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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없음/2008

1115 열심과 능력보다 죽는 게 우선이다

LNCK 2008. 2. 13. 15:28

 

◈열심과 능력보다 죽는 게 우선이다.              마16:24



◑서로 생각이 달랐다!


마태복음 16장에 유명한 베드로의 신앙고백이 나온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마16:16


그런데 16장 전체를 읽어보면,

베드로의 신앙고백이 문맥의 핵심은 아니다.

<예수님의 생각과 제자들의 생각이 얼마나 다른가!> - 이것이 문맥의 핵심이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정치적 메시아, 5병2어 기적을 베푸시는 능력자로 여겼다.

그런데 정작 예수님은, 자신을 (반대로) 십자가를 지는 종으로 나타내신다.


이때로부터(베드로 신앙고백 이후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시니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간하여 가로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16:21-22


▲서로 생각이 달랐다.

보통 사람들 생각에는, 양떼들 기대에 부응하는 목회자를 - 훌륭한 종으로 여긴다.

일면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는 경우도 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했듯이, 오늘날 양떼들도 목자에게, 종종 엉뚱한 것을 기대한다.

훌륭한 신앙고백을 했던 베드로를 보시라,

얼마나 자기 (메시아 상에 대한) 기대가 예수님의 본심과 달랐는가!


예수님은, 제자들의 필요와 기대를 다 채워주시는 길로 가지 않으셨다.

꿋꿋이 자기가 가야하는 길, 십자가의 길로 향해서만 줄기차게 걸어가셨다.


오늘 교회 지도자들은, 일차적 관심을 하나님께 두어야 한다.

하나님이 내게 무엇을 원하시는가? - 에 두어야지,

사람들이 내게 무엇을 원하는가? - 에 두면 안 된다.


하나님이 내게 무엇을 원하시는가?

- 두말 할 필요도 없이 ‘십자가’다.



◑제자가 갖추어야할 우선적인 자격


▲베드로에게 가장 필요했던 것 - 자기의 죽음

베드로는 큰소리쳤다. 주와 함께 옥에도, 죽는데도 가겠습니다!

저는 이런 베드로의 고백이 진심이라고 믿는다. 과장은 있더라도, 거짓은 아니었다.


그런데 예수님은 반대로 말씀하신다.

베드로야,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모른다고 부인하리라

이렇게 <베드로의 죽음>을 선언하신다.


베드로는, 자기가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라고 극구 부인했지만,

결국은 예수님 말씀대로 되었다.


지금까지 내용을 다시 요약하면,

제자들이 기대한 예수님의 메시아 상과 달리, 예수님은 십자가의 길을 예고하셨다.

베드로가 기대한 자기의 용감한 결단과 달리, 예수님은 그의 십자가를 예고하셨다.


즉, 제자의 길을 가려면 ‘자기 십자가=죽음’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양떼들이나 본인이 그것을 <원치 않더라도, 전혀 예상 밖이라도> 말이다.



▲오늘날 신자들에게 부족한 점 한 가지

보통 우리 성도들이 기도로 구하는, 제자의 자격은

‘열심, 감격, 충성’ 등이다.

그런데 베드로는 이미 그런 자질들을 다 갖추고 있었다.

그는 충성된 일꾼처럼, 죽기 까지 따르겠다는 마음을 갖고 있었지만, 결국 실패했다.


베드로의 실패는... 오늘날 우리 모두의 실패의 전조이다.

오늘 우리는 철야기도까지 나와서, 주먹을 불끈 쥐고 부르짖을 만큼 열심이다.

세상 사람들이 보면, 무서워할 만큼 열심 내고 충성한다. 베드로에 못지않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것만 갖고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베드로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 죽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명심해야 한다.

이것을 부인하면, 베드로처럼, “사단에 내 뒤로 물러가라”는 책망을 듣게 될 것이다.


