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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8 버림 받은 영웅

LNCK 2008. 1. 3. 22:44

◈버림 받은 영웅    삿11:1~11


 

오늘 같은 피라밋 식 경쟁 사회에서,

자기가 버림 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습니다.

또한 가정적으로, 인종적으로, 그외 여러 가지 이유로

사람들은 자기가 버림 받았다고 생각하기 쉬운데요... 

 


◑도입


▲자살이 늘어나는 대한민국

통계청이 2005년에 발표한 사망원인 조사에 의하면,

자살이 2003년 한 해 동안 1만2천명으로

우리나라 사망원인 4위를 기록했다. (암-뇌혈관질환-심장질환-자살, 5위는 당뇨)


매일 하루에 매 44분마다 1명이 자살하고 있다.

그래서 하루에 33명, 1달에 1천명, 1년에 1만2천명이 자살하고 있다.


자살로 죽은 사람의 숫자가 이렇다고 볼 때,

자살을 시도하다가 미수로 그친 사람의 숫자까지 합치면

실제로 두~세 배 더 되는 사람들이 자살을 시도하고 있다는 실정이다.


지난 10년간 우리나라 자살률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2003년 기준으로 인구 10만 명 당 우리나라 자살률은 23.3명으로

헝가리 20.6명, 일본20.3명보다도 높다.

영국 6.3명 이태리 5.6명보다 높으며, OECD국가 중 가장 높다고 한다.


노인자살률 또한 1위라고 하는데,

이렇게 자살이 늘어나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자살하는 이유 - 버림받았다는 느낌 때문

이들은 왜 자살할까?

어느 학자의 발표에 의하면 거절감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한다.


중고생들은 왕따를 심하게 당하면 자살한다. ←친구들로부터 버림받음 때문이다.

학교 성적이 나쁘면 자살하는데 ←부모로부터 버림받을 것을 염려해서 자살한다.

20대는 실연으로 자살하는데 ←연인으로부터 버림받았기 때문이다.

40대는 기러기아빠로 자살하는데 ←가족으로부터 버림받았다는 느낌 때문이다.

50대는 명퇴하면 자살하는데 ←회사로부터 버림받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6-70대는 ←사회로부터, 자식으로부터 버림받았다는 이유 등으로 자살한다.

모두 공통적으로 버림받았다는 이유 때문이다.


자기가 버림받았다는 느낌이 자살의 주요 원인이라고 할 때,

우리나라에는 버림받은 사람(자살자)이 왜 이리 많은가?


세상에서 가장 힘들 때는 자기 자신이 버림받았다는 생각이 들 때이다.

여러분은 이러한 경험이 없으신가?


▲버림 받았지만 승리한 영웅 입다

가정과 사회에서 버림받았다는

그런 거절감이 반드시 이런 비극적 결과만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가족과 친구들에게, 세상에게 버림받았다 해도

자기 자신을 버리지 않고 인생을 멋지게 산 사람들도 우리 주위에 많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사사기에 나오는 입다이다.


입다 역시 버림을 받았지만, 하나님 앞에 성공적인 삶을 산 대표적인 인물이다.

입다는 길르앗(인명)에게서 태어났지만, 기생의 자녀로 태어났다.

그런데 입다가 어느 정도 성장하자, 본처의 자녀들이 입다를 내어 쫓았다.


그래서 입다는 바로 가족들에게 버림을 받은 것이다.

그는 태어나면서부터 불행하게 태어났지만,

자라면서도 배다른 형제들에게, 한 가족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그리고 집을 떠나 방황하는 처량한 신세가 되었다.

이렇게 버림 받은 입다는, 그러나 자기 자신을 비관하지 않았다.

자기의 기구한 운명을 탓하지 않았다.


그리고 자기가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살았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암몬 족속의 침략으로 어려움에 처했을 때,

그는 자기 백성을 구원해 냈다.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았지만,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자살을 택하는데,

입다가 자기 인생을 포기하지 않고 성공으로 이끈 그 원인은 과연 무엇일까?

우리가 힘들고 어려울 때 우리에게 도전이 될 만한

입다의 삶과 태도를 몇 가지 생각해 보자...



◑1. 그는 끝까지 ‘삶의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버림받은 입다는, 고향인 길르앗을 떠나 돕 땅에 거했다.

