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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3 서운함을 걷어내면 인생이 열립니다!

LNCK 2008. 2. 29. 12:50
 

◈서운함을 걷어내면 인생이 열립니다!         롬16:10


 

 

옳다 인정함을 받는 자는 자기를 칭찬하는 자가 아니요 오직 주께서 칭찬하시는 자니라  고후10:18


 

<나의 사랑하는 친구에게>


사람들은 서운함(섭섭이)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아,

그건 정신세계의 암세포 같은 거야.

서운함이란 건 돌연변이를 일으키곤 하거든.

미움이 되고, 증오가 되지.


서운함, 그것을 걷어내야 인생이 보이고 미래가 보이는 거야.

자네 속에 있는 서운함, 그것을 걷어내야 해. 그래야 길이 열려!

그래야 사실이 사실대로 보이기 시작해. 서운함을 품고 있으면 깜깜해져.

서운함을 품은 채 어떤 결정을 내리는 것은 어리석기 그지없는 일이야.

눈을 감고 옳은 길을 찾는 것과 마찬가지야.


자네, 원치 않는 퇴직을 한 사람일수록 퇴직금을 날리는 경우가 많다는 거 아시나?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 서운함도 크게 한 몫하고 있다네.

원치 않는 퇴직을 하는 교인이 있으면,

난 제일 먼저 서운함을 털어내는 작업을 하도록 돕는다네.


회사에 대한 서운함,

인사권자에 대한 서운함이 쌓여 있으면

퇴직 후 다른 일을 시작할 때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되지.

서운함이 앙갚음으로 변할 수 있거든...


‘보란 듯이’에 매달리게 되는 거야

보란 듯이 크게 성공하자는 마음을 먹고 있는데,

마침 누군가 찾아와, 달콤한 말로 유혹을 한다면 넘어가지 않을 수가 없지,

대표이사나 임원 자리를 제의하면서 같이 사업을 하자고 권하면서

사기를 쳐서 퇴직금을 빼앗아가는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


‘보란 듯이’에 매여 있지만 않았어도 충분히 사리 판단을 할 수 있었을 텐데

서운함이 그의 눈을 가리는 바람에 일을 그르친 거야.

물론 본인은 전혀 알지 못하지.

‘보란 듯이’에 매여 있다는 걸.


자네가 지금 갖고 있는 그 서운함, 풀어야 하네.

그렇지 않으면 자네가 서운해 하고 있는 그 사람에게서 벗어날 수가 없다네.

‘인생 올무’라는 말 들어봤나?

자네가 누군가에게 서운함을 품는 순간,

그는 자네의 인생 올무가 되는 걸세.

아무리 떨치려 해도 떨쳐버릴 수가 없게 되지.

시도 때도 없이 와서 자넬 묶어버릴 걸!


잠자려고 누워도, 연구를 하려고 앉아도,

일을 하는 중에도, 중요한 결정을 하려고 심사숙고하는 중에도

그는 어느 새 자네를 찾아와 묶어버린다네.


그가 찾아오기만 하면 화가 나고 기분이 나쁘지만 어떻게 하겠나!

대책이 없으니... 오직 하나, 방법이 있긴 하지.

서운함을 털어내 버리는 것일세!


지금 자네에게는 순간순간 결정해야 할 일이 많지 않은가.

그 결정에 따라 하루에도 수백만 원이 왔다갔다 하지 않는가.

그런데 서운함을 품고 일을 하니,

자네는 눈을 감고 길을 찾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는 거야.

 

하긴 그렇게 평생을 사는 사람도 있다네.

서운함을 가슴에 쌓아두고 사는 사람들.

그러다 어느 순간 화산처럼 폭발하고 말지.

'한풀이'라는 말도 따지고 보면 서운함인 거야.


다른 사람 흉을 보는 것도 서운함의 변종이라네.

자네가 아까 얘기한 그 사람 말일세.

자네가 그 사람에 대해 서운함을 갖고 있기 때문에 나온 말이라네.

내가 보기에 그 사람 괜찮은 사람이야.

내 말이 서운할지 모르지만, 요즘 그런 사람 만나기 쉽지 않아...


<조현삼, 「파이프 행복론」pp.78~80.




