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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가 튼튼한 사역이 되려면

LNCK 2008. 2. 8. 18:52

기초가 튼튼한 사역이 되려면 - YouTube

◈기초가 튼튼한 사역이 되려면         눅5:16       08.02.04. 하용조 목사님 설교 녹취 정리

예수는 물러가서 한적 한 곳에서 기도하시니라.   눅5:16

  

◑사역의 본질

 

사람들이 많은 '성취와 업적'을 이루더라도

결국 남는 것은 그의 '존재'이다.

그러므로 항상 자기 '존재'의 내면적 아름다움을 가꾸기에 힘써야 한다. 

 

처음에 사람들이 예수 믿기 시작할 때는 대부분 ‘은혜’를 붙든다.

그런데 3년 안에, 많은 사람들이 ‘율법주의’에 빠지게 된다.

자꾸 ‘행함’으로 자기 신앙을 확인하려고 한다.

 

일단 율법으로 빠지기 시작하면... 은혜가 없어지기 시작한다.

은혜가 없어지면, 윤활유가 말라버린 기계와 같다. 뻑뻑하게 돌아간다.

만나면 서로 피곤해지고, 사나워진다.

처음에 ‘은혜로’ 예수 믿은 사람들이, 순식간에 ‘율법으로’ 사나워진다.

 

은혜가 넘치는 사람은 특징이 ‘부드럽다.’

아무리 험악한 사건을 만나도 부드럽게 풀어 나간다.

 

그런데 율법적이 되어 행위를 강조하다보면,

아주 작은 사건을 만나도 사납게 반응 한다.

 

사역에만 치중하다 보면, 종종 사람들이 사나워진다.

그런데 예배를 잘 드리면, 부드러워진다.

 

저희 교회가 처음에 개척할 때는, ‘일대일 큐티’를 했다.

사역에 치중하지 않았다. 그 때는 성가대도 하지 않았다. 교회학교도 없었다.

 

그 때 왜 그랬는가?

사역에 치중하다 보면, 종종 영적으로 스스로 속기 쉽기 때문에,

먼저 우리는 기초를 잘 닦기로 했다.

그래서 성경공부하고, 기도하고, 내면의 인격을 키우는데 먼저 치중했다.

 

교회 봉사 많이 하시는 분들 가운데, 부부가 서로 열심히 싸우는 가정도 있다.

교회서 봉사 열심히 하고, 집에 돌아가서 매일 서로 투닥 거린다면,

그것이 뭐하는 것인가? 자기를 기만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교회 초창기 약 7년 정도는... 성경공부만 했다.

그러고나니까 어느 시점에 이르러 사역이 불붙기 시작했다.

 

지금은 우리 교회가 사역이 엄청나게 많아졌다.

이렇게 많은 일을 하다보니, 옛날에 ‘일대일 큐티’하던 것도 다 잊어버리고,

온통 우리 교회가 지금 사역에 정신이 나가(빠져) 있다.

 

그러다보니 우리 교회가, 옛날 초창기 때 모습과 조금씩 달라지는 것을 느낀다.

그래서 요즈음 ‘다시 기초로 돌아가야 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성경 읽고, 기도하고, 일대일 큐티 양육 하는 쪽으로 다시 치중해야 하겠다.

그리고나서 하나님이 주시는 힘만큼, 나가서 사역을 해야 하겠다.

 

우리 교회에 ‘내적 치유, 아버지 학교’ 등 많은 사역들이 즐비하게 있다.

그 사역들에서 중요한 것이 ‘내면적 자기 성찰’임을 잊어서는 안 되겠다.

 

 

◑가난한 자들을 위하는 사람이 조심해야 할 것

 

내가 “가난한 자들을 위해 삽시다!” 라고 외치면,

자기 스스로 꽤나 가난한 자들을 위해 사는 것처럼 착각할 때가 있다.

그런데 자신을 정직히 들여다보면, ‘말만 하고 마는’ 경우가 많다.

 

우리 주변에, 가난한 자, 노동자들을 위해 부르짖는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 ‘개념만으로 그렇게 외치는 것이지, 실제 행동으로

그들이 가난한 자들을 위해서 수고하고 애쓰는 것은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

을... 목격하게 된다.

 

제가 유학할 때, 영국의 대주교가 이렇게 인터뷰하는 것을 보았다.

“나는 가난한 자들을 위해 소리 지르는 사람들이 제일 싫습니다.

그들은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도와야 한다고 소리만 지르지,

실제로 자기가 직접 그렇게 사는 사람은 별로 많이 못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가난을 하나의 ‘철학’으로, ‘이념’으로 보기 쉽다.

실제로 가난한 현장에 뛰어 들어가서 살기는, 결코 쉽지 않은 것이다.

그러므로 가난한 자들을 위합시다! 는 말도, 조심해서 해야 한다.

 

 

◑바쁘신 와중에도 여유롭게 사셨던 예수님을 본 받아...

 

일 많이 하시는 예수님일까? 기도 많이 하시는 예수님이실까?

물론 둘 다 있다. 예수님은 분명히 균형을 가지셨다.

 

예수님이 얼마나 일을 바쁘게 많이 하셨는가 하면,

식사하실 겨를조차도 없으실 정도였다.

피곤에 지쳐서 배에서 선잠을 주무실 정도로 사역도 많이 하셨다.

 

그러나 예수님이 아무리 사역을 많이 했어도, 그 분께 남는 인상은

‘굉장히 평온하시다’는 것이다.   

‘바쁘다’는 인상은 예수님께 없으셨다.

 

우리 주변에 어떤 사람은, 그 사람을 쳐다보기만 해도, 도리어 내가 숨이 찬다.

여러분 보시기에 나도 그런지 모르겠다.

 

예수님은 아무리 일을 많이 하셨고, 점심 먹을 겨를도 없이 바쁘게 지내셨다 해도

우리가 가지는 예수님께 대한 인상은

차분하고, 조용하고, 안정되어있다, 늘 기도하신다... 등이다.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들이 나를 바라볼 때,

나도 그런 인상을 심어줄 수 있어야 한다.

 

순간 순간 예수님은 홀로 산에 가셔서 밤이 다 지나도록 기도하셨다.

기적을 베푸시고 난 다음에도, 인기와 찬사가 쏟아지는 그 순간에도,

다음 날 새벽 미명에는 오히려 한적한 곳에 나가셔서

대중을 떠나서 하나님과 단독자로 만나셨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바라 볼 때마다,

위로를 받고, 안심이 된다. 내가 편안해 진다. (예수님이 절대 안정되어 계시니까!)

반대로 우리가 바쁜 사람을 만나면,

내가 편치 않고 자꾸 불편해 진다.(그가 초조하니까 덩달아 나도 초조해진다.)

 

그러고 보니, 내가 바로 그런 삶을 지금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 교인들을 편안하게 만나주지 못하고 있는 나!

그래서 나도, ‘그 바쁘신 와중에서도 늘 기도하시며 전혀 바쁘지 않으셨던 주님’

늘 본 받으며 살려고 다시 결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