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사람도 자부심이 있어야! 눅16:19~31
▲비유의 핵심 - 대조적인 삶에 주목해야!
‘부자와 나자로의 비유’의 핵심은 어디에 있는지요?
이 세상 것이, 그대로 저세상 것이 되는 것은 아니다 라는 데 있습니다.
이 세상의 부자가 저세상에서도 부자는 아니라는 말입니다.
마찬가지로 저세상의 나사로는,
이 세상의 거지 나사로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이 비유에서 예수님은 대조법을 유독 많이 사용하십니다.
현세와 내세의 대조,
부자와 가난한 자의 대조,
천국 아브라함의 품과 지옥 뜨거운 곳의 대조,
긍휼compassion(:22)과 무관심indifference의 대조 등입니다.
부자가 잘못을 저질러 벌을 받는 곳에 간 것은 아닙니다.
성경 어디에도 그러한 기록은 없습니다.
거지 나사로 역시 선행을 많이 베풀었기 때문에 천국에 간 것은 아닙니다.
성경 어디에도 그러한 기록은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두 사람의 삶이 극명하게 달랐습니다.
그런데 <저세상에서는 그것이 정확하게 역전>되어 있습니다.
이 철저한 대비를 보여 주고자 하는 것이 이 비유의 가르침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신자들은, 이런 예수님의 가르침을 외면합니다.
<이 세상에서도 부자로, 저 세상에서도 부자로> 살기를 원하는데요.
어떻게 하면 이 역전 현상을 피할 수 있을까요?
▲진짜 부자, 진짜 가난한 자
우리는 부의 개념을 새롭게 정립해야 합니다.
많이 가진 자가 부자가 아니라,
'나누어 주는 자'가 부자입니다.
그런 ‘부자’만이, 저 세상에서도 계속 부자가 될 것입니다.
가난의 개념도 새롭게 정립해야 합니다.
재산을 적게 가진 자가 ‘가난한 자’가 아니라,
'적게 나누어 주는 자'가 ‘가난한 자’입니다.
그 ‘가난한 자’는, 저 세상에서도 여전히 가난할 것입니다.
‘나사로’ 이름의 뜻은 ‘하나님이 나의 도움이시다’입니다.
비록 자기 삶은 불행과 고통의 연속이었지만,
나사로는 자기 이름에 담긴 뜻대로, 희망을 버리지 않았습니다.(천국 간 것 보니)
그는 늘 천국에 자기를 위해 예비된 상급을 바라보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부자는, 현실의 물질적 부와 소유 그 이상을 보지 못했습니다.
결국에 부자는, 가난한 거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세상에서 경제적으로 가난한 사람이라도,
믿음에 부요하지 못하고, 그저 가난을 한탄하고 부자를 부러워하고만 산다면,
결코 나사로처럼 되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는 비록 가난하더라도,
나사로의 이름처럼 ‘하나님이 나의 도움’이라는 신앙으로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래야 천국에서 나사로처럼 환영받을 것입니다.
▲뒤늦은 깨달음
부자는 자신의 형제들이 고통스러운 곳에 오지 않도록
나사로를 자기 대신 세상에 보내 줄 것을 요청합니다.
자기가 무언가 잘못 살았음을 그제야 시인한 것이 됩니다.
그것이 무엇인요?
*현실의 부유함을 당연히 내 것이라 생각하고 나누지 않은 것,
*가난한 자들에 대한 무관심과 냉대.
바로 이런 것들이 아닐는지요!
그리하여 인생을 너무 쉽게 생각하고 자만한 것이 아닐는지요!
현실에서 좋은 것을 많이 받은 사람은 더 많이 감사하고 나누어야 합니다.
남모르게 나누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부자가 날마다 호화로운 파티를 한 것이 잘못이 있다기 보다는,
그것이 <가난한 자를 외면한 호화파티> 였다는 것입니다.
▲경멸하지 맙시다.
오늘도 내 주변의 노숙자들이나 가난한 사람들을 보면,
‘거지니까 해어진 옷을 입고, 병들고,
땅에 떨어진 것이나 주워 먹고 사는 것이지, 쯧쯧!’ 하며 그들을 경멸하고,
그가 겪는 어려움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이런 경멸과 무관심이, 부자를 지옥에 떨어지게 한 죄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나도 무의식중에 그렇게 가난한 자들을 경멸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조심해야 합니다.
▲부자와 나사로 사이의 구덩이
부자와 나사로 사이에 놓여 있는 구덩이는
오늘날 많은 사람들을 갈라놓는 '욕망과 탐욕의 구덩이'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식량이 아니라 사랑의 나눔이라는 마더 테레사의 말처럼
오늘 날 양극화의 구덩이는 점점 크고 깊어져 갑니다.
한쪽에는 너무 남아돌아 매일 잔치를 벌이고 그 음식물 쓰레기가 엄청 쌓이고,
한쪽에는 매일 기아로 굶어죽어 가는 사람이 3만 5천명,
그리고 매일 5억 명이 굶주리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인류의 밥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조차 얻지 못해서
그들은 나사로처럼 굶어 죽어가고 있습니다.
문 밖에 있는 나사로를 나와 전혀 별개의 존재로 ‘생각하는 구덩이’가
우리 안에 존재하는 한,
불쌍한 마음으로 즉시 달려가서 따뜻한 손길을 내미는 것은 요원합니다.
경제적 이익과 편리함을 추구하기 위해서, 너무나 바쁘게 정신없이 살아가는 동안
우리 사회를 갈라놓는 구덩이는 점점 크고 깊어져 갑니다.
매일 우리에게는 내가 가진 시간과 물질을 관대한 마음으로
나보다 못 가진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옵니다.
오늘 우리는 그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레고리 대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비유가 기록된 것은, 나중에 아무도 몰랐다고 변명할 수 없게 하기 위해서이다!”
Saint Gregory the Great tells us that «all these things are told
so that nobody may apologize because of their ignorance». (이상 모두 펀 글 편집)
▲관련 글 : 가난한 나라일수록 신앙심 높다
http://article.joins.com/article/article.asp?total_id=3048760
1.가난한 나라가 가난하므로 신앙심이 더 높을 수 있습니다. 80%
2.가난한 나라가 가난하므로 신앙심이 더 낮을 수 있습니다. 20%
3.부자 나라가 부유해서 신앙심이 더 높을 수 있습니다. 20%
4.부자 나라가 부유해서 신앙심이 더 낮을 수 있습니다. 80%
신앙심이 깊은 사람은, 부자든 가난하든, 신앙심이 깊습니다.
신앙심이 얕은 사람은, 부자든 가난하든, 신앙심이 얕습니다.
굳이 확률적으로 따진다면,
부자가 신앙이 깊기는 어렵고, 20%
가난한 자가 신앙이 깊기가 쉽다고 봅니다. 80%
그래서 천국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더 많이 갈 것이고,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
예수님도 ‘가난한 자들이 복이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듣기 싫은 말씀 ‘부자가 천국에... 약대가 바늘 귀...’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제 말을 잘 들으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가난한 자를 택하여 믿음으로 부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자기를 사랑하는 백성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주셨습니다. 약2:5
요지는, ‘가난한 사람은 너무 주눅 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옛날부터 성인, 수도자들은 ‘가난을 자랑’하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요즘 신자들은 가난을 수치, 괴로움으로만 생각합니다.
자신의 내공이 아직 부족한 탓도 있고, 사회 전반적 분위기의 영향도 있는 것 같습니다...
[주제별 분류] 물질과 성공 http://blog.daum.net/bible3/14102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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