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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없음/2008

시험을 참는 자의 복

LNCK 2008. 3. 11. 19:41

◈시험을 참는 자의 복  약1:12~18

 

 

▲만족 유예 실험

미국 스탠포드 대학의 월터 미셀 교수가 이른바 ‘마시멜로 실험’을 했다.

‘만족 유예 실험’이라고도 말한다.

 

빈방에 마시멜로 한 개를 책상 위에 올려놓고,

4살짜리 아이들에게 각각 말했다. (마시멜로-젤리 스타일의 아이들 좋아하는 간식)

“이 마시멜로는 네게 줄 것이다. 너는 먹게 될 것이다.

그런데 15분간만 잘 참고 먹지 않으면, 또 하나를 더 주겠다.

그러면 너는 두 개를 먹게 될 것이다.”

 

여러분 이미 짐작하시겠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15분을 기다리지 못하고 덜렁 집어 먹어버렸다.

무려 6백 명을 상대로 실험을 했는데, 먹은 아이들이 아주 많았다.

 

그런데 먹지 않고, 15분을 참고 기다린 아이들도 있었다.

10년 후에 그 아이들을 추적해 보았더니,

이 15분을 참고 인내하면서 먹지 않았던 아이들은

전부 훌륭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고 한다.

 

 

▲아이에게 참는 훈련을 시키다

저는 아이들을 키울 때, 제 나름대로 하나의 방법을 생각해냈다.

그것은 <아이가 무엇을 달라고 조를 때, 오늘 주지 않는 것이다.>

‘내일 아침에 준다. 며칠 후에 준다’며 유예시켰다. 

 

얼마든지 지금 당장 줄 수 있어도, 즉시 주지 않았다.

며칠 후에 준다고 해 놓고, 기다리게 했다.

그러면 아이들은 벌써 다 잊어버린다.

하지만 그 시간이 되면, 약속한 것을 주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아이들이

<그 다음을 위해서, 오늘을 참는 만족유예 성격>이 되도록 인도했다.

 

그래서 내일을 위해서.. 오늘을 참고,

다음을 위해서.. 지금을 참고,

큰 성공을 위해서.. 오늘의 작은 수고를 견디고,

큰 유익을 위해서.. 오늘의 어려움을 넉넉히 이기는 훈련이 필요하다.

 

이것이 성격이 되고, 철학이 되고, 습관이 될 때

인생은 달라지는 것이다.

 

신앙생활이 무엇인가?

천국을 바라보며 오늘을 참는 것이다.

이 ‘마시멜로 실험’이, 이 간단한 ‘만족유예 실험’이

우리 인간의 운명을 가르게 된다.

 

 

◑1. 시험은 복된 것이다. 기쁘게 여기라!

 

본문에서 야고보는 이렇게 말한다.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약1:12

 

우리는 보통 <시험은 없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가 기도할 때는 전부 ‘시험 없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

우리 자식들 유학 가 있는데, 그저 무사태평하고 편안하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

 

그런데 약1:2절에 보면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고 했다.

 

우리는 시험이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성경은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다.

시험을 만나면 기쁘게 여기라는 뜻은... 시험은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1. 먼저 복된 사람이 되고 난 다음에, 을 받아야 한다.

여러분, 우리가 다 받기 좋아하는 ‘세상적 복’을 놓고 생각해 볼 때,

복이 정말 내게 복이 되려면 내가 먼저 ‘복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아니면, 그 복 받은 후에 그 복 때문에 내가 도리어 망한다.

 

그래서 복권 당첨된 사람들이 다 망하는 것이다.

‘돈을 잘 관리할 줄 아는 복된 사람’이 아직 되지 못한 가운데

돈만 쥐게 되었기 때문이다.

 

시험을 만나면 우리가 기뻐해야하는 이유는

그 시험(고난, 고통, 유혹, 테스트 다 포함)을 통해

내가 ‘복된 사람’으로 점점 성장되는 것이다.

그 후에야 무슨 복을 내가 다 받든지,

그것이 정녕 내게 유익이 된다.

 

 

▲2. 지혜가 있는 후에... 지식이 복이 된다.

특별히 지식이라는 것이 그렇다.

