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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1 신화 deification 신학

LNCK 2008. 2. 28. 13:14
 

◈신화 deification 신학


 

모호한 내용이라서, 삭제합니다.

 


*신화 : (deification, 신처럼 되기, 하나님 형상 본받기, 한자로 神化인 것 같음)


성도는 하나님의 도덕적 성품은 공유하지만,

전지전능, 무소부재 같은 하나님의 권능적 성품은 공유하지 못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래 논문 축약은 (그 깊이를 자세히 알 수 없지만)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화’ 되는 것에 대한 신학적 뿌리가

교부>어거스틴>루터, 칼빈>웨슬리>조나단 에드워즈 등으로,

다시 말해 전통적으로 내려오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신화' 전통을 이어간 동방교회와 달리

서방교회는 '칭의' 한 쪽으로 너무 치우쳐 발전해 왔다고 하네요. 

그래서 우리 시대에 그것을 재발견해야 한다는 뜻이겠지요.




◑칼빈과 신화 신학

*이 단락 출처 : http://cafe.naver.com/transform/616

 


논문 요약


많은 사람들은 ‘신화’에 관한 교부들의 가르침은

이후 서방 신학의 주요흐름에서 실종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최근 신학계에서는, 어거스틴, 아퀴나스, 루터, 초기 영국국교회,

초기 감리교, 그리고 조나단 에드워즈에게 있어서,

‘신화’가 모든 서방신학의 근간임이 확인되고 있다.


이 논문은, ‘신화’가 또한 칼빈신학에서도 나타나고 있다고 강력하게 주장한다.

그것은 칼빈신학 안에서 주목을 끄는 주제도 아니었고,  

교부들처럼 좀 더 대담한 용어들을 사용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신화에 관한 개념과 사상이

다른 교리들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정규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칼빈에게 있어서, 신화는 종말론적 목표요,

신자가 상상할 수 있는 그 어떤 것보다 더 높은 차원의 축복이었다.


서론


서방신학자들의 귀에는, 주로 교부들과 동방정교회 저자들과 관련된

theosis(데오시스, 신화)라는 용어가 익숙하지 않아,

그것이 신성모독으로 들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데오시스는 수많은 신학 전례(rubric)에 묘사되고 있다.


이 용어는, 신자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양자됨,

하나님에 참여함,

신성한 생명을 공유함,

불멸성의 공유,

하나님의 형상의 회복,

영화됨,

그리스도와 교회(신자)간의 완성인 혼인

등을 포함하고 있다.

 

간결하게 말하자면 신화(데오시스)는,

신자들이 은혜에 의해

본성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인데,

자신이 분에 넘치는 선물을 받을 자격을 가진, 넘치는 축복을 받는 것이다.


대부분이 대담하게 데오시스를   

보통 "신성화(divinization)","신화(deification)"로 번역하는데,

이런 번역은 신자들이, 마치 하나님처럼 변화된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즉 극단적으로 나가면, 신성모독의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도 있다.)


 

The greatest possible blessing: Calvin and deification


Carl Mosser (저자, 영국에서 대학을 나와서 현재 미국에서 활동 중임)

St Mary's College, University of St Andrews, Scotland, UK cm54@st-andrews.ac.uk


Abstract


Many assume that the patristic notion of deification is absent

from the mainstreams of post-patristic Western theology.

Recent scholarship, however, identifies deification in Augustine, Aquinas, Luther,

early Anglicanism, early Methodism and Jonathan Edwards

-all fountainheads of Western theology.


This article contends that deification is also present in Calvin's theology.

It is not a prominent theme in its own right and some of the bolder patristic terminology is not employed. Nonetheless, the concept and imagery of deification regularly appear on stage while other doctrines are explicated.

For Calvin, deification is the eschatological goal and blessing greater than

which nothing can be imagined.  



Introduction


To Western ears unaccustomed to its bold terminology theoÅsis,

usually associated with patristic and Eastern Orthodox writers,

can sound blasphemous.


TheoÅsis is described under a number of theological rubrics.

