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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1 주님과 판단이 일치해야!

LNCK 2008. 2. 11. 09:01
 

◈주님과 판단이 일치해야!              고전13:7



◑제자들의 실수, 반면교사


한 여인이 3백 데나리온에 달하는 향유를 아낌없이 주님께 드렸습니다.

그러자 가룟 유다를 비롯한 제자들은 흥분하고 분노했습니다.

‘저것을 비싼 값에 팔아 가난한 자들을 도와 줄 수 있었겠다...!’ 마26:9 


이 말도 결코 틀린 말이 아닙니다. 지극히 상식적이고, 이성적인 말입니다.

다만 그들이 틀린 것은 <주님과 판단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포스트모더니즘의 사회는, 상대주의가 그 중요한 특징입니다.

‘상대주의’란, 한 가지 사안을 놓고 볼 때,

정치가의 입장, 경제인의 입장, 예술가의 입장이 서로 다를 수 있고,

그 다른 ‘입장차이’를 서로 존중하는 것이 바로 ‘상대주의’입니다.


가장 피부에 와 닿는 상대주의는 ‘세대차’ 입니다.

구세대와 신세대의 입장 차이는, 극복하기 힘든 어려운 벽처럼 보입니다.


그 외에도 남자와 여자의 시각차도 있고,

성격과 기질에 따른 서로간에 판단의 차이도 분명히 있고,

고부간의 입장 차이도 있으며,

크게는 인종간의 차이, 민족 간의 차이도 엄연히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내 판단을 버리고 주님의 판단을 따라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의 입장도... 꽤 사려 깊은 판단일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주님의 판단과 완전히 달랐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주님의 시각으로, 그 여인을 바라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지난 2천년 동안, 제자들은, 성경을 읽는 사람들의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교회에서나 가정에서, 서로 다른 입장 차이로 갈등할 때는

회의를 중단하고 겸허하게 주님께 그 뜻을 물어야 합니다.

사실 이렇게 봐도 맞고, 저렇게 봐도 맞습니다.

그러나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물어야 합니다.


똑똑하고 판단이 분명한 사람들, 특히 고학력자들은

‘자기 한계’를 인식하고, 반드시 극복해야 합니다.

똑똑하고 판단력이 뛰어난 사람들이

종종 학력도 변변찮고 무식하기 짝이 없는 ‘기도하는 어머님, 기도하는 권사님’을  

당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자기 판단을 의지하는 사람과, 주님의 판단을 의지하는 사람의 차이> 때문입니다.


60만 명 중에 엄선된 10명의 정탐꾼들이(6만대1), 신앙과 행실에 모범된 그들이

주님의 엄청난 책망과 징계를 받은 것은, 

자기 생각, 자기 판단을 갖고 임했기 때문이었던 것을,

나의 반면교사로 삼아야 합니다.

 

오늘 나의 판단이, 주님의 판단과 정반대로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겸허히 인정합시다!



◑참, 믿, 바, 견 (외우기 쉬운 버전)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고전13:7 


사역을 하다보면, 종종 사람에 대해 실망할 때가 찾아옵니다.

성경을 읽던 중, 이 말씀을 외우며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을 참으며

NTL 성경은 love never gives up!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로 번역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내 판단은, 사역하다 안 되면 금방 금방 포기해 버리려고 합니다.

그런데 성경(주님)의 생각은, ‘결코 포기하지 말라’입니다.


*모든 것을 믿으며

NTL 성경은 never loses faith 결코 믿음을 버리지 않는다로 번역했습니다.

나는 어떤 사람에 대해, 제자에 대해, 너무 쉽게 실망합니다. 너무 쉽게 돌아섭니다.

그런데 주님의 생각은, ‘결코 믿음과 신뢰를 저버리지 말라’고 하십니다.


만약 주님이, 제게 실망하고 신뢰를 저버리셨다면, 오늘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주님이 제게 대한 신뢰를 결코 저버리지 않으신 결과, 오늘날 내가 있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바라며

love is always hopeful 항상 소망을 가진다. 밝은 미래를 기대한다는 뜻입니다.

반대로 우리는 ‘싹수가 안 보여!, 도저히 구제불능이야!’ 이런 말을 잘 씁니다.

내 생각과 주님의 생각은 다릅니다.

주님의 생각은, 아무리 강퍅한 사람에게라도, hopeful, 소망을 가집니다.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endure all things, 말 그대로 모든 상황을 견디는 것입니다.

참고 견디지 못할 상황은 없다는 것입니다.


나폴레옹이 그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전쟁에서 승리하는 편은, 전투의 마지막 5분을 견디는 군대이다!’


그래서 많은 승리자들, 추수꾼들에게 그 비결을 물어보면

대답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무조건 버티기’라고 합니다.


