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델이 변하고 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행한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하여 본을 보였노라 요13:15
오늘은 ‘모델’에 관한 최근 제 생각을, 부족하지만,
자판을 두드리면서 한 번 정리해 볼까 합니다.
▶미국 교회는 ‘사명선언문’mission statement이 있습니다.
약 20년 전부터, 이것이 유행했습니다.
어떤 교회는 ‘건강한 크리스천을 만든다’
어떤 교회는 ‘헌신된 크리스천을 만든다’ 등 이었습니다.
그런 미국교회의 영향을 받아서
오늘날 한국교회도 ‘사명선언문’이 있습니다.
그런데 각자의 사명선언문이 어찌되었든지,
한국교인들의 생각 밑바닥에 깊숙이 자리 잡은 공통된 사명이 한 가지 있었는데,
그것은 ‘성장’이었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이 몰려오면, 옆 건물을 사서 확장시키고,
그런 일에 저를 포함한 대부분이 존경과 박수를 보냈습니다.
▶역사는 싸이클(순환)이 있는 것인지요?
지금 역사는, 그런 과거의 성장 분위기를 점점 반성하는 쪽으로 기울고 있습니다.
기독교 신앙의 전통적 목적이 ‘하나님의 형상 닮기, 성화, 내면적 인격의 성숙’ 인데,
20세기 후반부터 너무 ‘성장 드라이브’에 과열했고, 올인 했다는... 반성입니다.
그래서 본연의 목적인 ‘하나님의 형상 닮기, 성화, 내면적 인격의 성숙’을
잘 구현한 모델을 역사적으로 한 번 찾아보니까, 여러 사람들이 있지만,
(제 개인적으로는) 대표적으로 성 프랜시스와 마더 테레사가 퍼뜩 생각났습니다.
헨리 나우웬도 있고, 그 외에도 많습니다.
겉으로 흐르는 역사는, 군왕들과 장군들에 의해 흥망성쇠가 일어나지만,
그 내면에 흐르는 역사의 발전은, 저런 성자들에 의해서 발전되어 왔다는 것입니다.
특히 하나님의 나라는 더욱 그렇습니다.
*관련글 : 이면 역사를 볼 줄 알아야 http://blog.daum.net/rfcdrfcd/12731216
▶그렇다면, 외국 말고,
한국에는 기독교 신앙의 본질을 보여주는 모델이 없었나요?
물론 있었습니다. 먼저 순교자들을 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평생 살면서, (순교자의 삶은 장엄하지만, 일반인의 모델은 아니라고 보고)
자기 삶을 통해 가장 예수님의 모습을 잘 보여준 성자를 들라면,
저는 ‘성산 장기려 장로’를 들고 싶고, 다음으로 ‘김용기 장로’를 꼽고 싶습니다.
장기려 장로님은 정말 예수님의 형상을 가장 많이 닮은 분이셨습니다.
그 분에게는 항상 ‘사랑의 온기’가 넘쳤습니다.
한 번은 병원가기를 무척 싫어하는 한 아이가 있었는데,
어떻게 어떻게 그날은 병원에 가서 장기려 장로님의 진료를 받았습니다.
그는 그분의 따뜻한 ‘사랑의 온기’를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여전히 느끼고 있다고 합니다.
가나안 농군학교 김용기 장로님은
새벽마다 기도굴에 가셔서, 새벽 4시부터 두 세 시간씩 매일 기도하셨다고 합니다.
젊을 때, 그런 말을 들었을 때는
'뭐가 기도할 게 그리 많았길레... 불가능하지... 많이 졸으셨을 거야!'
그렇게 밖에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 분이 그렇게 오래 기도하신 것은,
정말 다니엘처럼, 나라와 교회를 염려하시던 그 마음이 컸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그 분이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그 외에도 목회 일선에서 충성스럽게 수고하시는 여러 목회자들이 계십니다.
비록 규모는 작지만 하나님의 영광과 임재가 있는 예배, 살아있는 찬양과 설교,
이런 교회가 전국 곳곳에 산재해 있습니다.
한국 기독교의 하층 구조가 비교적 튼튼하다고 봅니다.)
▶제가 오늘 여러분과 나누고 싶은 생각은,
지난 20년간 제 삶을 되돌아보면,
제가 강조했던 인물들은... 피터 드러커, 잭 웰치 같은 CEO들,
십일조를 많이 해서 부자가 되었다는 록펠러 등,
대부분 세상적 기준으로 성공한 사람들을 많이 강조했습니다.
그들이 우리 삶의 모델이라고 (잘못) 제시했었습니다.
제 자신부터가, 이 블로그에 그런 분들에 관한 교훈을 많이 할애했습니다.
(물론 그들의 탁월한 점들은, 우리가 반드시 존경하며, 겸손히 배워야 합니다.)
반면에 진짜 예수님을 닮은 삶을 살면서 모범을 보였던
성 프랜시스, 마더 테레사(mother은 수녀sister의 존칭. 수녀원장, 영적어머니)
장기려 장로, 김용기 장로
이런 분들에 대한 존경과 관심은... 아예 거의 없었다는 것입니다.
제 사명선언문이 잘못되어 있었다는 것이지요.
제가 보고 따라가야 할 모델 설정이 처음부터 잘못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잘못된 가치관을 갖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너무 '성장'쪽에 치우쳐 있었습니다.
성경을 빌려 말한다면,
‘팔복’과 같은, 예수님이 가르치신 복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고,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세속적 성공철학’에는
제가 필요 이상의 관심을 집중하며 살아왔었습니다.
▶그런데 어쩌면 그런 현상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좁은 길을 가는 사람은 적고,
넓은 길을 찾아서 가는 사람이 많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남은 자 the remnant’라는 말 자체가
그 수효가 얼마 되지 않는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올바른 모델을 설정해서, 그 분들의 뒤를 따라가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모델 설정부터가, 기독교 진리와는 별로 관계없는
그런 인물들이 되어서는 잘못이라는 것입니다. 회사가 아니라, 기독교 아닙니까!
▶너무 비관적으로 볼 필요 없는 것은,
오늘도 우리 사회 곳곳에는 좋은 모델을 보여 주는 분들이 여러 곳에 계십니다.
교회가 커지면 자꾸 나누는 교회라든지,
흙 속의 ‘감자’처럼 자기를 감추며 사회봉사에 주력하는 교회라든지,
많은 군중에 자유해서, 소수의 제자에 집중하시는 분들입니다.
그리고 전국 각지에서 자기 자리를 지키며 성령이 인도하시는 교회를 이끌고 가시는
여러 일선 목회자들이십니다.
이제 21세기에, 지난친 성장 일변도의 과거 시대가 지나가면서
기독교인들의 '모델' 역시 변화하고 있습니다.
점점 제 자리를 잡아가고 있습니다. 다행스런 일입니다. <편집자
[주제별 분류] 하나님의 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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