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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를 주신 목적 / 론 솔로몬

LNCK 2008. 3. 12. 12:32

https://www.youtube.com/watch?v=_dQvJEfYI2E 

◈만나를 주신 목적 신8:16, 민11:4~6 08.03.09. 출처

 

Letting God Choose 론 솔로몬

 

▲만나에 대한 불평

모든 이스라엘 백성도 불평하기 시작했습니다.

 

“고기를 먹었으면 좋겠소.

이집트에 있을 때에는 생선을 마음껏 먹었소.

그 밖에도 오이와 수박과 부추와 파와 마늘을 먹었소.

그런데 지금은 이 만나밖에 없으니, 우리 몸이 쇠약해지고 말았소.” 민11:4~6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만나를 광야 생활 내내, 약 40년간 계속 먹었다.

그것은 애굽에서 나온 후 2개월 15일 후부터 하늘에서 내렸다. 출16:1, 14.

아마 만나를 주워서 맷돌에 갈거나 절구에 찧었다.

 

그래서 올리브유에 구워서 요리했을 것이다. 민11:7~9

올리브는 그 지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열매이기 때문이다.

 

▲이해되는 불평

하기야 계속 만나만 먹으면, 어쩌면 불평이 터져 나올 만도 하다.

만나 오믈렛, 만나 파이, 만나 스크램블, 만나 버거,

만나 덮밥, 만나 떡, 만나 비빔밥, 만나 부침개,

 

다른 반찬도 거의 없이, 만나만 계속 먹으면 질릴 만도 하다.

(그들은 애굽에서 끌고나온 가축이 있어서, 성경에 나온다.

그것을 잡아 제사를 드리고

양고기, 소고기 등도 일부 먹을 수 있었다.

광야에 농사는 안 되어도, 가축은 기를 수 있었을 것이고, 지금도 기른다.

무엇보다 제사를 위한 가축이 있었을 것이다.)

 

아무리 맛있다는 참치 뱃살이라도

다른 것 안 먹고 그것만 계속 먹는다면, 한 달만 지나면 질릴 것이다.

 

만나를 하늘에서 내려주신 하나님이

매일 아침, 오이와 부추와 마늘을 하늘에서 내리실 수 없었을까? 있었다.

그런데도 만나만 내려주신 이유가 무엇일까?

 

여러분, 이 사실을 꼭 기억하시기 바란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주신 만나는 가장 최선이었다.

도대체 무슨 소리인가?

 

▲목적 1 : 시험(연단)과 낮아짐을 통한 신앙성숙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하심이라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신8:2~3

 

사람이 극한 시험(어려움)을 받으면,

삶이 심플해지고, 본질을 추구하게 된다.

 

하나님은, 광야 이스라엘이 시험을 통해,

하나님의 명령(말씀)에 온 힘을 다해 순종하도록 그들을 연단하셨다.

 

사람이 시험을 당하면, 하나님 말씀에만 집중하게 되어있다.

세상 부귀, 영화 이런 것에 관심 쓸 여유가 없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 힘으로 ‘내 능과 내 손의 힘으로’

이 모든 것을 다 이룬 줄 알고 착각하게 된다.

 

그래서 교만해 지고, 하나님을 잊어버릴까 염려하셨기 때문이었다. ↙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또 두렵건대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할까 하노라 신8:16~17, 신8:18~19

 

▲목적 2 : 의식주 위주로 살지 말라 훈련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 40년 동안에 네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릍지 아니하였느니라.’ 신8:3~4

 

그들은 더 좋은 음식을 먹지 않고도... 건강했다.

그들은 더 좋은 옷과 신을 가지지 않고도... 잘 살았다.

옷도 해어지지 않았고, 발도 부릍지 않았다.

 

사람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강’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서 ‘음식’이 중요하지만,

결정적으로 중요한 요인은 아니라는 것이다.

- 이것을 하나님은 ‘만나만 계속 주시면서’ 교훈해 주시기 원하셨다.

 

사람은 더 좋은 옷을 입고 싶지만,

광야에서 그들에게 좋은 옷을 하늘에서 내려주시지 않으셨다.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며 살지 말고

오직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며 살아가는 것을 40년간 훈련시키셨던 것이다.

 

▲목적 3 : 가나안 땅에 살도록 <준비>

이스라엘은 4백 년 동안 애굽에 살면서, 그 문화에 깊이 동화되었다.

