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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없음/2008

1116 동일시 하는 지도자

LNCK 2008. 2. 13. 22:11


◈‘동일시’하는 지도자        출32:32



기독교인이 되었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을 건져내는 사명을 공통적으로 가졌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떤 자세로 영혼들을 건지는 사명을 감당할 것인가?



▲1. 예수님 사역의 독특한 특징 - 동일시

우리는 보통, 내가 힘이 있고, 능력이 있어서, 내가 우월한 위치에 서서

아래에 있는 너희 불쌍한 자들을 건져준다는, 그런 생각을 은연중에 갖고 있다.

‘나는 너희들과 족속이 달라!’ 라는 의식이 기본 바탕에 깔려있다.


그런데 예수님의 사역 방식을 한 번 생각해 보자.

예수님은, 원래 하나님의 본체시나, 스스로 하나님 되심을 포기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을 입으셨다. 빌2:6~7

- 예수님의 사역의 독특성은 “우리와 같아지는 것”(성육신)이었다.



▲2. 모세의 지도력의 비결 - 동일시

비슷한 맥락이 사도행전 7장에 스데반의 설교에서 나온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어떻게 사용하셨는가?


모세는 처음에 애국심으로, 이스라엘 인을 핍박하는 애굽 사람을 쳐 죽여 버렸다.

그러면서 ‘내가 이제 이스라엘의 해방자가 되어 줄 거야!’ 했을 때,

즉 뭔가 우월한 자의 입장에 섰을 때... 쓰임 못 받았다.


그러다가 나중에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의 일원이 되었을 때, 그들 노예들 속에 들어갔을 때’

하나님은 모세를 그들 노예들의 지도자로 세우셨고, 백성들도 그를 따랐다.


스데반은 이 맥락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저희 말이 누가 너를 관원과 재판장으로 세웠느냐 하며 거절하던 그 모세를 행7:35

즉, 모세가 관리와 재판장의 우월한 위치에 서서 “나 따라와!” 할 때는

백성들이 거절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광야에서 40년 동안 초라한 목동으로 지내면서

하나님은 그의 의욕, 능력 등을 모두 박살내 버리셨다.

그렇게 다 죽은 모세를 이제 슬슬 건져내기 시작하신다.

하나님은 가시나무떨기 가운데서 보이던 천사의 손을 의탁하여

관원과 속량하는 자로 보내셨으니  행7:35b


스데반은, 모세가 이렇게 설교했다고 전한다.

‘하나님께서 너희 형제 가운데서 나와 같은 예언자를 세워 주실 것이다’ 행7:37


하나님이 세우기 원하시는 사명자는 “너희 형제 가운데서” 나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참된 지도자는, ‘그들 속에’ 가급적 깊이 들어가는 사람이다.


▲모세의 동일시 기도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금송아지 만들고 난장판 벌이니까

하나님은 “이 패역한 족속들을 다 죽여 버리고, 너를 통해 새 민족을 만들겠다”

하셨다.


그러자 모세는 자기 생명을 걸고 이렇게 기도한다.

그러나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주옵소서 출32:32


모세는 백성과 자기를 결코 분리해서 생각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백성들과 자기를 분리하지 않는 것’이다.

내가 곧 순원이요, 순원이 곧 나인 것이다.


‘저 사람들이 죽어요? 주님, 그럼 나도 죽겠어요!’

모세는 자기를 예외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운명공동체로 여겼다.

그 백성에 완전히 동화된 것이다.


‘너는 죽을 수 있지만, 나를 살 거야!’

이런 식으로 생각할 때, 이미 그 공동체는 깨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가 진정 성령충만 속에서, 뜨거운 사랑을 가질 때,

그와 나를 결코 나눌 수 없다.

그래서 그가 아프면, 내가 금식하고 내가 아파한다.

지도자로서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에서 우러나오는 자발적 소원으로 한다.



▲기독교 사역의 본질 - 동일시, 동화

우리 교회 청년들이 그래도 많이 모이는 이유는, (자화자찬이라서 죄송하지만)

일반적으로 목사님들은, 청년들 속에 못 들어가신다.