마16장에서 일어난 토론에서, 결론적으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마16:24


‘자아가 죽는 것, 자기를 부인하는 것’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고는, 아무리 베드로처럼 펄펄 뛰어도 부족하다는 것이다.


베드로가 가장 멋진 신앙고백을 하고, 가장 충성스럽게 자랑하며 말했을 때

예수님은 정반대로 - ‘완전히 죽어라!’ 고 일러주셨다. 찬물을 끼얹으신 것이다.



▲의욕도 없고, 능력도 없게 하라!

보통 세상에서 사람을 쓰는 기준은 2가지인데,

1. 의욕  2. 능력이다.

그래서 <의욕도 있고, 능력도 있는> 사람을 뽑아서 쓴다.


보통 사람들은 <의욕은 있는데, 능력이 없거나>

반대로 <능력은 있는데, 의욕이 없다.> 

최악의 경우는, <의욕도 없고, 능력도 없는> 경우이다.


그런데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먼저 십자가에서 죽으라는 것은

어떤 의미로 <의욕도 없고, 능력도 없는> 사람이 되라는 뜻이다.



▲의욕도 넘치고, 능력도 넘치니까 문제다!

한국교회에 지금 너무 많은 사람들이 <의욕도 있고, 능력도 넘친다.>

그것을 매우 조심해야 한다.

자기 의욕과 자기 능력으로 날뛰다가... 도리어 하나님 나라를 망치기 때문이다.


의욕도 있고, 능력도 넘쳐나서 열심히 뛸 때,

조용히, 깊이있게 하나님을 바라볼 줄도 모르고,

그냥 자기 능력 믿고 뛰어다니는 것이다... 그러다가 십자가의 원수가 된다.



◑십자가란? - 자아가 완전히 죽은 사람


파라독스(역설)처럼 들리지만, 하나님 나라에서 제일 잘 쓰임 받는 사람은

의욕도 없고, 능력도 없는 사람이었다. 아시는가?

‘나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며 자아가 완전히 죽은 사람이다.

이런 사람만이 철저히 주님만을 의지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런 죽은 자를 사용하신다는 사실이다.



▲예수님은 의도적으로 베드로의 의욕을 무너지게 만드셨다.

베드로는 의욕은 넘쳐 났는데, 세 번 부인하도록 주님이 방치하셨다.

그런데 닭 우는 소리에 베드로가 통곡했다. 왜?

-그 시간 자기 의욕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베드로는, 능력은 몰라도, 자기에게 '의욕'만큼은 넘치게 있는 줄 알았는데,

이제 그 의기양양하던 ‘의욕’마저도 사라졌다. 자신감도 다 무너졌다.


그 후에 베드로는, 예수님 앞에 잘 나타나지도 않는다.

민망해서 피하고, 갈릴리에서 다시 물고기 잡는 옛날로 돌아가 버렸다.

그래서 그를 <의욕도, 능력도 없는> 사람으로 만드셨다. (능력은 처음부터 없었고..,)


예수님은 사단의 위협을 이미 알고 계셨다.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단이 밀 까부르듯 하려고 너희를 청구하였으나  눅22:31


그러나 그 때 예수님의 중보기도가 있었다.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으니


마치 욥기에, 욥의 생명은 건드리지 말라고 제한을 두셨듯이

마귀가 베드로를 만질 만큼 정해주셨다. 무제한으로 시험하도록 허락지 않으셨다.


다시 말해서,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하는 것까지만 방치해 두셨다.

예수님이 더 기도하셨더라면, 베드로가 부인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고 본다.

그런데 베드로를 방치하신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다.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눅22:31~32


우리가 실패하는 것... 예수님의 의도도 있다, 그래서 허락하신다.

실패하지 않도록 붙들어 주실 수 있지만, 실패를 통해서 ‘자기 의욕’을 박살내라는 것이다.

빨리 자아가 다 죽고, 철저히 하나님만 의지하는 모습으로 변화되라는 것이다.