내 생각은 이번만큼은 도저히 못 버티겠다고 하지만,

주님 생각은 ‘모든 상황을 버티라!’ 입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돈이 궁해서 경제적인 어려움에 눌릴 때,

몸이 아파서 병원 신세를 져야 할 때,

직장이 불안정해서 미래가 걱정될 때...


주님의 생각은 아래와 같습니다.

Be joyful always, pray continually, give thanks in all circumstances,

for this is God's will for you in Christ Jesus.  살전5:16~18


그런데 내 생각은, 그와 반대로 ‘짜증, 원망, 불평, 주님을 의심’ 등입니다.

우리는 내 생각을 버리고, 주님의 생각을 붙드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내 생각 때문에 실패했던, ‘제자’들의 쓴 경험을

나의 반면교사로 삼아야 하겠습니다.

 

 

◑주님의 주권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음부에 내리게도 하시고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삼상2:6


성경을 보면, 내 생각에는 죽여야 하는데, 주님은 살리십니다.

반대로, 내 생각에는 별로 큰 죄가 아닌데, 주님은 죽이십니다. 그런 예가 많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누가 제게 태클 거는 일이 생기면, 무조건 나를 돌아봅니다.

'그 놈이 나쁜 놈이다!'며 원망만 하고 있으면, 주님의 판결이 무서울 수 있습니다.

(즉, 나를 죽이시고, 내리시고, 가난하게 하시고, 낮추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무조건 나를 돌아보며 겸비할 때, 주님의 판결이 나를 옹호하실 때가 많습니다.

(즉, 나를 살리시고, 올리시고, 부하게 하시고, 높이십니다.)

 

누가 나를 반대할 그 때, 자기를 겸허히 돌아보면, 

내가 고칠 점은 반드시 눈에 띄게 됩니다. 평소에 못 깨닫던 잘못이 깨달아집니다.

그래서 내 잘못도 고치고, 주님의 옹호도 받으면... 일거양득 아닙니까!   

<08.02.10. 설교 참조, 김지윤

 

*관련 글 : 하나님의 눈과 사람의 눈 http://blog.daum.net/rfcdrfcd/13429076

 

 

 


◈나는 판단할 권리가 없다



나는 판단할 권리가 없다.

판단하는 그 사람이 스스로 비판을 받기 때문이다



성경은 여러 곳에서 판단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왜 그럴까?

판단이 ‘자기 의義’라는 죄와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남을 판단하지 말아야 할 첫 번째 이유는 마태복음 7:2절 말씀으로 설명된다.

즉, 비판하는 사람이 그 비판을 받기 때문이다.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판단을 하면 판단하는 사람의 영이 즉시 묶여버린다.

그가 학교의 선배이든, 선생님이든, 회사 상사이든, 평소 싫어하는 정치인이든 간에,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묶고 있는 그것들을 풀라고 말씀하신다.

그것이 묶고 있는 한 당신도 묶이기 때문이다.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마18;18



우리가 남을 판단하게 된 근원에는 선악과가 있다.

하나님이 아닌, 자기 스스로 판단의 주체가 되고자 하는 욕구가 그 핵심이다.

스스로 선과 악을 판단하고자 하는 교만이 선악과의 정신이다.


선악과를 따먹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눈으로 나와 내 주변을 보기보다는,

나의 기준으로 판단하겠다는 뜻이다.

결국 하나님의 긍휼어린 눈으로 형제자매를 보는 것이 아니라,

내 기준으로 재단하는 것, 이것이 판단이다.



예수님이 판단하지 말라고 하신 이유는

판단하는 사람의 영혼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사탄은 고소하고 정죄하는 영이다.

우리가 상대를 판단하면 영적으로 사탄과 묶이게 된다.


사탄은 우리에게 추악하고 더러운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광명한 천사로 가장한다.

아름다운 모습으로 의의 화신으로 나타나 그 의의 기준으로 우리를 고소한다.


또 판단하는 우리가 스스로 자신을 다시 판단하게 함으로써

자책감 속에 괴로워하게 만든다.

이 비판의 문제는, 하나님을 이제 막 믿기 시작한 초신자보다는

이미 신앙생활을 오래 해온 리더들에게 더 심각하게 나타날 수 있다...



우리에게 죄책감을 주고 우리를 율법에 의거하여 고소하는 자는 사탄이다.

우리는 이 부담감을 안고 하나님을 멀리하게 된다.

반면 성령의 감동과 조명하시는 마음의 찔림, 이것은 사람을 바꾸는 힘이 있다.

이 변화의 필수 요건은 성령의 감화이다.

성령의 지적은 순종하는 영혼을 송두리째 변화시킨다.

사람의 결단으로는 될 수 없는 변화를 일으키신다.


<이용규 / 더 내려놓음 P 116-119   *출처: 다음 카페 [아굴라와 브리스가]

 

[주제별 분류] 리더십, 목회자 http://blog.daum.net/bible3/140430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