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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4 하나님의 형상의 본질과 권세

LNCK 2008. 2. 5. 20:33
 

◈하나님의 형상의 본질과 권세             창1:26~28



◑‘하나님의 형상’을 대하는 태도



▲타인을 혹평하는 것 - 쉬운 회개

미술품이라든지, 문학작품이라든지,

관객들이 작품을 보고 혹평을 해서, 간혹 작가들을 놀래 킬 때가 있다.


우리가 가급적 다른 사람을 비난하는 것을 조심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위에 계신 작가 분이 깜짝 놀라시기 때문이다.


그 분은 엄청 귀가 밝으셔서, 우리가 아무리 숨어서 소곤소곤 얘기해도

다 듣고 계신다.

우리는 '하나님의 작품'을 소중하게 여길 줄 알아야 한다. 


▲자기를 혹평하는 것 - 어려운 회개다.

그런데 우리가 다른 사람을 폄하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면 쉽게 회개가 되면서, 자신을 고칠 수 있다.

남의 외모나 약점을 공격하며 흉을 봤던 것, 회개하며 돌이킬 수 있다.


그런데 회개가 좀 어려운 것이 있는데,

자기 자신에 대해서 스스로 비하해서 생각 하거나, 함부로 대하는 것이다.

이것을 회개하는 데는 시간이 좀 걸린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에 대해 안 좋게 생각했던 것은 죄로 느껴지는데,

'나는 형편없어, 나는 보잘 것 없어, 쓸모없어!'

자기 자신에 대해, 안 좋게 생각하고 말했던 것은

죄라는 인식이 쉽게 들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회개를 잘 안 한다.


그것이 왜 ‘죄’라는 인식이 안 들까?

<자기를 자기 것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내 것을 가지고, 내가 좀 혹평했기로서니... 뭐가 문제 될 게 있나?’ 한다.


그러나 신앙적으로 말하면,

내가 내 것이기 이전에, 나는 하나님이 창조물이요, 하나님의 작품이다.


그래서 내가 나를 향해서

‘나는 참 쓸데없어, 나는 쓸모없는 존재야!’ 이렇게 말을 하는 것은

나를 지으신 하나님의 서운함이, 그 마음 아프심이

이루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오늘부터 저와 여러분은, 자기에 대한 ‘작품 평’을 할 때,

늘 작가를 염두에 두고 하게 되시기를 축원 드린다.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므로 실수가 없으시다. 내 인생도 마찬가지다.

내가 왜 소중한 존재인가?

하나님이 만드셨기 때문이다.


내가 왜 나를 쓸모없이 여겨서는 안 되느냐?

그것은 ‘이까짓 쓸모없는 존재를 만드셨다!’고, 하나님을 모욕하게 되기 때문이다.


‘내가 태어난 것은 큰 실수야! 나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어!’

만약 누가 이렇게 자기를 생각한다면,

나를 태어나게 하신 하나님이, 일생일대에 큰 실수를 하신 셈이 된다.


십계명에,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고 했는데,

그것이야말로, 주님의 이름(존재)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이 아니겠는가!


보통 ‘남’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사람은,

그 근저에 ‘자기’를 소중히 여기지 않는 본성이 내재되어 있다고 한다.


내가 ‘나’ 자신을 소중히 여겨야 하는 이유는,

그래야 내가 진정으로 ‘남’도 소중히 여길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기 자신에게서 내가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의 작품’임을 볼 때,

동시에 다른 사람에게서 그가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의 작품’임을 보게 된다.



◑예수 믿은 것은... 잃어버렸던 ‘형상’의 회복

 

▲신자는, 하나님의 형상이 반드시 드러나야...

하나님은, 자기의 형상을 따라, 자기의 모양을 따라 인간을 지으셨다. 창1:26

(여기서 ‘형상’과 ‘모양’은, 같은 뜻의 말을 반복해서, 강조를 표현한 것으로 본다.)

