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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마에서 통곡하는 소리 마2:18 편집자 글
승리에는 희생이 반드시 따른다. 희생 없는 승리는 없다.
값진 승리일수록, 그 희생도 값지다.
(사도 마태가 '라마에서 통곡하는 소리'를 마태복음에 특별히 인용한 이유를
나름대로 캐어 보았습니다. 앞으로 더 좋은 해석이 나올 줄 믿습니다. 편집자.)
▲예수님의 탄생 시에 통곡
라마에서 슬퍼하며 크게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을 위하여 애곡하는 것이라
그가 자식이 없으므로 위로 받기를 거절하였도다 함이 이루어졌느니라 마2:18
헤롯이 두 살 아래 사내아이들을 다 죽이라고 명하자,
마태는 예레미야 31:15절(마2:18절)의 예언을 인용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 즐겁게 지내는 성탄절이지만,
맨 처음 오리지널 성탄절 기간은 사실 피비린내 나는 살벌한 기간이었다.
왜 예수님 탄생 때문에 무고한 아이들이 무수히 희생당해야 했었나?
그 이유는, 값진 승리일수록, 값진 희생이 따르기 때문이다.
희생 없는 승리는 없다. 있다면 가짜 승리이다.
값진 승리일수록, 값진 희생이 요구된다는 것은... 세상사는 이치가 다 그렇다.
우리가 지금 자유 민주주의를 누리고 있는 것은,
50년 전에 이 땅에서 피 흘린 수 만 명 유엔군과 수 십 만 국군의 희생 덕분이며,
30년 전에 이 땅의 근대화를 위해서 땀 흘린 산업화의 역군들 때문이며
20년 전에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서 고생한 사람들 때문이다.
짐승들조차도 살아서 자기 생명을 영위하는 것은,
그보다 더 약한 짐승들이, 자기 생명을 희생했기 때문이다.
근데 그러면 어른들을 희생시키면 되지, 왜 하필 어린 갓난 아이들을 희생시키시는가?
아이들은 아무 죄가 없지 않는가!
어른들을 놔 두고, 아이들을 희생시키신 이유는,
어른들은 죄가 많기 때문이다. 어른이 죽으면 그것은 자기 죄로 인해 죽은 것이 된다.
2살 이하의 어린 아기들이 죽을 때, 비로소 그것은
값진 승리를 위한 희생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범)죄가 없으므로...
▲예레미야 당시의 통곡
예수님 탄생 때, 졸지에 아들을 잃은 베들레헴의 어머니들은
예레미야의 예언을 기억하며 통곡했다.
약 6백 년 전에, 베들레헴 인근 라마에서도
비슷한 통곡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라마에서 슬퍼하며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 때문에 애곡하는 것이라
그가 자식이 없어져서 위로 받기를 거절하는도다. 렘31:15
(라마는 예루살렘 북쪽, 베들레헴은 남쪽의 인접 도시들이다.)
예레미야 당시에도, 라마에서 통곡하는 소리가 있었다.
그 이유는, ‘라마’가 예루살렘 인근 도시인데,
바벨론이 포로를 잡아갈 때, 라마가 ‘포로집결지’였던 탓이었다. 렘40:1참조
그래서 많은 이스라엘의 늙은 어머니들이 라마에 모여서
포로로 감금되어 바벨론으로 후송될 날만 기다리고 있던 아들들을 바라보며
통곡을 하였다.
이들은 사실, 전 이스라엘을 ‘대표한’ 포로 몇 만 명이었다.
모든 이스라엘이 포로로 잡혀가서 받아야 할 벌을
이들이 대표로 받았다.
그런데 이후 이스라엘의 역사는,
후에 바벨론에서 돌아온 사람들 중심으로 이어져 내려갔다.
그 땅에 남아 있던 사람들이 아니었다.
즉, 통곡한 어머니들의 자손들이.. 새 역사의 주인공들이 되었다.
그들 어머니들의 통곡은, 포로로 잡혀가는 자녀들이 잘 되기를 간절히 빌지 않았을까!
그 통곡의 절규가 다 이루어졌다는 뜻.
