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 계2:9
▲크리스천으로 살다보면... 궁핍할 때가 있다.
남들은 적당히 세금을 내는데, 크리스천은 가급적 정확히 냅니다.
남들은 자기가 번 수입으로 호사를 다 누리는데,
크리스천은 십일조에, 선교헌금, 구제헌금 다 내면... 궁핍하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날 크리스천으로 사느라,
남들처럼 좋은 음식 못 먹고, 좋은 옷 못 사 입고, 좋은 차 못타는 사람이
부지기수입니다.
금년에도 여러분이 낸 헌금 다 합치면, 해외여행 몇 번은 다녀왔을 것입니다.
금년에도 여러분이 세상 사람들처럼 물질 문제로 다투었다면
지금보다 은행 잔고가 더 많을 것 입니다.
▲서머나 교인들의 환란과 궁핍
서머나 교인들은, 네로 황제에 이은 도미시안 황제 치하에서
사회에서 부당한 불이익을 당할 때였습니다.
당시 크리스천들은 사업을 몰수당하기도 했고,
사업과 가정을 꾸려나가던 고향에서 하루아침에 쫓겨나 도피하기도 했습니다.
▲주님의 위로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 계2:9
서머나 교인들에 대한, 예수님의 위로는, “내가 다 안다”는 것이었습니다.
‘주님이 시작과 과정과 끝을 다 보고 계신다!’ 입니다.
예수님이 '다 아신다'는 말은 그들이 당하고 있는 환난과 가난의 삶을
‘알지만 허용하셨다’는 사실을 말합니다.
▲내가 주님을 몰라주고 있다.
선교지, 오지에 있는 선교사들은 ‘자기를 아무도 몰라준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공부방, 무료급식 등 구제하시는 분들도 ‘자기 사역의 고생을 아무도 몰라준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호스피스, 군경선교, 문서선교 하시는 분들도 비슷한 생각을 가질 수 있습니다.
크리스마스 때가 가까우면 더욱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내가 주님 마음을 몰라주는 것’입니다.
주님은 ‘네 환란과 궁핍을 안다’고 말씀하시는데,
반대로 나는 ‘아무도 나를 몰라준다!’고 항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개척교회를 섬기는 목회자의 수고를 다 알고 계십니다.
주님은 개척교회를 섬기는 성도님들의 수고를 다 알아 주십니다.
주님은 내가 금년에도 남몰래 주님을 섬긴 것을 다 알고 계십니다.
섬길 때 생기는 내 눈물, 내 한숨, 내 탄식, 내 애타는 마음도 다 알고 계십니다.
▲신앙생활 잘 해도 환란, 궁핍할 때가 있습니다.
이 상황 속에서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점이 하나 있습니다.
그렇게 훌륭한 신앙을 가졌던 서머나교회라면, 책망은 없고 칭찬만 있었던 교회라면,
왜 하나님께서 저들을 극한 환란과 궁핍가운데 내버려 두셨을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면 만사가 형통해야지 왜 어려움 옵니까?
믿지 아니하는 사람들이 볼 때 뭐라 하겠습니까?
그렇게 의리 없는 하나님이라면 믿을 필요 없다고 할 것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은 죽은 하나님이라고 손가락질 하지 않겠습니까?
롬8:28~39절에도, 바울은 신자가 환란을 당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롬8:35
그러나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롬8:28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롬8:37
▲남편의 수고를 알아주는 아내
어느 넉넉하지 못한 신혼부부가 있었습니다.
남편은 건축현장에서 하루 종일 노동하는 근로자입니다.
하루는 남편이 일이 밀려 야간작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남편이 밤늦도록 위험한 곳에서 일하는 모습을 생각하니까
아내는 편히 잠이 오질 않습니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따끈한 커피를 끓여 보온병에 담아
남편이 일하는 현장에 찾아갔습니다.
그리고는 남편과 동료들에게 한잔씩 차를 나누어 주고는
다정한 목소리로 남편에게 이렇게 격려합니다.
“여보, 참 힘들지요? 몸조심하시면서 일하세요.”