그래서 모든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이 내재되어 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나를 보면서> 하나님을 느껴지고

하나님의 형상을 보고, 하나님의 모습을 볼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참 크리스천이요, 우리 모두의 신앙 목표이다.


옆 사람에게 한 번 물어보자.

‘저를 보시면, 하나님의 형상이 느껴지십니까?’


그런데 오늘 사람들은, 서로를 겁낸다. 만나기 전에 우황청심환이라도 먹어야 한다.

사람을 스스럼없이 만나기가 꺼려진다. 잘못된 것이다.


사람들이 나를 만날 때,

하나님의 그 사랑이 느껴지고, 하나님의 온유하심이 느껴지고,

하나님의 그 인자하심이 느껴지고, 하나님의 성실하심이 느껴져야 한다.

우리는 그래야 한다. 왜냐하면 원래 그렇게 형상대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예수 믿는 것이란... 타락 후에 잃어버린 형상을 다시 회복하는 것이다.

물론 아담과 하와가 타락해서 그 형상이 심하게 훼손되었지만,

우리는 예수를 믿고 속사람이 다시 새롭게 회복(변화)되었으므로

자연히 그 ‘하나님의 형상’이 우리 속에서부터 나타나게 되어 있다.


오늘 세상이, 크리스천들을 보고

하나님의 따뜻하신 사랑을 만약 느낄 수 없다면...

하나님의 인자하신 자비를 만약 느낄 수 없다면...

하나님의 의로우심과 거룩하심을 만약 느낄 수 없다면...

우리는 본질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 하나님의 형상을 되찾아야 한다.


그래서 바울은 말한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빌2:5

‘하나님의 형상’을 품으라는 것이다.

신자가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을 이미 회복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형상’의 구체적 내용은?


①의

예수 믿으면, 우리를 의롭게 여겨 주신다고 했다.

여기서 '의'란, 아담이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다시 찾게 되었다>는 뜻이다.


②하나님을 아는 지식

신자는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구원 경륜과 그 섭리,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사랑과 거룩하심의 속성, 복음전파를 통한 하나님 나라의 완성 등

삼위일체 하나님의 구속역사와 속성과 섭리를 모두 알게 된다.

그러나 불신자는 모른다. 아예 그런데 관심이 없다.


③성도라 칭함 받는 것

성도라 칭함 받는 것은, 이제 내 안에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었다>는 선언이다.



◑하나님의 형상의 특권과 능력

 

▲하나님의 형상의 특징


①언어

창세기 1장에 보면,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사람도 말을 한다.

피조물 중에 오직 사람만 언어를 사용한다.

말하시는 하나님이, 말하는 사람을 만드셨다.


이것이 바로,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는 증거가 된다.

짐승들과 다른 점이며, 짐승이 하나님의 형상이 아닌 이유이다.


②다스리는 능력을 받다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창1:26


▲명령하실 때는, 감당할 힘도 같이 주신다.

예를 들어, 내가 여기 한 자매에게 ‘피아노를 저리로 옮겨라’고 말하지 않는다.

제 정신인 사람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한 자매가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제 정신이라면, 그 자매가 오직 할 수 있는 일만.. 그에게 부탁할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온 세상과 짐승들을 다스리라고 하실 때에

우리가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을 명하시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명하신 다는 것은, 우리가 그것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이미 부여받았다는 것이다.

 

이번에 우리 교회가 구정을 맞이해서 불우한 이웃 4백 가정을 돕기로 하고,

그 일을 L목사님께 코디를 맡겼다.

그 전제는, 거기에 필요한 재정은 교회가 부담한다는 것이고, (계약서 안 써도)

L목사님이 충분히 그런 일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믿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사람에게 만물을 다스리라고 명령하실 때,

그것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사람에게 먼저 부여해 주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브라함의 예,

아브라함에게,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서 내가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하셨다.

