.


재림은 가장 위대하고 영광스러운 이슈가 될 것이다.

구름을 타시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시는 주님을, 우리는 보게 될 것이다.

온 세상이 보게 될 것이고,

(십자가의 주가 아닌) 승리의 주, 심판의 주로 찾아오실 것이다.

그래서 공중에서, 거룩한 주님의 백성들을 영접해 주실 것이다.


잠시 잠간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히10:37


▲재림에 깨어 있는 사람은, 바다를 주목해야 한다.

우리는 그 주님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말세의 징조인 바다를 주목하시라.

바다로부터 시작되는 혹독한 재난을 우리가 당할지 모르지만

분명히 알아둘 것은, 그 재난들은 예수님의 재림을 예고하는

확실한 징조가 된다는 사실이다.


여러분은 지금 세상에 푹 빠져서 살다가, 주님이 도적같이 재림하실 때

가슴치고 통곡하는 패자 인생이 될 것인가?

아니면 마음을 높이 하나님께 두고, 준비하고 깨어 있으면서 살다가

구름타고 오시는 주님을 만났을 때, 하나님을 찬양하며 주님과 함께 웃는

승자가 되기 원하시는가?


인생의 진정한 승리는, 마지막에 누가 웃느냐에 달려 있다.

재림하시는 주님과 함께 웃는 축복, 영원히 웃는 축복을 우리가 누리시기 바란다.


그렇게 하려면, 바다를 주목하시기 바란다!

바다를 주목하면서, 우리 모두가 깨어 있어야 할 것이다.


<07.09.02. 인터넷 설교에서 녹취 *원제목 : 바다를 주목하자,  눅21:25~28, 34~36



남들이 세상모르게 다 잠들어있는 꼭두새벽에 일어나

하늘을 올려다보신 적이 있습니까?

홀로 깨어있는 체험을 해보는 것, 정말 좋은 일입니다.

더욱 금상첨화인 것은 홀로 깨어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냥 홀로가 아니라, 하나님 안에 홀로입니다. 그분과 나 둘이 함께 있는 것입니다.

(펀 글) 

 

[주제별 분류] 종말과 내세  http://blog.daum.net/bible3/1269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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