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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1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성도

LNCK 2008. 2. 16. 10:24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성도          마12:28                 하용조 목사님 설교/ 편집     



◑성령충만해야 귀신을 쫓아낸다.


▲귀신에 대한 양 극단을 피하자

C. S. 루이스가 지적했듯이, 현대인들은 귀신(마귀)에 대해 너무 자주 언급하든지,

아니면 아예 일절 언급하지 않는 양 극단에 빠져 있다고 했다.


사실이다. 세상에 나타나는 모든 현상을 다 귀신의 역사다, 귀신들렸다고 말하면

사람이 천박해 보인다.

그렇다고 귀신의 역사役事에 대해 전혀 무관심하고, 무감각한 것 역시 잘못이다.


노이로제, 우울증, 자살충동, 항상 비관적, 육신적 질병,

이런 현상들이 모두100% 귀신들린 것은 아니지만,

어떤 경우에는 귀신이 들려서 나타나는 경우도 반드시 있다.


보통 귀신은 발작적, 충동적이다. 그러므로 평소에는 정상이다가도,

갑자기 발작적인 어떤 충동을 주기적으로 느끼는 사람은...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

 

▲귀신을 불러서 귀신 쫓아낼 수 없다.

예수님이 귀신을 쫓아내셨을 때, 사람들이 비난했다.

‘저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의 힘을 빌려서, 귀신을 쫓아냈다!’ 마12:24


귀신들린 사람이 자기 정체가 드러나면, 도리어 ‘네가 사탄이다!’며 역공으로 나온다.

그래서 귀신의 영향을 받던 사람들이, 도리어 예수님보고 ‘너는 바알세불’ 운운했다.


그러자 예수님은 사탄이 사탄을 내쫓지 못한다!

즉 어두움이 어두움을 내쫓지 못한다고 하셨다.

같은 동지끼리는 서로 싸우지 못한다는 논리였다. 마12:26


아주 음란한 영상을 계속 들여다보면서도, 만약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이 있다면

자기를 돌아보아야 한다. 자기 안과 밖이 비슷하니까 아무런 갈등이 없는 것이다.

  

무당의 자기모순은 ‘귀신을 불러 귀신을 쫓아내는데’ 있다. 그것은 모순이다.

처음에는 잘 쫓는 것 같지만, 결국에는 더 나빠진다.

예수님은 ‘귀신이 귀신을 쫓아내지 못 한다’고 하셨다.

어둠이 어둠을 쫓아내지 못 한다. 오직 빛 만이 어둠을 쫓아낼 수 있다.


내가 빛이 되고, 내 속에 빛 되신 예수께서 충만히 임하실 때,

나도 귀신에게서 놓여나고, 또한 다른 귀신들도 물리칠 수 있는 것이다.

빛 앞에 어두움이 물러나기 때문이다.


▲인격이 있어야 귀신을 쫓아낸다.

귀신을 쫓아내려면 능력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은 평소 인격에서 나온다.

평소에 예수님과 늘 가까이 사는 사람만이, 귀신을 쫓아낸다.


평소에 인격이 절제되지 못하면... 귀신들린 사람을 보면 두려워하게 된다.

귀신이 나를 보고 놀라서 도망가야 되는데,

내가 귀신을 보고 놀라서 도망가게 되는 것이다...


▲성령충만이, 귀신을 쫓아낸다.

귀신이 신자를 공격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우리가 죄를 늘 짓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안에 오래 머물게 하면 안 된다.

그러므로 (작은) 범죄한 다음에는, 속히 회개하며 스스로 정결케 되어야 한다.


성령충만이란, 귀신이 내 안에 오래 머물지 않게 하는 상태이다.

귀신이 들어오다가도 금방 미끄러져 나가는 사람이다.


나(설교자)는 가끔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면서, 스스로 귀신을 쫓아낸다.

내가 스스로, 혹시 내게 틈탈 지도 모르는 귀신에게 엄히 명령하는 것이다.


우리가 교회에서, 가정에서 뜨겁게 기도하고 찬송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래야 귀신이 발을 못 붙이기 때문이다.