그러나 남자들이 다 그렇듯이 속으로는 좋으면서
겉으로는 무뚝뚝하게 “뭐 하러 밤늦은 시간에 여기에 왔소?
밤이슬도 찬데 빨리 들어가시오!” 라고 퉁명스럽게 말합니다.
그러나 아내는 남편의 속마음을 아는지라 빙그레 웃으면서 말하기를
“내 염려는 하지 말고 당신이나 조심하며 일하세요. 곧 돌아 갈께요!”라고 말합니다.
그 때 이 남편의 마음이 어떠하겠습니까?
하루 종일 일하고 피곤한 지금, 사랑하는 아내가 가지고 온 차 한 잔 마시고 나면
새 힘이 솟는 것 아닙니까! 괜히 아내가 자랑스러워질 것이고
이 세상에서 자기가 가장 행복한 남편이라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새 힘에 북 받혀 더 열심히 일하지 않겠습니까!
▲아내의 고생을 알아주는 남편
때로는 시어머니에게 책망을 듣기도 하고, 눈치도 봐야 하고,
때로는 손아래 시누이에게 자존심 상하는 말도 들을 때도 있습니다.
그리고 손아래 동서의 질투 섞인 억지 훈계도 들어야 하는 억울한 때도 있는가 하면
자신이 세운 공을 가로채일 때도 있습니다.
어떤 집은, 부부가 열심히 벌어서, 시댁 빚 갚아드리느라 정신없는 집도 있습니다.
그 때 남편이 아내의 손을 잡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여보, 오늘 수고 참 많았지? 우리집안을 위해서 희생하는 당신이 참 고맙구려.
내가 당신 고생하는 것 다 아니까 조금만 참구려!” 위로하고
다리를 주물러 주거나 안마를 해줄 때, 그 모든 응어리가 확 다 풀리지 않겠습니까!
서머나 교인들이 예수님께 받은 위로가
바로 그런 것이었다고 생각됩니다.
바로 이 말씀 한 마디에 서머나 교인들은
환란, 핍박, 투옥, 경제적 불이익, 이것들을 다 이기고 남는 큰 위로가 넘쳤을 것입니다.
◑적용
▲1. 죽도록 충성하라.
나는 ‘주님이 나를 통 몰라주셔!’라고 섭섭해 하겠지만,
사실은 내가 ‘오늘도 나를 알아주시는 주님’을 통 모르고 삽니다.
‘주님이 나를 알아주시는 것’을 실제로 내가 깨닫고 느끼는 것도
- 내가 상당한 신앙의 경지에 올라가야 합니다.
우리 신앙의 선배들은, 주기철, 손양원 목사님은 아래 구절을 18번으로 외우셨습니다.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계2:10
주님이 자기를 알아주시는 성도는, 신세타령하지 않고, 더욱 죽도록 충성할 것입니다.
▲2. 오늘 내가 알아주어야 할 이웃이 누구인가요?
금년에도 남모르게, 눈에 안 뜨이게 수고한 많은 일꾼들이 있습니다.
한 번도 감사하다는 표현을 못하고 지나왔는데,
연말이 다 가기 전에, 예수님처럼, 그들의 환란과 궁핍(섬기다 보면 돈 들죠)을
반드시 내가 알아줘야할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혹시 내가 미처 못 알아주는 부분이 없도록,
주님의 도우심을 간구합시다.
금년에도 제 삶을 되돌아보면, 크고 잘 되는데 헌금을 (비록 적지만) 더 많이 내고,
힘들고 어려운 데는 헌금도 더 적게 드리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크거나 작은 공동체가 똑같이 자원이 항상 필요하지만,
내가 큰 공동체에 헌금을 잘 내는 이유는
그렇게 해야 내가 큰 일에 동역하는 것 같고, 덩달아 나도 더 빛이 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내년에는, 주님이 다 아시니, 작은 공동체에, 헌금 드려도 빛도 별로 안 나는 곳에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주님이 다 아시므로...