◑열등감



제게는 딸이 둘인데, 열등감 없는 사위를 보았으면... 하는 소원이 있습니다.

사위 둘 중에 한 명이 열등감을 갖고 있다면, 모두가 피곤할 테니까요.

예를 들면, 집에서 차를 끓이다보면, 꿀이 모자라,

꿀 차가 한 잔 밖에 나오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한 사위에게는 꿀 차를 타주고, 다른 사위에게는 홍차를 타 주게 됩니다.

열등감이 없으면 아무 문제없지만, 열등감 있는 사위라면

집으로 돌아가 우리 딸을 괴롭힐 것입니다.


“그래, 목사라는 사람이 큰 사위는 그렇게 예뻐서 꿀 차 타주고,

나는 떨떠름한 홍차나 주는 게 말이 돼?

너희 아버지 날 그렇게 무시할 수 있어?”


친정 한 번 왔다가 죄 지은 꼴이 된 우리 딸은 전화를 하겠지요.

“다음에는 똑같이 꿀 차 타 주세요!”


열등감 있는 사람만큼 피곤한 사람도 없습니다.

열등감과 헤어져야 합니다.

열등감이 사라지면 사는 게 얼마나 즐거워지는지 모릅니다.

여유가 생기고 온유해집니다. 넉넉한 가슴으로 살 수 있습니다.



열등감은 겸손이 아닙니다. 교만입니다.

그것이 있으면 성격도 이상해집니다. 공격적이 됩니다.

열등감을 숨기고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 이상 자기가 강경해집니다.

사람들은 하나 둘 자기 곁을 떠납니다.


외모에 대한 열등감을 치료하고 회복할 수 있다면,

집을 팔아서라도 성형수술을 받으십시오.

박사학위증으로 공부를 많이 하지 못한 열등감을 해결할 수 있다면,

직장에 사표를 내고, 집을 팔아 전세로 옮겨서라도 박사학위를 취득하십시오.

그렇게 해서 열등감으로부터 벗어날 수만 있다면 차라리 그렇게 하라는 말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해도, 열등감은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좋은 대학 나온 사람, 잘 생긴 사람, 객관적으로 괜찮은 조건을 가진 사람 중에도

열등감에 사로잡혀 허우적거리는 이들이 꽤 많습니다.


코에 대한 열등감을 갖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와 상관없는 제 삼자에게 “코 참 잘 생겼습니다!”하는 말에도

그는 옆에서 상처를 받습니다.

누구 자신한테 코 못생겼다고 하지도 않았는데 말입니다.


편부모 밑에서 혹은 고아로 자란 것에 대해 열등감을 갖고 있는 이가 있습니다.

그는 “교회에서 고아와 과부를 돌봐야 합니다.”란 말에도

‘뭐? 고아, 과부?’ 하며 분을 냅니다.

아무도 그를 멸시하거나 상처주기 위해 말하지 않았음에도

그는 스스로 멸시당하고 스스로 상처받습니다.


유난히 자주 상처받고 유난히 자주 힘들어하는 분들이 있다면

정직하게 자신을 바라보세요.

내 안에 열등감이 있는 것은 아닌지...


웃을 수 없게 만들고, 비탄에 잠겨 살게 만드는

그 불행의 씨앗을 가슴속에 간직할 필요가 있을까요?

자존심을 세운다는 것,

그것도 우리 내부의 열등감을 어떻게 해서든 보호하겠다는 말에 지나지 않습니다.


자기 자신을 인정하면 온유해지고,

온유하면 나는 물론, 남도 행복해집니다.

부드러운 사람은, 꿀 차주면.. 꿀 차라서 감사히 마시고,

홍차 주면.. 홍차라서 고맙게 마십니다.


대하기 편안한 사람, 같이 있으면 기분 좋아지는 사람이지요.

하지만 조금만 뭐라 해도 상처받았다며 토라지는 사람이라면

상대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것이 사람의 마음이거든요.


<조현삼, 「파이프 행복론」에서 옮김.



*「파이프 행복론」의 다른 글 보기

-욕을 먹으면 행복합니다      -되려는 인생, 되어지는 인생    -금식 대신에 감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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