발을 붙였다가도, 뜨거워서 즉시로 떠나기 때문이다. <이상 하용조 목사님 설교에서 발췌



◑하나님이 함께 하셔야, 내가 마귀를 이긴다.


▲하나님을 경외할 때 우리는 사탄과 마귀에게서 건져내 집니다.

마귀는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우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마귀가 없는 곳에 살 수 없습니다. 항상 같이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도 보면 마귀가 항상 늘 따라 붙었는데, 마귀가 우리를 안 따라 붙겠어요?

에덴동산에도 있었습니다.

다윗도 사탄이, 사도 바울도 마귀가 넘어뜨리려고 했습니다.

베드로도 마귀가 죄를 범하게 했습니다.


어떤 분은 잘 믿으면 사탄이 멀리 가는 줄 아는데요. 멀리가기는 뭘 멀리 갑니까?

항상 같이 있는 것이 마귀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으면, 한 순간에 넘어집니다.


‘오월동주’ 라는 말이 있습니다. 중국에 오나라와 월나라가 있는데,

원수이지만 한 배에 같이 탔다는 말입니다. 마귀와 같이 사는 게 세상입니다.

오월동주가 이 세상입니다. 마귀가 뭐 멀리 있는 줄 아십니까?

마귀가 여러분이 잠을 자면, 옆에 있고

밥을 먹으면, 밥 먹는 옆에 있는 것이 사탄입니다.


그러나 사탄이 우리를 넘어뜨릴 수 없는 한 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예수 잘 믿는 사람은, 사탄이 절대로 넘어뜨릴 수 없습니다.


그 외에는 다 넘어뜨립니다. 갖고 노는 거예요.

백 가지, 천 가지 길이 너무 많아서

지붕으로든, 문으로 들어가든지, 사탄을 막아낼 수는 없어요.


하나님이 나의 산성이 되시고, 나의 피난처가 되시고, 여호와의 눈이 함께하시면 

하나님을 보고 겁내서 사탄이 나를 못 넘어뜨립니다.


그렇습니다. 사탄이 우리를 공격하는 밖(외부)의 공격도 이겨낼 수 있고

내 마음(내부)에 일어나는 온갖 원망, 낙심, 좌절, 미움, 시기, 걱정, 불안, 염려도

이겨낼 수 있는 길은, 하나님의 가까이 의지하는 길 뿐입니다...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귀신의 두려움을 이기라!

저는 시골서 등교할 때, 버스를 타서 내려도, 20리를 걸어서 다녔습니다.

그렇게 걷는 길에 여러 마을을 지나게 되는데,

그 마을마다 옛날부터 내려오는 어떤 전설 같은 것이 있습니다.


그 마을 논둑에는 어떤 전설이 내려오고, 못에는 못의 전설이 있습니다.

어른들을 통해서, 그런 내려오는 이야기들을 듣습니다.


예를 들면, 성지골에는 뭐가 내려오느냐? 계란 귀신이 있습니다,

계란이 떼굴떼굴 굴러온다 하고,

또 그 마을을 넘어가면 소복한 여인이 무덤에서 나온단다.

그리고 조금 내려가다가 저동이라는 냇가가 있는데

거기는 물귀신이 나와 가지고, 얘들이 오면 잡아가려고 기다리고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런 말이 전부 입력이 되어가지고, 나 혼자 밤길을 걸어가려면

여기 가면 여기 귀신이 나를 지배하고

저기 가면 계란귀신이 떼굴떼굴 계속 그 생각에 꽉 잡혀서 벗어나지를 못합니다.

집에 다 갈 때까지 열 번, 백 번, 그 귀신이 나를 지배하는 겁니다.


그래가지고 머리끝이 쭈뼛하고, 살갖이 오돌오돌 돋아납니다.

이건 안 겪어본 분은 모르는데 막 올라오는 겁니다. 얼마나 불안한지 모릅니다.

가다가도 뒤돌아보고, 그 하찮은 전설이라도 내 마음 안을 꽉 잡습니다.


