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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9 결과보다는 동기

LNCK 2007. 12. 4. 20:55
 

◈결과보다는 동기                         갈6:6~10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갈6:8

 

오늘 나는 육체적 동기로 심습니까, 아니면 성령의 동기로 심습니까?

동기가 순수하면, 결과가 화려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주제의 글. 

 

 

◑결과지상주의 사회

 

▲사람은 일이 잘 안 풀리면... 쉽게 낙심합니다.

사람이 살다보면 잘 될 때가 있는가 하면 안 될 때도 있습니다.

신앙생활도 잘 될 때가 있는가 하면 안 될 때도 있는 법입니다.

좋은 일만 있을 때, 혹은 신앙생활이 잘 될 때에야 무슨 문제가 있겠습니까마는

정작 우리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은 뭔가가 <안 될 때>입니다.

 

바로 이때 가장 먼저 찾아오는 반갑지 않은 손님은 낙심입니다.

 

여러분 중 혹 좋은 일을 좋은 동기로 시작했다가

다른 사람에게 오해받고 그 일을 포기한 후

‘내가 그 일을 괜히 시작했지...’ 라고 후회해본 적이 있습니까?

 

주의 일에 뭔가 해보려고 뛰어 들었다가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차츰 그 일이 부담스러워져

마침내 뒤에 처지면서 ‘내가 왜 이 일을 시작했던고!’

하는 후회를 해본 적이 있습니까?

 

낙심이 주는 해악은 또한 무엇이며,

우리는 어떻게 이 낙심이라는 병을 치료할 수 있겠습니까?

 

▲결과가 저조할 때도 낙심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를 가히 결과주의 시대라 말할 만큼

사람들은 결과만을 추구하며 살고 있습니다.

결과가 무엇이냐? 어떤 업적을 남겼느냐?

-이것이 경쟁사회의 실태입니다.

 

더구나 이런 경쟁 속에서 어떤 좋은 일을

좋은 의욕과 좋은 동기를 가지고 시작하지만

결과가 없을 때 낙심하고 맙니다.

 

땀은 흘렸지만, 의욕을 가지고 부딪쳐 보았지만, 노력했지만...

결과가 없을 때 낙심 속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결과보다는 동기!

 

그러나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가 행하는 그 일의 결과보다

동기를 더 소중히 여기시는 분임을 잊지 마십시오.

 

따라서 하나님의 관심은 결과보다 동기에 있습니다.

육체를 위하여 심느냐? 성령을 위하여 심느냐? 갈6:8

본문의 핵심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무엇을 위하야 심느냐? 네 동기가 무엇이냐? 는 것입니다.

 

좋은 동기로 시작한 일은 좋은 결과를 맺게 되어 있습니다.

때문에 좋은 동기를 갖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왜 여러분들이 하는 일에 육신적인 결과가 나타납니까?

육신의 동기에서 출발했기 때문입니다.

 

▲내가 예수 믿는 동기는 과연 무엇입니까?

예수 믿는다는 것처럼 좋은 일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왜 사람들이 예수 믿다가 낙심 합니까?

예수 믿는 동기가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소원성취 사업성공, 육신건강...을 목적으로 예수를 믿었다면

이런 것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낙심하게 되는 것입니다.

 

만일 성경적 동기인 구원받기 위하여 예수를 믿었다면

그 사람은 결코 낙심하지 않을 것입니다.

 

▲교회 봉사도 그렇습니다.

매년 초 교회 내에서 직분을 맡지만,

몇 개월이 지나면 낙심자가 생기고 맡겨진 일을 소홀히 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왜 이런 일이 나타납니까? 역시 동기의 문제입니다.

내가 왜 충성, 봉사합니까? 나의 동기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인정받기 위함입니까? 사람에게 인정받기 위함입니까?

사람에게 인정받기 위함이었다면

낙심 은 너무나 당연한 결과입니다.

 

▲헌금을 드리는 문제도 그렇습니다.

어떤 사람은 헌금을 드림으로 은혜 받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드린 것 때문에 낙심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왜 낙심합니까? 바로 동기의 문제입니다.

내가 축복받기 위해서 드립니까?

성경은 그러한 동기를 육체적 동기라고 말합니다.

 

물론 헌금을 드리면 축복이 옵니다만

헌금의 일차적 목적과 동기는,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에 감사해서,

또한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기 위해서 입니다.

