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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3 하나님은 마음 중심을 보신다.

LNCK 2008. 1. 7. 13:49
 

◈하나님은 마음 중심을 보신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빌2:5



◑「꽃들의 희망」에 나오는 우화 한 토막


땅에 기어 다니는 애벌레가 늘 자기 신세를 한탄했다.

나는 이 먼지 속에 늘 코를 쳐 박고, 모든 더러운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땅바닥을 기어다니며 평생 살아야 하다니... 왜 이렇게 비참하게 살아야 하는가?


걸어 다니는 짐승들을 보니 부러웠고,

뛰어다니는 짐승을 보면 흠모의 대상이었고,

더욱이 하늘을 훨훨 나는 짐승들을 보면.. 몹시 부러워 견딜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모든 애벌레들이 어디를 향해 큰 행렬을 지어 가는 것을 보게 되었다.

“당신들은 지금 모두 어디로 가는가?”

“매우 중요한 데로 가고 있다네!”


그 애벌레는 혼신의 힘을 다해, 그 애벌레 떼의 행렬을 앞질러 쫓아가보았다.

그랬더니 애벌레들이 한 우람한 나무를 타고 줄지어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그는 주위의 애벌레들에게 물어보았다.

“저 위에 뭐가 있는데?”

“굉장히 중요한 것이 있데!”


애벌레들은 한 발짝이라도 먼저 가기 위해, 서로 남을 밀치고 아귀다툼하였다.

그 애벌레는 자기도 모르게 동화되어, 자기도 남을 밀치고 당기고 싸웠다.


그 노력의 결과인지, 이제 자기도 나무에 올라가는 대열에 겨우 서게 되었다.

그래서 다른 애벌레들과 한참 올라가는데, 내려오는 행렬을 만나게 되었다.

“저 위에 뭐가 있더냐?”

“가 봐야 아무 것도 없다네!”


그러자 동료 애벌레가 그 말을 액면 그대로 믿지 않았다.

“자기는 구경할 것 다 구경하고, 가질 것 다 가지고,

누릴 것 다 누리고 나서, 말로는 아무 것도 없다고 그래!”


그 애벌레는 동료들과 함께 계속 위로 꼭대기까지 애를 쓰고 올라갔다.

정말 꼭대기 정상까지 가 보니 거기엔 아무 것도 없었다. 빈 하늘 밖에 없었다.


그래서 허탈하게 내려오는 길에

용을 쓰며 올라오는 여러 애벌레들의 행렬과 자연히 마주치게 되었다.


“저 위에 뭐가 있더냐?” 그들이 물었다.

“위에 올라가봐야 헛수고다. 아무 것도 없다던데, 사실이더라” 그가 대답해 주었다.


그래도 땀을 뻘뻘 흘리며 나무 둥치를 기어 올라오는 애벌레들은

아무도 그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이 애벌레는 절망적인 자기 인생을 깊이 묵상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 한 나뭇가지에 자기 몸을 누이고 고착시켰다.

그리고 그 곳에서 자기 내면을 깊숙이 살피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자, 자기 몸에 고치(캡슐, cocoon)가 덮이기 시작했다.

그는 그 속에서 더 깊은 묵상을 하며, 그 모든 시간을 인내하며 견뎠다.

그랬더니 그 못생긴 애벌레가 변해서, 어느 날 찬란한 호랑나비가 되었다.


그 호랑나비는 이곳저곳 꽃들을 돌아다니면서

꽃들에 생명력을 부여하는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다.


사람들은 자기가 애쓰고 수고해서 계속 위로 올라간다. 계속 소유를 쌓는다.

그런데 올라가 본 사람은, ‘위에 가면 아무 것도 없다’고 아무리 외쳐대도

밑에서 아귀다툼하며 올라오는 사람들에게는, 그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는다.

‘저는 가져 봤으니 하는 소리야!’


이것이 바로 우리 인생의 한 단면이라는 것이다.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우화이다.