우리는 자녀에게 많은 지식을 얻게 하려고,

공부 많이 시키려고 온갖 몸부림을 다 친다.

 

그런데 우리는 조금 잘못 생각하고 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지식 보다는, 지혜를 먼저 생각한다.

지식이 아무리 많아도, 지혜가 있어야 그것을 잘 사용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지식을 남용하다가, 자기가 망하게 되는 수가 많다.

 

▲그래서 지혜를 가지려면... 시험(고난, 유혹, 테스트 다 포함)을 통과해야 한다.

아무리 책을 많이 보고 공부를 많이 해서 지식이 많더라도,

삶의 시험과 시련을 통과하지 않으면,

참으로 복된 지혜가 생기지는 않는다.

 

많은 사건을 겪고, 자기가 직접 몸으로 부딪히면서,

자기 스스로 지혜를 얻게 된다. 참으로 소중한 삶의 지혜를 얻는다.

 

 

▲3. 시험이, 의지가 약한 사람에게, 실천하는 능력을 길러준다.

사람들은 종종 ‘의지=능력’으로 착각하고 산다.

자기가 뭘 할 ‘의지’가 있으면, 그 일을 수행할 ‘능력’도 있는 줄로 착각한다.

 

예를 들면, 공부하기로 의지적으로는 결심하는데... 책상 앞에 못 앉아 있다.

아가페로 사랑하기로 의지적으로 결심하는데... 사랑은 실천되지 않는다.

마음은 굴뚝같은데... 쉽게 넘어진다.

 

이유는 간단하다.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자기 의지, 의욕만 있으면 다 될 것 같지만, 그렇게 착각들 하지만,

의지와 능력은 반드시 다른 차원이다.

 

▲그럼 어떻게 의지(의욕)를 능력(실천)으로 연결시키나?

성경은 말한다. 시험이 있어야 한다고...

 

의지가 능력화 되어서 넉넉하게 감당해 내려면

사람은 시련을 겪어야 하는데, 가급적 많은 시련을 겪을수록 좋다.

그 시련을 통해서,

자기가 결심하고 의지로 결단한 것을

이제 반드시 실행에 옮기는 능력, 실천력을 터득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새로운 믿음을 가지자: 시험은 있어야 한다고!

우리는 ‘시험의 당위성’을 인정해야 한다.

사람은 시험이 없기를 바라지만, 시험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성경을 다시 읽어보자.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약1:2

 

그 시험(시련, 고난, 유혹)을 통과하고, 겪어서 승리한 사람에게는,

마시멜로 시험처럼, 그것을 견디며 ‘만족 유예’를 한 사람에게는,

어떤 (세상) 복을 받더라도, 그것을 컨트롤 할 수 있는 ‘복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시험을 통과한 사람이 참된 지혜를 갖게 된다.

시험을 이겨낸 사람이 참된 능력을 갖게 된다.

그래서 시험을 만나는 것을 기쁘게 여긴다... 굉장한 진리이다.

 

 

◑2. 시험에는 약속이 있다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약1:12

 

‘내가 왜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는지’를 잘 모르고,

‘내가 왜 이렇게까지 어려워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고 한다.

 

 

▲시험에는 반드시 약속이 있다.

이제 나이가 드니까 이런 이야기도 할 수 있게 되었는데,

제 호적은 신학교 기숙가가 있던 중구 회현동 100번지이다.

방학 때가 되면 학생들은 다 집으로 가지만, 난 갈 데가 없었다.

겨울 방학에도 기숙사에 남아서, 할 일이 없으니까 책만 읽었다.

경제적으로도 너무 어려웠다.

 

주님이 나를 625 전쟁 통에서 건져 주신 것도 감사하고,

광산에 끌려갔다가도 살려주신 것도 고마웠지만,

지금 내가 목사가 되겠다고 신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는데,

‘하나님, 이거 지금 너무하지 않습니까?’ 라고 푸념했다.

 

하나님이 나의 그 기도는 안 들어주셨다. 

그래서 많은 어려움, 많은 시련 다 겪었다.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하니까

그 때 그런 어려움이 있었기에... 오늘 내가 있다는 것이다.

