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역사를 강력하게 체험하려면 마28:20
내가 미적거리는 신앙생활을 하지 않고
하나님이 내게 강하게 역사하시는 신앙생활을 하려면...
여기서 두 가지 방법만 생각해 봅니다.
◑1. 말씀을 전파하라
말씀을 전파할 때, 하나님의 역사를 강력하게 체험하게 되는데...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마28:20
언뜻 보기에는, 이 명령은 실현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가르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런데 그것을 <지키게 하는 것>까지는 쉽지 않다.
좀 더 신중하게 말한다면 ‘불가능’하다.
그러나 주님이, 불가능한 명령을 주실 리가 없다.
가능하니까, 그런 명령을 주신 것이다.↙
▲말씀을 가르칠 때, 신적인 역사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말씀을 가르치다 보면 ‘이게 무슨 역사가 일어날까?’ 하는
한심한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러나 제대로 가르치기만 하면... 거기에 위로부터 ‘신적인 역사’가 임한다.
그 결과로 사람들은, 들은 말씀을 ‘지키고자 하는’ 결심과 능력을 얻게 된다.
일례로, 자기가 설교 준비할 때는 큰 감동이 없었는데,
그것을 강단에서 선포하는 중에, ‘신적인 능력’이 임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교회와 성도가 중요하게 해야 할 한 가지는 - 말씀을 가르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제일 마지막에 당부하신 말씀도 ‘가르쳐 지키게 하라’이다.
가르칠 때, 그것이 허공에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신적인 역사’가 일어난다.↙
▲가르칠 때 예수님이 함께 하신다고 분명히 약속하셨다.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하시리라 마28:20
물론 예수님은 24시간 언제나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시지만,
특별히 말씀을 가르칠 때, 주님은 우리와 '신적인 능력divine power'으로 함께 하신다.
본문에, 가르쳐 지키게 할 때,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함께 하시리라고 분명히 약속하셨다.
▲말씀을 가르치면... 변화된다.
행10장에,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 가서 말씀을 가르쳤다.
그러자 집안 식구들이 모두 성령 받고, 세례 받고, 변화되는 신적인 역사가 일어났다.
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가르칠 때)
성령이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행10:44~48
즉, 말씀을 증거하고 가르칠 때... 성령이 강하게 역사하셨다.
성령님이 늘 우리 가운데 계시지만, 말씀을 가르칠 때, 특히 강하게 역사하신다.
▲말씀은 살아 움직이는 ‘생명’이다. 무생물이 아니다.
우리 교회에 나오는 청년들 보면, 그 중에 강퍅한 사람도 더러 있다.
그런데 꾸준히 말씀을 듣다 보면, ‘제가 말씀으로 변화되었습니다.’ 라고 간증하는
사람들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그것이 내 목회에 큰 힘을 준다.
‘내가 말씀으로 깨어지다니...’ 그들 스스로도 놀란다고 했다.
자기가 깨어질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었는데, 하나님의 말씀이 하신 것이다.
말씀 자체에 생명력이 있다. 운동력이 있어... 히4:12
말씀은 살아서 꿈틀거리는 것이다. 무생물이라고 보면 안 된다.
좌우에 날선 검(양날 검)이라고 했다. 히4:12
아무리 강퍅한 심령도 찔러 쪼갤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날선 검이니까!
교회가 가진 ‘이 가장 강력한 도구’를 잘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말씀을 전파할 때, 표적이 뒤따른다.
제자들이 나가 두루 가르칠 새 주께서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막16:20
즉 말씀을 가르치면 주님의 신적 능력divine power이 표적으로도 함께 역사하신다.
말씀을 가르치면, 하나님은, 당신이 함께 하신다는 것을 보여주시기 원하시는데,
(필요한 경우에) 표적을 통해서라도,
하나님이 말씀에 함께 하심을 보여주신다는 것이다.
뒤집어 말하면,
내 삶 속에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기 원합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맛보기 원합니다.’ 라는 소원이 있는 사람은
말씀을 가르치고 전파하라는 것이다.