그래서 백성들은 그 음식, 그 문화와 종교에 익숙해서, 쉽게 다시 되돌아가려 했다.

그러나 가나안은 달랐다.

 

‘네가 들어가 얻으려 하는 땅은 네가 나온 애굽 땅과 같지 아니하니

거기서는 너희가 파종한 후에 발로 물 대기를 채소밭에 댐과 같이 하였거니와

너희가 건너가서 얻을 땅은 산과 골짜기가 있어서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흡수하는 땅이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권고하시는 땅이라

연초부터 연말까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눈이 항상 그 위에 있느니라.’ 신11:10~12

 

애굽 땅은, 하늘에서 비가 안 와도, 자기들이 강물 퍼서 농사 지을 수 있었다.

그러나 가나안 땅은,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흡수해서 농사짓는 땅이었다.

 

순종해서 살기만 하면, 하늘에서 비가 제 때에 내리니,

애굽보다 더 편한 전자동 스프링쿨러 시스템이었다.

 

그러나 불순종하면, 하나님이 비를 안 주시면, 한 평도 농사 못 짓는 땅이었다.

 

가나안 땅은, 애굽 땅과 너무 달랐는데,

순종해서 살기만 하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되지만,

불순종하면... 땅이 저주 받는, 살기에 아주 힘든 척박한 땅인 것이다.

 

하나님의 눈이 항상 그 위에서 지켜보고 계시는 땅이었다.

옛날처럼 제 멋대로 살다가는, 복은커녕, 저주 받기에 딱 알맞는 곳이었다.

 

그러므로 새 땅, 새 조건에 들어가서 살려면,

광야에서부터 <준비>를 해야 했다.

 

특별히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여러 우상숭배에 물들어 있었다.

그런 생활에서, 유일신 여호와 섬김으로 변신은

결코 하루아침에 되지 않았다. 그 훈련을 어느 정도 마치는데 40년 걸렸다.

 

(그 훈련은 다음 세대에 이르러 비로소 완성된다.

유아교육이 그래서 중요하다는 사람도 있다.)

 

이런 의미에서 광야 40년 시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좋은 것이었다. 꼭 필요한 것이었다.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다. 시험은 꼭 필요하다.

시험을 통해 내 신앙이 성숙된다.

그렇지 않으면, 예수 어영부영 믿다가, 도리어 광야에서 망할 수 있다.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신8:16

 

 

◑백성들이 구한 것과, 하나님이 주신 것은 “달랐다”

 

백성들이 구한 것은, 고기, 부추, 오이, 마늘, 수박 등이었고,

하나님이 주신 것은 '만나'뿐이었다.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기도로 간절히 구하는 것은, 물질, 명예, 출세 등이고

하나님이 주시는 것은, 정반대로, 만나(말씀)이다.

 

오늘날 텔레비전에서, 라디오에서 많은 설교자들이

물질, 출세 등 세상적 복을 하나님께 구하라고 설교하고 있다.

 

‘구하면 주신다’는 논리로 나온다.

그러나 속으면 안 된다. 그런 기도는 너무 세속적이며 또한 미성숙한 기도이다.

 

우리 중 일부 믿음 좋다는 신자도, 무엇이 영원히 중요한 것인지 알면서도,

정작 기도할 때 보면, 세상적인 가치를 구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 신자는, 뭐가 진짜 중요한지 조차 알지 못한다.

 

'미련한 자의 길은, 자기 눈에는 항상 모든 게 옳게 보이지만..' 잠12:15

(잘못된 방송 설교자들은, 자기 눈에 옳다고 보이는 것을 설교한다. 진리를 떠나서...)

 

사람이 보기에는 올바른 길인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사망에 이르는 길도 있다. 잠14:12

 

사람이 어떻게 자기 길을 잘 알 수 있겠는가? 잠20:24

바울도, 우리는 연약해서, 우리가 마땅히 구할 바를 잘 알지 못한다고 했다. 롬8:26

 

위의 성경을 종합해 볼 때,

<우리는 정말 뭐가 영원히 중요한지 깨닫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가 하나님의 뜻과 영원한 가치를 정확하게 깨닫는 때도 있다.

 

그러나 “가끔”이다. “어쩌다가 한 번”이다.

대부분 우리는, 세상적 가치를 숭상하고, 그것을 주님께 구하고 있다...

