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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없음/2008

1128 이 잔을 마실 수 있느냐

LNCK 2008. 2. 20. 20:31


◈이 잔을 마실 수 있느냐                마20:22



나는 수 십 년 동안 평생 예수 믿으면서 한 번도 고민해 보지 않았던 아래 말씀을

헨리 나우웬은 심각하게 고민했다고 합니다...

 

 

“너희가 청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나 있느냐?

내가 마시게 될 잔을 너희도 마실 수 있느냐?” 마20:22



다음은 헨리 나우웬 신부의 책「이 잔을 들겠느냐」의 일부를 발췌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내가 마시게 될 잔을 너희도 마실 수 있느냐?” 하고 물으실 때

그분은 나의 사제직과, 인간으로서 내 삶의 핵심을 건드리는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수년 전 내가 손에 아름다운 성찬의 잔을 들었을 때 (성직자의 영광을 누릴 때) 

그 질문에 내가 대답하기가 어렵지 않을것 같았다.

나는 그 때 온갖 생각과 이상으로 가득 찬 새로 서품된 신부이었고,

삶은 온갖 약속으로 풍요롭게 보였다.

나는 그 잔을 너무나 마시고 싶어 했다.


그러나 몇 해가 지나서 오늘, 장애를 지닌 이들과,

그들의 도우미들이 둘러앉은 (초라하고 불쌍하게 보이는) 식탁에 앉아서

그들에게 포도주가 담긴 유리잔을 돌리면서

똑같은 그 질문은 나에게 영적인 도전으로 다가온다.

‘나는, 우리는 예수가 마셨던 잔을 마실 수 있는가?’


나는 수년 전 어느 날, 예수의 이 질문을 성찬식 때 읽었던 것을 아직도 기억한다.

그날 아침 8시 30분경, 갑자기 “너는 이 잔을 마실 수 있느냐?”라는 말씀이

사냥꾼의 날카로운 창처럼 내 마음을 꿰뚫었다.


나는 그 순간 -영감의 섬광으로- 이 질문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는 것은

내 삶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임을 깨달았다.

그것은 내 굳어진 마음을 부수고 깨뜨리며,

삶의 연약한 부분을 드러내는 힘을 갖고 있는 질문이다.


“나는 이 잔을 다 마실 수 있는가?

그 잔을 남김없이 마시고 비울 수 있는가?

나는 인간이 겪는 모든 슬픔과, 기쁨을 다 맛볼 수 있겠는가?

삶이 무엇을 가져오든지 간에, 다 받아들이며 살 수 있겠는가?”


나는 이것이, 내가 직면해야 할 실존적인 질문들임을 깨닫는다.

 

그날 아침 성찬식 때, 그 말씀 마20:22 을 읽은 후,

나는 내 앞의 식탁 위에 놓여 있는 큰 유리잔 하나를 무의식적으로 움켜쥐고서

주위의 사람들을 바라보며 그들에게 설교했다.

 

“우리는 우리 손에, 내 삶의 잔을 들어 올릴 수 있을까요?

그 잔을 다른 이들이 볼 수 있도록 높이 들어올리고,

마지막 남은 것까지 다 마실 수 있을까요?


잔을 마신다는 것은, 먼저 잔을 잡고 들어올려야 합니다.

예수께서 하셨던 것처럼, 우리는 우리의 삶을 잡고 들어올리며(십자가 함의)

그 잔을 다 마실 수 있겠습니까?”

 

(십자가처럼, 높이 들어올려진다는 것은, 모두가 볼 수 있도록 알려진다,

또는 모두에게 조롱받는다는 뜻도 포함하고 있다. 

오늘날 개인적 프라이버시를 끔찍하게 존중하는 사회흐름과는 정반대이다.)

 

그 아침의 간결하고도 단순한 성찬식 이후 오랫동안

나는 그 예수님의 질문을 계속 듣고 있다.


“내가 마시려고 하는 잔을 너도 마실 수 있느냐?”

그 질문이 나를 편안치 않게 만든다.

지금 나는 그 질문과 함께 살기 시작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 (펀 글 편집)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두 마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지금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있다.” 마20:17


예수님의 이 말씀 한마디는 여러 가지 뜻을 담고 있습니다.

그냥 지리적인 어떤 진행방향을 말씀하시기 보다는,

예수님의 수난이 바로 코앞으로 다가왔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죽음으로써,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주님의 굳센 의지가 담겨 있습니다.


그런 와중에 세배대의 아들들의 어머니는,

자기 두 아들에게 고위직을 달라고 부탁합니다.

스승은 죽으러 간다는데, 이기적으로 한 자리를 청탁하는 제자들의 모습은

얄미운 것을 넘어 슬프기까지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 그리고 그분께 가깝다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물으십니다.

“너희가 청하는 것이 무엇인지나 알고나 있느냐?

내가 마시게 될 잔을, 너희도 마실 수 있느냐?” 마20:22


(이 말씀을 하시는 주님의 속 뜻은 이렇다.

너희가 내 좌우편에 앉으려거든,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도 마실 수 있어야 한다.

내 좌우편에 앉는다는 것은,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도 똑같이 마시는 것을 뜻한다.

물론 그 자리는 하나님이 예정하신다.)

 

가라사대 너희가 과연 내 잔을 마시려니와,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나의 줄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마20:23

 

욕심 많은 제자들은 진심인지 모를 확신에 찬 대답으로 응합니다.

“마실 수 있습니다!”

 

처음에 그들은 자기들이 무슨 대답을 했는지 알지 못했지만,

그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잠만 잤고, 예수님의 십자가 때 모두 뿔뿔이 흩어져 도망갔지만,

결국 야고보는 그 잔을 마시고 순교했고(행12:2), 요한도 심한 핍박의 잔을 받아 마셨다.(계1:9)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 그 길에 예수님과 제자들의 이 엇갈린 마음은

지금 우리에게도 일어나는 흔한 일입니다.


우리는 십자가 아래 모여서 기도를 드리지만,

정작 우리가 청하는 것의 대부분은, 다른 이들보다 높아지는 것입니다.

주님은 십자가에 목숨을 바치는데, 사람들은 주님 덕에 군림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십자가상 앞에 고개를 숙이면서도

정작 속으로는 엄청난 이기심을 채우기에 급급한 현실이

이 말씀 속의 제자들과 어찌 이리도 닮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

우리는 지금 예수님과 한 마음입니까?

아니면 제자들과 한 마음입니까?   (펀 글 편집)


[주제별 분류] 십자가 사상 http://blog.daum.net/bible3/14043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