‘오늘의 나’라는 약속이 있었는데... 그게 안 보이니까 그 때는 매우 괴로웠다.

 

그런고로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시험에는 반드시 약속이 있다는 것을!

오늘 내가 당하는 고난과 어려움 뒤에는,

반드시 약속이 있다는 것을!

이것을 믿는 것이 바로 ‘믿음’이다.

 

 

그런 의미에서 의미 없는 시험은 없다.

그 속에 다 하나님의 뜻이 있고, 우리에게 지혜와 능력,

약속을 주시기 위한 것이다.

 

순교자들처럼, 이 세상에서 못 받으면,

천국에 가서 갑절로 반드시 받을 것이다.

 

 

◑3. 내가 하나님께 시험 당한다 말하지 말라!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약1:13

오직 각 사람이 시험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1:14

 

 

시험에 관한 책임을 하나님께 돌리지 말라는 것이다.

모든 시험은 내가 당하는 것이고,

나를 위해 당하는 것이지,

하나님의 책임은 아니다.

 

위 본문의 뜻은, 하나님이 죄를 짓도록

우리를 유혹하지 않으신다는 뜻이다.

 

 

▲사랑하는 자도 시험 받는다.

여러분, 시험에 대한 오해는,

죄를 지어서만 시험을 당하는 줄 아는 것이다.

 

물론 우리가 좀 어려운 일을 당하면

자기 죄가 단번에 생각이 난다. 물론 죄는 있다.

 

그렇지만 어려운 일만 당하면 ‘벌 받았다. 심판 받았다. 죄 때문이다’ 라고

생각하는 것은 옳지 않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에게 시험을 주시기 때문’이다. 

주께서 그 사랑하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히12:6

 

의인도 시험을 당한다. 욥기의 주제가 바로 ‘의인이 당하는 고난’이다.

욥은 계속된 고난을 당하면서 ‘내가 왜 당해야 합니까?

세상에 죽일 놈도 많고, 못된 놈도 많은데 하필이면 왜 내가 당합니까?

내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렇게 큰 죄를 지은 것은 아닌데,

내가 완벽한 의인이라는 말은 아니지만, 상대적으로 볼 때

내가 이만하면 괜찮은 것 같은데, 왜 하나님은 나를 이렇게 괴롭히십니까?’

그걸 가지고 씨름하는 것이 욥기다. 의인의 고난!

 

 

의인도 고난당한다.

이 한 마디면 끝이다.

“예수님도 시험을 당하셨다!”

 

예수님도 시험을 당하셨는데,

그런데 우리가 이렇게 편안하기만 바라는가? 무사하기만 바라는가?

 

예수님도 일생 시험을 당하셨다. 그것도 아주 어려운 시험들을.

어찌 생각하면 예수님의 일생이 전부 시험이었다. 십자가까지!

그러므로 시험을 당할 때는 ‘이것은 내게 꼭 필요한 것이다!’

이렇게 기꺼이 수용해야 한다.

 

 

◑4. 잘 되는 것도 시험이다.

 

▲시험에 대한 또 하나의 큰 오해가 있다.

우리는 시험 당한다 할 때,

불행할 때 시험을 당하고,

내 뜻대로 안 될 때 시험 당하고,

고통을 당하고 병들 때만 시험 당하는 줄 안다.

 

아니다. 진짜 무서운 시험은, 오히려 우리가 흔히 말하는 형통함이다.

돈을 손해 본 게 아니라, 돈을 억수로 벌 때,

굴욕을 당한 게 아니라, 지금 칭찬을 받을 때,

병든 게 아니라, 지금 건강할 때,

바로 이것이 큰 시험(유혹)이다.

 

남자나 여자나 너무 잘 생겨서... 교만해서 망하는 사람이 부지기수다.

게다가 높은 자리에 올라가는 것... 이거 큰 시험이다.

우리는 뭔가 어려울 때만 시험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큰 오해이다.

 

조지 팍스가 이런 유명한 말을 했다.

‘마귀도 병들면 천사가 된다!’

하하하 그렇다. 아무리 마귀 같이 악한 사람도

병들어서 병원에 누워 있으면, 뭐 죄를 지을 수도 없고

그럭저럭 천사가 될 수도 있다.