▲라헬의 통곡
예레미야 당시의 비통한 늙은 어머니들은(잡혀간 자녀들이 주로 청장년들)
그 비통함을 통곡하였는데, 그 때 그들은,
자신들의 울부짖는 형편을 통해서, 조상 라헬의 통곡을 기억했다. 렘31:15
라헬이 죽으매 에브랏 곧 베들레헴 길에 장사되었고 창35:19
(이곳이 라마일 것으로 신학자들은 추정한다. 삼상10:2참조)
라헬은, 평생 자식 때문에 통곡이 많았던 여인이었다.
언니 레아에 비해, 자기의 출산이 너무 형편없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둘째 베냐민을 낳을 때, 출산하다가 그만 자기 목숨을 잃고 말았다.
그러니 라헬은 자녀 때문에 죽는 순간까지 ‘통곡한’ 비운의 여인이었다.
▲통곡과 희생을 통해서 역사가 이루어진다.
①엄마 라헬의 통곡은,
자녀 요셉과 베냐민의 성공을 간절히 비는 통곡이었을 것이다.
그녀는 죽음으로써 자기 자녀들을 축복했을 것이다.
죽어가는 엄마의 통곡이 자녀들의 장래를 비는 간절한 기도... 당연하지 않는가!
②라마에서 포로로 잡혀가는 자식들을 바라보며
이스라엘의 어머니들은 통곡했다.
그 통곡의 결과,
비록 70년이 걸리기는 했지만
이스라엘의 자녀들은 귀환해서 다시 언약의 백성으로서의 사명을 이어갔다.
이스라엘의 회복의 새 역사는, 포로기간을 거친 사람들이었고,
아니 그 이전에 벌써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된 이후, 하나님은 바벨론으로 그들과 함께 옮겨 가셔서,
거기서 다니엘, 에스겔, 에스더 등과 함께 하시며,
바벨론에서 새로운 하나님 나라의 역사를 이어가셨다.
통곡의 자식들이 하나님 나라의 역사를 이어간다는 뜻이다.
운좋게, 편안하게, 이스라엘에 남아있던 자들을 통해서가 <아니었다.>
③예수님이 태어날 때도
베들레헴 인근 여인들의 통곡이 있었다.
이스라엘의 많은 자녀들이 사탄으로부터 구원받는데 있어서
이스라엘의 일부 자녀들이 사탄(헤롯에게 역사한)에게 희생을 당했다.
용이 해산하려는 여자 앞에서, 그가 해산하면 그 아이를 삼키고자 하더니... 계12:4
그 여인들의 절규하는 희생과 통곡은,
여호와께, '메시아를 보내사 이 불의한 나라를 속히 구원해 달라는
애간장이 끊어지는 통곡과 탄원'이었다.
그들의 탄원과 그들 자녀들의 희생을 통해서,
아기 예수는 이집트로 무사히 피난하였고,
결국 하나님의 나라가 성공적으로 단계적인 성취를 이루어가게 되었다.
그때 당시 엄마들은 그 내막을 다 알지는 못했겠지만...
아기 예수님의 성장과 안전에는,
그들 엄마들의 통곡과 희생이 밑거름이 되었다...
▲적용
보통 사람들은 자기 자녀들을 위해서 희생할 줄 안다.
그들의 통곡과 희생이 있어야... 자기 자녀들이 잘 될 줄 안다.
그런데, 이 사회와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는
통곡하고 희생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 일차적으로 자기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것은 귀한 자기 자원을 낭비하는 것처럼 어리석게 보인다.
그렇지 않다. 오늘도 하나님의 나라는,
누군가의 희생과 통곡을 통해서 건설되고 있다.
그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값진 일이다.
라마에서 그 자식을 위하여 통곡하는 소리는, 오늘날에도 들려져야 한다.
그런 통곡하는 가정, 그런 공동체, 그런 사회가 결국에 승리한다.
그래서 하나님은 오늘도 라마에서 통곡하는 섭리로 이끌어 가신다.
누가 통곡을 원하랴? 그래서 하나님은 강권적으로 통곡으로 몰아가실 때도 있다.
금년 7월에도 해외에서 일어난 순교로, 한국에 전국적인 통곡이 한 번 있었다.
물론 그 외 세상에 널리 알려지지 않은 통곡도 여러 곳에서 있었을 것이다...
금년에 당신이 크게 통곡한 적이 있으신가? 큰 은혜를 입은 사람이다.
당신은 크게 통곡할 일이 없으셨는가? 그것도 평탄해서 나름대로 좋기는 하다.<김지윤
[주제별 분류] 부활, 추수, 성탄 http://blog.daum.net/bible3/112805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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