아브라함은 갈 바를 알지 못하고 갔다. 사지로 스스럼없이 떠난 것이다.

그가 위대한 점도 있겠지만,

먼저는 하나님이 그의 마음에, 수행할 수 있는 믿음을 동시에 주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명령(말씀)하실 때는, 감당할 믿음도 동시에 주신다!

 

독자 이삭을 바치라고 하셨다.

아브라함이 순종한 점도 있지만,

하나님이 명령하실 때는, 순종할 수 있는 능력도 동시에 주신다.

사실이다. (남의 일이라서 쉽게 말하는 것 같지만...)


온 세상을 다스리고 정복하라!  창1:26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도 명령하신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다스리라고!

그리고 그런 능력을 이미 우리에게 주셨다는 것이다.


제가 지금 여러분에게 헛바람 집어넣는 것이 결코 아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명령이며, 원래 하나님의 인간 창조 목적이다.

신약적으로 보면, 복음으로 세상을 땅 끝까지 정복하라는 것이다.

순종하면, 감당할 능력을 반드시 동시에 이미 주셨다.

 

참고로, 다스리고 정복하는 대상을, <사람>으로 오해하면 안 된다.

이 말씀을 오해해서, 세상 모든 사람을 정복하고 압제하려는 야망을 품으면 안 된다.

성경에, 사람은, <사랑하라>고 하셨다.


 

◑선포의 능력

 

하나님이 자연을 다스리는 능력을 사람에게 주실 때,

사람의 머리, 가슴, 손, 발, 어디에 주셨나?

저는 입(말)에 주셨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이 말씀으로 천지와 세상을 창조하셨듯이,

이 말에는 신비한 (창조의) 능력이 있다.


예수님이 풍랑 이는 바다를 향해 말씀으로 명하시매

바람과 바다가 잔잔해졌다.


예수님이 무화과나무에게 말씀으로 명하시니

무화과나무가 말라버렸다.


예수님은 우리에게도 말로 명령하라고 가르치셨다.

이 산을 향하여 바다에 옮기우라 하면 그대로 될 것이라고 우리에게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연에 대해 명령해야 한다.

자연을 다스리는 능력이 <말>에서 나간다.


제자들도 성령을 받은 후에,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예수님처럼 말로 명령하는 권세를 실제로 사용할 줄 알았다.


▲우리도 “말씀으로 명령하자!”

우리는 이 사실을 모르는 채로 지내면서

풍랑 이는 바다 앞의 제자들처럼, 무조건 두려워 떨기만 하면 안 된다.


자녀에게 붙어서 미혹하는 귀신에게 말로 명해야 한다.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물러가라!'


누가 병에 걸려 신음하면 말로 명해야 한다.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고침을 받을 지어다!'

(속으로 생각만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여러분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이 복잡하신가?

'나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들아, 고요할 지어다!'

한 번 해서 잘 안 풀리면, 기도할 때마다 계속 명령하시기 바란다.

'내 인생을 둘러싸고 있는 문제들아, 풀어질 지어다!'


이 능력을 사용하는 은혜가 있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드린다.

제가 이것을 깨닫고 요즘 좀 해 보니까, 너무 좋다.


성경에는 여호수아가 명하매, 태양이 머무른 역사도 기록되어 있다.

믿으시기 바란다.

(물론 하나님 나라에 꼭 필요할 때만 기적이 나타날 것이다.)


▲행복한 구정을 보내려면 명하시라! 말로 일어나는 창조의 능력을 믿으시라!

'우리 가정에, 행복한 설 명절이 될 지어다!'

'우리 가문아, 일어날 지어다!'

'우리 집안에 명절 분위기가 밝게 빛날 지어다!'

'세상아, 잠잠할 지어다! 두려움아 물러갈 지어다! 우울함은 떠나갈 지어다!'


<08.02.03. 인터넷 설교에서

 

[주제별 분류] 하나님의 형상 http://blog.daum.net/bible3/139818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