길르앗에서 동북쪽 25킬로에 위치한 지역이다.

그러자 수많은 ‘잡류’(성경의 표현대로)들이 거기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어떠한 이유에서든지 그들 역시 사회와 가족, 친구들로부터 버림받은 사람들이었다.


입다는 그들을 모아서 일종의 게릴라 부대를 만들었다.

그들은 자기를 버린 사람들에게 찾아가 복수하지 않았다.

나아가 이스라엘을 괴롭히던 암몬 족속을 물리쳤다.

그리고 고생하던 동족들을 보호했던 것이다.

버림받았지만 그들은 자기 인생을 포기하지 않았다.

삶의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다윗에게도 이와 비슷한 버림 받은 경험이 있다.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  시27:10


여기서 다윗의 부모가 자기를 버렸다는 뜻은

사무엘이 자기 집에 기름 부을 사람을 찾으러 왔을 때

아버지 이새는 자기 아들들을 불러 모았지만, 다윗은 부르지 않았다.


나중에 사무엘 선지자의 요청으로 다윗을 마지못해 불러오긴 했지만,

아버지 생각에는, ‘보나마나 그는 아니다’ 라는 생각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런 사실을 안 다윗은, 얼마나 아버지에게서 소외감을 느꼈을까?


또한 다윗은 사울 왕으로부터도 버림을 받는다.

그는 사울 왕을 피해 이곳저곳 피해 다니며 힘든 도피 생활을 하게 된다.


그러던 중 삼상22장에 보면 다윗이 아둘람 동굴에 피했는데,

다윗이 그곳에 피했다는 소문을 들은, 환란당한 자, 빚진 자, 마음이 원통한자 등,

이런 잡류들이 다윗에게로 모여든다.


다윗은 그들을 훈련시켜 강한 부대로 만든다.

길르앗에서 쫓겨나 돕 땅에 거했던 입다와 매우 비슷한 경우이다.


다윗은 부친과 사울에게 버림 받은 상처 때문에,

자기 삶을 포기하는 어리석은 짓을 하지 않았다.

도리어 그 일 때문에 그 강한 용사로 스스로 단련시켜 나갔다.


▲인간은 살다보면, 누구나 한 번 쯤 버림을 받거나

그런 일 때문에 소외감을 경험한다.

바로 이런 사실 때문에 인생을 포기할 수는 없다.

자살까지는 안 해도, 많은 사람들이 자포자기한다.


그러나 아무리 버림을 받아도, 삶에 대한 희망을 간직하고 있으면

그 어떤 역경도 감내할 수 있다.

입다는 이러한 희망을 버리지 않았기에, 결국 승리할 수 있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은, 어떤 경우에도 삶을 포기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항상 우리에게, 삶의 희망을 주시기 때문이다.

날마다 절망적이더라도, 날마다 삶의 희망을 주신다.



◑2. 입다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포기하지 않았다.


하나님을 끝까지 버리지 않았다는 뜻이다.


▲길르앗 장로들, 입다에게 가서 도움을 요청하다.

지금 암몬 족속이 침입해 오는데, 당시 이스라엘에는 변변한 군대가 없었다.

사람들이 앞이 캄캄하고 막막하던 차에,

입다가 게릴라 부대를 만들어 상당히 성공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된다.


이 소식을 듣자 길르앗 사람들은 별 수 없이 입다에게 도움을 요청하게 된다.

이 때 입다의 심정은 어떻까?


‘나를 쫓아낼 때는 언제고, 이제 내게 와서 도움을 요청하는가?’ 라고

괘심하게 생각했을 수도 있었다.

그리고 그 도움의 요청에 응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입다는 그들의 요청을 거절하거나 외면하지 않았다.

이에 입다가 길르앗 장로들과 함께 가니 백성이 그로 자기들의 머리와 장관을 삼은지라

삿11:11


만일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게 붙이시면...  삿11:9

이 구절은 입다의 신앙 자세를 엿볼 수 있다.

입다는 자신이 자기 전략과 전술로 승리한다고 하지 않았다.

오직 하나님만을 간절히 믿고 의지하였다.


형제들과 고향 사람들에게 버림 받은 그는,

오직 하나님만을 신뢰하는데 더 도움이 되었을까?