 

그런데 문제는 돈도 있고, 명예도 있고, 똑똑하고, 건강하니까... 시험에 든다.

사람들은 이게 시험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이것만큼 무서운 시험이 없다!

 

 

◑5. 시험은 정결하게 만든다.

 

시험을 당하면서 우리는 전에 생각지 못했던 것을 생각하게 된다.

나 자신을 잃어버렸으나, 시험을 통해서 나 자신을 되찾게 된다.

 

여러분, 학교에서 시험 볼 때도, 시험을 통해서 자기 정체(참 실력)를 알게 된다.

그리고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에 대해서도 알게 된다.

 

또 뭔가 늘 생각하면서도 끊지 못했던 것,

끊어야 되겠다고 하면서도 못 끊는 것,

이제 하나님이 비상조치를 내리신다.

시험을 줘서, 그것을 끊게 만드신다.

 

내가 잘못된 방향으로 갈 때, 그 방향을 점검하게 만드신다

내가 아무 의미도 없는 삶을 살 때, 이제 그 의미를 생각해 보게 하신다.

내가 아무 목적도 없이 살아갈 때, 참 인생의 목적을 되돌아보게 하신다.

모두 시험을 통해서다!

 

결국 한 마디로 말하면, 내 믿음이 방향과 목적을 잃고 표류할 때,

시험을 통해서, 내 믿음을 다시 재점검하고, 방향을 재설정하는 것이다.

 

 

▲시련 없는 축복은... 문제다.

디트리히 본회퍼는 「참 제자가 되는 길」에서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은 값싼 은혜를 지향하고 있다. 그 태도가 잘못되었다.

즉, 행위 없는 믿음,

순종 없는 신앙,

십자가 없는 은혜,

시련 없는 축복... 여기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시험을 받고 옳다 인정함을 받은 후에” 약1:12

그렇다. 우리는 시험을 통과해서 인정서를 받아야 한다. 합격해야 한다.

그러면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받게 된다.

 

 

▲출애굽과 가나안 사이에는 광야 시험이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 애굽에서 나올 때는,

그저 나오기만 하면 바로 가나안인 줄 알았을 것이다.

아니다.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40년의 광야생활이 필요했다.

광야생활의 시련을 통해서만, 가나안에 갈 수 있었다.

그냥 화끈한 기적 속에서 홍해가 열리는 순간,

가나안 땅이 다가온 게 아니었다. 이 사실을 잊지 말자.

 

그러므로 시험을 참는 자들은,

억지로 참지 말고, 기쁨으로 참고, 감사함으로 참자.

그러할 때, 시험을 통과하고는, 하나님의 큰 복을 누리게 될 것이다.

이 영광이 항상 함께하는 윤택한 신앙생활 되시기를 바란다.

 

<08.01.27. 인터넷 설교에서 발췌

 

 

“유혹”(temptation, 페이라스모스, 한글성경에는 주로 ‘시험’으로 번역)이란 말은

신약성경에 약 21회 나타난다. 그 중 20회의 경우는 trial(고생), test(테스트), ordeal(시련)

등의 의미를 갖는다.

 

반면에 1회의 경우에 “죄에의 유혹”(temptation to sin)을 의미하는데, 딤전 6:9이다.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따라서 광야에서 예수님이 마귀에게 당하신 것은 temptation(유혹)보다는,

test(테스트) 또는 ordeal(고난)으로 번역되어야 한다.

 

‘유혹’이라는 의미는, 예수님이 죄지을 가능성에 놓여졌으나

그것에 저항했다는 의미가 된다.

그렇지만 본래 성경 본문은, “사명에 대한 예수님의 수용(acceptance)”에 관한 것이다.

예수님은 유혹을 받은 자라기보다, 시련에서부터 나온 자인 것이다.

(한글 성경엔 ‘유혹’대신에 ‘시험’으로 번역하고 있으므로 잘 번역한 것임)

<요아킴 예레미아스 「신약신학」새순출판사, p. 119.

 

 

예수님이 주기도문에서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하신 것은

<시험에 지지 말게 하옵소서> 라는 뜻으로 해석해야 하겠다.

살다 보면, 시험 자체를 피할 수는 없는 것이다.