무슨 주식투자처럼, 내가 헌금을 드렸으니

‘이제 적어도 몇 배로 갚아주시겠지...’ 하는 것은

잘못된 상업적 투기와 같은 동기입니다.

 

내가 드리는 헌금은, 주님께 나의 자발적 사랑의 표현입니다.

give and take의 목적으로 드리는 헌금은

주님이 기쁘게 받지 않으실 것입니다.

 

오늘날 왜 많은 성도들이 헌금에 대해 시험에 빠져 있습니까?

우리는 헌금의 동기를 올바르게 설정해야 하겠습니다.

 

▲그럼 기도는 어떻습니까?

기도도 그렇습니다. 처음에는 응답의 확신을 가지고

기쁜 마음으로 기도를 시작합니다.

의욕을 가지고 작정기도도 하고, 철야도 하고, 기도원도 가보지만

시간이 지나도록 기도의 결과가 나타나지 않을 때,

거기서 바로 낙심 속으로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에 대해서도 순수한 동기를 가지고 계십니까?

기도에 대해서도 동기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왜 기도하십니까?

하나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하십니까?

아니면 내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하십니까?

그리고 여러분의 뜻과 하나님의 뜻이 일치됩니까?

내 기도의 동기가 육체를 위하여 심는 기도일 수도 있습니다.

 

▲동기가 순수하면, 결코 낙심하지 마십시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순수한 동기를 가지고 계십니까?

그렇다면 낙심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이미 여러분의 동기를 보시고

채점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동기를 추적하십니다.

결과보다 동기에 더 큰 비중을 두고 계십니다.

 

오늘 여러분의 동기는 무엇입니까? 그 동기가 순결하다면

당장에 내가 기대하는 결과가 얻어지지 않아도

하나님이 나를 인정하시고, 나를 기쁘게 열납하신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성 어거스틴의 유명한 말을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라.

그리고 모든 것을 네가 알아서 하라!”

얼마나 멋진 말입니까?

 

내가 하나님을 참으로 사랑하는 순수한 동기로 어떤 일을 할 때

그 일은 잘못될 수 없다는 말일 것입니다.

 

혹 낙심하고 계신 분들은 다음 9절 말씀을 들어 보시고

새 힘을 내십시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갈6:9 아멘.

 

<1991.01.21. 이원희 전도사님(91년 당시) 설교 인터넷에서 발췌 정리.

 

 

◑최선을 다 하되, ‘결과’까지 책임질 필요는 없다.

 

어떤 사람에게 마음의 평안이 있냐하면..

“내가 하는 모든 일에 대해서, 결과까지 내가 다 책임지겠다.”

이런 마음을 갖지 않는 사람에게, 마음의 평안이 있습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무책임하게 살라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맡은 일에 대해 최선을 다하되

잘 안될 것 까지 염려하는 이 강박적인 생각에서 벗어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최선을 다해 노력했는데, 아무 성과가 없으면 참 낙망되지 않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최선을 다해 복음을 증거하고 위로부터 능력을 덧입어라.

끝에는 하나님께서 책임지신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꼭 크고 화려한 결과까지 책임지라고 우리에게 명하지 않으셨습니다.

 

교회 사역, 직장, 학업, 회사의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것들을 내가 잘 수행해서 화려한 결과를 얻으려면

얼마나 신경이 많이 쓰입니까?

 

그러면 마음에 평안이 없다는 것입니다.

 

내 능력 밖의 일이나, 내가 하려고 해도 잘 안 되는 것은

내가 연련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돈 버는 것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사업도,

돈 버는 것도 결국 하나님께서 주셔야 잘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결국 일의 끝, 결과는 하나님 앞에 내려놓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고시 준비를 한다고 할 때, 최선을 다해 공부하는 것은 사람의 몫이고,

결과는 하나님이 몫이라는 거예요.

사업을 하는데 최선을 다해 뛰는 것은 내 몫입니다.

하지만 사업을 통해 하나님께서 물질을 부어주시고

끝까지 완주할 수 있는 것은 결국 하나님의 영역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내가 열심히 뛰는 데 까지는 뛰고, 그 이후 모든 결과

결국 하나님께서 책임져주신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펀 글)

 

[주제별 분류] 삶의 통찰력 http://blog.daum.net/bible3/13409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