이걸 벗어날 수 있습니까? 길이 딱 하나 있습니다. 뭡니까?

모든 전설을 이길 수 있는 분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세상에 어떤 연약하게 하고, 우리를 괴롭히는 모든 말을 파괴시키고

다 소멸시킬 수 있는 능력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내가 너와 함께하리라”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러니 두려울 때면, 내가 담대해질 때까지 말씀을 읽어야 하고,

그 말씀을 선포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계란 귀신이 오면 ‘그 까짓거!’ 하며 차버리면 되는 거고, 

그 다음에는 걱정이 하나도 없어지는 겁니다... <이 단락 김삼환 목사님 설교에서        ▣ 영적전쟁  17.   

 

 

..................< 관 련 글 >....................

 

◑‘영분별의 은사’에 관하여


저자는, <영분별의 은사>를 단순히 성령, 악령을 분별하고 가려내는 것이 아니라,

마귀의 역사를 분변하고, 그 기초에 있는 <죄의 문제>를 다루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 죄를 처리하도록 함으로써, 그 죄로 인해 당할 환난을 <미리 예방>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성도들에게 영분별의 능력을 주시는 주요 목적은

마귀를 물리치고 귀신을 쫓아내는 것만이 아니라

그 근본은 우리의 죄를 처리하기 위한 것입니다.


불결한 곳에 파리가 끼는 것처럼, 죄가 있는 곳에 마귀와 귀신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마귀와 귀신은 우리의 신앙생활을 무기력하게 만들고, 심하면 분열과 갈등을 만들어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 공동체를 위협하는 일이며, 파괴하기까지 하는 것입니다.


영분별의 능력은 마귀와 귀신을 발견하고 내어 쫓는 능력만이 아니라

죄를 발견하고 처리하는 능력입니다.

마귀와 귀신을 통해서 생긴 (우리 가운데 처리 되지 않은) 죄를 발견하게 되고

이것을 처리함으로써 올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처리되지 않은 죄가 있다고 하면 불쾌해 하고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결점과 단점뿐만 아니라 죄의 악습에 대해서 지적하면 불쾌하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자신은 아무런 허물이 없고 신앙생활에 문제가 없다고 여깁니다.

그러므로 심각한 문제 앞에 봉착하기 전까지는, 그 사실을 겸손하게 인정 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죄의 처리가 일상적인 일이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그만큼 일반적으로 죄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지요.


우리는 날마다 <몸>을 청결하게 하는 것처럼

우리의 <영>을 더럽히고 있는 죄를 날마다 처리해야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까닭에 죄가 쌓이고 악습이 되어,

어쩔 수 없이 강제로 처리해야 하는 심각한 지경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마귀와 귀신의 침해를 입는 것입니다.


일상적으로 해야 하는 죄의 처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기 때문에

마귀의 올무에 걸리게 허락함으로써, 비로소 죄를 회개하는 자리에 나오게 되는 것이지요.

몸이 병들게 되면 그때 비로소 자신의 영적 삶을 진솔하게 돌아보게 되고 회개하게 됩니다.

사업이 곤경에 빠져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당해야 비로소 들을 마음이 생기는 것이지요.

 

일상에서 죄를 언급하면 전혀 남의 일로만 생각하던 사람이

심각한 문제에 부닥쳐야 회개할 마음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까지 이르러서야 사역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영분별의 능력은 심각한 문제가 일어나기 전에 그 전조를 발견하고

그에 따른 바른 조치를 취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심각한 문제를 만나기 전에 영혼을 돌아보는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저의 경험으로 보아도 심각한 문제 앞에 직면해 있는 사람에게

다가올 어려운 시기에 대해서 조언을 해주면 별로 달가워하지 않습니다.

특히 마귀의 시험이나 귀신의 공격이 임박해 있으므로

죄를 처리하고 마귀의 시험에서 벗어날 것을 권유해도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만큼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은 온전한 것으로 여깁니다.


영분별의 능력은 마귀와 귀신을 통해서 그 사람이 처리해야 할 죄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후략)

 

*이글 출처 :http://blog.daum.net/kangsj1120/144065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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