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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4 모범생이 안고 있는 문제

LNCK 2008. 2. 23. 20:16
 

◈모범생이 안고 있는 문제             눅15:31~32


 

얘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고, 내 것이 다 네 것이다. 

너의 저 아우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되찾았다.

그러니 즐기고 기뻐해야 한다.  눅15:31~32


 

교회에서도, 모범생 신자가 있다.

나 또한 언제나 모범생으로 살아왔기에

탕자 이야기는 나에게 별로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


그런데 ‘교회 모범생’에게도 슬그머니 의심이 생길 때가 있는데...

나는 주님께서 부르실 때

기꺼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예”하고 따랐고

성직자의 길, 수도자의 길을 따랐고

공부도 나름대로 열심히 했고

나름대로 예수님의 제자로 열심히 살아왔다고 자부한다.


그럼에도

나보다 충실한 모범생이 아니라고 자타가 공인할 수 있는 사람이

나보다 더 큰 주님의 은혜를 누리는 것을 보게 되면

크게 기뻐해야 할 터인데

실제로는 기쁨보다는 허탈감이 더할 때도 있단 말이다.



가끔 교우들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가 있다.


평생 열심히 주님을 섬겨왔는데

나에게는 왜 이리도 복이 없냐고...

하나님도 너무 하시는 게 아니냐고...


그렇게 열심히 주님을 섬기지 않은 듯이 보이는 사람들은

잘 먹고 잘사는 것 같고

자식들도 잘되는 것 같고

장수와 부를 누리는 듯이 보이는데,


나는 뭐하나 잘 되는 것이 없고,

남들로부터 인정과 칭찬도 못 받는 것 같고

자식들도 그렇고

부부사이도 그렇고

이제 몹쓸 병마저 들어서...


참으로 가슴 아프게 생각될 때도 많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섬기는 충실도에 따라

세상 복도 그렇게 공평하게 내려주시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바로 충실한 모범생들이 안고 있는 문제가 바로 이것이다.

사실 충실한 모범생들은

이미 하나님의 것이 유산으로 상속되어 있기에

그 누구보다도 큰 축복을 따 놓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얘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고, 내 것이 다 네 것이다." 눅15:31 

그것보다는 자그만한 현실적 축복을 그리워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절대로 불공평하시지 않다.

그분은 사실 더 큰 축복을 미리 약속해 두고 계시기에

현실적인 축복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을 깨닫지 못하면

모범생 ‘큰 아들’처럼 불평불만을 하게 된다.


나는 이미 받을 복을 다 받았다.

그분께서는 나에게 최고의 유산을 남겨주셨다.

더 이상 욕심낼게 무엇 있으랴?


아직 그 놀라운 유산을 상속받지 못한 사람(불신자)이

현세의 작은 복을 누리는 것마저 시기 질투한다면

나는 너무도 욕심쟁이가 아닌가 말이다.


지금

나는 모범생인데도 불구하고

현실적인 복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하리라.


현실화되지 않은

미래의 그 엄청난 축복을 믿지 못하면

우리는 늘 현세적인 사람이 되고 만다.


우리가 모범생이 되어야 하는 이유는

현세의 축복을 위한 것이 아니다.

단지 현세의 축복만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예배당에 나갈 필요도 이유도 없으며

세속적인 가치와 명예를 추구하는 데만 전념해야 할 것이다.


우리 크리스천은

현실을 살되

보장된 미래를 유산으로 갖고 살아간다.

바로 천상본향, 하나님 나라가 내 것이다!

"얘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고, 내 것이 다 네 것이다." 눅15:31 

더 이상 뭘 바라리... <신부님 글에서 발췌

 

 

 

*원래 탕자의 비유의 주제는 눅 15장의 서두에 잘 나와 있습니다.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니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원망하여 가로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 비유로 이르시되... 눅15:1~3 

그러니까 세리와 창기 같은 사람(탕자)을 차별하지 말고 품으라는 주제입니다.

그렇지만 각론으로 위의 글처럼 볼 수도 있겠습니다.  주제와 각론을 눈여겨 보시라고...

 


▲천국 목적을 품어야 할 터인데...

언젠가 들었던 재미있는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어느 시골 교회에서, 평소에 사람들도 많이 모이지 않고,

주로 할머니들만 모이는 교회였습니다. 


어느 날 대여섯 분의 할머니들을 모시고 예배를 드리면서

목사님은 정성껏 준비한 설교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한 할머니가 눈물을 글썽이며 설교를 듣는 게 아니겠습니까.

목사님은 반갑고 놀라웠습니다.

‘이제야 신자들이 내 설교를 제대로 이해하는구나’ 생각하고선 예배가 끝나자마자

내심으로 설교에 대한 칭찬을 듣고자 문밖에 서서 인사를 하는 척하며

그 할머니를 기다렸습니다.


마침내 그 할머니가 나와 목사님의 두 손을 붙잡고 말씀하길

“목사님, 오늘 설교하시는 목사님 턱 밑에 난 수염을 보고 있자니

엊그제 집 나간 우리 집 염소 생각이 나서 눈물이 다 나왔어요.

우리 염소가 얼른 돌아오도록 기도 좀 해주세요!” 하더랍니다.


우리가 이렇게 내 걱정과 근심 때문에

꼭 들어야 할 말씀과 보아야 할 빛(신앙의 본질)을 외면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07.02.13. 펀글


[주제별 분류] 물질과 성공 http://blog.daum.net/bible3/14102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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