◑ 마음을 지키라.


▶이태리에 가면 성 프랜시스 기념관이 있는데,

거기에는 그의 망토가 유품으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그것은 그의 유일한 재산 목록으로서,

비가 오면 우비였고, 밤에 잘 때는 덮는 이불이었다.


프랜시스의 남루한 그 망토를 직접 보는 순간,

그것은, 뭘 많이 갖고 싶어 하는 나에게 얼마나 많은 말을 해 줬는지 모른다.

그의 남루한 망토에서, 나는 그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예수님의 자기의 행동을 따라 하라고 말하지 않으신다.

그것은 사람이 흉내 낼 수 있다.


그런데 예수님은 마음을 본 받으라고 하신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빌2:5


마음은 사람이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다.

이것은 인격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사실 마음은 인생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본질이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을... 사람은 하게 된다.

마음에서 기인하는 행동을... 사람은 실행에 옮기게 된다.

항상 마음이 먼저 결정한다.


마음이 내 인생을 한 없이 높은 하늘을 나르게도 하고,

마음이 내 인생을 애벌레처럼 땅만 기어 다니며 먼지를 뒤집어쓰게도 만든다.


마음은 인격의 중심이다.

성경은, 주님의 마음을 품으라고 가르친다.

무릇 지킬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고 하신다.    잠4:23

그렇다. 내 인격과 생명이 넘치는 삶의 근원은 마음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마음에 대해서 관심이 없다.

마음을 가다듬지 못한 뿐더러, 마음을 방치해 버린다.

그래서 마음의 욕심을 따라, 무너지는 인생을 사는 경우가 많다.


오늘 이 시대는 표정관리, 지식, 처신을 가르친다.

그런데 성경은 ‘마음’을 가르친다.


오늘날 교회가 다시 붙잡고, 다시 목표를 두어야 할 것은

- 바로 그리스도의 마음이다.


▶2007년이 끝나간다.

그것처럼 우리 인생이 마지막 끝나는 날이 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내가 섰을 때

그 때 하나님이 내 인생을 평가하시는 기준은... ‘마음’이다.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  삼상16:7


사람은 외모로, 업적으로 판단하지만

하나님은 우리 마음 중심을 감찰하시고, 살피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마음 중심을 보신다.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자라  행13:22


▶사람들은 외모를 본다. 제스처를 본다. 행동을 본다.

그러나 주님은 내 마음을 보시고, 내 마음을 평가하신다.

 

하나님은 다윗을 보고, '내 마음에 합한 자'라고 하셨다.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을 늘 지켜보고 계신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마음을 보셨다.

그 마음을 보시고, 그 겸손한 마음을 보시고, 그를 만유위에 높이셨다.

 

하나님의 '본체'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낮아지셔서 사람의 '형체'를 취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다. 빌2:6

(원어로 ‘본체’나 ‘형체’나 똑같은 단어 '모르페'이다.)


▶새 정부는 ‘섬기는 정치’를 하겠다고 일성을 발표했다.

섬기는 자에게 중요한 것은 ‘마음’이다.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하지 않으시고,

사람의 형체를 취하신 그 '마음'이다.

 

그렇다. 진정한 섬김은, 사람의 위치로 내려와

사람들 속에서 어울리며, 사람들과 한 가지로 동화되는 것이다. 

그것을 자원하는 마음이다.

 

이러한 예수님은, 하나님으로부터 '영원히' 높임을 받아,

하늘과 땅과 모든 만물이 그 앞에 무릎 꿇게 하시는, 

영원한 통치자가 되셨다. 

 

오늘도 아침에 눈을 뜨면, 또한 저녁에 눈을 감기 전에,

내 마음은 과연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사랑하는 우상인가, 사모하는 주님인가?


<07.12.30. 인터넷 설교에서 발췌, 편집 


[주제별 분류] 복음 관련 http://blog.daum.net/bible3/13734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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