내가 없어도 다른 사람이 많이 드릴 곳은...내가 주력 안 해도 되고,'
내가 없으면 다른 사람이 안 드릴 곳은...내가 주력해야 하겠습니다.
▲3. 주님께서 알아주실만한 신앙적인 삶이 과연 내게 있습니까?
주님이 나를 고마워하시며, 내 손을 잡아주시며 위로해 주실까요?
아니면, ‘금년 한 해만 더 참아주겠다!’고 경고하십니까?
우리 주님은 우리가 주님을 위해 쏟은 수고를 절대로 모르는 체 하실 분이 아닙니다.
혹시 땅에서 못 받는 부분이 있으면, 천국에 다 저축되었을 것입니다. <펀 글 편집
◑손양원 목사님의 “죽도록 충성하라!”
(이하 김명혁 목사님 설교에서 발췌)
여수 경찰서에 수감된 지 10개월 후 손양원 목사는 광주 형무소로 이송되었는데
이송되던 날 정양순 사모는 자녀들을 데리고 여수 경찰서 앞에서
잠시 남편을 만났습니다. 그 짧은 만남의 순간 정양순 사모는
남편의 신앙을 격려하는 단 한 마디의 말을 전했을 뿐이었습니다.
“죽도록 충성하라”고 부탁하신 주님의 말씀을 전했을 뿐이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의 딸 손동희 권사는 그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 ‘어디로 가십니까?’ ‘광주로 ...’ 채 대답을 다 듣지도 않고
어머니는 숨겨 가지고 온 성경책을 펼쳤다.
반갑다고 인사나 나누고 안부나 물을 때가 아니라는 생각에
어머니의 마음은 조급하기만 했던 것 같다.
어머니는 성경 한 구절을 손으로 가리키며 울음 섞인 목소리로 속삭였다.
‘여보! 여기 이말 아시지요? 신사참배에 응하면 내 남편 될 자격 없습니다.
영혼 구원도 못 받습니다.’ ‘염려 마오. 걱정 말고 기도나 해 주구려.’
형사가 걸어와 아버지를 데리고 갔다. 잠깐 동안의 상면, 그리고 또 다시 긴 이별...
아버지는 광주로 가는 기차에 올랐다.
그때 어머니가 펼쳐 보인 말씀은 요한계시록 2장 10절이었다.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그때는 내 나이 어리고 생각이 짧아 그 상황의 의미를 확실하게 깨달을 수 없었지만,
어른이 되어 그때 일을 찬찬히 되짚어 볼 때마다
어머니에 대한 존경심이 절로 들곤 한다.
어머니는 보통의 어머니들처럼 남편의 육신의 삶을 염려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가장 많이 걱정한 것은 아버지가 당할 고초가 아니라
혹시 아버지가 마음이 약해져서 우상숭배하는 죄를 범하게 되지나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우리의 신앙의 선배들은 “영혼이 잘 되고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간구하노라”
(요삼1:2)는 축복의 말씀을 붙잡고 살지 않았고
“죽도록 충성하라”는 순교의 말씀을 붙잡고 살았습니다.
◑나를 알아주시는 주님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
하나님께서 우리의 사정과 형편을 알아주신다는 말씀은
우리에게 얼마나 큰 위로와 힘이 되는 말씀인지 모릅니다.
그래서 옛날 다윗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주께서 나의 안고 일어섬을 아시며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다”(시139:2-4).
고난당하던 욥도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욥23:10).
주님께서 서머나 교회가 당하고 있는 환난과 궁핍을 알고 계신다고 말씀했습니다.
우리는 평안을 좋아하고 부요함을 좋아하는데
서머나 교회는 주님을 인해서 주님을 위해서 환난과 궁핍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주님께서 알고 계신다는 위로의 편지를 써서 보냈습니다.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
그리고 서머나 교회가 처했던 환난과 궁핍이 주님의 눈에는
환난과 궁핍으로 보이지 않고 부요함으로 보였다고 칭찬을 했습니다.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이 위로와 칭찬의 말씀이 서머나 교회에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주제별 분류] 삶의 통찰력 http://blog.daum.net/bible3/13409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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