사람들은 고통과 역경,

고난이 오면 자기 인생을 포기할 뿐 아니라, 하나님까지 버리는 수가 많다.

만약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면,

내가 이런 고통과 좌절을 겪어야 하는지 의아해 한다.


그래서 하나님은 안 계신다고 판단하고 하나님을 등지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입다는 반대로, 버림을 받았지만, 하나님을 원망하고 버리지 않았다.

도리어 하나님이 나와함께 하신다면, 승리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자기의 말을 다 여호와 앞에 고하니라   삿11:11

우리는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고통과 버림받은, 소외감을 느낄 때가 있다.

그는 가슴만 치고 앉아있지 않았다.

그는 하나님께 다 고했다.


가족과 친구들에게 버림받아 외톨이가 된 입다는

자신의 모든 사정을 주께 말했다.

하나님은 자신을 버리지 않고, 자기의 기도를 들어주실 줄 믿었다.


그는 암몬과 싸우러 나가기 전에, 하나님 앞에 나가서,

하나님 앞에 모든 것을 아뢰고, 하나님께 매달리는 입다의 모습을 보시라.

그는 하나님께 대한 희망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성도들은 인생을 살면서, 재앙이나 역경을 만나면 2가지 다른 반응을 보인다.

①역경 때문에 주님에게서 멀어진다.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하던 사람이 이렇게 된다.

작은 어려움만 닥쳐도 하나님을 의심하고 신앙을 버린다.


②그러나 어떤 성도는 시련이 찾아오면 더욱 참된 신앙을 소유하게 된다.

그 역경 때문에 주님만을 더욱 의지하게 된다.


▲역경 때문에 더 빨리 간다.

♬고요한 바다로 저 천국 향할 때

주 내게 순풍 주시니 참 감사합니다.


큰 물결 일어나 나 쉬지 못하나

이 풍랑 인연하여서 더 빨리 갑니다.♪ 찬503장


폭풍이 일어나 물결이 뒤엎어지면, 그것이 나의 길을 어렵게 하기도 하지만,

그것 때문에 목적지로 행해 더 빨리 나아간다는 것이다.

환란은 우리 삶이 방향을 재조정하게 한다.

고통을 겪으면, 인생의 가치관을 다시 정립하게 된다.


고통의 회오리가 몰아칠 때,

우리는 그 환란 가운데서

진정한 내 인생의 의미를 묻는다.

하나님과 나 사이의 관계를 진지하게 되돌아보게 된다.


자신의 욕심만 채우기 위해 인생을 살지 않고

영원히 변치 않는 주님만을 위해 살리라는 결심을 하게 된다.


풍랑 때문에 더 빨리 갈 수 있다는 믿음이 있을 때

쓰러지지 않고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다.

주님이 내 편에 계신다고 확신하는 사람은

어떤 풍랑도 헤쳐 나갈 수 있다.



◑3. 입다는 하나님과 약속을 지켰다.


삿11:30-31절에 입다의 서원이 나온다.

그것은 자기가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올 때

누구든지 제일 처음 자기를 영접하러 나온 사람을

여호와께 번제로 드리겠다는 서원이었다.


그 때 마침, 제일 먼저 마중 나온 사람은 바로 자기의 사랑하는 딸이었다.

그러나 그는 용단을 내려서 그 딸을 하나님께 바친다.

아버지의 입장에서,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이었을까?


▲입다의 서원 - 문제 없다.

어떤 사람들은, 입다의 서원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말한다.

이런 서원을 아예 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본문을 자세히 읽어보면, 서원하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고 말한 흔적은 없다.

오히려 29절을 보면, 서원 당시의 분위기를 잘 알 수 있다.


‘이에 여호와의 신이 입다에게 임하시니...’ 삿11:29


여기서 보면, 성령님께서 입다에게 임하셨다는 것은,

입다의 서원 자체가 잘못이 없다는 뜻이다.


성령이 충만하고 마음이 뜨거워졌을 때,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그는 마음의 소원을 서원했던 것이다.


▲서원 하는 것보다, 서원 안 하는 것이 더 큰 문제다.

저는 크리스천들이 당면한 문제 한 가지가 신앙생활에 헌신이 없다는 것이다.