These include adoption to divine sonship, participation in God, sharing of divine life, impartation of immortality, restoration of the imago dei, glorification, and consummation of the marriage between Christ and the Church. Succinctly, theoÅsis is for believers to become by grace what the Son of God is by nature and to receive the blessings that are his by right as undeserved gifts. Most boldly, theoÅsis is described as a transforming union of the believer with God and Christ usually, if inadequately, translated as `divinization' or `deification'.1 (이하 생략)




◑어거스틴과 신화 신학


*이 단락 출처 : http://cafe.naver.com/transform/617

 


 

칼빈은 “자신이 저술한 모든 것들이 어거스틴의 글에 대한 부연으로 여겨지기를

바란 것으로 보여진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한국 교계는, 현재 이러한 칼빈의 가르침을 존중하는 분들이 주류를 형성하고

그 연장선상에서 어거스틴의 가르침이 존경 받는 것으로 보입니다.


저는 평소에 ‘deification’(신화 신학)에 관하여

어거스틴과 칼빈이 어떤 관점과 인식이 있었는지에 대해 궁금해 하던 차에

아래와 같은 귀한 논문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천안대학교 채이석 교수님이 ‘어거스틴 칭의론 연구의 중요성’ 이란 제목으로

역사신학 논총 제 2집(2000년)에 소개한 내용 중에서

<어거스틴의 신화진리 관련 언급들 모음>입니다.


이외에 칼빈의 신화 관련 논문과

‘하나님이 사람되심은 사람이 하나님되게 하기 위함이다’ 라고 말한

(아타나시우스에게 깊은 영향을 미쳤던) 이레니우스의 총괄갱신 신학 관련 자료들

중 일부를 이곳에 참고로 소개하고자 합니다.


"어거스틴은 칭의와 신화의 개념 모두를 사용한다.

전자 칭의는 서방교회에서 보다 익숙하고,

후자 신화는 동방교회에서 보다 일반적으로 사용된다..."

(한국 복음주의역사신학회, 역사신학 논총, 제 2집, 14-15쪽)


"어거스틴은 자신의 '신화'에 대한 가르침이 성서에 기초하고 있다고

확실하게 믿었다고 (Gerald  Bonner가)주장한다.

피터 라가도 역시 그리스도인의 신화에 대한 교리가 어거스틴의 작품에서

상당히 발전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자 노력한다."(15쪽).


"복음주의자로서 동방 정교회를 광범위하게 연구한 데니얼 클렌데닌(Daniel

Clendenin)은 어거스틴에게서 신화개념을 발견한다.

그는 어거스틴의 신화의 개념을 암시하고 있는 Enchiridion 26을 이렇게 인용한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육체와 영혼을 복되게 하셔서

영혼은 그의 신성과 함께하고

육체는 그의 인성과 함께하도록 하기 위해서

육체와 영혼을 입으셨다”(16쪽).


"또한 어거스틴은, 칭의를 "죄의 사면"으로서만이 아니라

"신화"의 개념과 연합된 변화의 형태로 이해하고 있음이 분명하다"(19쪽).


위 논문은 다음과 같은 언급을 결론에 포함하고 있습니다.


"현대의 복음주의 신학은 어거스틴의 칭의 이해에 많은 빚을 지고 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기독교 윤리에 선명한 토대를 제공할 수 있는

윤리적 갱신의 개념은 종종 빠뜨리고 있다.

어거스틴에게 있어서 이것들은 그의 칭의론에 함께 포함된다."



장로교 신학을 한 모 이단 감별사는

'신화 진리'에 대한 어떤 단체의 언급에 대해

하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이면 족하지

무슨 '신화(deification)의 진리'가 또 필요하느냐는 식의 비판을 가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이것은 교회 역사상 초대교부들부터 가르쳐 온 진리에 대한

그의 무지를 보여주는 한 단면입니다.


저는 위와 같은 반응이 한국 장로교단의 보편적인 진리인식 수준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은 하고 있던 차에, 비록 간접적이긴 하지만

'어거스틴의 신화 가르침'를 언급한 논문을 접하게 되어

개인적으로 매우 반가웠습니다.


향후 한국 교계 신학자들과 목회자들 사이에서

위 논문이 소개하고 있는 어거스틴 신학에 포함된 신화진리 관련 자료들, 

이레니우스와 아타나시우스 등의 교부들이 가르쳤던 ‘신화진리’(deification)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과 진지한 논의가 일어날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해 봅니다.

 

 

[주제별 분류] 기독교 사상 http://blog.daum.net/bible3/141565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