그 현장 속에, 그런 표적이 가장 잘 나타나기 때문이다.
◑2.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을 때
하나님은, 복음 전파에 따르는 희생과 고난의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과 함께 하신다.
▲다니엘을 보자
언제 주님이, 다니엘에게 가장 강력하게 역사하셨는가?
그가 사자굴의 고난과 희생 중에 있을 때였다.
그가 평상시에도 똑같은 주님의 강력한 임재를 체험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
그러나 사자굴에 있을 그 때는, 자타가 공인할 정도로
누가 보더라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셨다.
하나님이 사자의 입을 막아버리셨다.
다니엘의 세 친구들이 풀무불(용광로)에 들어갔을 때,
거기에 자세히 보니 네 명이 있었다.
주님이 직접 눈에 보이도록, 믿지 않는 사람들까지 인정하도록
강력하게 역사하셨다.
▲복음 전파에 따르는 고난을 피하지 않는 사람
앞서 1단락에서, 말씀을 전파하면 주님의 임재가 강력히 임한다고 했는데,
거기에는 사탄의 방해와 고난이 반드시 따르게 된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피하지 않고,
계속 복음을 전파하며, 고난과 희생과 십자가를 지는 길로 나아갈 때
거기서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더욱 강력하게 체험하게 된다.
희생당하고 고난 중에서도
말씀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가르칠 때,
하나님이 더욱 그와 함께 하신다.
▲오해하면 안 됨!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너희에게 주셨으니’ 마28:18
여기서 우리가 ‘모든 권세’를.. 세상 권력, 파워로 오해하면 안 된다.
기독교는 힘을 가지고 누구를 죽이는 방식으로 확장되지 않는다.
언제나 십자가 지고 자기가 죽는 방식으로 확장된다.
기독교의 십자가는 남을 죽이는 도구가 아니다.
언제나 자기가 죽는 도구이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남을 죽이고...’ 가 아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하나님의 나라는 물리적 힘을 휘둘러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나중에 결국은 오히려 부끄러움만 당한다.
자기를 죽이고 희생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신자가 가장 강력한 열매를 맺는 길은
자기가 희생하고, 자기가 죽는 길이다.
소위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는 ’밀알 정신’이다. 요12:24
내가 죽으면, 나는 사라지더라도, 열매는 더 풍성히 거두게 된다는 것이다.
▲찬양에도 나온다.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갑니다. (내) 고통 가운데 계신 주님♪
여기서 우리는, 나와 함께 하시고 위로하시는 크신 주님의 사랑을 느낀다.
이 찬양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감동 받는 이유가 무엇인가?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기 때문이다.
내 인생 가운데, 하나님이 가장 내게 가까이 다가오셔서 은혜를 베풀어주신 때가
내가 고통가운데 있을 때이다.
내가 복음 전파를 위해서 고통을 당할 때,
또한 비록 내가 내 자신의 문제 때문에 고통을 당할 때라도,
주님은 고통을 당하는 자들과 함께 해 주신다.
그래서 신자는 다시 힘을 얻고, 새롭게 벌떡 일어나게 된다.
▲마치는 말
목회자, 교사, 이런 분들은 말씀을 가르치는 특권을 가졌다.
우리가 말씀을 가르칠 때,
‘하나님이 여기에 함께 하신다는 임재의 체험’을 종종 할 수 있어서 감사요, 특권이다.
그런 특권을 썩히지 말고, 가능한 자주 사용해야 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말씀을 얼마나 열심히 전했던지,
그 전파한 말씀으로 인해 고난을 받게 될 때, (예수님, 바울처럼)
그것을 이기고 인내함으로써,
하나님의 신적 능력이 더 강력하게 자기에게 임재 하는 것을 체험하는
다니엘 같은 능력의 사람들이 되어야하겠다. <08.02.12. 인터넷 설교 정리
[주제별 분류] 말 씀 http://blog.daum.net/bible3/139250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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