 

▲응답 없는 것이 차라리 다행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세상적 요구들을, 내가 간절히 기도해도, 보통은 안 주신다.

그래서 나는 ‘하나님은 내 기도를 안 들으시거나, 내가 죄가 많은가봐’ 생각한다.

 

지나고 보면, 안 주시기 정말 다행이다!

내가 요구한 대로, 만약 주님이 다 주셨더라면... 큰 재앙이 닥쳤을 것이다.

 

내가 받은 것을 잘못 사용해서 망할 수도 있고,

내 <탐욕> 때문에 징계 받을 수도 있다.↙

 

민수기에도 보면,

하나님이, 그들이 요구한 고기(메추라기)를 주시고,

그들에게 진노하사 심히 큰 재앙으로 치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민11:31~35

그들이 구하는 것을 주시는 것이... 바로 징계였다.

 

▲영혼을 파리하게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 우리들

‘여호와께서 저희의 요구한 것을 주셨을지라도,

그 영혼을 파리하게(야위게) 하셨도다.’ 시106:15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다.

오늘 우리가 간절하고 처절하게 구하는 것이,

내 생각에는 꼭 필요하고 좋은 것 같지만,

 

사실은 내 영혼을 살찌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영혼을 파리하게 (야위게) 하는 것들이다.

물질과 명성이 솔로몬 왕을 파멸시켰으며,

 

자기 정욕적 사랑이 삼손을 파멸시켰으며,

빠른 초고속 승진이 사울 왕을 타락시켰으며,

소돔과 고모라의 영화가 롯의 가정을 파탄시켰다.

 

그 외에도 많다.

오늘 우리가 주로 구하는

돈, 명성, 세상적 성공, 번영, 풍성한 재산,

이런 것들이, 우리에게 위의 예와 비슷한 결과를 속히 가져다 줄 것이다.

 

그래서 성경이 경고하듯이, 우리는 조심해야 한다.

우리가 구하는 것이, 정말 중요한 것인지, 우리가 알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정말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성경이 말하는 일반적인 중요한 것들은 이것들이다.

 

개인적 성결 personal purity

정직 honesty & integrity

성령의 열매 fruit of the Spirit

원수를 용서 forgiveness who hurts me

 

우리는 기도할 때, 이런 것들을 주로 구해야 한다.

 

그 외 우리가 잘 구하는 것들

직장의 선택, 집 살 때, 배우자 선택, 대학을 어디로 갈 것인지,

이런 것들도 물론 상세하게 아뢰며 기도해야 하는데

언제나 선택권final choice은 하나님께 내어드려야 한다.

내 명철을 의지하면 안 된다.

 

그리하면 주께서 내 길을 지도해 주신다. 잠3:5~6

 

▲결정권을 주님께 드리라

물론 때때로 하나님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명성과 부유의 길로 인도해 주시기도 하신다. 좋은 일이다.

 

물론 반대로 하나님은 고통의 좁은 길로 우리를 인도하기도 하신다.

그래서 지루하게도 만나만 계속 먹여주신다.

 

그것은 하나님이 겸손하게 낮추시는 것이요,

쓸데없는 것들을 가지 치시는 작업이요,

우리를 정제(refine, 불순물 걸러냄) 하시는 기간이요,

마침내 결국은 복을 주시기 위함이다. 신8:16

 

어느 길도 인도하시든지,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장 좋은 베스트를 주실 것이다.

 

▲성숙한 기도를 드리자

그런데 기도할 때, 고난의 좁은 길을 달라고 구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다들 평탄한 길을 달라고, 쉬운 번영의 길을 달라고 할 것이다.

 

영원한 가치가 무엇인지 잘 알지만,

광야 만나의 고난을 겪으면서

그런 것들을 배워 나가게 해 달라고, 기도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므로 우리는 겟세마네 동산의 예수님처럼 기도해야 한다.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주님이 아시는 대로, 가장 제게 좋은 것을 주시옵소서.

제가 기쁘게 다 받겠나이다. 믿음으로 말입니다.’

 

이제 앞으로 우리는, 좀 더 성숙한 기도를 드리게 되시기 바란다.

예수님은 결코 지금 우리처럼, 그런 세속적 가치들을 기도로 구하지 않으셨다.

금년에 우리 기도의 수준이, 성숙해지는 축복이 여러분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