헌신이 없는 이유 중 하나가 - 서원이 없기 때문이다.


진지한 서원은 필요하다.

지키지 못할 서원은 안 하는 것이 좋지만

하나님 앞에 자기 신앙을 표현하는 약속(서원)을 하는 것은 좋은 결단이다.


평생 신앙생활하면서, 서원 한 번 안 해본 사람이 많이 있다.

주님을 위하여 멋지게 살겠다는 결심을 해 보지 못한 사람이 많이 있다.


주일날 한 번 나오는 것도

조금만  일이 있으면 빠지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복음을 위하여 주를 위해 헌신하겠다고

서원하고 다짐하는 크리스천은 점점 적다.


▲여러분, 처음에는 주일성수부터 서원하시라

하나님 내가 무슨 일이 있어도 주일을 지키겠습니다.


지방이나 해외로 출장을 다니시는 분들도 걱정 마시라.

한국교회가 세계 어디를 나가셔도 다 있다.

주일이 되면, 그 곳에 가서 예배를 드리면 된다.


성가대로 봉사하겠다고 하나님께 약속하시라

내가 집사나 구역장으로 봉사하겠다고 하나님께 서원하시라.

이렇게 작은 것부터 주님께 약속하시기 바란다.


저는, 방향은 좀 잘 못 되었더라도,

주님 앞에서 모든 것을 내 던지고 서원하는 신자가

형식적으로 믿는 사람보다 더 낫다는 생각을 한다.

하나님이 영광을 위하여 내 삶을 불사르는, 멋진 삶이 되시기 바란다.


▲입다의 딸의 운명에 대한 해석

진짜 죽여서 번제로 드렸다는 해석이 있고,

제단에 바쳐져서 평생 처녀로 성막을 섬겼다는 해석도 있다.


그러나 정말 죽어서 번제로 드렸건

안 죽이고 평생 성막을 섬겼건

중요한 것은 입다가 하나님께 서원했고, 자기가 서원한 약속을 지켰다는 것이다.



▲마치는 말

오늘 우리 시대의 신자들은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나님께 약속 한 번 못하고 살아간다.


자신의 이기심 때문에

혹시나 손해를 볼까봐

약속은 절대로 안 한다.


그러나 주님께 아름다운 약속을 드리고,

그리고 손해가 나더라도 그 약속을 꼭 지키는 신앙이... 귀하다.


그런데 간혹, 고통과 역경의 시간에는 서원을 하지만,

그것이 지나가면 언제 내가 약속했는가 하며 얼렁뚱땅 넘어가려는 신자도 있다.


입다는 지키기 어려운 약속이었지만, 그 약속을 지켰다.

하나님이 이런 사람을 쓰실 만 하지 않겠는가!


▲버림 받으셨던 예수님 (입다는 예수님의 표상)

우리 주님의 생애를 묘사한 감동적인 말씀이 있다.


저는 죄를 범치 아니하시고 그 입에 궤사도 없으시며

욕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자에게 부탁하시며... 

벧전2:22~23


주님도 사람들에게 버림받음을 경험하셨다.

고향 나사렛이 그분을 버렸고,

군병들에게 잡혔을 때는, 제자들이 모두 주님을 버리고 도망갔다.

십자가에 못 박힐 때는 사람들에게 버림을 당했고,

또한 마지막 순간에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당했다.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예수께서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았으나

세상이 버린 그를, 하나님은 택하여 주셨다.

그리고 하나님께 택함을 받아 인간을 구원하셨다.

그러니까 버림 받은 입다, 다윗은 모두 그리스도의 표상이었던 것이다.


살다보면, 인간관계에서 상처를 받는 일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지 않으신다는 믿음과

스스로 인생을 포기하지 않는 자세와

주님을 향한 헌신과 약속으로 인생을 살아가신다면... 결코 절망은 없다.


비극적이고 절망적인 운명을 극복하고

새로운 삶을 창조한 입다의 삶에서 위로와 격려를 받고

여러분의 비극적이고 버림받은 절망적인 삶에서

입다처럼 도리어 귀한 사명을 감당하시는 인물이 되시기 축원 드린다.

<07.11.02 인터넷 설교 녹취


[주제별 분류] 리더십, 목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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