우리는 자기 자신이 누구보다 능력 있고, 강하다는 착각 속에 종종 빠져 산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죽고) 나를 따르라

이 예언의 말씀(마16:24)이... 베드로가 부인하고, 닭 울 때 이루어졌다.(마26:75)



▲우리도 베드로와 똑같다.

예수님은, 우리가 다 무너지기를 원하시는 면이 있다.

‘이래도 네가 깨끗하니?, 이래도 네가 능력이 있니?, 이래도 네가 의욕이 왕성하니?’


그런 예수님의 다루심을 받은 사람들은 베드로처럼 고백한다.

‘저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I am nobody, nothing’

바로 이때부터가 예수님이 그를 통해 일하시기 시작하는 시점이다.


얼마 전에 설교했지만, 맞아도 깨어지고, 열심히 해도 깨어진다.

( http://blog.daum.net/rfcdrfcd/13896879 )

지금 베드로는 자기가 죄를 지어서 맞아서 깨어진 면도 있지만,

동시에 열심히 봉사했기 때문에 깨어진 면도 있다.

 

그의 고백을 보라, 옥에도 가고 죽는 데도... 얼마나 열심인가?

또한 재판 받는 예수님을 멀찌감치 라도 따라갔다.

차라리 안 따라가고 아예 멀리 도망가 버렸다면, 부인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베드로도 열심히 믿다가 깨어졌다고 볼 수도 있다.



▲율법주의자들이 악한 이유는,

자기도 (완벽, 무결점이) 안 되면서, 될 수 있다고 큰소리친다.

율법주의자는 자기도 그렇게 살지 못하면서도,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사기 친다.

세상에 죄 안 짓고 온전하게 의로운 사람이 누가 있는가!


인간은, 결국 어느 쪽으로 가든, 깊이 들어가면, 다 깨어지게 되어있다.

그래서 이 고백이 가슴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고마워...

제 안에 선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저를 붙들어 주세요!’

하는 순도 100%의 하나님만 의지하는 마음이 생긴다.


그런데 보통 우리는 ‘암 말기’ 판정을 받아야 그 때 비로소

‘주님 밖에는 없습니다!’라는 처절한 고백이 나오게 된다.

그러면서 거기서부터 신자로서의 파워가 나온다.

만약 ‘감기’ 걸렸을 때 그런 순도 높은 고백이 나온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바울의 깨어짐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 마음에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이라 고후1:8~9


이때가 강하다. 이때가 철저히 하나님만 의지할 때이다.

내 의욕, 내 능력이 다 무너진 때이다.


기도할 때도, 너무 처음부터 큰 소리로 기도하는 것보다

처음에는 의욕도 없이, 기도할 힘마저 없는 때... 바로 그 때 오히려 소망이 있다.

자기가 다 깨어지고 확실히 죽어버렸을 때...



▲수준 있는 크리스천

인생을 살다보면, 내가 강할 때... 이루어지는 것이 별로 없다.

밤낮 아프고, 힘들고, 곤비할 때... 오히려 이루어지는 일들이 많다.

오직 주님만 의지하게 되기 때문이다.


여호와는 나의 힘과 나의 방패시니 내 마음이 저를 의지하여 도움을 얻었도다. 시28:7

이 고백은, 다윗이 강할 때가 아니다.

너무 자기가 연약할 때, 비로소 그런 고백이 나오는 것이다.


자기가 능력이 많다고 생각하는 사람... 죽어져야 한다.

큰 소리로 자신 있게 기도하던 사람... 신음소리를 내어야 한다.

그래서 완전히 죽었다가 새 힘을 얻고 일어선 사람은

완전히 변화된 나 자신이다. 더 이상 과거의 내가 아니다.


2008년에 우리 성도들이 이런 수준에 올라가기 바란다.

자기 죽음을 체험하는 것이다.


<08.01.04. 인터넷 설교 요약  *원제목 : 열심과 능력보다 죽는 게 우선이다. (전반부)

 

[주제별 분류] 십자가 사상 http://blog.daum.net/bible3/14043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