그 위에서 배려하고, 관심을 기울여 주는 것과, (이것도 좋긴 하지만)

직접 그들 청년들 속에 들어가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진짜 청년들을 건져 낼 사람은

그 속에 들어가서 자기가 청년의 일원이 되어야 한다.

같이 부대껴야 한다. 이것이 ‘원리’이다.


병자들을 전도할 사람은, 병자들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위에서 설명해 주고, 코치해 줄 수도 있지만

차원이 다르다.


예수님의 사역 방식을 보시라!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인간 사회 속으로 들어오셨다.

그러므로 기독교 사역의 본질은

‘동화’되는 데 있다.


누가 훌륭한 지도자인가?

같이 뛰어 들어가는 지도자이다.

우리 교회의 리더 중에, 아직 리더로서 감을 잘 못 잡는 사람이 있는데,

아직 그 속에 깊이 들어가지 않아서 그렇다.


연령차가 20년 이상 되는 멋모르는 청년들과 동화되다보면, 기분상하는 일도 있다.

그 때 ‘내가 왜 여기서 이 짓 하고 있나?’ 하면 안 된다.

그것을 참고 이겨내고, 그 속에 들어가서 내가 그와 동화되어야 한다.


동화가 되면, 사람들은 자기 아픔과 속 얘기를 꺼내게 된다.

그 때부터 친구가 된다. 이것은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것이 바로 ‘우리와 같이 되는 것’이다.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빌2:7


 

▲3. 바울의 지도력의 특징 - 동일시, 동화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골1:24


무슨 뜻인가?

예수님께서 사람들과 동일시하시며 고난을 받으신 것과 마찬가지로

나도 그들의 괴로움 속에 동참하기 원한다는 뜻도 된다.


바울은, 자기와 이스라엘 백성을 동일시했다.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롬9:3

  


▲4. 느헤미야도 동일시

나와 나의 아비 집이 범죄하여 주를 향하여 심히 악을 행하여

주의 종 모세에게 주께서 명하신 계명과 율례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였나이다. 느1:6~7


사실 느헤미야가 범죄한 것은 없다.

그러나 마치 자기가 범죄한 것처럼 하나님께 자복했다.

자기와 이스라엘 백성들을 동일시했기 때문이다.



▲지나치게 나누기 보다는, 그 속으로 들어가야...

육적인 크리스천, 영적인 크리스천

거듭난 신자, 아직 못 거듭난 신자,

이런 구분도 매우 조심해서 해야 한다.

그것이 공동체를 은연중에라도 분리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바리새인들이 그렇게 잘 나누는 사람들이었다.

자기들은 우월하다고 생각했고, 다른 이들은 열등하다고 생각했다.


그런 ‘나눔’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상대방 속에 들어가서 ‘동화’되는 것이다.

자기는 동화되지 않고 멀찍이 서서, ‘우등반, 열등반’ 나누고 있으면... 안 된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라고 했을 때

소금의 역할은 녹아서 동화되는 것이다.

간이 안 된 국물에 소금이 들어가면, 소금이 전체를 짜게 ‘동화’시켜 버린다.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내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고 당부하신 것은

'내 양 떼 속으로 들어가라'이다. 그들과 동화되라는 당부이다.

멀찍이 떨어져서 치는 것은... 잘 되지 않는다.



▲진정한 중보기도란?

그 사람 속에 들어가서, 그의 아픔을 내가 동일하게 느끼는 것이다.

멀찍이 떨어져서, 그를 불쌍히 여기며 긍휼한 마음으로 기도하는 차원.. 이상이다.


내가 그와 똑같이 아파한다. 그래서 그를 위해 금식까지 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이런 믿음의 회복이 우리 가운데 이루어져야 하겠다.


잘 보면, 우리가 지금까지 예수 잘 믿는 줄 알았는데,

얼마나 본질로부터 벗어난 것이 많이 있었는지...

오늘 우리 가운데, 이런 복음의 본질이 하나씩 회복되어지기를 소망한다!


<08.01.04. 인터넷 설교 요약  *원제목 : 열심과 능력보다 죽는 게 우선이다. (후반부)


[주제별 분류] 리더십, 목회자 http://blog.daum.net/bible3/140430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